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Fanatic
작가 : 길헤윰
작품등록일 : 2017.6.21

동생이 결혼을 한단다. 그래도 난 그리 상관 없었어. 그와 깊이 관계되지 않으려 했지.
몇 개월 후, 나라가 망하기 전까지는 말이야.
#계략/이중인격(?) 남주 #초식계 여주


 
4. 갑주(甲胄)를 두르고
작성일 : 17-06-21 22:45     조회 : 26     추천 : 1     분량 : 7826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4. 갑주(甲胄)를 두르고

 

 "도련님, 선물이 왔습니다."

 

 "내게 선물이라고?"

 

 제뉴어리는 선물을 받았다. 제게 선물이 올 턱이 없는데. 작게 중얼거린 그가 상자를 받았다. 남색 상자의 리본을 푸니 깔끔한 정장 한 벌이 있었다. 검정색의 무난한 옷은 제뉴어리의 인상을 더욱 단정하게 만들어주었다. 옷은 마음에 들었으나 보낸 이가 누군지 알 수 없으니 답답했다. 나오미도 모른다고 하니 더 그랬다.

 

 "전에 선물을 보낸답시고 죽은 고양이가 있었던 적도 있었잖아. 적어도 이번엔 멀쩡한 선물이긴 하네."

 

 "네, 그 점은 제가 꼼꼼히 확인했습니다."

 

 옷 위에는 카드가 있었다. 꽤 고급스런 카드에는 라리마의 생일 파티가 있으니 꼭 와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쳇, 뭐야. 라리마가 보냈을 리는 없는데."

 

 라리마와 사이가 좋지 않아진 건 꽤 오래 전 이야기였다. 라리마는 장난꾸러기들로부터 저를 보호해주었지만, 그것도 조건부였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 그녀에게 더 가까이 있을 수 없었고 결국 소외되어버렸다. 병정 인형을 손에 든 제뉴어리에게 한 장의 카드가 더 주어졌다.

 

 "카드가 한 장 더 있습니다, 도련님."

 

 "뭔데, 나오미?"

 

 회색의 카드에는 누군가의 필체가 적혀있었다. 고급스런 필체로 봐서는 또래 아이들은 아닌 모양이었다. 명인 필라레의 만년필로 적은 건지 잉크 냄새가 남달랐다.

 

 '갑주를 둘러라. 이 갑주가 우릴 만나게 해줄 것이니.'

 

 갑주. 이 옷이 갑주라는 건가? 그러니 라리마의 생일 파티에 나오라고? 어차피 그런 데를 가더라도 구석에 홀로 숨어있는데. 라리마는 계산이 확실했다. 잘해준 만큼 똑같이 잘해주지 않으면 눈물을 나게 했다. 제뉴어리는 그 날 학교 도서관으로 피신할 생각이었다. 라리마가 무서웠다. 기묘한 권위의식, 제뉴어리는 그녀의 사고를 그렇게 정의했다.

 

 "나오미, 라리마는 괴물이야.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그 마음 속에 괴물이 있어."

 

 "도련님."

 

 "그래서 나를 못살게 구는 거야. 난 어리니까 아직 이 집을 떠날 수 없고......"

 

 두려움이 엄습했다. 나오미는 그를 이해했다. 그 밝은 아가씨가 어려서, 뭘 몰라서 제뉴어리를 괴롭혀온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제뉴어리가 다른 이들과 다르기 때문에 내친 것뿐이었다.

 

 "괜찮아요, 도련님."

 

 "나오미."

 

 "도망치셔도 괜찮아요."

 

 하지만 도망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나오미는 이 작은 도련님을 조력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난 만큼, 이번 기회에 상황이 달라지기를 기대했다. 나오미 본인은 하녀라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으니까. 나오미는 제뉴어리의 등을 쓸어주었다. 하녀가 해줄 수 있는 건 이 정도 뿐이었다.

 

 ***

 

 "언니! 아버님과 차를 마시러 갈 건데 같이 가요."

 

 헤일린은 본저택 근처의 정원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그녀가 정원에 있는 걸 보기만 하던 차에 이제 용기를 낸 것 같았다. 라리마의 눈은 긴장과 기대감으로 가득차있었다. 헤일린은 동생의 표정을 도저히 거부하지 못하겠는지,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가요, 가요!"

 

 배시시 웃는 소녀는 무척 사랑스러웠다. 헤일린은 라리마가 이끄는 손을 거부하지 않았다. 라리마가 안내한 곳에는 백작과 부인들, 그 자제들이 있었다. 인원은 많지 않았던 터라, 헤일린은 조금 안심했다. 그 중에 첼의 동생 사라스가 있는 게 보였다. 첼이 없으니 기가 죽은 모양인지, 표정이 가라앉아 있었다.

 

 "라리마 아가씨가 오셨습니다, 주인님."

 

 "오, 라리마! 어서오렴. 내 작은 꽃, 오늘도 사랑스럽구나."

 

 라리마는 백작에게 안겼다. 숙녀의 예는 아니지만, 백작은 구태여 그것을 묻지 않았다. 백작에게 라리마는 용인해줄 수 있는 게 많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었다. 헤일린은 백작의 목소리가 다정한 걸 듣고 속이 꼬였다. 돌아온 첫날 무뚝뚝하던 사람은 어디를 갔는지......

 

 "언니도 어서 들어오세요!"

 

 헤일린은 천천히 온실에 들어갔다. 비교적 간편한 롱드레스를 입은 탓에 실루엣이 살짝 드러났다.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귀티가 났다. 땋아올린 뒷머리와 긴 목선이 완벽한 숙녀였다. 마른 상체가 가련해보여서, 온실에 배치된 기사들과 헤일린의 남성 형제들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백작님을 뵙습니다."

 

 헤일린은 치마를 잡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녀는 뒤이어 부인들에게도 인사했다. 라리마는 집사가 있는데도 친히 제 옆에 앉으라며 의자를 빼주었다. 몇몇은 그것에 불쾌함을 느꼈지만 딱히 말하지는 않았다. 라리마가 맏언니 헤일린을 좋아한다는 건 모두 알고 있었으니까.

 

 "차는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엘보, 괜찮다면 애플 티로 주겠나요?"

 

 "조금 시간이 걸릴 겁니다, 아가씨."

 

 "괜찮아요."

 

 왕국에서는 홍차와 커피가 주류였다. 과일이 들어간 차는 관리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시중에서 잘 팔지 않았다. 헤일린은 오후 3시가 넘었기 때문에 과일이 들어간 차를 마시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페리헬 가에서 과일차가 없는 것도 아니었기에 괜찮았다. 집사 한 명이 온실을 나가자 이야기는 다시 진행되었다.

 

 "헤일린도 이제 많이 컸어요. 결혼해도 될 정도로 성숙해졌죠?"

 

 "그럼요. 헤일린, 제국에서 마음에 둔 사내는 없었니?"

 

 연애담은 여자들에게 있어 중요한 일이라도 되는 모양이었다. 헤일린은 부인들의 수다에 어울려주기로 했다. 라리마도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공부에 열중하느라 바빴답니다. 그래서 제가 마음에 둔 사내는 없었지요."

 

 "어머? 정말이야?"

 

 눈치 빠른 넷째부인은 헤일린에게 반문했다. 헤일린은 살며시 웃으면서 대답했다.

 

 "역시 못 이기겠네요. 네, 저를 마음에 둔 사내는 있었지요."

 

 "그럴 줄 알았어~"

 

 "헤일린도 참, 얄궂기도 해라!"

 

 부인들은 헤일린의 입담에 호호 웃었다. 왕국의 귀족 자제들은 연애에 있어 보수적인 편이었다. 그러면서도 다수의 부인을 둘 수 있어, 천천히 부인을 늘여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왕국의 기혼 여성들은 로맨스에 더 열광하곤 했다.

 

 "이런 이야기는 여자들끼리 해야하는데~"

 

 "그러게요~ 호호호~"

 

 헤일린은 살짝 민망한지 얼굴이 붉어졌다. 이런 건 면역이 없는 탓이었다. 라리마는 새로운 언니의 모습에 활짝 웃었다.

 

 "이곳의 자제분들과 또 다른 점이 많답니다. 제국의 자제분들은 신분이 높고낮음을 가리지 않고 연애를 하더군요. 지금은 그만둔 걸로 알지만, 제국의 유명한 제과점 헬샤 아시지요?"

 

 "그럼, 알지."

 

 "그 곳 과자는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는 말도 있잖아."

 

 "그래서?"

 

 부인들의 재촉에 헤일린이 말을 이었다. 지루해하던 남성들도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헬샤 여자 주방장이 귀족의 자제와 사귀다가 결혼도 하게 되었다는 거 아세요?"

 

 "세상에~"

 

 "멋지다~"

 

 "그 여인은 일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끝까지 결혼하자고 말하는 바람에 먼저 항복해버렸답니다! 지금은 남작의 부인이 되었지만 아주 뛰어난 제빵사였죠."

 

 헤일린은 다소 과장된 표정으로 아쉬움을 표현했다. 부인들은 한 여인에게 매달리는 남성을 상상하기도 하고,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왔을 남성을 상상하기도 했다.

 

 "사실 자유로운만큼 제약도 적어서 동시에 몇 명씩 결혼하기도 했죠. 유학 기간 동안 그런 결혼식을 몇 번 본 적이 있답니다."

 

 "어머,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네요."

 

 "그것 참, 망측한 경우구나."

 

 헤일린의 말에 백작도 한 마디했다. 헤일린은 놀랐지만 태연하게 동의했다. 제국의 문화는 어떻게 보면 어느 정도 문란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왕국의 사람들은 보수적인 경향이 강하니, 백작의 의견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그런 장면을 생각하며 신선해했다. 라리마는 이야기 주제를 돌리고자 모두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제 생일 파티 때 친구들을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 중이랍니다. 뭐가 좋을까요?"

 

 "그러고 보니, 곧 라리마의 생일이었지. 라리마, 넌 무얼 하고 싶으니?"

 

 부인 중 한 명이 라리마에게 물었다. 사라스가 고개를 이쪽으로 기웃거렸다. 헤일린은 그 모습을 보고 작게 미소지었다. 다들 라리마를 위해 아이디어를 내주고 있었다.

 

 "숨바꼭질 게임을 할까, 인형탈 놀이를 할까, 교양을 위해 체스를 둘까 고민 중이랍니다."

 

 "체스는 우리 세대가 더 좋아하니 지루해할지도 모르겠구나."

 

 "남자 아이들도 많이 올테니 무난한 게 좋겠는 걸."

 

 헤일린은 그 말들을 조용히 들으며 차를 마셨다. 라리마는 이윽고 헤일린에게도 의견을 물어보았다.

 

 "헤일린 언니는 뭐가 제일 좋다고 생각하세요?"

 

 타이밍이 타이밍이었던지라 헤일린에게로 시선이 쏟아졌다. 헤일린은 부담스러움을 숨기고 차분하게 말했다.

 

 "퀄리오 어떠니?"

 

 "퀄리오?"

 

 "연회장으로 사용되는 곳은 복층 구조니까, 2층은 어른들이 이야기하기 좋게 꾸미고, 아 그래. 체스 같은 걸 해도 좋겠지. 입구 한 쪽에 퀄리오 기계를 설치해서 네 친구들이 놀 수 있게 하면 좋을 것 같구나. 남자 아이들도 좋아하는 거니까 괜찮을 것 같아. 단,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특별히 신경써야겠지."

 

 구체적인 계획에 사람들은 잠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라리마는 헤일린을 향해 감탄했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그랬다. 어려서부터 똑똑했던 헤일린은 이런 식으로 가끔 칭찬을 받았었다.

 

 "좋은 계획이예요! 역시 언니셔!"

 

 "그래, 헤일린. 좋은 생각이로구나."

 

 백작 부인이 동의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라리마가 적극적으로 좋다는 반응을 보이자, 백작은 라리마가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마음 먹었다.

 

 "퀄리오 기계를 대여하는 걸 알아봐야겠구나."

 

 "와 정말요, 아버님?"

 

 "그래. 너도 퀄리오 좋아하지?"

 

 "네. 잘하진 못하지만 보는 건 아주 좋아해요."

 

 "그럼 됐다."

 

 부인들도 오랜만에 체스를 해보겠다며 기뻐했다. 제국에 돌링(dolling, 인형에 마력을 사용하여 겨루는 종목)이 있다면, 왕국에는 체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성들도 참가가 가능한 종목이었고, 여성 우승자가 나올 때도 있었다. 부인들에게도 체스는 좋아하는 게임이었다.

 

 "저, 첼이라는 아이도 그날만큼은 참석해서 같이 퀄리오를 즐기게 하면 어떨까요? 라리마와 친한 아이이기도 하니까, 같이 축하해주면 좋겠어요."

 

 헤일린은 조심스럽게 백작 부부에게 청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세심함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사라스를 비롯해 첼의 참석에 대해서 찬성하는 사람들이 많자, 백작 부부도 동의했다.

 

 "근신 처분을 받은 일원이기는 하지만, 네 말도 옳구나. 그리하마. 괜찮죠, 달링?"

 

 "그래, 라리마를 축하해주는 사람이 많으면 더 좋지."

 

 부부의 사이좋은 모습은 미약한 시기와 질투를 불러일으켰다. 라리마도 그 사이에 껴서, 그들은 완전한 가족같았다. 두 금발이 모여 있으니 정말 속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헤일린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미소지었다. 상큼한 사과향마저도 그녀의 입맛을 돋구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차에 더 손대지 않았다.

 

 "오늘 네 이야기 정말 재밌었단다, 헤일린."

 

 "뭘요, 즐거우셨다면 다행입니다."

 

 빨리 방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인사를 하고 온실을 빠져나와 천천히 걸었다. 풀향기 짙은 공기에 마음이 안정되었다. 헤일린이 지내는 곳은 본저택에서 조금 멀리 있었다. 오늘따라 갈 길이 먼 것 같아 한숨이 나왔다.

 

 "헤일린 영애."

 

 뒤를 돌아보니 페리헬 가의 방계, 파르헬 가 영식이 있었다. 본계와 연합해 사업을 하나 하고 있었는데, 백작이 있는 곳에 자주 보이곤 했다. 아마 오늘도 페리헬 가와의 친목을 위해 온 걸테다. 헤일린은 왜 파르헬 가 영식이 저를 불러세웠는가를 빨리 듣고 싶었다.

 

 "아까부터 속이 안 좋으신 듯하여....... 괜찮으십니까?"

 

 영식의 녹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굉장히 세심하고 배려 깊으신 분이시군. 나쁜 사람으로는 안 보였기에, 헤일린은 약간이나마 미소를 지어줄 수 있었다.

 

 "네, 정원의 공기 덕에 괜찮아졌습니다."

 

 "그래도 이걸 받아주세요."

 

 파르헬 영식이 내민 것은 작은 알약이었다. 제약 사업을 하고 있다더니, 위장에 잘 듣는 약을 주는 듯했다.

 

 "이건, 자사의 약인가요?"

 

 "네. 위장이 좋지 않고 비위도 약한 편이라 늘 가지고 다닙니다. 잘 듣는 약입니다!"

 

 파르헬 영식의 애사심에 헤일린은 그만 소리내어 웃어버렸다. 이리 말하는데 안 먹어볼 수는 없겠지? 헤일린은 그의 배려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파르헬 영식.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진심을 담아 부드럽게 웃어주자, 그의 표정이 멍해졌다. 헤일린은 그가 말이 없자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괜찮으십니까?"

 

 "언니!"

 

 저 뒤로 라리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라리마는 어떤 이가 헤일린과 같이 있는 걸 보고 걸음의 속도를 높혔다. 아니, 숙녀답지 않게 살짝 뛰기까지 하고 있었다. 파르헬 영식은 라리마를 보고 놀란 표정이었다.

 

 "라리마는 참 영애를 좋아하는군요."

 

 "그런가요?"

 

 잘 모르겠다는 표정에 파르헬 영식이 뭘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라리마가 다가와 그에게 말했다.

 

 "파르헬 마차가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던데, 안 가보셔도 되나요?"

 

 "앗, 맞다. 실례하겠습니다."

 

 파르헬 영식이 빨리 사라지자, 라리마가 헤일린에게 물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헤일린 옆에 붙어있었는데, 헤일린은 그 자연스러움이 도리어 불편했다.

 

 "저 분이 무얼 주셨나요?"

 

 "아, 소화제."

 

 "속 불편하셨어요?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전 그것도 모르고......"

 

 "아냐, 괜찮아. 네 탓이 아니란다. 저 영식은 그저 친절한 것뿐이지."

 

 라리마는 뭔가 미묘하게 안심한 눈빛이었다. 왜 그러지? 헤일린은 이유를 물었으나 라리마는 '아무것도 아니에요'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보다, 할 말 있어보이는데......."

 

 "아, 그러니까. 음, 언니."

 

 헤일린이 조용히 라리마의 말을 기다렸다. 라리마의 표정은 살짝 붉어져 있었는데, 마치 사랑에 빠진 소녀같았다. 헤일린은 왜 사람들이 라리마를 보고 사랑스럽다고 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어리기도 했지만 라리마는 확실히 귀여웠다. 아마 이럴 수 있는 건 천성일테지. 헤일린은 라리마가 아주 조금, 부러워졌다.

 

 "저번에 아드리안 님을 만날 때 그 원피스를 입고 갔는데, 아주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언니가 사줬다고 자랑도 하고…… 평소보다 더 분위기가 좋았다고 할까요? 고마워요, 언니. 언니 덕이랍니다."

 

 "어머, 그러니?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구나."

 

 이 순간만큼은 라리마가 백작의 딸로 안 보였다. 헤일린은 부드럽게 라리마의 볼을 쓰다듬어주었다. 라리마가 인사를 하고 본저택으로 갔다. 라리마는 움직이지 않는 그녀를 뒤돌아보았다. 라리마는 그녀의 미소가 바람에 스러질 듯, 매우 가련하다고 생각했다. 눈을 살짝 내리깐 그녀는 정말로 완벽해보였다. 저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내 언니라고, 나에게 다정하다고 세상에 자랑하고 싶을 정도였다. 어머니께 언니 자랑해야지! 라리마는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

 

 "아가씨, 돌아가시죠. 차를 준비해뒀습니다."

 

 "셀리. 집사가 없어 네가 고생이구나. 역시 전속 집사를 한 명 둘까?"

 

 다른 영애들은 전속 집사 한 명 이상을 데리고 다녔다. 일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헤일린은 따로 집사를 두지 않았다. 셀리가 일처리를 다 했기 때문이었다. 나름 배려하는 말이었지만 셀리는 불만인 모양이었다.

 

 "제가 싫습니다, 아가씨. 인수인계는 귀찮아요."

 

 "풋. 그래, 알았다. 돌아가자."

 

 헤일린은 셀리를 따라 걸었다. 라리마는 이제 사라지고 없었다. 라리마는 분명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라리마, 넌 아니? 네 호의가 적의가 되어 돌아올 수 있고, 네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넌 왜 대체 나에게 호의를 보인 걸까? 넌 분명 나보다 더 사랑받았는데 말이야.

 

 "셀리."

 

 "네?"

 

 "그 아이는 왜 나한테 호감을 보였을까? 난 그 아이에게 어떠한 것도 해줄 수 없었는데 말이야."

 

 나를 특별취급이라도 하는 걸까? 헤일린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셀리는 헤일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조용히 주인의 얼굴을 살폈으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곧 언제 그랬느냐는 듯 평소의 표정이 되었으니까. 티타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셀리는 그녀가 현실에 있지 않아 보였다. 아주 잠시였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차를 마시고 책을 읽었다. 평범한 일상이었다. 차분한 모습에 셀리는 미묘한 느낌이 제 기분탓이라고 생각했다. 헤일린은 언제나처럼, 온몸에 갑주를 두르고 있었다. 라리마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 누군가도 갑주를 둘러야 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9 9. Wine day 2017 / 6 / 24 49 1 4805   
8 8. Can be a doll? 2017 / 6 / 21 36 1 7747   
7 7. 규칙 아래에서 2017 / 6 / 21 35 1 9752   
6 6. 검은 갑주(2) 2017 / 6 / 21 26 1 5065   
5 5. 검은 갑주 2017 / 6 / 21 25 1 6216   
4 4. 갑주(甲胄)를 두르고 2017 / 6 / 21 27 1 7826   
3 3. Twisted Hero 2017 / 6 / 21 36 1 7693   
2 2. 투영(投影) 2017 / 6 / 21 70 1 8079   
1 1장- 1. 귀국 (3) 2017 / 6 / 21 325 2 7489   
 1  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