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화 죽는다는 것
다음 날 아침, 노미는 여관주인에게 방값을 치르고 세 도련님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배는 산처럼 불렀지만 걸음은 한없이 당당했다.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때 정화가 나무로 깍은 비녀를 노미에게 건넸다. 여관 뒷마당에 있던 감나무의 나뭇가지를 꺽어 밤새 깎은 것이었다. 노미는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 머리를 틀어 올려 꽂고는 정화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정화도 노미를 따라 벙긋 웃었다. 한없이 어여쁜 우리 형수님이었다.
세 사람은 기차를 탔다. 당시 조선사람들은 대부분 화물차를 타야했다. 객차에 탈 수 있는 사람은 관공서에서 일하는 공무원 가족이거나 일본인이어야 했고, 그마저도 조선인과 일본인은 타는 칸이 달랐다. 노미에게는 복권이 준 소개장이 있었기 때문에 의자에 앉아 갈 수 있는 객차에 탈 수 있었다. 같은 조선사람들이 아이들까지 업고서 마치 짐짝처럼 화물차에 실리는 모습을 보면서 노미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것은 도련님들도 마찬가지였는지 태화와 민화는 객차에 올라 자리에 앉아서도 영 어색하고 불편해 했다.
기차는 이제 경주를 향해 달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노미는 어느새 또 정화 팔을 잡고 잠이 들었다. 그때 정화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태화와 민화를 불렀다.
“형들, 내 기차 타는 동안에는 진화형이니까, 내한테 형님이라 해야 한데이.”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하도 진지하게 말해서 태화, 민화는 화를 낼 수도 없었다.
“형님~, 해보이소.”
하고 정화가 진짜 심각하게 장난기 싹 뺀 목소리로 말했다. 태화 눈이 휙 올라갔다.
“지금, 장난하나?”
하고 이를 물고 누가 들을세라 조그맣게 말했다.
“장난 아이다. 내 진화형 아인거 들키믄 잡혀갈 수도 있데이.”
정화는 정말로 장난이 아닌 거 같았다. 진짜 들키면 어쩌나 싶은 표정이었다.
“알겠습니더. 형님!”
하고 민화가 장단을 맞춰주었다. 하지만 태화는 팔을 꼬고 앉아 정화를 노려보았다. 민화가 눈만 웃으며 태화의 옆구리를 찔렀다.
“형님이라 안 하믄 잡혀간다 안하나, 형님이라 해줘라.”
하고 이빨을 물고 말했다.
“그래, 알았다. 형님~!”
하고 태화가 여전히 아니꼬운 표정으로 정화를 보며 말했다. 정화는 그제야 헤벌쭉 웃으며
“허허허! 잘했다.”
하며 눈을 찡긋거렸다. 민화는 그런 정화가 귀엽고, 태화는 그런 정화가 기가 막히다. ‘넌 집에 가믄 죽었다.’는 표정으로 노려보는데도 정화는 뭐가 좋은지 연신 벙글거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은 평화로웠다. 어느새 태화도 잠이 들어 아예 민화 다리를 베고 누웠다. 정화는 잠이 든 노미가 불편하지 않게 계속 어깨를 내주고 있었다. 민화는 그런 정화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우리 막내이 이제 얼라가 아니구나.’ 싶었다. 그런 민화의 시선을 느꼈는지 정화가 민화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픽 웃는다. 자기를 메주방 밑에 넣어두고 튀어 나가며 마지막으로 보았던 형들 얼굴이, 눈빛이 떠올랐다. 다시는 영영 못 볼 줄 알았다. 윤화 형처럼, 미순이처럼 그렇게 사라져 버릴 줄 알았다.
“마이 울었나?”
하고 민화가 정화에게 물었다.
“뭘?”
하고 정화가 멋대가리 없이 되물었다.
“우리 가고 마이 울었나?”
“울긴...”
하는데 벌써 정화 눈에 눈물이 맺혔다. 민화도 울컥하고 눈물이 올라오는 걸 겨우 참으며 괜히 발로 정화를 찼다.
“아! 형을 차나?”
하며 정화가 괜히 화난 척했다.
“차믄 안돼나? 니도 맨날 형들 찬다 아이가.”
하며 둘은 또 발로 투닥거렸다. 태화가 잠결에 시끄러웠는지 뭐라고 중얼중얼 잠꼬대를 했다. 둘은 킥킥 웃으며 장난을 멈추었다. 둘은 어느새 다시 휙휙 지나가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내... 죽을까?”
하고 민화가 말했다. 멍 때리고 있다 정화가 깜짝 놀랐다.
“뭔 소리고? 형수가 죽는 병 아니라 안 하나? 씰데 없는 소리 하지 마라!”
정화는 정말 형이라도 된 듯이 야단을 쳤다.
“사람은 다 죽는다. 죽는 게 별일이 아니다.”
하고 민화는 다 산 사람처럼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정화는 속이 상했다.
“나이가 몇인데 벌써 죽는 얘기를 하노? 우쨋든 살 생각을 해야지.”
그러나 정화는 덜컥 겁이 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너무 많은 죽음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었다. 상상도 못 했던 불행들이 갑자기 찾아와 내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는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런 세상에서 나만, 우리만 안전할 수는 없었다. 정화도 민화도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죽는 건 겁나지 않는다. 못나게 사는 게 겁나지.”
정화는 민화가 말하는 속뜻이 무엇인지 얼른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생각이 많은 형이 그동안 많은 일을 겪으면서 이런 생각까지 들었나 보다 했다.
“사는데 못나고 잘난 게 어딨노? 살면 다 사는 기지.”
정화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아무 말이나 했다. 정화는 민화가 자꾸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섭고 불안했다. 형들을 그렇게 휙 빼앗기고 난 이후로 정화는 형들에 대한 집착이 커져서 그 이후로 형들이 잠깐만 눈에 안 보여도 난리를 치곤 했다. 민화는 정화의 바르르 떠는 눈빛을 읽었다. 안쓰럽고 미안했다.
“니 말도 맞다.”
하며 빙그레 웃었다. 세상에서 제일 환하고 고운 미소였다. 정화는 그런 민화의 미소를 다시는 못 볼까 봐 두려웠다. 그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상상도 하기 싫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렇게 위험하다. 그 사람이 없는 세상, 그 사람 미소를 다시는 볼 수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지옥 그 이상의 고통이다. 그것이 무서워서, 그것이 너무 두려워서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사랑을 피해 다니기도 한다. 제법 영리한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자기 마음을 꽁꽁 닫아걸고 살기도 한다. 아무도 자기를 좋아하지 못하도록, 자기도 누군가를 좋아할 수 없도록 그렇게 꽁꽁 자기를 가둔다. 누구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렇게 위험하고 무서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화는 정화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빙그레 웃으며 정화를 계속 바라보는데 정화는 계속 눈을 피했다. 민화는 정화가 자기 생각을 읽어주기를 바랬다.
‘괜찮다. 무서워하지 마라.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다 무서운 게 아이다. 다 좋은 기다. 다 아름다운 기다. 내는 니가 참 좋다. 니도 내가 참 좋제? 그라믄 된 기다. 우리는 세상에 나와가, 이렇게 형제로 만나가, 서로 바라보고 웃고, 좋아하며 살았다. 그렇게 살라고 형제로 만났다. 그러니 사는 동안은 이렇게 서로 좋아하며 살자. 알았나?’
참, 희한하고 신기한 일이다. 그저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을 뿐인데, 정화는 민화 마음을 읽었다. 정화도 민화를 따라 빙그레 웃었다.
늦은 저녁, 드디어 기차는 경주에 도착했다. 긴 여행에 노미는 많이 지쳐보였다. 세 도련님들은 안색이 창백한 형수님이 많이 걱정되었다. 태화가
“괘안습니꺼? 걸을 수 있겠습니꺼?”
하며 노미의 안색을 살폈다.
“어디 달구지라도 얻어 와야겠다.”
하고 민화가 주변을 살폈다. 정화가 벌써 알아보러 뛰어가려는 걸 노미가 말렸다.
“괜안습니더. 내 멀미가 나가.... 잠시 앉으면 됩니더.”
하고는 가까운 의자에 앉았다. 세 도련님들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노미를 바라보며 쭈그려 앉아 있었다. 그렇게 눈앞에 있는 꽃같은 도련님들 얼굴을 보고 있자니 노미는 감사하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또 사무치게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지 할아버지 댁이 여기서 별로 안 멉니더. 쪼매만 가믄....”
하는데 노미가 갑자기 배를 쥐었다. 식은땀이 쭉 났다. 도련님들이 깜짝 놀랐다.
“와예? 배 아픕니꺼?”
정화가 제일 놀라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아입니더. 아직 날이 멀었습니더. 괘안습니더.”
하는데 배가 한 번 더 세게 틀었다.
“아이고!”
하며 노미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형수님!!”
셋이 한꺼번에 소리쳤다.
“안 되겠다. 달구지, 달구지부터 빌리자.”
하며 태화가 형수를 부축하고는 주위를 휘둘러 보았다. 저 멀리 마구간처럼 생긴 건물이 보였다. 보통 역 주변에는 달구지나 말을 빌려주는 마구간이 있었다. 어느새 인적이 끊긴 역 주변에는 오고 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겨우 마구간에 도착한 네 사람은 일단 마구간 안으로 들어섰다. 어느새 눈발까지 날리고 있었다. 안은 캄캄했다. 인기척도 없었고, 망아지 한 마리 없는 빈 마구간이었다. 공출에 소도 말도 다 가져가던 시절이었다. 설사 있다 해도 이런 곳에 매어 둘 리가 없었다. 어둠 속에서 용케도 등을 찾아 불을 밝혔다. 희미한 불빛 아래 마구간은 정말 텅 비어있었다. 그때 갑자기 노미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얼라가, 얼라가 나올 모양입니더.”
세 도련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세 도련님은 노미를 부드러운 짚더미 위에 눕혔다. 정화가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여, 화로도 있고 물도 있다!”
정화는 한쪽 구석에서 화로와 항아리에 담긴 맑은 물도 발견했다.
“빨리 물 끓여라!”
하고 민화가 제촉했다. 노미는 이미 온몸이 땀에 젖어 진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민화가 형수님을 붙잡고 있고, 정화와 태화는 불을 피우고 솥에 물을 담아 끓였다.
“누구라도 불러와야 안 되나?”
하고 손이 바쁜 와중에 태화가 말했다.
“시간 없다. 우리가 해야 한다.”
하고 민화가 땀으로 범벅이 된 노미의 얼굴을 바라보며 결심한 듯이 말했다. 태화도 정화도 침을 꿀떡 삼켰다. 아기와 형수님의 안위가 이제 세 소년들 손에 달려있었다. 12월의 어느 추운 겨울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