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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채운몽
작가 : 채헌
작품등록일 : 2017.6.19

조선 최초의 레즈비언으로 기록된 세종의 두 번째 며느리 세자빈 월, 기루 무사 소쌍을 만나 운명인 듯 우연인 듯 사랑에 빠진다. 아니라 해도, 아니 된다 해도 돌아설 수 없었던 그녀들의, 무지개빛 로맨스

 
5장. 미친 거문고 대對 최고 망나니
작성일 : 17-06-23 12:47     조회 : 25     추천 : 0     분량 : 7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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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며칠 뒤, 전의감 판사가 탕약을 들고 별궁에 들었다. 중전의 명으로 특별히 공을 들여 지은 보약이었다.

 

  “이게 무슨 약인가?”

 

  하지만 약을 받은 당사자는 전혀 기쁜 기색이 없었다.

 

  “기를 보하고 몸을 따뜻이 하여 기혈을 좋게 하는 약이옵니다. 또한……,”

 

  “회임에 좋은 약일 것이고?”

 

  판사가 대답 대신 머리를 조아렸다.

 

  “거기 두고 가시게.”

 

  “중전마마께서 다 드시는 것을 보고 오라 하셨사옵니다.”

 

  월이 한쪽 눈썹을 올렸다.

 

  “내가 중전마마의 말씀을 거스르기라도 한다는 겐가?”

 

  “화, 황송하옵니다.”

 

  판사가 고개를 숙인 채 물러났다. 판사가 나가자 월이 탕약 보시기를 석가이에게 내밀었다.

 

  “이걸 왜 저를 주셔요?”

 

  “회임에 좋은 약이면 두루두루 좋은 것이지 않겠느냐. 그러니 먹어두어라.”

 

  석가이가 어림도 없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탕약 한 보시기 먹고 명줄 끊기고 싶진 않거든요? 그리구 전 이런 약 필요 없어요. 제대로 된 사내 하나만 있음 한 방에 빡, 할 수 있는 것을요.”

 

  그러더니 갑자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물론 그놈의 제대로 된 사내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라 문제지만요.”

 

  석가이가 본격적으로 신세타령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제가 진짜 마노라 따라와서 이 무슨 고생이에요? 종일 뵈는 거라곤 어린 궁녀, 젊은 궁녀, 나이든 궁녀뿐이라구요. 하이고, 나도 참 불쌍하지. 이 꽃 같은 나이에 사내 하나 없는 구중궁궐에서 허벅지나 찔러대고 있으니.”

 

  월이 미안한 듯 웅얼거렸다.

 

  “그거야 너나 나나 피차일반 아니냐.”

 

  “음마? 마노라한텐 저하가 계시잖어요.”

 

  “저하가 계신들, 뭐 다른 줄 아느냐?”

 

  “음마마? 지금 세자빈 마노라랑 한낱 종년인 저를 비교하시는 거여요? 너무하다고 생각지 않으셔요?”

 

  월이 할 말이 없어 입만 짭 다셨다. 물론 종의 신세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답답하긴 월도 매한가지였다.

 

  중전은 교태라도 부려보라 하지만 교태를 부린들 씨알도 안 먹힐 위인이 바로 향이었다. 교태를 부릴 틈도 없었다. 관상감에서 정한 합궁일에만 찾아와 딱 제 할 일만 하고 사라지는데 어느 틈에 교태를 부린단 말인가.

 

  그렇다고 동궁전으로 쳐들어갈 수도 없고. 그랬다간 첫 번째 세자빈처럼 음란하다 손가락질 당하며 쫓겨나기 십상이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자신만 닦달해대는 왕과 중전에게 새삼스레 서운함이 밀려왔다.

 

  “그래두 괜찮아요. 저한텐 소쌍 악공님이 계시니까. 하아, 악공께선 무얼 하고 계시려나? 날 떠올리며 거문고를 타고 계시려나? 예예, 저도 그립사옵니다. 악공, 얼른 다시 뵙고 싶어요옹. 뚱뚜둥 뚱뚱.”

 

  석가이가 눈을 사르르 감고 거문고 뜯는 시늉을 했다. 월이 석가이에게 바싹 다가앉아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그런데 정말 그런 사내만 있으면, 할 수 있느냐?”

 

  “예? 뭘요?”

 

  달콤한 상상을 방해받은 석가이가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한 방에 빡.”

 

  “한 방에 빡? 뭐가 빡……, 아아, 그거요? 그러믄요. 틀림없죠.”

 

  “어떻게 하는 건데?”

 

  “그거야……,”

 

  석가이가 말을 되집어 삼키며 배시시 웃었다.

 

  “그걸 어찌 말로 한 대요, 망측하게. 아직 해도 안 떨어졌어요, 마노라.”

 

  “안 어울리게 웬 조신한 척이냐?”

 

  “조신한 척이 아니라 조신한 거거든요? 조선 팔도에 저만큼 조신한 몸종 있음 나와 보라 그래요. 강제 수절당한 통에 거시기에 좀이 슬게 생겼구만.”

 

  “그러지 말고 설명해 보거라. 말로 하기 정 어려우면 보여주든가.”

 

  진지한 월의 표정에 석가이가 당황하여 눈을 끔벅거렸다.

 

  “지금 진정으로 하는 말씀이셔요?”

 

  “내가 아무리 할 일이 없어도 널 붙들고 농을 하겠느냐.”

 

  석가이가 탕약 보시기를 흘끔거리며 입을 벌렸다.

 

  “저 약이 명약이네. 냄새만 맡았는데도 벌써 음기가 뻗치시는 걸 보니.”

 

  “딴소리 말고, 어서 말해보라니까.”

 

  석가이가 목소리를 낮춰 대꾸했다.

 

  “제가 궁에 들어오기 전 춘화첩 보여드렸잖아요.”

 

  보여주긴 했다. 하지만 춘화첩과 현실은 뭐랄까, 비슷한 듯하면서도 달랐다. 춘화첩이 올이 가늘고 고운 오승목이라면 현실은 거친 칡베로 지은 갈포 같달까.

 

  “그건 좀 과장되어 있지 않으냐.”

 

  “그거야 그렇긴 한데, 그게 또 그렇게 영 다르지만은 않은데…….”

 

  석가이가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눈알만 데굴데굴 굴렸다. 참다못한 월이 먼저 물음을 던졌다.

 

  “그게 원래 그렇게 아픈 것이냐?”

 

  석가이가 제 기억을 더듬는 듯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프죠.”

 

  “악악 소리가 절로 날 만큼?”

 

  “악악 소리가……, 나죠. 그것도 아주 많이. 근데!”

 

  “그런데?”

 

  월이 무릎을 붙이며 다가앉았다.

 

  “그게 아프기만 한 건 아니고요. 뭐라 그럴까……, 아픈데 좋고, 좋은데 아프고, 아프다 좋기도 하고, 좋다가 아프기도 하고 그런 건데 말이어요.”

 

  “뭐라는 것이냐!”

 

  석가이도 갑갑하다는 듯 가슴을 쿵쿵 때렸다.

 

  “아유, 말로는 설명을 잘 못하겠어요.”

 

  “그럼 어찌 알아 그것을, 한단 게냐?”

 

  월이 그것을, 에서 목소리를 확 꺼뜨렸다.

 

  “그것이 상황이 닥치면 절로 깨치게 되고, 깨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이는 것인지라…….”

 

  “상황이 닥치면 절로 깨치게 되고, 깨치기 전에 몸이 움직인다?”

 

  띄엄띄엄이나마 칠 년이나 세자와 합궁을 했는데도 석가이의 말은 도통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찌 하라는 건가. 할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모르는 것 없는 전하께라도 여쭙고픈 심정이었다.

 

  전하를 떠올리니 숨이 또 콱 막혔다. 월은 한숨을 폭 내쉬며 코를 싸쥐고 다 식은 탕약을 꿀꺽꿀꺽 마셨다.

 

 

  * * *

 

 

  “이년들아, 시시대지 말고 빨랑빨랑 움직여!”

 

  향원각이라는 간판을 내건 기루에서는 설매의 호통소리가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스승님은 맨날 골골대시다가도 잔소리하실 때 보면 기운이 넘치신다니까. 아마 나보다 더 오래 사실 거야. 골골 팔십이라잖어.”

 

  춘섬이 두툼한 입술을 내밀며 투덜거렸다. 난앵이 큰일 날 소리 말라는 듯 눈을 세모로 떴다.

 

  “너 그런 말 마라. 말이 씨가 돼. 스승님이 팔십까지 사시면 내가 제 명에 못 살 거다.”

 

  “니년들은 걸레질은 다 하고 그러고 선 거야?”

 

  언제 나타났는지 설매가 부지깽이를 들고 둘을 노려보고 있었다. 난앵과 춘섬이 저승사자라도 본 얼굴로 냅다 달려갔다.

 

  “아이고, 저것들 언제 키워 언제 기생 만들어? 매사에 저렇게 겻섬 털 듯 건듯건듯해가지고, 큰 기생되기는 글러먹었다. 옥금이 네가 불쌍타. 속 썩어날 일이 앞으로 구만 리여.”

 

  설매가 부지깽이를 집어던지고 대청에 털썩 앉았다. 육손을 안고 젖을 먹이던 옥금이 빙그레 웃었다.

 

  “제가 왜 불쌍해요? 든든한 스승님, 천향 언니 계시고, 요렇게 이쁜 우리 아들내미도 있는데.”

 

  젖을 먹을 만큼 먹었는지 육손이 옥금의 젖가슴을 밀어냈다.

 

  “고놈, 제 어미 등골을 쪽쪽 빨아먹고 살이 통통하게도 올랐네. 이만큼 컸는데 젖은 이제 고만 먹여. 뱃속에서 나온 지 두 해가 다 되어가는구만.”

 

  “조금만 더 먹이려고요. 이제 걷기 시작하면 엄마 품에 있으려 하지도 않을 거잖아요.”

 

  옥금이 앞섶을 여미며 쑥스럽게 웃었다. 설매가 못 말린다는 듯 혀를 찼다.

 

  “그렇게 애면글면 키워봐야 품안의 자식이지. 크고 나면 어미 고마운 줄을 알어? 다 저들 혼자 큰 줄 알지.”

 

  “우리 육손인 착해서 안 그래요. 씩씩하게 자라서 엄마한테 효도할 거라구요. 그치 육손아?”

 

  옥금이 육손을 안고 둥개질을 쳤다. 육손이 대답이라도 하듯 도톰한 입술을 옴지락거렸다.

 

  “스승님, 우리 육손이 너무 잘생기지 않았어요?”

 

  “사내 잘생겨봐야 엇다 써먹어. 팔아먹지도 못할 거.”

 

  “스승님은, 애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소. 말 못 하는 어린애도 알 거 다 알고, 들을 거 다 듣는다고 몇 번을 말해도.”

 

  천향이 눈을 쨍하게 흘기며 나왔다. 설매가 코웃음을 쳤다.

 

  “요 쬐끄만 게 알긴 뭘 안다고 그래? 그리고 내가 틀린 말 했냐?”

 

  천향이 옥금에게서 육손을 받아들고는 설매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그런 말 하실 거면 스승님은 우리 육손이 주변엔 얼씬도 말아요. 우리 육손 도련님, 잘 자고 일어났쩌요? 엄마 젖도 많이 드셨쩌요? 배 통통해요?”

 

  천향이 얼굴을 육손의 통통한 배에 파묻고 푸르르, 입바람을 불었다. 육손이 좋다고 까르륵 웃었다. 늘 얼음 같던 천향도 따라 해쭉해쭉 웃었다. 설매가 기가 막히다는 듯 진저리를 쳤다.

 

  “염병할 것, 스승은 맨날 눈을 요러고 보는 년이.”

 

  “어, 육손이 깼다! 육손아!”

 

  난앵과 춘섬이 걸레를 쥐고 쫓아왔다.

 

  “이년들아, 걸레질은 다 하고 오는 거야?”

 

  “다 했어요.”

 

  난앵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대꾸했다.

 

  “두 손으로 박박 닦았어?”

 

  “박박 닦았어요.”

 

  “퍽이나 박박 닦았겠다. 보나마나 대강 물질만 하고 온 게지.”

 

  “아니거든요? 이것 보세요. 사흘 내내 걸레질 하느라 손에 물집이 다 잡혔구만.”

 

  난앵이 보란 듯이 손바닥을 펴보였다. 정말로 작은 손이 발갛게 트고 마디마디마다 물집이 잡혀 있었다.

 

  “너무 뭐라지 마세요. 며칠 동안 기루 단장하느라 애 많이 썼어요.”

 

  옥금이 설매를 달래고는 난앵과 춘섬을 보며 미안한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 내가 육손이한테 매여 있느라 늬들이 고생이 많았다.”

 

  옥금이 감싸주자 도로 기가 산 난앵과 춘섬이 육손을 안고는 뒷마당으로 가버렸다.

 

  “이제 얼추 정리는 다 된 거죠?”

 

  천향이 기루를 찬찬히 둘러보며 말했다. 설매가 난앵과 춘섬이 던지고 간 걸레를 탁탈 털어내며 대꾸했다.

 

  “겉치레나 겨우 했지. 아직 할 일이 태산이야. 풍물장 불러 악기도 죄다 손 봐야 하고, 안주지기며 중노미도 구해야 하고.”

 

  “그런 거야 찬찬히 하죠 뭐.”

 

  “속 좋은 소리 하고 앉었네. 기루 열어놓고 장사 안 할 거야?”

 

  천향이 느긋한 얼굴로 기둥에 몸을 기댔다.

 

  “급할 거 있나요? 진연이나 끝내놓고 등 달면 될 걸.”

 

  “염병할, 당장에 기루 열어 한양 오입쟁이란 오입쟁이들은 죄다 불러 모을 것처럼 성화를 부리더니 왜 갑자기 태평이래?”

 

  “천향이 변덕이야 하루 이틀 일인가요. 천향이 진짜 별명이 개성의 미친 팥죽이잖아요. 끓었다 식었다 하도 제 멋대로라.”

 

  소쌍이 대문으로 들어서며 큰소리로 말했다. 양손에는 장봐온 것들이 바리바리 들려 있었다.

 

  “소쌍 언니 왔어요?”

 

  난앵과 춘섬이 반갑게 달려 나왔다.

 

  “으이그, 내가 아니라 이게 반가운 게지?”

 

  소쌍이 손에 든 것들을 대청에 부려놓으며 난앵과 춘섬의 볼을 꼬집었다.

 

  “뭘 이리 많이 사왔어요?”

 

  춘섬이 코를 킁킁거리며 소쌍이 사온 것들을 힐끔거렸다.

 

  “뭐긴 뭐야. 다 느이 먹을 거지. 이건 난앵이 좋아하는 약과. 이건 춘섬이 좋아하는 육포.”

 

  “우와, 소쌍 언니 최고!”

 

  난앵과 춘섬이 좋다고 팔짝팔짝 뛰다가 설매에게 꿀밤 한 대씩을 먹었다.

 

  “이 먹귀신들아! 기생년들이 재주 닦을 생각을 해야지, 맨날 먹을 생각만 해? 이리 장을 봐오는데도 이틀만 지나면 정주간이 텅텅 비니, 이게 무슨 기생방이야, 아귀지옥이지.”

 

  설매가 툴툴거리며 장봐온 것들을 들고 정주간으로 들어갔다.

 

 

 

  그때 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검은 옷차림의 사내들이 와그르르 들이닥쳤다. 험상궂은 사내들은 금세 마당을 그들먹하게 채웠다.

 

  한눈에 봐도 왈짜패들이었다. 그들이 뿜어내는 험악한 기운에 난앵과 춘섬이 소쌍 뒤로 숨었다. 옥금 역시 육손을 감추듯 끌어안았다.

 

  “여기 천향이란 계집이 있느냐?”

 

  황소만한 몸집의 덩치가 눈을 희번득거리며 물었다.

 

  “내가 천향이오만.”

 

  천향이 앞으로 나섰다. 낭창한 몸매의 천향과 마주 서니 덩치의 몸집이 얼마나 큰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덩치는 천향의 세 배는 족히 됨직했다.

 

  “제대로 찾았나 봅니다, 형님.”

 

  조붓한 턱에 수염이 답실답실한 옥니박이가 나뭇가지를 씹으며 느물거렸다.

 

  “그런 모양이구나.”

 

  옥로립을 쓴 사내가 느리게 걸어 나왔다. 왼쪽 뺨에 붉은 흉터가 돋은 그는 다름 아닌 양녕이었다.

 

  “뉘신데 열지도 않은 기루를 찾아오셨는지.”

 

  천향이 공손하지만, 차가운 말투로 물었다. 정주간에서 나오던 설매가 지청구를 놓았다.

 

  “너는 딱 보면 모르냐? 전에 니년들한테 쳐 맞은 기생년들 기둥서방 아니냐. 즈이 기생들 건드렸다고 발끈해가지고선 여기까지 쪼르르 쫓아오셨구먼.”

 

  “뭐, 쪼르르 쫓아와?”

 

  덩치가 주먹을 쥐었다. 주먹이, 거짓말을 좀 보태, 천향의 얼굴만했다. 살집이 퉁퉁한 설매도 그에 비하면 가녀려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설매는 전혀 기에 눌리지 않고 대꾸했다.

 

  “아무리 그래도 기생들 강짜 쌈에 기둥서방들까지 나서는 건 낯부끄럽잖소? 게다가 한 놈도 아니고 치사하게 여러 놈들이 떼거리로 우르르, 쯧쯧 쯧쯧. 한양 기생년들 그릇이 고작 고만해서 어찌 기생이라 한답니까? 그럴 거면 기생질도 때려치라 하시오.”

 

  “이 늙은이가 관에 들어가고 싶어 환장을 했나?”

 

  덩치가 당장이라도 칠 기세로 씩씩거리며 설매를 노려보았다. 설매는 어디서 개가 짖나, 하는 표정으로 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붉으락푸르락하는 덩치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양녕이 끼어들었다.

 

  “화내지 마라. 니가 그러니까 우리가 행패나 부리러 온 것 같지 않느냐. 우린 어디까지나 새 기루가 생겼다길래 답사차 온 것인데 말이다.”

 

  천향이 두 손을 모으고 차분히 대답했다.

 

  “아직 기루를 열기 전입니다. 등을 단 연후에 찾아오시지요.”

 

  “아니, 아니, 아니지. 개성에서 왔다더니 뭘 잘 모르는구만.”

 

  옥니박이가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장단 맞추듯 이죽거렸다.

 

  “한양에선 기루 열기 전에 우리 허가를 받아야 돼.”

 

  “누구의 무슨 허가를 말씀이십니까?”

 

  “그야 당연히, 우리의 허락이지. 기루를 열어도 된다, 안 된다 그런 거.”

 

  천향의 당당한 태도에 어쩐지 옥니박이는 주눅이 드는 기분이 들었다.

 

  “나리들의 허가를 받으려면 어찌 해야 합니까?”

 

  “그거야 우리가 이리 보았고, 네 미색이 하늘을 찌를 듯하니 당장이라도 허락을 해줄 수도 있……, 뜨악!”

 

  덩치에게 옆구리를 찔린 옥니박이가 어색하게 웃었다.

 

  “……지만서도, 우리에게도 엄연히 절차라는 게 있고, 나름대로 평가 기준이라는 것도 있고 하니……,”

 

  “말씀하시지요.”

 

  “오늘 밤 우리를 기쁘게 해보거라.”

 

  양녕이 거만하게 턱을 내밀었다.

 

  “열지도 않은 기루에서 나리들을 뫼시란 말씀입니까?”

 

  “그렇다. 왜 못 하겠느냐?”

 

  “못 하겠다면 우리가 니년들을 뫼셔주마. 아주 특급 대우로다가 말이다.”

 

  덩치가 주먹을 흔들어 보이며 을러댔다. 천향이 왈짜들의 면면을 찬찬히 훑었다. 잘 벼려진 단도로 손톱을 자르는 사내, 이마에 ‘강와’라는 문신을 새긴 사내, 얼굴과 몸에 온통 칼자국이 난 사내……. 하나같이 거칠고 험악해 보이는 이들이었다.

 

  “이제 형님, 이년들이 자신이 없는 모양인뎁쇼?”

 

  옥니박이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킬킬거렸다. 천향이 생긋 웃었다.

 

  “나리들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기생의 소임인데 어찌 자신이 없겠습니까. 다만 갖춰지지 못한 것이 많아 나리들께서 불편하실까 저어됩니다.”

 

  “걱정마라. 우리는 관대한 사내들이란다.”

 

  양녕이 느글느글한 미소를 지으며 천향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럼 부족함이 있더라도 부디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천향이 소쌍 뒤에 숨어있는 난앵과 춘섬을 보며 말했다.

 

  “난앵아, 진객들을 안으로 뫼시어라. 춘섬인 스승님을 도와 안주를 만들고.”

 

  설매가 떠름한 얼굴로 눈을 치떴다.

 

  “나더러 지금 안주를 만들라고?”

 

  “그럼 어찌합니까. 옥금이더러 육손이 업고 정주간 들어가라 하겠소? 칼질이라곤 장검밖에 못 휘두르는 소쌍이한테 들어가라 하겠소?”

 

  “그러게, 내 뭐랬냐. 안주지기부터 들여야 한다 하지 않았느냐. 아이그, 진짜 염병할 것!”

 

  설매가 성질을 팩 부리면서 정주간으로 들어갔다. 춘섬이 천향과 왈짜들의 눈치를 살피다 얼른 정주간으로 쫓아 들어갔다.

 

  “난앵인 어찌 멀뚱히 선 게야? 어서 손님들을 안으로 뫼시라니까!”

 

  “내가 안내해 드리겠다.”

 

  소쌍이 난앵 대신 앞으로 나섰다. 천향이 얼음 같은 눈빛으로 말했다.

 

  “너는 나서지 마라. 이건 기생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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