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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작가 : 드리민
작품등록일 : 2019.5.17
너무 밝은 곳의 그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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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의 인연을 끝으로, 사제가 된 남자.
5년 전의 사고를 끝으로, 흡혈귀가 된 남자.

너무 밝은 곳의 그대를 향한 이야기.

 
#10 비밀스러운 대화들 (5)
작성일 : 19-07-04 22:57     조회 : 86     추천 : 0     분량 : 4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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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루카스는 그렉을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렉은 괜히 긴장되었다. 루카스가 먼저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일은 잘 없기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할 이야기가 있다고 다가오는 것도.

 

  루카스의 방은 다른 사제들의 방과 다를 바가 없었다. 작업에 필요한 물품들은 모두 그의 작업실에 놓고 다녔기 때문에 화가의 방 특유의 염료나 기름 따위의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의 방에서 특별한 점을 찾자면, 오히려 자신의 작품을 방에 들이지 않았다는 것일까.

 

  “내 방은 처음이던가.”

  “아, 네.”

 

  루카스는 안 잡아먹는다면서 의자에 편히 앉으라고 말했다. 그렉은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낡은 의자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루카스는 자신의 낡은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저, 루카스 사제님. 무슨 일로 저를 부르신 건가요?”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조금 많아.”

 

  그것보다 말 놓아도 괜찮아. 나이도 얼마 차이 안 나잖아. 루카스가 그렇게 말하자 그렉은 손사래를 쳤다.

 

  “아뇨. 그건 좀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나는 멋대로 놓아버렸는데 말이지.”

  “그건 괜찮아요.”

 

  루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먼저 그의 방에서 타고 있는 양초를 가리켰다. 은은한 장미꽃의 향기를 품은 체칠리아의 향초였다.

 

  “저게 뭔지 알고 있어?”

  “체칠리아 사제님이 얼마 전에 나눠주신 양초 아닌가요?”

  “내 말은, 저 양초의 용도를 알고 있냐는 거야. 왜 체칠리아가 우리에게 저것을 나눠줬는지.”

 

  그렉은 고개를 저었다. 양초를 만들었던 날에 체칠리아가 흡혈귀를 물리치는 도구로 장미 향초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성소 곳곳에서 타고 있는 이유를 묻는다면, 그렉은 알 길이 없었다.

 

  “너무 많이 만들어서 나눠주신 게 아닐까요?”

  “오 년을 같이 있었으면서, 체칠리아를 잘 모르네.”

 

  체칠리아는 무기를 함부로 놀리지 않아. 루카스는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체칠리아가 흡혈귀 사냥에 쓰기로 한 물건이 있다면, 그건 전부 체칠리아의 무기야.”

  “그렇다면 체칠리아 사제님이 장미 향초를 성소에 쓰고 있는 것은….”

  “이유가 있으니까.”

 

  그렉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장미 향초가 흡혈귀 사냥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지 잘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성소에 쓰고 있다면.

 

  체칠리아가 어쩌면 조지의 존재를 눈치 챘을지도 모른다.

 

  “저 때문인가요?”

 

  루카스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그렉은 고개를 들어 루카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루카스는 전부 대답해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체칠리아는 너를 도우려고 했다는 거야.”

  “흡혈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인가요.”

  “그렇지.”

 

  그렉의 눈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만약 조지가 이 사실을 모르고 계속 자신에게 접근한다면, 체칠리아가 직접 나서서 조지를 없애버릴지도 모른다. 그것은 안 된다. 그런 일은 일어나면 안 된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요?”

  “네 목적이 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루카스의 말에 그렉은 함부로 답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들러붙은 흡혈귀를 보호하고 싶다고 말하면, 저주를 부정해야 할 사제로서는 실격이지 않은가. 그의 침묵이 이어지자 루카스는 조용히 말했다.

 

  “지금은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네 목적이 무엇이든,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그게 무슨 뜻이죠?”

  “네가 안고 있는 문제를 포함해서, 더 크고 복잡한 문제가 있으니까.”

 

  일단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끝내야 해. 루카스는 조용히 답했다. 눈앞의 문제를 일단 풀면, 그다음 문제는 큰 덩어리에서 작은 조각들로 바뀐다.

 

  “그러면 네 목적에 따라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결정되겠지.”

 

  그렉은 조용히 끄덕였다. 그는 다시 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 말이 없다가 루카스를 바라보았다.

 

  “루카스 사제님.”

  “듣고 있어.”

  “제 목적이 무엇이든, 저를 도와주실 수 있나요?”

 

  루카스는 그렉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노려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렉은 약간 겁을 먹은 듯했지만,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누가 나에게 기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제멋대로 내게 의지해놓고 상처받는 사람들이 많았거든.”

  “그럼….”

  “하지만.”

 

  지금은 너를 도울 수밖에 없을 거 같네. 루카스는 중얼거렸다. 그렉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내 개인적인 사정이니까 알려고 하지 마.”

  “알겠습니다.”

 

  가봐. 루카스가 손짓하자 그렉은 일어나서 묵례로 감사를 전한 뒤 방을 나왔다. 루카스는 의자에 앉아 책상 한편에 있던 물병을 집어 들었다. 답지 않게 말을 많이 했더니 역시 목이 아프네. 루카스는 남아있던 물을 모두 마셨다.

 

  체칠리아가 움직였다는 것을 루카스는 모르지 않았다. 거짓말이 서툰 것은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아는 법이다. 만약 비적성에서 사제를 파견한다면, 체칠리아의 의도대로 상황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어떤 희생이 생겨도 체칠리아는 감수할 것이다.

 

  루카스는 그것을 원치 않았다. 체칠리아가 멋대로 흡혈귀 사냥을 진행해버리면, 희생되는 것은 저주받은 영혼만이 아니다. 응당히 밝혀야 할 진실이 영원히 사라지게 될 수도 있다.

 

  부탁받은 것이 있으니까. 그것을 지키기 위한 일 정도는 해야 한다. 루카스는 서랍에서 낡은 양피지를 꺼냈다. 먼지를 먹고 자잘한 구멍이 난 그것 위로 루카스는 붉은 글씨를 적었다.

 

  “비적성에 모든 빛의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루카스는 체칠리아처럼 비적성 소속의 사제는 아니지만, 비적성 소속이 아니라도 투서 정도는 보낼 수 있다. 더군다나 비적성은 비적성 소속의 사제만이 아니라 특별한 체질을 가진 사제들의 명단도 가지고 있다. 루카스의 투서를 알아보고 절대로 무시하지 않겠지. 그토록 싫어했던 체질을 이런 식으로 이용하게 될 줄은 몰랐지. 루카스는 피식 웃었다.

 

  다 쓴 투서를 들고 그는 작업실로 향했다. 가끔 늦은 밤에도 작업하러 가는 그였기에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루카스는 작업실 앞에서 기도를 올렸다.

 

  세계 그 자체이신 원초의 빛, 원초의 빛과 함께하시는 아홉 선지자. 그리고 선지자들의 뜻을 받들어 우리를 이끌어주시는 영원한 빛들께 아뢰오니.

 

  “자신이 믿고자 하는 것만을 믿는 자보다, 오직 진실만을 믿는 자가 되게 하소서.”

 

  그의 기도에 영원한 빛 하나가 독수리로 변해 투서를 낚아채고 빠르게 날아갔다. 루카스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작업실로 들어갔다.

 

  그렉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지만, 쉽게 잠들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움직이는 생각들이 너무 많았다. 이대로 잠들면 악몽을 꿀 것 같았다. 있을지도 모를 앞으로의 비극이 일어나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누워서 계속 기도를 올렸지만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결국 그렉은 책상에 있던 물병을 전부 비우고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다. 모두가 자고 있을 시간이다. 그는 계단 위로 올라갔다. 성소 밖으로 나가 별이라도 보면서 바람을 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캐서린의 집무실에 아직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걸음이 멈췄다.

 

  위로 올라가려던 발이 다시 내려와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캐서린이 아직 방에 있었다. 그렉은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가 인사를 올렸다.

 

  “아직 잠들지 않고 뭘 하고 있나요?”

  “잠이 오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캐서린 사제님께서는 어쩐 연유로 아직 주무시지 않고 집무실에 계십니까?”

  “저도 오늘은 잠이 오지 않아서요.”

 

  캐서린은 책을 읽고 있었다. 체칠리아의 최신작, 『순록을 탄 여인』이다. 체칠리아가 비적성에서 수련했을 적에 본 환시를 바탕으로 쓴 단편 소설로, 그렉도 굉장히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었다.

 

  캐서린은 읽던 책을 내려놓고 그렉에게 차를 권했다. 그렉은 캐서린의 책상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무슨 일로 잠이 오지 않았나요?”

 

  그렉은 답하기를 주저하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큰 근심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어떤 근심인가요?”

 

  그렉은 어쩐지 사실을 그대로 말하기가 두려웠다.

 

  “캐서린 사제님. 만약에 옛날에 잠시 알고 지냈던 이를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에야 다시 만났는데, 그 사람이 큰 죄를 지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제로서 말인가요?”

  “사제로서, 혹은 인연이 있었던 사람으로서 말입니다.”

 

  캐서린은 그렉과 조지의 인연에 대해서 생각했다. 사제로서 흡혈귀와 연이 있음은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저 인연이 있었던 사람 사이의 일이라고 한다면. 캐서린은 입을 열었다.

 

  “그런 일이 있다고 한다면, 매우 슬프겠죠. 사제는 저주의 근원 중 하나인 생명이 저지른 죄를 부정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렉은 고개를 끄덕였다. 낯빛이 어두웠다. 캐서린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죄를 부정한다는 것이, 꼭 죄와 죄인을 벌하고 멸하는 것만은 아니에요. 그자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면, 감화시키고 스스로 속죄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랍니다. 스스로 빛에 가까운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그 말에 그렉은 고개를 들었다.

 

  “그 어떤 죄도, 그 어떤 저주도, 그게 가능할까요?”

  “저는 가능하다고 믿어요. 그렉은 어떤가요?”

 

  그렉은 조심스럽게 답했다.

 

  “가능하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믿고 행하면 됩니다.”

 

  그렉의 얼굴빛이 밝아졌다. 조금이라도 더 건들면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어서는, 그렉은 일어섰다.

 

  “감사합니다, 캐서린 사제님. 덕분에 근심이 조금 줄었습니다.”

  “그래요. 제가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또 이야기할 것이 있다면 찾아와요.”

 

  그렉은 묵례를 올리고 집무실을 나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캐서린은 중얼거렸다.

 

  “그것이 그대의 시련입니다. 그렉. 부디 조지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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