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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백색살인
작가 : BLED
작품등록일 : 2019.9.30

 
백색살인(16화)
작성일 : 19-10-12 23:02     조회 : 28     추천 : 0     분량 : 5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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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문득 지금까지 살아 온 자기의 삶이 온전히 자기의 삶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의 의지대로 살았다기보다는 삶이란 이름의 커다란 흐름이 흘러가는 대로 휩쓸려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란 것이 자신에게는 전부였지만 이 세상을 지배하는 거대한 운명 속에서는 작은 물방울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도도한 운명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은 그저 자기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운명이라는 거대한 물줄기를 이루는 작은 물방울 일뿐이다. 엄마도, 아버지도 자신의 죽음을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선호는 자신을 둘러싼 주위의 흐름이 점점 세차고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미 물러날 수 없는 곳까지 흘러갔는지도 모른다. 너무 늦은 것이다. 자기를 전역하게 만들었던 시위대 위원장이나 지금 자기에게 또 다른 변화를 요구하는 필수나 무엇이 다른가.

  그런 생각에 머물자 선호는 조금 전까지 자신을 괴롭히던 지난날들의 분노가 사라져 버린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주 신기하게도 마음속에 알 수 없는 고요함이 깃들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갈수록 힘이 든다. 욕심을 버려야 하는데……. 그 욕심을 못 버리니까……. 결국은 그 욕심 때문에 내가 스스로 진흙탕 속에 빠진 거지.”

  선호는 필수가 혼자 푸념처럼 말하고 있지만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인가 자신의 힘으로는 쉽게 빠져 나올 수 없는 어려운 일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 같았다.

  결코 쉽지 않은 일……. 어쩌면 자기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죽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일지도 모른다. 선호는 필수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순하고 마음씨 착하기만 한 친구가 아님을 알았다. 선호가 필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솔직하게 말해봐……. 뭐가 두려운 거야?”

  날카롭던 필수의 눈에 갑자기 취기가 돌았다. 그러나 선호는 필수가 일부러 취한 척한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필수는 두려운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선호가 방문을 조금 열고 밖을 살폈다. 방마다 취객들의 거친 목소리가 들렸지만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음식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여주인의 바쁜 움직임 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선호가 필수에게 술을 한 잔 가득 따라 건넸다. 필수가 잠시 잔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한 숨에 입안에 털어 넣었다. 이어 연거푸 두 잔을 내리 마셨다. 독한 양주를 스트레이트로 마신 필수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한 잔 더 마시고 나도 따라줘……. 그리고 할 말이 있으며 해봐.”

  필수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단숨에 술을 마셨다. 그리고 마신 잔을 선호에게 건넸다. 선호도 필수가 따라 준 술을 단숨에 마신 뒤 잔을 내려놓았다.

  “모든 것이 내 욕심에서 비롯된 일이야…….”

  어렵게 필수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선호는 그의 말을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필수를 바라만 보았다. 잠시 뒤 필수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말이란 것은 꺼내기가 어려울 뿐이다. 일단 입 밖에 내면 그토록 자신을 짓누르던 무거운 말의 무게는 한 순간에 새털만큼 가벼워지기도 하고, 어느 때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필수의 얼굴에서도 서서히 긴장감이 사라지고 오히려 분노하는 빛이 보였다.

  “지금 우리 회사……. 내 명의로 되어 있지만 속내는 사채업자들것이나 마찬가지야.”

  선호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회사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선호로서는 필수의 말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회사는 규모는 작았지만 건실하고 재정상태가 꽤 탄탄했다.

  회사의 매출은 웬만한 중견기업보다 많았고, 자금은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쪼들리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사채업자들 것이라니. 무슨 말인지 필수의 말이 믿기지가 않았다. 필수가 담배를 꺼내 물며 한 숨을 쉬었다.

  “개인적으로 사채업자들에게 진 빚이 많아……. 내가 미친놈이지……. 돈을 빌리면서 회사 지분을 담보로 맡겼어. 돈을 갚지 못하면 회사 지분이 전부 그들에게 넘어가게 되어 있어…….”

 

  오 년 전쯤 이었다.

  필수는 아내와 합의 이혼을 했다. 이혼을 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 것은 아내였지만 필수는 아내에게 따지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아내는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 그 남자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아내의 말에 필수는 이혼 서류에 서명을 했다.

  판결을 받고 서초동 가정 법원 앞에서 서로 갈 길을 가려고 멈췄을 때 아내가 악수를 청했다. 그러나 필수는 아내처럼 담담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내민 손을 바라만 보다 돌아서 왔다.

  집으로 돌아 올 때까지만 해도 무덤덤했던 마음이었다. 그러나 안방의 잘 정리된 침대를 보는 순간 마음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저 침대에서 그 남자와 뒹굴던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와 저 침대에서 잠을 잤다.

  그러나 정말 필수가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아내의 불륜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아내에게 한 마디 말도 않고 돌아선 것은 결코 담담함이 아니었다. 그건 두려움이었고, 비겁함이었고, 나약함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욕설을 퍼붓고, 잘못했다고 빌 때까지 두들겨 패주고 싶었다.

  필수는 간단한 옷가지만 챙겨 훌쩍 홍콩으로 떠났다. 아직 회사가 지금처럼 커지기 전이라 자기가 며칠 동안 자리를 비운다고 문제될 것도 없었지만, 그런 것을 따질 만큼 필수의 마음이 넉넉하질 못했다.

  그러나 막상 홍콩으로 도망치듯 떠나왔지만 혼자서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애당초 관광차 온 것이 아니었기에 시간에 매여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관광하기도 귀찮았고 쇼핑하기도 흥미가 없었다.

  처음 이틀 동안은 호텔방에서 혼자 술에 취해 지냈다. 술에 취해 쓰러져 잠들었다 깨면 다시 술을 마셔댔다. 사흘째 되던 날 필수는 초췌한 얼굴로 호텔을 나섰다. 머리가 아파 바람이라도 쐬어야 할 것 같았다. 필수는 가까운 차이나 페리 터미널로 갔다. 마침 마카오로 가는 페리가 대기하고 있었다.

  필수는 망설이지 않고 마카오로 가는 배를 탔다. 배가 마카오 항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도로 양쪽에 줄지어 서있는 도박장들이었다. 필수는 그중 제일 먼저 눈에 띈 곳으로 들어갔다.

  거기에서 필수는 바카라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바카라는 의외로 매력적이었다. 딱히 알아야 될 복잡한 룰도 없었고, 3장의 카드를 받아 9이하의 숫자에서 자신이 가진 카드의 숫자의 합이 상대보다 높기만 하면 이기는 것이다.

  모든 도박이 다 그랬듯이 바카라도 그냥 자기와의 싸움이었다. 깔끔한 결과도 좋았다. 속임수도 없었고 머리 쓸 일도 없었다. 그냥 자기가 가진 카드를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길 팬지 질 패인지…….

  그러나 단순하면서도 빠져 나오기 힘든 중독성이 있는 바카라는 자기와 비슷한 구석이 많은 도박 같았다. 희열과 아쉬움이 수시로 교차되는 게임이었다. 그래서인지 필수는 금방 바카라에 빠져 버렸다.

  그러나 도박의 끝은 항상 같았다. 자신의 승리를 꿈꾸며 시작하는 도박이 결국은 자기의 상실로 마무리 짓기 마련이었다. 필수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가져간 돈은 금세 바닥이 났다.

  돈이 떨어진 것을 안 도박장에서 아무런 보증도 요구하지 않고 차용증만 쓴 뒤 친절하게 필수에게 돈을 빌려주었고, 그때부터 필수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었다. 도박 빚은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필수가 다시 서울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갚을 수 있는 빚이 아니었다.

 

  빚을 갚기로 한 날이 다가왔지만 필수에게는 변제할 만 한 돈이 없었다. 그때 또 다른 손길이 필수에게 다가왔다. 그것은 필수가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그때까지 겨우 회사를 운영할 만큼 정도만 민승전자에서 물량을 받아왔었는데 갑자기 물량이 두 배로 늘었다. 그리고 그 다음 달에 다시 두 배로 늘었다. 밤낮없이 공장을 가동했지만 그 당시의 설비로는 납기를 맞추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필수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공장을 증설하기로 했다.

  민승전자에서는 그 이후에도 순차적으로 물량을 늘려갔다. 마카오에서 빌린 도박 빚은 더 이상 문젯거리가 되질 않았다. 그러나 한 번 빠진 도박은 쉽게 벗어나기 힘들었다.

  더욱이 이혼 후에 주위에 아무도 없던 필수는 혼자 있는 것이 너무도 싫었다. 그리고 돈을 번다는 것도 의미가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위해 자기가 돈을 벌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술과 도박에 점점 더 빠져들었던 것이다. 필수가 마카오를 찾는 일이 빈번해 지면서 도박 빚이 다시 쌓이게 되었다. 그러나 필수의 사업이 번창하고 있는 이상 빚 걱정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민승전자의 발주 물량이 예고도 없이 급격히 줄어들어 버렸다. 새로운 반도체의 출시로 제조 사양이 바뀌었다는 이유였다. 필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나 발주 물량의 감소가 현실로 다가 오는 것은 불과 두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당장 자금의 흐름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은행에서 대출금의 상환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해가 날 때 우산을 빌려줬다가 비가 내리면 회수하는 것이 은행이라는 속설처럼 은행의 압박은 필수를 피 말리게 만들었다.

  필수는 회사 일은 손도 못 대고 하루 종일 은행을 찾아다니며 겨우 대출금 상환 기일을 연장시키기에 바빴다. 임시변통이었지만 그래도 겨우 한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더 큰 문제가 남아있었다. 바로 도박 빚이었다. 도박 자금을 빌려줬던 조직 폭력배들은 은행처럼 필수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결국 필수는 그들의 협박을 못 이겨 자신의 회사 지분을 그들에게 담보로 넘겨주고 고비를 넘겼던 것이다.

  그런 저간의 사정을 친구인 선호에게도 말 못하고 혼자 고민을 안고 지내오던 필수에게 어느 날 도박 자금을 빌려줬던 조직폭력배의 보스가 찾아왔다. 그리고 필수에게 뜻밖의 제안을 던져주고 돌아갔다.

 

  “제안이란 것이 뭔데?”

  선호가 날카로운 눈으로 필수를 쳐다보며 물었다. 필수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누군가를 처리해 달래……. 그러면 도박 빚을 전부 탕감해 주겠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처리해달라는 건데?”

  “...........”

  입을 못 여는 필수를 보고 선호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불편했다. 선호는 머뭇거리는 필수에게 다그쳐 물었다.

  “설마……. 사람을 해치라고 하는 건 아니지?”

  “...........”

  필수가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선호는 갑자기 방안이 덥다고 느꼈다. 답답했다. 이건 그냥 쉽게 지나칠 일이 아니었다. 선호는 따라놓은 위스키를 입에 털어 넣었다. 몰트위스키의 강렬하고 독특한 향이 금방 입안에서부터 식도를 타고 온 몸으로 퍼졌다. 귓불에 천천히 열기가 올랐다.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선호는 잘 알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약속을 했는지 모르지만 사람은 고사하고 살아 있는 작은 생명조차 죽이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조직폭력배들이 자신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필수를 그냥 놔두지도 않을 것이란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필수야! 이건 정말 위험한 짓이야…….”

  “나도 알아……. 그렇지만 이제는 내가 선택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야!”

  “...... 그건 무슨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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