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월 휴가 받았다고 생각하지 뭐... 씨팔!"

　징계위원회가 끝나고 차를 몰고 집으로 가던 준혁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준혁은 경찰이라는 조직에 들어와 처음으로 환멸감을 느꼈다.

　"이러니 계급이 높은 놈이든, 낮은 놈이든 자기 한 몸만 사리려고 발버둥 치는거 아냐.. 씨팔! 씨팔!"

　분에 못이겨 거칠게 차를 몰던 준혁이 집에서 불과 100m도 떨어지지 않은 코너길을 도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

　끼이이이이익,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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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삑.. 삑.. 삑.. 삑..

　"끄으윽..."

　준혁이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정신이 드세요? 불편한 곳은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과장님! 과장님!"

　옆에 있던 간호사가 호들갑을 떨며 병실 밖으로 달려나갔다.

　준혁은 온 몸이 고통으로 비명을 질러 침대에 누운채 눈만 깜빡거렸다.

　유난히 코 끝을 찌르는 프로포폴 냄새, 규칙적인 심장박동기 소리, 손등의 링거 주사기는 준혁에게 이 곳이 병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다. 

　집 근처 코너길, 갑자기 눈 앞으로 튀어나온 어린아이, 급격히 꺾이는 핸들, 그리고.....

　'그대로 가드레일을 들이받았었지'

　준혁이 여기까지 생각을 마쳤을 때, 호들갑을 떨며 병실을 나간 간호사가 의사로 보이는 남자를 데리고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정신이 듭니까?"

　의사가 다소 놀란 눈초리로 물었다.

　"물.. 물 좀"

　갈라지는 목소리로 의사의 물음에 대답하려던 준혁이 갈증을 호소했다.

　"여기요!"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간호사가 준혁에게 물을 가져다 줬다.

　꿀꺽, 꿀꺽

　"크으..."

　"어디 불편하거나 아픈 곳은 없습니까?"

　준혁이 몸을 이리 저리 돌려보더니 대답한다.

　"제가 얼마나 누워있었습니까?"

　"오늘로 3일 째입니다."

　의사의 대답에 준혁이 눈을 크게 뜬다.

　"제가 3일이나 누워있었습니까?"

　"예. 사고 당일에 외관상으로 머리에 피를 흘리는 것 말고는 특별히 뼈가 부러지거나 크게 다친 곳도 없어 보였고, CT도 찍어보고 정밀검사도 해봤는데 준혁씨의 몸에 특별한 이상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는데 3일이나 의식이 없으셔서 저희도 많이 걱정하던 참이었습니다."

　사실 준혁도 3일이나 의식을 잃었던 것 치고는 몸상태가 좋아 의문스럽던 참이었다.

　3일간 미동도 없이 누워있었다 보니 온몸의 뼈마디가 욱신거렸지만, 주위의 사물이나 의사의 말소리는 오히려 더 또렷하게 들렸다.

　"저 선생님, 그럼 혹시 그 때 그 아이는..?"

　사고 직전에 눈 앞에 있던 아이를 떠올린 준혁이 의사에게 물었다.

　"아이라면... 아!"

　덜컥

　그 때 병실 문이 열리며 일단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어? 아저씨!"

　"준혁아!"

　준혁이 있는 병실은 1인실이었고, 때문에 지금 막 병실로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준혁의 손님들이었다.

　"아이는 보시다시피 여기 멀쩡하게 잘 있습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준혁을 빤히 쳐다봤다.

　"김윤후! 그렇게 아저씨 쳐다만 보지 말고 죄송하다고 사과드려! 얼른!"

　윤후의 엄마 나영이 윤후를 다그쳤다.

　"히끅!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저씨"

　윤후가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준혁에게 사과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도로가에 그렇게 함부로 뛰쳐나가지 마라고 다그쳐도 애가 아직 철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윤후가 준혁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며 나영도 함께 사과했다.

　"아.. 괜찮습니다. 크게 다친 곳도 없고, 그렇게 신경 저기 그런데 선배님은 어떻게..?"

　옆에서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석준을 보며 준혁이 얘기했다.

　"관내에 대낮부터 혼자 가드레일 들이받은 차가 있다고 112에 신고가 들어왔다, 교통사고조사계 직원들이 현장에 나가서 신원확인 하니까 너였고, 그래서 우리 파출소로 통보해주더라"

　"아...."

　"덕분에 대낮부터 음주 1건했다고 좋아하던 조사계 놈들만 물먹은거지. 난 니가 징계받았다고 괜히 화풀이한 줄 알았다"

　"설마요.."

　준혁이 쓰게 웃었다.

　"농담이고.. 몸은 좀 괜찮냐?"

　"예, 멀쩡합니다."

　준혁이 몸을 다시 한번 이리 저리 움직여보더니 담당의사인 박준희 과장을 바라봤다.

　"선생님, 특별히 아픈 곳도 없는데 다른 이상이 없으면 당장 퇴원해도 될까요? 병원은 영 체질이 아니라서..."

　"일단 앞으로 1주일 정도는 병원에서 더 경과를 지켜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3일이나 의식을 잃었기 때문에 조금 불편하더라도 한동안 병원에서 지내도록 하시죠"

　준혁이 한숨쉬었다.

　"알겠습니다."

　"자 일단 준혁이는 어디까지나 환자니까 조금 더 쉴 수 있게 배려해주도록 하는게 어떻습니까?"

　석준의 말에 박과장이 맞장구쳤다.

　"그게 좋겠습니다. 우선 준혁씨는 조금 더 쉬시도록 하시죠"

　병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가고, 뒤따라 가던 석준이 준혁을 한 번 돌아본다.

　"위에는 내가 너 건강하다고 잘 얘기해둘테니까, 몸 좀 괜찮아지면 어머니한테 전화 한 통 드려라. 밤새 울면서 너 간호하시다가 잠깐 씻으러 집에 가셨으니까"

　"예.."

　석준이 병실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확인한 준혁이 그대로 뒤로 누웠다.

　"하아... 피곤하네"

　머리맡에 놓여진 휴대폰 연락처 목록에서 '엄마' 라고 등록된 번호를 찾은 준혁이 손가락으로 머리를 꾹꾹 눌린다.

　"엄마 걱정안시켜드리기로 맹세했는데..."

　이윽고 준혁이 통화버튼을 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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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주일 뒤, 준혁의 치료를 담당했던 박과장에게 퇴원해도 좋다는 말을 들은 준혁이 퇴원수속을 마치고 병원 밖으로 걸어 나왔다.

　"햇살 한번 죽여주네"

　하늘을 한 번 바라본 준혁이 택시를 타기 위해 도로가로 이동했다.

　병원에서 지내는 1주일 간 준혁에게 발견되는 이상징후나 후유증은 전혀 없었다. 준혁에게는 신체적인 문제보다 옆에도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어머니를 달래는 것이 더 힘들었다.

　"오히려 몸이 더 좋아진 것 같은데..."

　준혁이 중얼거리며 100m도 더 떨어진 곳에 위치한 표지판을 바라봤다.

　'버스승강장'

　사고가 나기 전에도 준혁의 시력은 양안 1.2로 좋은 편이었지만 이 경우에는 시력이 좋은 정도를 벗어났다.

　그 외에 준혁이 의식을 찾고 어느정도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는 병원의 프로포폴 냄새에 숨을 못 쉴 정도로 고통스러웠고, 앞에 있는 간호사의 심장소리까지 귀에 또렷하게 박혀들었다. 마치..

　'오감이 극도로 발달한 사람처럼...'

　5일정도 지났을 때, 준혁은 이 오감을 어느 정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었다.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 변화를 생각하며 움직이던 준혁이 멈칫한다.

　우우웅, 우우웅.

　"647이면 경찰서인데...."

　진동으로 바꿔 놓은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 본 준혁이 전화번호 앞자리를 보고 중얼거린다.

　"여보세요"

　"조순경?"

　"예, 맞습니다. 조준혁입니다."

　"아 맞군, 나는 경찰서 형사2팀장 김용진이라고 하는데"

　"아 예, 알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그래, 사고당했다고 들었는데 몸은 괜찮나?"

　"예 크게 다친 곳이 없어서 오늘 퇴원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아 오해는 말고, 무슨 문제가 있어서 전화한건 아니고..."

　휴대폰 넘어로 말끝을 흐리는 용진의 목소리를 들으며 준혁이 침을 삼킨다.

　"자네 혹시 형사팀에서 근무할 생각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