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갑작스레 감정에 기복이 생긴 듯 횡설수설 하는 그녀의 모습에 당황해 했고 그녀도 그걸 아는 듯 감정을 추스르고는 처음 봤을 때처럼 딱딱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도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건지… 그럼 나가 봐 나중에 다시 부를 일이 생길 테니”
그곳을 나오고 나서 피식 웃고 말았다. 그녀를 많이 겪어보진 못했지만, 주는 느낌이 나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의외의 귀염성도 있는 거 같으니까.
방으로 돌아온 후 룸메이트를 보니 다시 어색함이 감돌았다. 그 어색함이 불편했는지 그가 먼저 말을 걸었다.
“저기 내 이름은 하연후 너는?”
그의 말에 순간 머뭇거렸다. 내 본명은 말할 수는 없다. 모르고 말했다가 내 존재가 이 세계에 각인되고 ‘그들’이 찾아오기라도 하면 상당히 골치가 아파 올 테니까.
결국 이상하게 조작 된 서류 위에 적힌 이름을 댈 수밖에 없었다.
“현, ‘현’ 이라고 해.”
그 말에 그는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뭐? 그럼 성은? 달랑 그거뿐이야?”
‘성이라…’
그냥 아무 성이나 가져다 붙이려다 말았다. 귀찮아서 그리고 굳이 그런 거까지 넣어서 불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까.
‘어차피 한 달 후면 가버릴 텐데.’
“없어, 그냥 알아서 생각해.”
그러자 녀석이 날 바라보는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그 눈가엔 동정이 어려 있었다.
‘얜, 뭘 날 주민번호도 받지 못해서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쯤으로 보는 건가?’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해도 역시 그런 취급을 받는 다는 것 썩 좋지만은 않은 일 이었다. 내가 작게 한숨을 내쉬자 그는 뭔가 생각이라도 한 듯 갑자기 열렬히 날 신경 써 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등등의 이 학교에 대한 사소한 정보까지 내가 원하지 않아도 그를 통해 상당 부분 알 수 있었고 그건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다 그가 문득 생각이라도 난 듯 내게 물었다.
“아, 넌 능력이 뭐야? 난 ‘소집’ 일반 계야. 내 능력이긴 하지만 그리 쓸모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모습은 뭔가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난, 잘 몰라. 그야말로 ‘알 수 없음’이랄까?”
이곳에 들어오는데 쓰인 서류상의 내용을 그대로 말하자 그의 얼굴이 묘하게 밝아졌다.
“알 수 없다고? 그건 아직 능력을 개화를 하지 못했다는 뜻이야? 괜찮아. 언제가 좋은 능력이 분명히 개화할 거야.”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내 어깨를 탁탁 두드렸고 나는 순간 헛웃음이 나올 번 한 것을 참고는 그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근데 회장 말이야. 혹시 잘 알아?”
“회. 회장? 왜, 혹시 관심이라도 있는 거야?”
그는 흠칫 놀라더니 은근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왜 그런 눈으로 날 보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고, 그냥…”
‘좀 신경 쓰이니까 그렇지.’
그가 나에게 이것저것 잘 알려주어서 혹시나 해서 물어 본 것이지 딱히 다른 뜻은 없었다. 그저 ‘그녀‘ 와 닮은 얼굴이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니까 조금 신경 쓰이는 정도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적당히 둘러댄 것이 뭔가 성에 안 차기라도 한 것일까. 그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혹시 말 못 하게거나 잘 모르는 거라면 안 해도 돼. 그냥 단순한 호기심 이었으니까.”
그러자 그는 오히려 화들짝 놀라며 나를 붙잡았다.
“아, 아니야 그냥 잠시 생각 중 이었으니까. 얘기해 줄게 그녀에 대해서.”
그는 묘하게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이내 입을 열었다. 나는 그를 통해서 그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이름, 성격, 사회적인 위치,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개인적인 기호까지 생각보다 세세한 것까지 그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거대 재벌그룹인 SG그룹의 총수의 손녀딸이자 하나 뿐인 후계자이며 이 학교의 회장 말고도 ‘위원회’ 라는 초기에는 능력자들의 권익을 위해 세워졌으나 지금은 국정을 좌우하는 기구의 10명 의원 중 하나 라는 거 까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잘 설명하다. 갑자기 아몬드를 좋아한다는 둥의 이상한 소리로 빠져서 의아 했지만, 오히려 이곳 사람이라면 모두 알만한 사실까지 물어 봐 내가 그의 눈총을 사야 했다.
아무튼 그를 통해 필요한 사실을 알 수 있었고 이 정도라면 만족스러운 첫 날이라 할 수 있었다.
이 날 저녁, 잠을 자고 있던 나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눈을 떴다. 누군가의 수상한 기척이 느껴진 것이다. 나는 그가 눈치 채지 못하게 조용히 일어나 방의 불을 켜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