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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흘러내림(제4권) - 열매
작가 : 말레이
작품등록일 : 2020.8.20

이 소설 "흘러내림"은 언어의 시작 점인 창세 때부터 2040 여 년 대의 미래까지를 언어와 문자를 소재로 이어가는 소설로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언어 등의 모든 것이 오늘 우리모두에게까지 흘러 내려왔으며 이 흘러내려옴은 막힐 수 있는 강과 내처럼 수평적 흐럼이 아니라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수직적인 흘러내림이고 그렇게 우리에게 주신 것 중의 귀한 우리의 문자(한글)와 언어(한국어)를 세계에 널리 알리며 그 배에 복된 소식도 나누어야 한다는 주제로서 제1권 - 뿌리, 제2권 - 나무, 제3권 - 가지, 제4권 - 광합성 중의 제4권이다.

 
음악목회를 꿈꾸며..
작성일 : 20-08-30 19:07     조회 : 37     추천 : 0     분량 : 4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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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목회를 꿈꾸며...!

 

  그런 경험을 통하여 음악과 나름대로 친숙하게 된 나는 목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세 가지의 학문 즉 철학과 어학!, 음악! 중에서 당연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교회음악 이었고 고등학교 때 브라스 밴드에서 선배들의 몽둥이찜질이 생각나서였는지 내가 선택한 것은 노래공부를 하는 성악이 전공이었다. 이것은 그 촌놈의 순수함과 극치가 다시 여기에서 빛을 발하는 찬란한 순간 이었다. 왜냐하면 한 번도 성악적인 훈련을 받았거나 연습으로 다듬어진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음악은 음악이라지만 성악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최소 2~3년 이상을 부지런히 갈고 닦아왔어도 쉽지 않았을 일을... 그렇다고 시골 초등학교의 대 선배요 가수인 조영남 선배처럼 노래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것도 아닌 내가 목회에 도움이 되는 학문으로 성악을 생각하고 선택을 하였는데 이것이야 말로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것이 익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리고 당연히 성악에 대하여 그렇게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내가 갈만한 학교가 있을 리 만무였던 것이다. 그러나“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던가? 앞뒤 정황을 모르고 열심히 찾아다니다가 입학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을 가진 학교를 찾은 것이다. 개교한지 2년이 지나 이제 3년차 학생을 뽑는 학교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학교에 음악적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오겠는가? 실력자들이 별 관심을 두지를 안았는지 42명 모집에 43명이 응시하였고 나는 실기시험으로 면접관 교수님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정정 당당하고도 영예롭게 한 명을 물리치고 당당히 음악과에 합격을 하였던 것이다. 결코 내가 잘해서가 아니다. 그때 누군가 한 학생이 등록을 하지 않은 것일까? 그렇게 나의 학교생활은 시작되었고 나는 감사함과 기쁨으로 그 학교를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다. 때로는 일부 학생들 중에서

 

 “학교의 수준이...

  더 좋은 학교로의 편입...!”

 

 을 운운하였지만 나는 여기에서라도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고 또한 기쁨이었으며 즐거움이었던 것이다.(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오랜 시간을 거쳐 결국 노래는 웬만큼 아마추어 티를 벗어났지만 귀가 열린 이후에는 한 동안 어디를 가든지 다른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면 특별한 몇몇을 빼고는 듣는 것이 행복하지가 않았거나 심지어는 고역인 때도 있었다. 그것을 극복하는데 수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중에 들어보니 국어 연구원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국어와 문법에 대하여 비슷한 현상을 겪는다고 한다.)

  나는 이곳에서 다시 음악이론의 기초를 다지고 고등음악을 공부해 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취약점은 전공인 성악 실기였다. 신설학교이다 보니 전공 교수님들도 여의치 않아서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대학원생들도 전공지도 선생님으로 우리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하루는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한 여 선생님이 나의 전공을 지도하는 실기 지도 선생님으로 배정이 되었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런 감정이 없이 나무토막 부러지는 소리같이 무감정한 소리를 발하는 나를 두어 달 바라보시던 그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사랑을 한번 해보고 와서

  노래를 배우는 것이 좋겠어요!”

 

 라고 할 정도였다. 사랑의 노래를 마치 로봇이 부른다고 생각을 해 보시라! 아무런 사랑의 감정이나 인생의 굴곡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인생과 사랑을 노래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무미건조한 일일까? 그러나 그때 나는 그랬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라도 늙은? 학생에게 노래에 대한 감을 찾아주고 싶었던 그 선생님의 안타까움은 또 얼마나 애절하였을까?

  이렇듯 노래에서 백지인 나는 밤이고 낮이고 목을 틔워보려고 부단히 발성 연습을 통하여 성악의 수준을 넘어 매일 매일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서 수리산 자락에서 안양 시내의 건너편에 있는 먼 관악산을 바라보면서 생으로 발악을 해 보았지만 내 안에 감각적으로 무디어서 무언가 추상으로라도 내가 이해할 만한 성악적인 좋은 모델이 없이 그냥 막연히 내는 개의 울음소리만도 못한 소리 일 뿐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서야 그동안 늘 찬송을 하는 생활을 해오다 보니 어느 날 인가부터 비로소 노래가 이해되어 졌으니 참 갑갑하고도 참담한 긴 세월이었다.

  아무튼 당시에는 아무리 연습을 하고 또 연습을 해도 나의 실기는 제자리를 빙빙 돌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그리고 더욱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이‘교회음악 이론’이었다. 이미 음악이론의 재미에 빠져보았던 나는 교회 안에서 음악이 어떻게 쓰이고 그것이 복음과 어떻게 연계될 것인가에 대하여 공부를 스스로 하면서 나는 또 하나의 꿈을 키워갔다. 그것은 바로 음악 목회자가 되는 것이었다.

  교회음악과에 들어와서 공부를 하면서 실기에 준비가 되지 않았던 나는 당연히 다른 동기생들에게 실기에서 뒤지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나는 이론으로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바로 교회음악의 진수인 음악목회부분 이었다. 나 자신이 실기로 잘하지 못 하여도 오히려 교회 안에서 그런 사람들 전체를 통괄하고 활용하여 전도와 선교의 자원을 만들고 예배를 좀 더 풍성하게 만드는 일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를 연구하기 힘을 기울였다. 그래서 각 대학의 교회음악과 교수들이 방학마다 각 교회의 지휘자나 반주자, 솔로와 성가대원들을 대상으로 벌이는 동계 및 하계 음대에 좇아다니 면서 교회음악의 다양한 전문가들로 교회음악과 더불어서 음악목회자가 갖추어야 할 각종 필요한 부분들을 공부하였고 당시에 출간 되었던 교회음악에 관한 모든 서적을 구입하여 독파를 하는 등 나름대로 체계적이고 철저하게 공부를 하였다. 그래서였는지 이제 교회음악 하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줄기를 잡았을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어떻게 적용을 하면 된다는 것까지 적용까지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도 모자라 한국에서는 무엇인가를 하려면 두 가지의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내적 자격과 외적 자격으로 내적자격이란? 일명 그 분야의 실력이라는 것이고 또 한 가지로 외적 자격이라 함은 그 자격증 즉 학위를 가졌느냐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제는 외적 자격을 갖추고 내적 자격을 더욱더 보완하기 위하여 단국대학교의 교육대학원에 지원을 하여 음악 교육학을 공부하기 까지 하였다.

  그런데 대학원에 합격을 하고 보니 입학금이 없었다. 그래서 부득불 믿을 만한 친구에서 입학금을 부탁하면서 친구는 아무런 조건 없이 빌려준다는데 아니 받지 않고 내 줄 생각을 하고 있는 친구에게 두 가지의 조건을 걸었다. 첫째는 언제인지는 약속할 수 없지만 반드시 돈을 돌려주겠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로는 그렇지만 이자는 주지 못한다는 것 이었다. 친구는 웃으면서 알았다고 흔쾌하게 입학금을 빌려주어 학교에 등록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등록한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면서 강도사로 교회에서 학생담당 지도 및 성가대 지휘까지 하면서 사례비를 받았는데 이 비용으로 가족과 생활을 해 가면서 그 다음의 학비를 마련하는 것이 도통 쉬운 일처럼 보이지를 않았다. 대부분의 다른 부교역자들이 40여 만 원의 사례비를 받을 때 60여 만 원의 사례비를 주는 교회에서 부교역자를 하고 있었으나 그 60만원을 생활에 다 써도 부족한 상황에 30만원으로 생활을 하고 30만원씩 6개월을 모으면 180만원이 되니 당시에 200여 만 원을 하던 학비를 어떻게 감당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염두 계획이 섰다. 그런데 알고 보내 교회에서 장학금을 모아 지원해 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장학금 요청을 하였는데 결과는 전현 다른 결과가 왔다. 장로교회에서는 목회자가 되는 것이 최고의 일일 것인데 엉뚱한 일을 벌인다면서 그해 연말에 해임이 되었던 것이다. 최악의 경우 그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으면 학비가 감당이 되겠다고 생각을 하였는데 그곳에서 쫓겨나게 되었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도 다른 방법으로 역사를 하셨다. 그 교회의 한 구역의 구역장이신 집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강도사님 어려우시지요? 저희도 애기 아빠가 일본에게 늦게 까지 공부를 해서 잘 압니다. 다행히 저희 구역에서 구역헌금 이외에 구역원들이 회비를 모아서 선교사나 어려운 신학생을 지원하였는데 마침 앞에 돕던 신학생이 졸업을 하여서 다른 곳을 도와야 할 때가 되었는데 저희가 강도사님의 학비를 지원해 드릴 터이니 다른 곳에 가셔서도 열심히 공부하시고 맡은 임무를 다 해 주세요.”그렇게 말씀을 하시고는 그 이후로 정말 학비를 지원해 주셨다. 이것은 그야말로 그분들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하심 이셨다. 그리고 나는 교육대학원을 잘 마치고 학사모를 쓸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훗날 선교지에서도 사역의 역량을 나타내는 도구가 될 수 있었다. 얼마나 감사한지 지금도 하나님의 일에 도구가 되기를 자처 하셨던 그분들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결국 훗날에 선교지에서 음악을 통하여 특별히 음악적 소양이 떨어지는 현지인들이 제대로 찬양과 찬송을 하도록 지도하게 하기 위하여 신학생들을 지도하고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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