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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Fanatic
작가 : 길헤윰
작품등록일 : 2017.6.21

동생이 결혼을 한단다. 그래도 난 그리 상관 없었어. 그와 깊이 관계되지 않으려 했지.
몇 개월 후, 나라가 망하기 전까지는 말이야.
#계략/이중인격(?) 남주 #초식계 여주


 
8. Can be a doll?
작성일 : 17-06-21 22:56     조회 : 37     추천 : 1     분량 : 7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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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Can be a doll?

 

 "아드리안, 나서주어서 고맙군요. 헤일린도 다친 곳이 없어 다행이다."

 

 백작 부인은 헤일린와 아드리안에게 감사를 표현했다. 라리마는 부인 옆에 서서 그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제 부인이 나설 차례였다. 부인은 라리마에게 곧 내려오라고 말하고는, 우아하게 계단을 내려갔다. 라리마는 생일 파티의 주인공으로, 축하를 받고 인사를 나눌 의무가 있었다.

 

 "헤일린 언니."

 

 "응?"

 

 "아까, 왜 그러셨던 거예요?"

 

 라리마는 감정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그 결과 아주 조금, 차분해질 수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자. 일단 이유를 들어보자. 라리마는 오랫동안 제 입에서 꺼내지 않았던 이름을 다시 꺼냈다.

 

 "제뉴어리를 위해 왜 나서주신거죠? 언니께서 굳이 나설 필요는 없으셨어요."

 

 "아, 그거 말이구나."

 

 별일 아니라는 듯, 헤일린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오늘의 헤일린은 이상했다. 늘 그녀가 보아왔던 헤일린답지 않았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매력은 여전했으나, 그녀는 어디까지나 평화주의자였다.

 

 "라리마, 네 나이 때에는 소수의 의견을 가진 이들을 배려하지 못하기도 하지. 목소리 큰 자에게 쉽게 휩쓸리기도 하고. 나는 제뉴어리, 그 아이가 그저 또래와 다를 뿐이라고 생각한단다. 그래서 그 아이가 약자가 되는 게 당연하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없는 거와 같단다. 단일성만을 요구하는 사회가 되어버린다면 얼마나 무책임하고 불안한 나라가 되겠니? 난 이 왕국의 아이들이 그렇게 되길 원하지 않았던 거야."

 

 "하지만 언니께선 싸움을 좋아하지 않으시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조금 틀리기도 하구나."

 

 "네?"

 

 "싸울 이유가 있다면 싸워야하지 않겠니? 난 언제나 싸우고 있단다. 네가 모르는 것 뿐이야."

 

 제뉴어리는 조금씩 또래 아이들과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약자를 위한 거라면 마땅히 싸워야 함이 옳았다. 하지만 라리마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싸울 필요가 없었던 라리마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내 말이 어렵니?"

 

 라리마는 평소처럼 웃고 있는 헤일린을 바라보았다. 혼란을 잠재우려했건만, 오히려 혼란을 키운 셈이 되어버렸다. 사랑하는 언니는 오히려 더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려서, 라리마는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생각해야했다.

 

 "라리마!"

 

 부인의 재촉에 라리마가 발길을 돌렸다. 그런 그녀를 헤일린이 붙잡았다.

 

 "라리마."

 

 "네, 언니."

 

 "생일 축하한다. 이 말을 해주려 여기에 온 건데 못할 뻔했구나."

 

 화사한 웃음에 라리마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누가봐도 동생을 위한 언니의 말인데, 13살 헤일린의 미소가 겹쳐져 묘한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라리마는 허둥지둥 대답하고, 그들을 떠나갔다. 아드리안은 라리마가 헤일린을 무서워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또 그와는 별개로, 할 때는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단아한 생김새와 다른 행동임에도 좋았다. 제국에서는 자립성 있는 여성을 더 대우했는데, 아드리안도 마찬가지였다.

 

 "현명한 대답이었습니다, 헤일린 영애."

 

 "네, 저 아이에겐 아니었던 것 같지만요."

 

 "아닙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살짝 높혔다. 헤일린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그는 헛기침을 하며 작게 사과했다.

 

 "크흠, 실례했습니다. 동양의 고전서에 '현명한 자는 싸움을 피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헤일린 영애가 그걸 실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양의 책에 관심이 많으신가요?"

 

 "네. 일이 바빠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꽤 좋아합니다."

 

 "고전서까지 관심이 있으실 줄은 몰랐어요. 네, 확실히 성인(聖人)의 말입니다. 아드리안 백작님은 상당히 박식하시군요."

 

 베니아 제국과 페닐 왕국에서는 바다 너머의 혈통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제국과 왕국의 인식은 많이 달랐다. 왕국보다야 훨씬 인간적인 대우를 해준다. 그래서 헤일린이 베니아 제국으로 간 것이었다. 대중의 인식이 그렇다하여 제국인 모두가 그녀에게 친절한 건 아니었다. 그와는 반대로, 동양의 옛책까지 관심을 가지는 제국인도 존재했다. 그녀는 아드리안에게 감사했다. 아드리안은 그녀의 미소를 보고 잠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헤일린 영애."

 

 헤일린은 오랜 시간을 보낸 이들이 아니면 대체로 차가운 편이었다. 아드리안도 그 벽을 느꼈고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오늘은 그 벽이 조금 허물어진 것 같았다. 헤일린은 칭찬에 인색한 이가 아니었다. 꽤 괜찮은 분이야. 그의 말이 위로가 되어 헤일린의 마음을 녹였다. 헤일린은 진심으로 미소지을 수 있었다.

 

 "이만 가볼 시간입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아드리안은 그녀의 말에 직접 마중까지 해주었다.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만, 그는 오늘은 저가 백작 대신임을 강조했다. 그는 어머니를 여윈 제뉴어리가 혼자 남을 것을 걱정해 제뉴어리를 같이 보냈다.

 

 "제뉴어리, 괜찮았니?"

 

 "네. 헤일린 누님 덕분에요. 저 분은 그녀의 약혼자인데도 누님을 배웅해주시는 건가요?"

 

 "오늘은 백작님 대신이라는구나. 좋은 분이야."

 

 제뉴어리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침묵이 그들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다. 제뉴어리도, 헤일린도 본디 말이 많은 성격이 아니었다. 제뉴어리의 방이 가까워졌다. 근처에서 제뉴어리의 하녀가 대기하고 있었다.

 

 "오늘 무슨 이유로 도와주셨든 저는 상관없어요. 오늘 일은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제뉴어리, 하녀를 통해 연락하렴. 기다리고 있으마."

 

  제뉴어리의 안색이 밝아졌다. 그제야 진짜 12살 아이같아 보였다. 헤일린은 그게 참 안타까웠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을 나이였다. 충분히 밝게 웃을 수 있는 아이였다. 헤일린은 제뉴어리의 웃음을 잊지 않으려 천천히 걸었다.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 누군가의 적의, 상처, 혼란이 그녀의 곁을 맴돌았다. 그것들은 곧 상념이 되어 그녀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가? 그녀는 다시 천천히 걸었다. 그래, 누군가의 미소를 위해서였다. 그래서 은둔하지 않고 앞에 나섰다. 그녀 안의 심술쟁이가 속삭였다.

 

 -그래서 네가 얻은 게 뭐지? 오늘은 백작이 없었다지만, 실패할 수도 있었어. 제뉴어리가 과연 믿을만한 아이라고 생각하는거야? 라리마에게는 이제 어쩔 셈이지? 백작이 이 일을 알게 되면 좋아할 리가 없을 텐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섰으니 너도 이제 은둔생활은 끝일 거야!

 

 왜 그랬느냐고 묻는 심술쟁이에게 그녀는 제 죄를 인정했다. 그래, 조용한 생활을 원했고 그렇게 살 생각이었다. 적어도 왕국에서는 그래야했다. 현명한 자는 싸움을 피한다. 그녀는 아드리안의 말을 기억했다. 아드리안은 라리마의 약혼자였다. 게다가 이미 그녀는 라리마가 바라는 어떤 것을 거부하겠다고 마음먹은 상태였다. 아드리안은 좋은 사람이지만, 그게 그녀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제뉴어리를 위해 나선 것은 잘한 일이야."

 

 그녀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일단은 백작의 문책부터 어떻게 대처할지 생각했다. 백작이 돌아온 것은 이틀 뒤였다. 그는 꽤 피곤해보였다. 사랑하는 부인과 딸이 그를 반겼으나 그는 저택에 돌아와서도 동생과 함께 집무실에 있었다. 부인과 라리마마저 그리 대했으니 헤일린은 어떠했겠는가? 헤일린은 그에게 바쁜 일이 생긴 걸 다행으로 여겼다. 저택에도 오고가는 사람들이 줄었다. 어쩐지 저택의 사람들도 외출을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아가씨, 편지가 왔습니다."

 

 헬린 페리헬 귀하. 제국어로 쓰여진 제 이름이었다. 헤일린은 봉투를 잘랐다.

 

 '플렌도트 우체국, 23일 오후 3시 우편 도착. 국제 특별 수송. 요금 후불, 은화 6개.'

 

 익숙한 글씨체였다. 헤일린의 상사였던, 베니슬린 교수였다. 국제 수송까지 할만큼 급한 일이 있었던 걸까? 헤일린은 하필 분위기가 이럴 때 우체국을 방문하라는 그의 요청이 반갑지 않았다. 하지만 베니슬린은 그녀가 신뢰하는 사람이었다.

 

 "셀리, 내일 모레 외출을 할 거야. 단정한 옷으로 준비해줘."

 

 "알겠습니다, 아가씨."

 

 '추신. 무슨 일이 생기면 가거라. 플렌도트 사거리, 타일라 대학병원 2층 홀.'

 

 명함 여러 장이 봉투 안에 있었다. 베니슬린 교수의 명함이었는데, 헤일린은 뭔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챙겼다. 베니슬린은 그녀를 위해 뭔가를 해줬으면 해줬지 해를 가할 사람은 아니었다.

 

 "아가씨, 제뉴어리 도련님께서 내일 오후 2시에 보자고 하셨습니다."

 

 "알았다."

 

 제뉴어리는 그녀가 있는 저택 앞에 서있었다. 아이의 마중은 그녀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그건 헤일린의 이야기였다. 시중인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헤일린은 셀리에게 상황을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셀리는 그들을 위해 샌드위치와 과일, 차를 준비해두었다. 둘은 작은 정원에서 차를 마셨다.

 

 "제뉴어리, 요즘은 어떠니?"

 

 고립되었던 제뉴어리였기에, 그녀는 내심 걱정을 계속 하고 있었다. 제뉴어리는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괜찮아요. 다가오는 애들도 많고, 괴롭히는 애들은 이제 없어요."

 

 "그렇구나. 네 입으로 직접 들으니 안심이 된다."

 

 "덕분이죠. 저, 헤일린 누님. 누님은 약혼 안 하세요?"

 

 제뉴어리는 19살임에도 약혼조차 하지 않은 그녀를 신기하게 생각했다. 귀족 영애가 나이가 찰 때까지 약혼도 안 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었다. 사제나 학자가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헤일린은 어느 쪽도 아니었다.

 

 "아직은 생각이 없단다. 결혼하면 제뉴어리를 자주 못 볼 거니까."

 

 제뉴어리의 뺨이 붉어졌다. 누군가에게 이름을 불리는 건 기분이 좋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다.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이가 적은 탓이었다.

 

 "부끄러우니 그런 말하지 마세요."

 

 "후후, 익숙해지렴."

 

 윽, 너무해요. 볼멘소리에 헤일린이 웃었다. 하지만 내심 씁쓸했다. 백작은 헤일린을 좋아하지 않았다. 정통 후계자도 아닌 혼혈은 저택에서 내쳐지지 않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그녀는 6년 전 백작의 말을 아직도 기억했다.

 

 "베실린 아카데미는 재밌었나요? 악명도 높던데 힘드셨겠어요."

 

 "재밌었어. 넓은 세상으로 가서 공부하는 건 좋은 일이니까. 악명은 부정하지 않을게. 6년만에 졸업하는 사람은 드물거든. 학점 이수를 위해 1~2년 더 다니는 경우가 많단다. 1년의 반은 과제 때문에 잠을 못 자."

 

 "그 정도인가요?"

 

 헤일린은 힘들었던 나날들을 생각했다. 아, 정말 공부 때문에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지. 그래도 좋았다. 공부에 재능이 있기도 했고, 뭔가를 배우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제뉴어리는 반은 두려움에, 반은 기대감에 차있었다. 헤일린은 그런 그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러고 보니, 저택 분위기가 좋지 않던데."

 

 "하녀들에게는 입단속이 내려졌으니 못 들으셨을 수도 있겠네요. 왕성에 근무하는 모든 분들이 긴장하고 있다나봐요."

 

 "왜? 무슨 일인데?"

 

 "로키아 제국이 우리 나라를 쳐들어오려고 한다고……"

 

 "정말이니?"

 

 "네. 여러모로 위협을 가하고 있는 건 맞는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도 집무실에서 잘 안 나오셔요."

 

 페리헬 가는 명문가인 만큼, 왕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백작도 군부 지원 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다. 지위는 그냥 유지되는 것이 아니었다. 전란의 기운이 감도는 지금, 다들 외출을 꺼려할만 했다.

 

 "게다가 몇 해전부터 국민들의 불만이 쌓이고 있어요. 세금은 점점 올라가고 수출은 불안정해져서 먹고 살기가 힘들다는 이들이 늘고 있어요. 2년 전에 공식적으로 세금을 낮추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곧 무산되었죠. 로키아 제국에서 중요 수출품을 거래하지 않겠다고 했거든요. 멀리서 수입을 해야하는 상황이 되어버려서 왕실 쪽이 여러모로 욕을 많이 먹었다고 해요."

 

 헤일린이 없던 때였다. 왕국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싶지도 않았던 터라, 그런 일은 몰랐다. 기사의 무기를 납품하는 상인들조차도 관료를 냉대했다고 하니, 꽤 심각한 일이었던 것 같았다.

 

 "제국에 대한 분풀이를 한다는 말도 많았습니다, 누님. 로키아 제국과 베니아 제국은 사이가 나쁘잖아요."

 

 "그렇구나."

 

 "쇼핑광 페리샤 누님조차도 외출 횟수를 줄이셨어요. 혼혈에 대한 차별은 귀족이 더 심했다보니 다들 몸 사리고 있는 거죠."

 

 "너도 외출을 줄이고 있니?"

 

 "친구들이랑 퀄리오하러 갈 때는 나가는 편이죠."

 

 민심이 심각하게 기울고 있었다. 어린 제뉴어리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그 페리샤도 조심할 만했다. 헤일린은 제뉴어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생각했다.

 

 "아버님! 부탁이예요!"

 

 라리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백작은 대기시켜놓은 마차로 향하고 있었고, 라리마는 그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그녀의 뒤로 하녀 몇 명이 뒤따르고 있었다.

 

 "상황이 좋지 않다, 라리마. 결혼식은 좀 미뤄야한다."

 

 "하, 하지만!"

 

 "게다가 국민들의 원성이 더 높아지고 있어. 이런 때에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면 가문에도 피해가 온다. 네가 다칠 수도 있어."

 

 "아버님, 아주 조금만 기다리면 되겠지요?"

 

 "그래. 미안하구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집사에게 말하렴."

 

 백작은 그녀를 한번 안아주고, 빠르게 저택을 벗어났다. 라리마는 진정하라는 하녀에게 화를 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드리안님 얼굴도 못 보고 있단 말이야! 보고 싶어, 그 분이!"

 

 "곧 찾아오실 거예요, 아가씨."

 

 "아드리안님은 내 남편이 될 분이야. 그런데 어째서 만나지 못 하는 거야?"

 

 "울지 마세요, 아가씨."

 

 하녀들만 괜히 불쌍해졌다. 라리마는 곧 하녀들에게 강제로 업혀졌다.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은 새 신부답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본 제뉴어리가 짜게 식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철이 없는 건지, 해맑은 건지."

 

 라리마는 그 이후로 그녀와 마주쳐도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라리마만큼은 과보호하는 백작이 외출도 못하게 하고, 아드리안은 바쁘니 못 만나는 게 당연했다. 아드리안은 라리마의 약혼자였다. 그래, 그랬지. 헤일린은 아드리안과 가까이 지낼 필요가 없겠다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아드리안과 친해진다는 건 라리마 얼굴도 자주 봐야한다는 거였다. 제뉴어리를 보내고 방에 돌아가려는데, 하녀가 그녀를 불렀다.

 

 "헤일린 아가씨, 주인님께서 부르십니다."

 

 익숙한 얼굴이다 했더니, 백작 부인의 전속 하녀였다. 헤일린은 부인에게로 안내되었다. 화려한 침실에 들어서니 눈이 아파왔다. 부인은 금침대에 누워 있었다.

 

 "안녕, 헤일린."

 

 "부르셨습니까."

 

 "내가 몸이 좋지 않아 일어설 수 없구나. 양해해주렴."

 

 확실히 안색이 좋지 않았다. 헤일린은 침대 근처에 놓여진 의자에 앉았다.

 

 "많이 안 좋으신 것 같습니다."

 

 "그렇단다. 라리마는 내가 감기 몸살인 줄 알지. 그 아이는 건강하거든. 그 아이를 낳은 이후부터 가끔씩 심하게 아파."

 

 "그 때 몸이 많이 상하셨나봅니다."

 

 "괜찮다. 그 아이가 결혼할 때까지는 살 수 있을 것 같구나. 오늘은 내게 부탁이 있어 불렀다."

 

 "말씀하세요."

 

 "라리마가 매일 네 이야기를 해."

 

 라리마가 매일 헤일린에 대해 이야기한다니,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헤일린은 차분하게 부인의 말을 경청했다.

 

 "라리마는 널 많이 좋아한단다. 생일 파티 때의 널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그 아이와 잘 지내어주었으면 좋겠구나. 그래줄 수 있겠니?"

 

 헤일린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하지만 그건 잠깐이었다. 평소의 헤일린이라면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 긍정적으로 대답했을 것이었다. 가면을 쓴 헤일린은 착하고 완벽한 숙녀였으니까. 하지만 이 자리에는 다른 이가 없었다. 오로지 부인과 의붓딸만이 있었다. 가면은 쓰지 않아도 되겠군. 헤일린은 속에서 비집고 나오려는 심술쟁이를 막지 않았다.

 

 "그 아이는 제가 없어도 됩니다. 제가 왜 굳이 그 아이와 잘 지내야 합니까?"

 

 "헤일린."

 

 "사실 그 아이에겐 제가 필요없어요. 저도 그 아이가 필요하지 않고요. 하실 말씀이 끝났다면,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부인은 처음 보는 비소에 당황했다. 헤일린은 그런 부인의 표정따위 신경쓰지 않았다. 인형이 되는 거라면, 절대로 사양이었다.

 

 "투정, 너무 받아주지 마세요. 부인의 건강이 더 상할 겁니다. 몸조리 잘 하십시오."

 

 특히 정신건강이요. 헤일린은 끝까지 부인의 눈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처음으로 부인의 청을 거절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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