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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태양이 걷는 순례길
작가 : 에스뗄
작품등록일 : 2017.6.18

인생이라는 고달픈 순례길에서 맞닥뜨린 뜨거운 태양 하나. 어둠 속으로 달아나는 그믐달 진해연과 그녀를 쫓는 태양 문도준. 과연 태양과 달의 사랑은 이뤄질 수 있을까?

 
021. 기분 좋은 느낌(3)
작성일 : 17-07-05 22:18     조회 : 23     추천 : 1     분량 : 4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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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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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뒷부분을 끌어 올리지 말고 일자로 쭉 이어봐요."

 "있도록- 이렇게요?"

 "맞아요. 끝을 들어 올리는 것만 고치면 되겠어요."

 

  무정한 손이 하얀 종이 위에 또 하나의 선을 그려 넣는다.

  하얀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였던 악보는 끝내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하아..."

 

  강릉에서 보았던 대본처럼 알록달록 기하학적인 그림과 메모로 가득한 악보를 보니 한숨이 새어 나온다. 아, 난 교과서에 밑줄 빼고는 메모도 안 하는 스타일인데.

  입은 댓 발로 나왔지만 차마 마음속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지금 메모를 남기고 있는 무정한 손의 주인이 그 어느 때보다도 무서웠기 때문이다.

 

 "자, 이거 보고 익히세요."

 

  녹음까지 남은 시간은 단 하루.

  밀가루와 나는 맹연습에 돌입했다. 벌써 4시간째, 잠깐잠깐 물로 목을 축이는 것 외에는 단 10분의 쉬는 시간도 없었다.

  요즘은 기계가 다 만져주니 설렁설렁 할만도 한데, 잠시의 틈도 주질 않는다. 어제 녹음실에서 들어보니 내 상태가 심각하다나.

  화장실도 못 가게 옆에 딱 붙어서는 음정 하나, 호흡 하나까지 점검하는 탓에 스파르타도 이런 스파르타가 없었다.

  독한 놈, 아주 지독한 놈. 어쩜 이래?

 

 "그럼 잠시만 쉬었다가 마지막으로 맞춰볼까요?"

 "네. 제발요."

 

  나는 체면이고 뭐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춤도 안 췄는데 이마에서 땀이 흐를 지경이야.

 

 "웬만한 보컬 트레이닝도 이보다는 힘들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도 덕분에 소리는 한결 좋아졌잖아요."

 

  그건 인정.

  어제 집에서 가이드를 들으며 연습했을 땐 대충 감만 잡을 뿐 세세한 그림은 그리지 못했는데, 밀가루는 내가 어려워하는 부분을 하나하나 짚어주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가려운 곳을 차례로 긁었지만 뭔가, 가장 큰 가려움이 해소되지 않은 느낌이랄까.

 

 "왜 그러세요?"

 

  나의 미심쩍은 표정을 알아챈 밀가루가 피아노에 기대서서 물었다. 검은 박스티에 검정 야구모자를 얹고서 까만 피아노 옆에 서니 하얀 얼굴과 팔근육만 보인다.

  운동장에 나가 야구방망이를 들어야 할 것 같은 차림에 피아노라니. 그런데 은근히 매력있...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이 가려움증을 해소하는 게 우선이라고.

 

 "뭔가 부족해요."

 "어떤 점이요?"

 "아무래도 제가 가사의 느낌을 잘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음, 하고 고개를 주억거린 밀가루가 피아노 위에 놓인 물병을 들었다. 그는 물병을 위아래로 흔들며 도로록, 눈동자를 좌우로 굴렸다.

  야구모자를 거꾸로 돌려쓴 그가 목이 말랐는지 물을 통째로 들이켠다. 물이 넘어갈 때마다 하얗고 기다란 목의 울대가 위아래로 울렁인다.

  목울대가 움직이는 모양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노래를 불러야 하느니라, 진해연!

 

 "어쩌죠? 그래도 나름 사랑 노래인데."

 "비법이 있죠."

 "비법? 뭔데요?"

 "알려줄까요?"

 

  시원하게 물을 들이켠 그가 빈 물병을 피아노 위에 올려놓고 보면대에 몸을 기댔다.

  자신 있는 표정은 거짓이 아닌 듯하다. 하긴, 아무래도 5년 차 가수니까 나름의 비법이 있겠지.

  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가늘게 접었다 편 밀가루가 보면대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내 앞에 쭈그려 앉았다. 그리곤 자신의 커다란 손을 내 어깨에 올린다.

 

 "날 사랑하면 돼요."

 "뭐라고?"

 "말 그대로예요. 노래 부르는 동안 만큼은 듀엣 파트너와 사랑을 하는 거죠."

 

  아, 난 또 뭐라고.

  순간 무슨 헛소리냐고 소리칠 뻔했다. 그러니까 널 진짜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 같이 녹음을 하는 몇 시간만 비슷한 감정을 가지란 말이지?

  그런데 몇 시간 만에 훅 빠졌다 다시 나오는 게 가능한가? 그럼 듀엣 전문 가수들은 완전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겠네.

 

 "그럼 그쪽은 노래할 때마다 상대와 사랑에 빠져요?"

 "글쎄요. 저도 듀엣은 처음이라."

 "여러모로 신빙성이 떨어지네요."

 "어쨌든 전 선생님한테 푹 빠질 준비 됐어요. 그리고..."

 

  톡톡, 그가 기다랗게 뻗은 손가락으로 보면대 위 악보의 한 부분을 두드린다.

 

 "제 이름은 도준이에요. 그쪽이 아니라."

 "그거나 그거나."

 "가사의 느낌을 잘 살리고 싶다면서요."

 "네네. 사랑하는 문도준 씨."

 

  나의 심드렁한 대꾸에 밀가루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의 단단한 목울대가 조금 전 물을 마실 때보다 더 크게 울렁인다.

  갑자기 터져버린 커다란 웃음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혹시 내가 잘못 말한 건가 싶어 그의 얼굴을 살폈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뭐야? 도대체 어느 지점이 웃음의 포인트인데?"

 

  뜬금없이 터진 웃음은 한참 만에야 잦아들었다. 한 손은 허리에, 한 손은 이마에 갖다 댄 그가 크큭대며 겨우 숨을 고른다.

  실컷 웃은 그가 나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가벼운 손끝에 묻어나는 밝은 미소에 나는 그의 손이 닿은 부분이 움찔거리는 것을 느꼈다.

 

 "밀가루, 반죽보다는 훨씬 낫네요. 그런 노력 좋아요."

 "좋기는 개뿔."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그의 손을 밀쳐냈다. 이런 노력 두 번만 했다가는 닭이 되겠다. 그나저나 밀가루는 그렇다 쳐도 반죽은 또 어떻게 안 거야?

  다시 한번 크게 웃은 밀가루가 손을 풀며 피아노 앞에 앉았다. 첫 음을 누른 그가 갑자기 생각난 듯 옆자리를 톡톡 두드린다. 내가 멀뚱히 서 있자 이번에는 손을 내민다.

  따스한 손바닥을 타고 기분 좋은 온기가 올라온다. 홀리듯 그의 옆자리에 앉자 그가 싱그런 풀잎 같은 미소를 담은 얼굴을 들어 가만히 나와 눈을 맞췄다.

 

 "그럼 한 번 맞춰볼까요, 사랑하는 해연 씨?"

 

  붉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나긋한 목소리에 나는 잡고 있던 손을 놓치고 말았다.

  매력적인 붉은 입술을 살짝 들어 올린 그가 두 손을 피아노 건반 위에 얹었다. 그의 손끝에서 음표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우연히 마주친 너를 돌아보았을 때

 너는 향기만 남기고 사라졌지

 

 흐릿한 기억 속 너를 다시 찾았을 때

 너는 여전히 빛나고 있었어

 

 모든 걸 버리고 홀로 서길 택했지만

 너의 향기만은 간직하고 있어

 

 모두가 변해 낯선 이 길을 헤매지만

 너만은 여전히 빛나고 있어

 

 오랜 기억 속 향기를 따라가

 나만 볼 수 있는 그 빛을 따라가

 꿈에서도 기다리던 너를 찾아가

 

 내 이름을 불러줄래

 너를 통해 내 존재를 느낄 수 있도록

 

 나를 꼬옥 안아줄래

 가슴 가득 네 향기를 느낄 수 있도록

 

 계속 나만 비춰줄래

 오직 하나 내 사랑 널 찾을 수 있도록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 위로 두 개의 목소리가 살포시 얹어진다.

  붓의 움직임에 따라 그려지는 수채화처럼, 작은 연습실 안이 색색의 음표들로 가득 메워진다.

  두 개의 마음, 두 명의 사람

  두 개의 악보, 두 쌍의 눈동자

  두 개의 선율, 두 개의 목소리

  모든 것이 다른 둘이 만나 이루어내는 하나의 노래, 단 하나의 고백.

  서로 다른 순간들을 지나온 두 목소리가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속에서 서로를 찾아 끌어안는다. 조금은 서투른, 하지만 진심을 담은 두 개의 마음이 마주한다.

  3분이란 짧은 시간이 영원처럼 길게 느껴진다. 피아노 선율도, 시간도 이대로 멈춰주었으면. 아니, 이대로 계속 끊기지 않아주었으면.

  오렌지꽃 향기에 취한 밤처럼 나는 또다시 꿈결 같은 이 시간에 취해간다.

 

 "나만 볼 수 있는 그 빛을 따라가..."

 

  긴 속눈썹을 내리깔고 건반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 남자. 노래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피아노와 하나가 되어 속삭이듯 노래하는 모습이 참 편안해 보인다.

  편안함, 언제부터인가 내게는 사치가 되어버린 말. 지구 반대편에서 1년이란 시간을 보내면서도 사실은 내내 정체 모를 것에게 쫓기고 있었다.

 

 "꿈에서도 기다리던 너를 찾아가..."

 

  그런데 이 남자와 있을 때는 어느샌가 마음을 놓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의 따스함과 포근함에 물들어 버리는 기분. 그 기분이 너무 좋아서,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차마 그 순간을 놓지 못하고 있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눈앞에서 아주 얇은 햇살 한줄기가 어둠을 갈랐다.

  어둠이 갈라지자 나조차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이 나의 심정을 대변해주었다.

  그 사이 피아노 선율이 멈췄다. 나는 다시 눈을 떴다. 턱을 괸 밀가루가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제가 듣기엔 아까보다 훨씬 좋아진 것 같은데, 어때요?"

 "도준 씨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음, 그 앞에 붙어야 하는 말이 있지 않나요?"

 

  붙어야 하는 말? 나는 그의 말뜻을 해석하기 위해 한참 동안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눈썹을 찌푸리고 밀가루를 쳐다보자 장난스런러운 미소를 한가득 걸친 그가 두 손을 입가에 대고 입모양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사.랑.하.는.'

 "나 참, 장난 한번 한 것 가지고 이러기예요?"

 "전 장난 아닌데요? 노래 부르는 동안은 정말로 선생님한테 푹 빠질 거라니까요."

 

  나는 오소소 돋아오는 소름에 양팔을 비볐다. 분명 날 가지고 노는 것 같은데 저 진지한 표정을 보면 또 헷갈린다.

  정말로 날 사랑해줄 준비가 되었다는 듯 힘을 준 두 눈이 점점 짙어진다.

  대답을 종용하는 그의 강한 눈빛에 기가 눌리기 시작했다. 얼굴이 상당히 가까워졌다 느꼈을 즈음, 밀가루 특유의 달콤하고 시원한 비누 향이 코끝을 덮었다.

 

 "이게 다 노래를 위해서예요. 그러니까 선생님도 노력해보세요."

 

  어느새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댄 밀가루의 속삭임이 확성기를 댄 것처럼 귓속을 가득 메웠다. 갑작스러운 귓속말에 간지러움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 앞으로 돌아온 그가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하긴. 내가 널 좋아하는 것보다는 네가 날 좋아하는 데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

 

 "알았어요. 하루만이니까."

 "역시 내가 사랑하는 여자다워요. 해연 씨."

 

  아무렇지도 않게 사랑한다는 말을 담은 그가 악수를 청했다. 하얗고 가지런하게 뻗은 그의 손을 맞잡자 그가 사뿐히 감싸 위아래로 흔든다.

  피식, 굳게 다물고 있던 입술 사이로 웃음이 새어 나온다. 덩치는 산만해서 다섯 살 아이 같은 모습을 보니 살랑이는 아지랑이가 가슴을 간지럽히는 기분이다.

  노래를 위해 당신을 사랑하라 했던가. 지금 이 감정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 두근거림은 충분히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괜스레 가슴이 설레는, 기분 좋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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