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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집에 비치 된 bar에서 바텐더처럼 능숙한 손목 스냅을 이용해 칵테일을 만들어 내 앞에 내려놓았다.
“블러드 메리. 마셔봐.”
“이거 마시라고 날 데려온 거예요?”
“그럴 리가 있나. 그냥 좀, 긴장을 풀라는 거지.”
“이거 아무래도 작업 멘트 같은데……. 술 먹여서 어쩌려고요?”
내가 샐쭉하니 그를 쳐다보자 그는 귀엽다는 듯이 콧잔등을 손끝으로 꾹 누리며 이렇게 말했다.
“술 먹이고 당장 잡아먹는 하수는 아니니까. 염려 말라고.”
“으흥~”
“믿으라니까?”
그가 만들어준 칵테일을 음미하며 앉아있을 때 그가 느닷없이 다가와 자신의 팔을 내밀었다.
“자주 흘끔거렸지.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을까?”
무슨 말을 듣더라도 별다른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데 그의 앞에서는 이상하게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뭐, 뭘요?”
“아주 탐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잖아. 내 팔뚝이 좋아? 하얗고 마른 팔뚝이라 별로 좋아해 주는 사람이 없는데…….그쪽은 너무 탐나게 쳐다보는 것 같아서.”
“절 관찰 했어요?”
“그쪽이 먼저 관찰 했거든?”
“몰라요.”
부끄러운 감정을 들키기 싫었다. 부러 의자를 밀어 돌아서서 칵테일을 마시는데 그는 이런 마음을 가볍게 무시하며 자신의 팔을 들이밀었다.
“자! 감상평 정도는 들어주지.”
“의사선생님께서 왜 이러실까. 체통 없이!”
팔을 밀어내는데도 그의 팔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내 팔에 기대어진 모양새다.
“어쩌라고요?”
“보라고. 열심히.”
“변태 같아.”
“누구만큼 변태인거지, 누구보다 변태인 건 아니니까. 난 상관없어!”
그가 느물거리며 대꾸하자 더 이상 할 말을 구할 수 없었다.
“쳇!”
“그게 다야?”
“뭐가요?”
“쳇! 이게 다냐고. 무슨 액션 없나?”
“무슨 액션이요?”
“뭐, 이런 거?”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팔이 내 목을 휘어 감아왔다.
잠시 후.
“헤드락!”
“윽! 컥, 켁, 컥.”
“말 하시죠. 복지사님? 왜 날 그렇게 뜨겁게 쳐다봤지?”
탕. 탕. 탕.
그가 목에 압력을 주며 헤드 락을 걸어오자 호흡이 쉽지 않은 와중에 심장마저 펄떡 펄떡 뛰기 시작한다.
‘너무 가까이 붙었잖아.’
“일단 이걸 좀 놓고 말해요. 칵테일도 마셔야 하는데…….컥. 숨 막힌다고요!”
삑 소리를 치며 눈을 흘기자 그는 팔을 조금 느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눈과 입술이 완벽한 반달 모양이 될 때까지 활짝 웃으며 물었다.
“말 해.”
“그냥…….”
“그냥?”
“팔뚝이 좋은 게 아니라 그냥…….”
“응?”
“혈관이…….”
“혈관?”
“섹시해서요.”
나는 결국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혈관이 섹시하다고요. 울뚝 불뚝 올라와서.”
그가 다시 은근히 묻는다.
“만지고 싶어요.”
“어디를?”
“팔뚝을.”
그러자 그는 약간 거만하게 내리깐 눈을 하고 내게 말 했다.
“허락 하지. 만져!”
“돼, 돼요?”
나는 분명 발그레해졌을 얼굴을 하고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응. 만져!”
그의 흔쾌한 대답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자못 심드렁한 얼굴로 다시 물었다.
“정말 만져요?”
“응! 만지라니까?”
나는 너무 신이 나서 그 순간 그의 팔을 콱 움켜잡아버렸다.
“아, 아야! 악력이 대단한데?”
“앗! 죄, 죄송해요.”
“죄송할 것까지야.”
그의 팔에 살짝 붉은 기가 올라온다.
‘멍이 잘 드는 체질인가보네.’
“멍들겠어요.”
안타까운 어투로 말했지만 그는 심드렁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래? 그럼 또 일주일 정도 기다려야지 뭐. 멍 든 게 무슨 대수라고.”
“후!”
“왜 웃지?”
그가 불만스럽게 미간을 찡그리며 불퉁거렸다.
“헌혈원에서 오만 엄살을 다 부렸던 사람이랑 동일인물 맞아요?”
“어허, 그거 참. 오래도 우려먹는다!”
그의 불퉁하게 올라온 입술이 귀여워서 나는 얼마 못 가서 또 웃고 말았다.
“으흐흐흐.”
“왜 그렇게 실실 쪼개지?”
“아뇨. 그냥…….”
“또 그냥?”
그의 목소리가 은근하게 가라앉는다.
“그냥이라는 말이 아주 많은 의미를 내포 하고 있는 것 같은데…….어떤 의미인지 정말 궁금하군.”
목소리가 잦아들수록 그의 목울대와 목선을 타고 내리는 혈관의 움직임은 더욱 더 맹렬해지며 뚜렷한 색을 자랑하고 있었다.
‘아…….정말 핥고 싶다.’
“팔뚝 혈관만 좋아하는 게 아니로군.”
그를 너무 빤히 쳐다본 것인지 그의 목소리가 음흉하게 귓전을 스쳐 간다.
“예?”
“이번엔 목을 쳐다보는 눈이…….마치…….”
“.....”
“아주 굶주린 눈이었어.”
“예? 아, 아뇨!”
‘들켜 버렸네.’
나는 분명 얼굴이 터질 것처럼 익어버렸을 것을 확신 할 수 있었다. 평소엔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인데……. 이상한 일이다. 어째서 이 남자에게만은 그런 뻔뻔한 모습을 보일 수 없는 것일까?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 그게 뭐, 대순가? 그냥이면 어떻고 이유가 있으면 어때. 지금 당신이 날 보는 눈빛이 중요한 거지.”
“예?”
나는 몽롱하게 풀어진 눈으로 그를 응시했고 그는 내 팔을 들어 올리며 자신의 얼굴에서부터 천천히 쓸어내렸다. 아주 감각적으로.
“나랑 사귀면 마음껏 만져도 되는데. 관심 있어?”
유혹적이다. 아주 많이 유혹적이라서 당장이라도 이렇게 외치고 싶다.
‘콜!’
그러나 난 여기서 곧장 대답하지 않는다. 아니, 곧장 대답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몰래 입 속 살을 깨물어 떨어져 나가도 참을 것 같다.
“글쎄요?”
“왜?”
“우리 아직……. 잘 모르잖아요.”
“이런.”
그는 몹시 실망한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지만 난 열심히 그에게 고개를 내저으며 거부의사를 내보였다. 마음은 그렇지 않았지만 나도 믿기지 않는 지금의 이 금사빠 기질을 들키긴 싫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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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느물거리는 구덕 씨로 돌아왔습니다. 헤헷.^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