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회귀편)
그 자작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가 가장 신뢰하는 기사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그래, 부르스 네가 할 일이 있다. 당장 아카넬 후작님을 찾아가서 내가 뵙기를 청한다고 전해드려라 그리고 꼭 너만 알고 있어야 한다."
자작은 다시 한 번 강조하며 은밀하게 행동하라고 했다.
'제 아무리 너라도 아카넬 후작님을 이길 순 없을 테지.'
자작은 흥 하고는 입꼬리를 살짝 말으며 웃었다.
카이네 아카넬, 현 소드 마스터이자 바스티유 제국에서 가장 강하다고 평가 받는 검사다. 아카넬 백작가를 후작가로 승격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황제의 신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때 창문으로 나간 로브를 뒤집어 쓴 자는 높이 뛰더니 2층 난간을 붙잡고 또 한번 뛰더니 지붕위까지 올라갔다.
지붕에서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그자도 로브를 둘러 싸고 있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조차도 말이다.
"어머, 자기 이제 와? 경고는 잘 했지? 그 자식 무서워서 벌벌떨다가 지금은 오줌이라도 지리고 있는거 아니야?"
그녀는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음성은 꾀꼬리 같은 정말이지 아름다운 목소리로 나긋나긋하게 말했지만, 그녀가 말한 내용은 그녀의 목소리와는 정말 어울리지 않았다.
"언제까지 자기, 자기 거릴거냐? 이제 졸업할 때가 되지 않았어?"
"아잉~ 자기야 너무 그렇게 쌀쌀맞게 굴지마. 기껏 기달려 줬는데, 섭섭해 질려고 한다. 우리 빨리 가기나 하자."
그는 그런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자꾸 팔짱을 끼려고 하는 그녀를 차갑게 밀어내고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곳으로 사뿐히 착지하고는 그냥 그녀를 내버려둔 채로 가버렸다.
"칫 우리 자기는 너무 쌀쌀맞다니까."
그녀는 피식 웃고는 그를 따라서 아래로 뛰어내렸다.
"어?"
그런데 정말 우연찮게도 세리아가 페이트리아 가의 저택의 지붕에서 떨어진 자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먼저 가던 남자는 보지 못했고, 후에 그를 따라가던 자를 보게 되었다.
로브 때문에 성별은 모르겠으나 수상한 감이 있어 세리아는 그자를 몰래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일부로 어두컴컴하고 으스스한 곳만 골라서 가는 자가 너무 수상쩍게 보였다.
은밀하게 따라오던 세리아는 모퉁이로 사라진 자를 뒤쫒기 위해서 발걸음을 좀 빠르게 한 뒤 따라가서 그녀도 모퉁이를 돌아서 보았지만, 그녀가 따라다녔던 이가 없어졌다.
'내 존재를 들킨건가?'
그자는 로브를 쓴 반면에 자신은 로브도 쓰지 않은 채 얼굴을 그대로 드러냈다. 미행에 실패하면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것까지 생각했어야 했는데 온전히 그녀의 실수였다.
그녀는 씁쓸한 표정을 짓고는 뒤로 돌아서 돌아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눈앞에 자신이 미행하던 이가 나타났다.
그녀는 눈이 둥그래지면서 가만히 앞에 있는 이를 주시했다.
그러자 로브를 쓴 사람이 세리아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녀와는 다르게 아주 신난 말투를 하며 말이다.
"안녕, 아가씨. 반가워."
목소리를 듣자마자 앞에있는 이가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세리아에게 무척 친한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그에 반면 세리아는 꿀먹은 벙어리가 된듯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벌린 입을 다물지 않고 앞에있는 그녀를 계속 쳐다 볼 뿐이었다.
세리아는 그러다가 로브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탄성을 내질렀다.
"정말 아름답다."
진심이었다. 뽀얀한 얼굴에 매혹적인 입술, 붉게 타오르는 것만 같은 눈동자, 날렵하게 솟아난 콧날이 모든 남정내들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오우! 정말? 고마워. 만남과 동시에 외모 칭찬이라니 자기 센스있네. 나 자기 마음에 들었어."
"네?"
세리아는 뜬금없이 마음에 들었다는 말과 방금 처음 봤는데 자기라고 칭하는 것에 어이가 없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자신이 미행하다가 들켰는데, 갑자기 나온 한 마디로 마음에 들었다니. 무슨 이 어이없는 상황이란 말인가?
"나랑 같이 갈래? 우리집에 초대하고 싶은데."
세리아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잘하면 그 자작 녀석에 대해 좋는 정보를 얻을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의 집에 가는 것이 꺼려지긴 했다.
세리아가 턱을 만지작거리며 곰곰히 생각해 보고 있는데, 그녀가 말을 걸었다.
"오고싶지 않으면 안 와도 돼."
방긋 웃으며 말하는 그녀를 보니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정말 순수하게 자신을 집에 초대하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세리아는 결국 그녀의 초대에 응하기로 했다.
"가요."
세리아가 짧게 말하자 그녀는 따라 오라고 손짓한 후에 등을 보이며 천천히 걸었다.
세리아는 그런 그녀의 등을 보며 골목길을 따라 걸었다.
그러자 큰 길로 들어서더니 곧바로 사람들이 많아졌다. 무척 혼잡한 상황이라 그녀를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녀의 팔을 잡아버렸다. 순간 그녀의 팔이 닿아 그녀가 돌아보자 놀라서 바로 손을 뺏지만 말이다
"어머? 팔짱끼고 싶어?"
그녀는 자기 혼자서 망상에 빠지며 말했다.
"흐응... 그랬구나! 말을 하지 그랬어."
정작 세리아는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는데, 그녀가 알아서 말하며 세리아의 팔을 잡았다.
그러자 그녀의 로브에 의해 가려진 가녀린 허리를 느낄 수 있었다.
"!"
세리아는 처음에 어색해서 은근히 팔을 치내려고 했지만, 그녀는 그럴수록 더욱더 세리아의 팔을 꽉끼며 절대로 놓지 않을 것만 같이 굴었다.
분주한 사람들 속에서도 그녀는 느긋하게 팔짱을 걸으며 지나가면서 툭툭 쳐서 밀려나는 상황속에서 웃으며 걸었다.
그렇게 1,2분 정도 걸었더니 그녀가 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가 바로 우리집이야."
세리아는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집을 보자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와...!"
'귀족인가?'
순간 그렇게 생각나게 만들었다.
집이 보통 귀족들이 사용하는 집 만큼이나 크고 멋졌다.
겉만 번드르르한 그 자작의 집보다 훨 좋게 보였다.
"들어와."
그녀가 문을 열자 세리아를 또 한번 놀라게 했다. 안은 겉보다 더 했다.
넓게 깔려진 카펫에 무도회에 사용할 것만 같은 샹들리에 전등, 그리고 벽면에 달아 놓은 사진들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미를 중시하는 듯한 그림들이 그녀와 정말 어울리는 집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집에 들어서자 로브에 의해 가려져 있던 그의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냈다.
세리아도 모르게 그녀를 빤히 쳐다 보고 말았다. 그녀는 시선을 집중시키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더럽고 촌스러운 옷을 입어도 언제나 밝게 빛날 것만 같은 아름다움에 세리아는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이 여자는 왜 이렇게 아름다운 걸까?'
"자기, 뭐해 빨리 들어오지 않고."
그녀는 세리아의 팔을 잡고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세리아는 그녀를 따라서 그녀의 놀이터라고 자칭하는 곳에 갔다.
"어서 여기 앉아."
그녀는 손으로 그녀가 앉은 곳의 마주보는 쪽의 의자를 가리켰다.
"감사합니다."
"어색해 어색해. 말 놔줘."
"그래."
세리아가 말을 놓은 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통성명을 아직 안 했네? 반가워 나는 프로디테라고 해. 디테라고 불러 줘. 올해 열 아홉살이지."
"아... 난 세리아고, 나도 열 아홉이야."
"어머 어머 정말? 우리 정말 인연인가봐. 길거리에서 딱 만나고, 나이도 같고, 우리 친구하자."
"뭐?"
세리아는 디테가 하는 말을 잘 듣지 못한 듯 다시 되물었다. 사실은 그녀가 하는 말이 진실인지 거짓이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아서 되물었던 것이다.
"친구하자고."
"친구...."
세리아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세리아는 회귀전과 이번 생 통틀어서 여자와 친구를 사귄적이 한 번도 없다. 세리아가 기사라는 것이 한 몫을 했다. 여기사라고 깔보는 사람이 많았고, 마스터가 된 후에도 뒤에서 까내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지금 세리아는 꿈인지 생신지 구분이 잘 안가는 듯 해서 확실하게 들었는데, 또 다시 되물었다.
"친구하자고?"
디테는 방긋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너와 내가 친구라고? 친구....?"
"어."
그녀는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그래."
"꺄아~~"
디테는 기분이 좋은 지 세라아의 손을 잡으며 폴짝 뛰었다.
세리아는 기분은 좋지만 처음 사귄 여자친구에 어색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언젠간 익숙해질 것이다.
"세..리아... 세리... 리아 리아! 리아라고 불러도 되지?"
세리아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세리아는 어쩌다보니 애칭이 생기게 되었다. 지금은 프로디테만이 부르는 애칭이지만 말이다.
서로 이제 애칭으로만 부르기로 했다.
"리아, 조금만 기달려 빨리 차를 가져올게."
프로디테는 그렇게 말한 뒤 주방으로 뛰어갔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 아무리 봐도 귀족은 아닌 것 같았다. 시종이나 하녀도 없는 것 같았다.
'가족은 있는걸까?'
세리아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들어올 때는 반강제적으로 끌려와서 주변을 잘 보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멋진 석상이 하나가 떡하니 있었다.
그것도 그냥 석상이 아닌 멋드러지는 갑옷에 무척 날카롭고 가벼워 보이는 검에 독수리가 새겨져 있는 활에 촉이 무척 뾰족하게 있는 화살이 세리아의 눈에 들어왔다.
특히 검에 말이다. 검사로서 좋은 검에 끌리는 것은 당연하다.
세리아가 그 검을 유심히 보고있는데, 프로디테가 찻잔과 찻주전자를 놓은 쟁반을 가지고, 들어왔다.
세리아는 어찌나 검에 빠져 있었는지 그녀가 들어온지도 모른채 그 검을 계속해서 주시한 채로 있었다.
프로디테가 테이블에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쟁반을 놓자. 그 소리에 그녀가 감상에서 벗어났다.
"어? 빨리왔네?"
"리아, 검에 관심있어?"
"응."
세리아는 짧게 대답하곤 자신이 차고 있는 검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잘 생각해 보니 의아한 점이 있었다. 프로디테와 어울리지 않는 석상말이다. 미와는 전혀 관계없는 석상이었다.
'다른 사람과 같이 사는 걸까?'
세리아는 궁금한 것을 참지 않고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