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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태양이 걷는 순례길
작가 : 에스뗄
작품등록일 : 2017.6.18

인생이라는 고달픈 순례길에서 맞닥뜨린 뜨거운 태양 하나. 어둠 속으로 달아나는 그믐달 진해연과 그녀를 쫓는 태양 문도준. 과연 태양과 달의 사랑은 이뤄질 수 있을까?

 
026. 연애할까요(4)
작성일 : 17-07-11 01:14     조회 : 22     추천 : 1     분량 : 4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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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예예. 어련하시겠습니까."

 

  성의라곤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대답에 밀가루의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짙은 눈썹을 가린 앞머리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아이고, 이런. 속으로 말한다는 게 실수로 입 밖으로 내버렸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그러게 누가 되지도 않는 말을 하랬나?

 

 "벌써 노을이 지네."

 

  6월의 끝에서 해가 제법 길어졌다. 나는 습관처럼 차창 너머 붉게 달아오른 노을을 바라봤다.

  벌겋게 열을 내며 떼쓰는 어린아이 같기도, 양 볼을 주홍빛으로 물들이며 미소를 띠는 단아한 여인 같기도 하다.

  다양한 얼굴을 한 오늘의 노을은 유난히 붉고 투명해 두 눈을 뗄 수가 없다.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나의 시선이 노을에 빠져가고 있다.

 

 "식사는 했어요?"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한 남자의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아, 잊고 있었다. 나 지금 밀가루랑 같이 차에 타고 있지.

  고개를 돌린 곳에는 손가락으로 운전대를 톡톡 두드리는 밀가루가 있었다. 말아 올린 야상 아래로 드러난 팔뚝의 힘줄도 손가락과 함께 톡톡 리듬을 타고 있다.

 

 "저녁 약속 있어요."

 "연애를 해도 여전히 칼 같네요."

 "말은 언제나 경제적으로, 간결하게."

 

  나의 간단명료한 지론에 밀가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붉은 입술 사이로 나지막한 한숨이 흘러나와 그의 앞머리를 밀어 올렸다.

  그 모습이 또 묘하게 여자의 가슴을 뛰게 했다. 그래 봐야 잘생긴 아이돌을 눈앞에 둔 여성 팬의 흔한 반응이었지만.

  그가 시동을 걸면서 무엇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보드라운 머리칼은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윤기를 냈다.

 

 "데려다줄게요."

 "그럴 필요는 없는데."

 "어차피 가는 길이에요. 약속장소가 어디예요?"

 "올림픽공원이요."

 "오케이."

 

  백미러로 나를 쳐다본 밀가루가 내게 다가왔다. 차에 탄 이후 가장 근접한 거리에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나를 힐끔 내려다보고 무심하게 스쳐 간 그는 빨간색 안전벨트를 잡아당겨 허리춤에 걸었다.

 

 "아, 아하하, 안전벨트 매야지."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지만 기분 좋은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무슨 비누를 쓰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그에게서는 항상 향긋한 비누 냄새가 난다.

  그의 향기가 떠난 뒤, 나는 가슴을 지나는 붉은 벨트를 내려다봤다. 빨간색 정말 좋아하네. 팔찌, 괜히 파란색으로 사줬나?

  나는 무심코 그의 손목을 살폈다. 오늘따라 하얀 손목이 비어있다.

  운전석으로 돌아간 밀가루가 가볍게 엑셀러레이터를 밟고 운전대를 돌리자 차는 몸체만큼 매끄럽게 움직였다.

 

 "기사 나간 후에 상황은 좀 괜찮아졌어요? 인터넷에서는 완전 순정남으로 격상됐던데."

 "덕분에 촬영도 잘하고, 여기저기서 섭외도 많이 들어오고 있어요."

 "팬들은 뭐래요? 제일 중요한 사람들이잖아요."

 "어쩌겠어요. 그래도 데뷔 5년 차에 첫 열애설은 애교죠."

 

  데뷔 5년 차 아이돌은 당당했다.

  하긴, 음주운전에 마약에 폭력까지 온갖 구설에 오르는 것에 비하면 사랑은 애교지.

  게다가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순수한 풋사랑을 10년 동안 간직한 남자라니. 이 얼마나 완벽한 오빠인가.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아, 혹시 몰라 미리 얘기하는데 사생팬이 나타나면 성진이 형한테 반드시 연락해야 해요."

 "사생팬이 뭐예요?"

 "사생활을 침해하는, 팬도 아닌 애들이에요. 내 일거수일투족을 다 꿰고 있어서 성진이 형이 골치 아파 죽어요."

 

  가족도 모르는 일거수일투족을 다 꿰고 있다고? 목 뒤로 싸한 바람이 불어와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가 짜증이 섞인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팬들을 위해 400인분의 간식을 살뜰히 챙기던 밀가루가 맞나?

 

 "나한테도 예의 차리지 않는 애들이니까 조심하세요."

 "이런 걸 미리 말해줬으면 절대 안 했어요."

 "깜빡했어요."

 "깜빡할 게 따로 있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머릿속에 날카로운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리 오빠를 뺏어간 년이 네 년이더냐?'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괴롭혀주지.'

 '얘들아! 밟아라!'.

 

  아, 안 돼! 나 진짜 맞아 죽으면 어떡하지?

  두려움에 질린 나는 점점 파랗게 변해가는 내 얼굴을 본 밀가루가 웃고 있는 것도 몰랐다.

 

 "그럼 지금도 이렇게 데려다주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지금은 따라붙지 않은 것 같아요."

 

  그가 힐끔, 사이드미러를 확인하며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체면도 내려놓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밀가루가 목울대를 울렁이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작업실이 있는 골목에서 시내로 나온 차는 도로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퇴근 시간이 가까웠지만 남다른 포스를 풍기는 스포츠카에 막힘이란 없었다.

 

 "오늘 누구 만나요?"

 "아는 동생이요."

 "남자?"

 "예압."

 

  줄곧 전방을 주시하던 밀가루가 백미러를 통해 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재차 되물었다.

 

 "진짜?"

 "그럼 진짜지, 가짜일까."

 "나 참. 남자친구 앞에서 다른 남자 만난다고 말하는 여자라니."

 "좋아하는 사람 따로 두고 연애하는 남자보단 낫지 않나?"

 

  검은 도로 위를 자유자재로 미끄러지던 차가 끼익 소리를 내며 멈췄다.

  찰나의 순간, 길고 단단한 팔이 나타나 앞으로 들썩이는 내 몸을 막아 세웠다. 그리고는 혼난 아이처럼 후다닥 떨어졌다.

  나의 무미건조함을 가장한 공격에 뜨끔한 밀가루가 크게 헛기침을 했다.

  당황했다, 당황했어. 좋아, 드디어 선방했어. 잘했어, 진해연!

 

 "누가 뭐래요? 쿨하다고 말하려고 했어요."

 "고마워요. 그래도 도준 씨 만큼은 아닌 것 같아요."

 "어떻게 한 마디를 안 지지?"

 "피차일반이지."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서로를 공격했다. 오늘의 승리는 바로 이 진해연의 몫이었다. 오늘은 나의 전술이 제대로 통한 모양이다.

  신호대기로 잠시 정차한 사이 밀가루가 운전대를 드럼처럼 두드리며 툴툴댔다. 저러다 삐치면 골치 아파질라. 이제 그만 놀리고 풀어줘야지.

 

 "같은 동네 사는 동생이에요."

 "그런데 왜 올림픽공원까지 가서 만나요?"

 "그 친구가 맛집을 잘 찾아다니거든요."

 "...나도 맛집 많이 아는데."

 

  잔뜩 구겼던 미간을 느슨하게 푼 그가 개미만 한 소리로 웅얼거렸다. 입에 사탕을 문 어린아이 같은 발음이라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응? 뭐라고 했어요?"

 "아무것도."

 "진짜 못 들었는데."

 

  나의 물음에 밀가루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넘겨버렸다. 마침 신호가 초록 불로 바뀌었다. 그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기어 레버를 움직였다.

 

 "고마워요."

 

  우리가 탄 차는 노을의 마지막 빛을 맞으며 올림픽공원 주차장에 들어섰다. 주차장 밖에 내게 미리 연락을 받은 진이가 먼저 와 있었다.

  공교롭게도 진이 역시 밀가루와 비슷한 야상을 입고 있었다. 187cm의 장신에 덩치도 웬만한 남자들을 능가하는 진이가 입은 야상은 남자치고 마른 편인 밀가루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밀가루도 운동으로 다져진 남자다운 몸이라 생각했는데, 진이에 비하면 아기였네.

 

 "해연 누나!"

 "진아, 최진!"

 

  차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는 평소와 같이 가벼운 포옹으로 인사를 나눴다.

  혹시나 진이가 밀가루를 알아볼까 싶어 몸을 반대편으로 돌렸다. 하지만 창마다 선탠이 되어 있어 안을 들여다볼 일은 없을 것 같다.

  나의 어깨 위에 두 손을 얹은 진이가 턱짓으로 멈춰있는 차를 가리켰다.

 

 "누구야?"

 "응. 아는 사람이 데려다줬어."

 

  내가 대충 얼버무리자 진이는 더 묻지 않았다. 그저 내게 어깨동무를 하고 몸을 돌릴 뿐이었다. 최진식 배려였다.

  나도 진이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나는 기다리게 한 것에 미안한 마음을 담아 얼른 화제를 돌렸다.

 

 "먼저 도착했으면 들어가 있지 그랬어."

 "누나 길 못 찾잖아. 여기서 꽤 가야 해."

 "요즘엔 스마트폰 덕에 꽤 잘 다녀."

 "그래서 지난번엔 어딜 갔더라?"

 

  음, 글쎄. 한두 군데가 아니라 말이지.

  나는 할 말이 없어 배시시 웃어 보였다. 장난스럽게 어깨에 얹은 팔에 힘을 주던 진이가 팔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내 손목을 잡고 흔들었다. 못 본 새 더 커진 듯한 손바닥 안에 내 손목이 폭 들어갔다. 진이가 담담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그사이 더 말랐네."

 "피부가 타서 그래. 그러는 너야말로 살이 더 빠진 것 같아."

 "나야 순례길을 걸었으니까."

  한 달 일정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바로 어제 귀국한 진이다.

  나는 몇 년째 가고 싶다 노래만 부르고 정작 떠나진 못했는데, 진이는 단번에 마음을 잡고 훌쩍 떠났다.

  이런 게 남자와 여자의 차이일까? 아님 그저 성격의 차이일까? 진이의 결단력이 너무나 부러웠다. 또다시 떠나기엔 내게는 이제 걸리는 것이 많다.

  머리 꼭대기만 남기고 땅 아래로 잠긴 노을을 뒤로하고 우리는 한 발짝씩 보폭을 맞춰 걸었다.

  묵묵히 나를 지켜주었던 든든한 동생은 한 달 사이 더 단단한 남자가 되어 돌아왔다.

 

 ~♬♪, ♬♪

 

 "아, 잠깐만."

 

  두 건의 문자가 동시에 도착하는 소리에 나는 진이의 허리에서 손을 풀고 주머니 속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두 건 모두 발신자는 밀가루였다.

 

 -상현이 형한테는 내가 말해둘게요.

 -그리고 지금 남자친구 있는 몸인 거 알죠?

 

  뭐래. 딱히 영양가 없는 내용이었다. 답장할 필요도 없었다.

  한쪽 입꼬리가 삐뚜룸하게 올라갔다. 남자친구가 있는 몸이라 어쩌라고. 자기는 좋아하는 사람도 따로 있으면서 나는 동네 친구 만나는 것도 안 된다는 거야?

 

 "웃기시네."

 "응? 방금 뭐라고 했어?"

 "아, 스팸."

 

  나는 주차장에 선 차를 한 번 흘깃 쳐다봐 주고는 핸드폰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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