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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천사는 울지 않는다
작가 : 소설부부
작품등록일 : 2017.7.15

영겁의 세월동안 고독과 마음의 평온만을 추구하던 천사 프라.
그가 복잡한 관계로 뒤얽힌 지구의 삶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

...팽팽한 긴장의 줄을 싹둑 잘라 먹었다.

모두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라는 잔뜩 힘주어 숨을 참고 있던 참이었었다.

에이씨. 지지려면 빨리 지질 것이지. 할랑 말랑 하는 게 더 고문인 거 모르나.

키가 보통 명마보다 큰 흑마는 구경꾼들을 당당하게 가르고 장교 앞에까지 왔다.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검은 후드망토를 길게 늘어트린 존재가 말 위에 앉아 있었다.

 
개인 시중
작성일 : 17-07-21 16:49     조회 : 22     추천 : 0     분량 : 7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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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연민과 동정을 담고 있던 홍안이 경련을 일으켰다.

 

 카라스 영주는 동요 없이 그런 세라의 반응을 내려 볼 뿐이었다.

 

 

 “자비를 요청하다니……처음 있는 일이군.”

 

 

 노파 옆에 서 있던 기사가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대기 중 이었다.

 

 세라는 할 말을 잃어 영주에게서 눈을 떼고 바닥을 응시했다. 믿기지 않아 다시 눈을 들어 미치광이 영주라고 불리 우는 자를 다시 확인했다.

 

 

 ‘살아남아……내가 갈 때까지.’

 

 

 피로와 쓸쓸함을 담고 욕망을 억누르던…… 그 눈.

 

 고통으로 가득 찬, 아론의 아픔을 담고 있던 그 남자.

 

 무심함 속에서도 그녀의 움직임을 모두 읽고 절박한 순간에 손을 내밀 던 남자.

 

 파갈성에서 그녀를 데리고 나온 그의 모든 순간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루도 그 모습이 머리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건 또 뭔가?

 

 검은 머리는 완벽하게 모두 뒤로 넘겨져 한 가닥도 삐져나온 것이 없었다.

 

 고통은 흔적도 없는 차갑고 안정된 검은 눈이었다.

 

 무뚝뚝하게 침묵으로 일관하던 입술은 입꼬리가 살짝 휘어 있어 냉소를 담고 있었다.

 

 목소리도 다르지 않은가?

 

 기사는 목젖이 눌리고 거친 저음인데 반해 앞에 서 있는 자는 잘 벼려진 칼처럼 정확하고 냉철한 깨끗한 중저음이었다.

 

 검은 모피를 멋들어지게 어깨에 걸친 전체적인 깔끔한 모습이 꽤 외모도 신경 쓰는 듯 보였다.

 

 이 모습은 마치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꾸며진 무대 위의 배우 같은 모습이었다.

 

 같은 동일 인물인지. 또 다른 아론의 닮은꼴인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세라의 생각이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영주는 재판을 마무리 지었다.

 

 

 “좋다. 너의 요청을 받아들여 자비를 베풀지. 이로써 이 사건을 종결한다.”

 

 

 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원 해산!”

 

 

 영주의 명령에 무리들은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갔다. 몇몇이 노파를 부축에 나갔다.

 

 둘 만 남았다.

 

 칼날 같은 차가운 음성이 침묵을 가르고.

 

 

 “걸을 수 있나?”

 

 

 그녀는 비틀비틀 일어섰다. 절뚝거리며 몇 걸음을 내딛었다. 그 모양새를 지켜보던 영주가 뒤돌아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절뚝거리는 그녀를 도울 생각이 전혀 없다는 듯 거침없는 걸음소리가 식당 안을 울렸다.

 

 그녀가 기다리던 검은 기사가 아니었다. 기사는 냉정한 모습으로 포장했어도 내면은 그녀를 향한 열정을 고스란히 지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저 모습에서는 그녀에 대한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지독한 외로움이 시작될 것 같은 예감에 절규가 새어 나왔다.

 

 

 “살아남았잖아요! 살아남았다고요……당신이 올 때까지.”

 

 

 확인이 필요했다.

 

 그녀가 기다렸던 자인지, 또 다른 닮은 꼴 인지.

 

 그가 문 앞에 멈춰 섰다. 돌아서지도 않고,

 

 

 “……잘했어…… 기특해.”

 

 

 세라의 눈에 일말의 희망이 피어올랐다. 그가 돌아섰다.

 

 

 “……라는 칭찬이 듣고 싶었나?”

 

 

 하- 넓은 홀을 가로질러 날아든 냉소적인 눈빛과 말에 허탈한 숨이 빠져나갔다. 수치심에 어깨가 늘어지며 땅으로 시선이 곤두박질 쳐졌다.

 

 

 “……당신이 살아남으라고 했잖아요……그러면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넋을 잃고 읊조리듯 새어나온 말이 그에게 들리지 않길 바라면서도 듣고 뭐라 답해 주기를 원했다.

 

 대답대신 발소리가 가까워져서 시선을 올렸다.

 

 긴 검은 모피자락의 출렁임과 한 걸음 한 걸음 분명한 그의 움직임이 마치 맹수를 연상케 했다.

 

 바짝 다가선 그가 검은 손으로 그녀의 턱을 들어올렸다. 무심히 내려 보다 그가 얼굴을 내렸다. 세라의 입술에 묻은 피를 혀끝으로 핥고는 맛을 음미했다.

 

 세라의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도 그것을 알아챘는지 그녀의 심장으로 시선을 내렸다.

 

 

 “흠……좋아. 계속 이런 식으로 나를 시험해봐.”

 

 

 이렇게 지척에서 입술을 닿고 서로의 호흡이 엉키는데도 일관되게 차분한 그와 반대로 세라는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심장은 제멋대로 빨리 뛰다 박자가 들쑥날쑥이었고, 근육들은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흐물거려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그가 그녀의 허리를 받쳐들었다.

 

 

 “다시 만난 것이 기뻐할 일인지,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인지……두고 보면 알겠지.”

 

 

 그가 다시 눈을 들어 홍안을 응시했다.

 

 검은 눈동자의 속내를 알고 싶어 파헤쳐 들어가 보려했으나 세라는 실패하고 말았다. 아무것도 읽을 수도, 느낄 수도 없었다.

 

 

 

 

  **

 

 

 

 

 

 

 “누가 네 옷에 그런 짓을 했는지 짐작 가는 데라도?”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바네사가 식당에 홀로 있는 세라를 약방에 데려왔다. 얼음주머니를 가져다 대주며 물었다. 발목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짐작 가는 데?

 

 일단…… 세탁방 3인방 전부, 그리고 식당에서 그녀를 노려봤던 사람들 전부.

 

 세라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누가 그랬는지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거칠고 쓸쓸해 보이던 기사와 냉소적이고 차디찬 인상의 영주의 모습을 번갈아 생각하는라 여념이 없었다.

 

 이건 좋은 소식이야? 나쁜 소식이야?

 

 검은 기사가 미치광이 카라스 영주이고, 그 미치광이 영주가 그녀가 최근 마음을 설레가며 떠올리던 검은 기사라는 사실 말이다.

 

 

 “바네사, 영주님의 진짜 모습은 어떤 거죠?”

 

 “헷갈릴 필요 없어. 다 약 때문에 그런 거니까. 약발이 떨어지면 야성적여지시고, 오늘처럼 윤기가 반지르르 흐르시는 날은, 사람 홀리는 그 몸속에 약이 충분이 들어 있다는 뜻이지.”

 

 

 세라가 찾던 검은 기사가 카라스 영주와 동일 인물임을 듣고 바네사는 한껏 신이 났다.

 

 

 “영주님도 네가 신경 쓰였던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식당까지 찾아와 손수 판결을 번복하실 이유가 없거든. 하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까지 신경 쓸 틈이 없으시잖아.”

 

 

 좀 더 빨리 나타나 주던가?

 

 얼굴이 묵사발이 된 다음에 나타나서 똥 폼만 잔뜩 잡고, ‘내가 바로 그 영주다’하고 깜짝 쇼 하는 것이 취향인가?

 

 

 “오늘 너한테 함부로 손대면 쓴 맛을 보여주겠다는 경고를 제대로 보여 주신거야.”

 

 

 약방 책임자 브르노가 약 상자를 들고 다가왔다.

 

 그는 연고를 세라의 볼과 여기저기 난 찰과상 위에 발라 주었다.

 

 

 “그 쓴 맛 보기 전에 어디로 피신해야 할 텐데.”

 

 

 브르노가 혼자 웅얼거려 세라와 바네사는 알아듣지 못했다.

 

 세라와 바네사가 가고 브르노는 안절부절 약방 안을 서성였다.

 

 

 “오셨어도 벌써 오셨을텐데, 단단히 벼르신거야. 아무래도 안 되겠어. 일단 피하고 봐야지.”

 

 

 브르노가 약방문을 열고 나가려는 찰나, 문 앞에 아카드가 떡 하니 서 있었다.

 

 

 “억! 여, 영주님. 오, 오셨군요.”

 

 

 애써 방긋 웃었다.

 

 

 “어딜 그리 급히 가지? 누가 보면 도망이라도 치는 줄 알겠네.”

 

 “도, 도망이라뇨. 새, 새로운 약재 확인 차 가보려던 길이죠.”

 

 

 아카드가 안으로 한 발 옮기자 브르노는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아카드가 자리를 잡고 앉아 브르노를 차갑게 응시했다.

 

 애써 브르노는 연신 태연한 척 넉살좋은 웃음을 띠웠다.

 

 

 “트리스톤 성 보수작업을 이리 빨리 끝내시고 오시다니 급하긴 급하셨나 봅니다.”

 

 

 아카드는 대답 없이 팔짱을 끼고 브르노를 조용히 응시할 뿐이었다.

 

 

 “하람 성주님 부상은 많이 좋아졌겠죠? 제 약 정도면 당연이 효과가 있어야죠. 하하하. 흐익!!”

 

 

 아카드가 갑자기 팔짱을 풀자, 브르노는 지레 겁을 먹고 책상 뒤로 숨었다.

 

 

 “아이고 영주님, 쫌! ……하실 말씀 있으시면 빨리 하세요. 제가 바지에 오줌이라도 지려야 성에 차시겠어요?”

 

 

 눈치를 살피던 브르노가 체념한 듯 웅크린 몸을 일으켰다.

 

 

 “브르노,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싶군. 첫째, 그간 자네가 처리한 본성 내 첩자들에 대한 증거가 충분했냐는 것.”

 

 

 대답해 보라는 듯 그가 말을 멈췄다.

 

 

 “이미 보고 해드렸다시피 백프로 증거를 잡아 처리한 첩자는 하사품 4명 포함 32명, 물증은 없지만 강력한 심증으로 처리한 자는 하사품 1명 포함, 11명입니다. 지금도 그에 대한 제 판단에 후회는 없습니다. 그들이 성내를 지금까지 활보했다면 비밀계책들이 새어나가 트리스톤 성을 비롯해 주요성들이 지금까지 버티고 있지 못했을 거라 장담합니다.”

 

 브르노가 턱에 힘을 주었다.

 

 

 “좋아, 보고서 상에는 자네의 판단이 타당하게 보였고 자네를 믿기로 한 건 내 결정이니 증거가 불충분하다 해도 다시 거론할 수 없겠지. 앞으로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 해도 내 허락을 받은 후 처리하게.

 ”

 

 브르노의 얼굴이 굳었다. 자신과 영주 사이의 신뢰에 금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좀 더 신중히 대답해야 할 거야. 자네에 대한 처우를 결정하지 않으니까.”

 

 

 브르노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생각했다.

 

 

 “세라, 그 여자가 첩자든 아니든 내가 처리하겠다고 했던 말 기억하나? 당연히 기억하겠지. 그런데 왜 그런 장난질을 친 거야?

 

 

 브르노는 대답하지 못했다. 영주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었다.

 

 

 “브르노, 분명히 지시했는데 왜 그랬지?”

 

 “왜 그랬냐고요? 이럴 걸 염려해서 그랬습니다. 보세요! 벌써 영주님은 그 여자 때문에 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침착하기 위해 브르노는 숨을 들이켰다.

 

 

 “최전방 요충지인 트리스톤 성 복구작업 마무리도 보시지 않고 돌아오신 것. 이제껏 제 판단을 늘 믿어주시던 분이 저를 의심하기 시작하신 것. 하인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에 참견하게 되신 것. 앞으로도 여기저기 돌아보셔야 할 성들을 방치한 채 이곳에서 머물 이유를 찾으려 하시겠죠. 왜냐고요? 바로 그 여자 때문입니다. 그런 목적으로 황제가 보낸 첩자니까요. 그래서 금화를 그 여자 옷에 숨겼습니다. 첩자들을 조용히 처리하는 방식 중 하나이니까요.”

 

 브르노는 늘 중요한 상황에서 차분했다.

 

 

 “그 여자가 왜 그렇게 대단할 거라 생각하지? 자네 말대로 그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 내 할 일을 방치할 염려? 그 정도로 강력한 유혹이라면 당연히 넘어가 주고 싶군. 하지만 그럴 일은 단연코 없어.”

 

 

 영주님, 벌써 유혹이 시작되었습니다. 더 신속히 처리했어야 했는데.

 

 

 “정말 황제가 오랜 시간 준비한 첩자라면, 그 여자가 무슨 짓거리를 하는지 두고 보자고. 판결은 내가 내릴 테니까.”

 

 

 아카드가 일어섰다. 문 앞에 가서 멈췄다.

 

 

 “그러니 털끝하나 손대지마. 명령이다.”

 

 

 

 **

 

 

 

 끼이익. 문이 열렸다. 영주가 들어와 그녀의 존재를 무시하고 목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서자마자 그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자와 침실에 단둘이! 갑자기 더워지네.

 

 그에겐, 침실에 여자가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

 

 이제부터 뭘 해야 하나?

 

 개인시중. 황명으로 그의 개인 시중을 들어야 하는 그녀는 노예이다.

 

 세라는 할리부인의 말이 떠올랐다.

 

 

 ‘영주님은 이따금 이곳을 사용하신다. 주로 군사들과 함께 막사에서 지내시다가 씻거나 부상을 치료할 때 오시곤 하지. 그 때 불편하지 않도록 수발을 들어드리고 심부름을 해드리면 돼. 보아하니 너도 귀족출신 같은데 하인들이 널 위해 했던 일들을 떠올려 보면 되겠군.’

 

 

 물소리가 들렸다. 씻으려나 보았다.

 

 하인들이 그녀를 위해 했던 일들.

 

 그녀가 목욕중일 때 하녀가 옆에서 씻겨주고 닦아주고 입혀줬었다.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인가?

 

 귀족 여자들이 목욕할 땐 당연히 여자인 하녀만이 시중을 들지만, 귀족 남자들은 성의 구분 없이 시중을 받기도 했다.

 

 그러니 세라가 여자라 해서 영주의 목욕 시중을 거부할 수 없었다.

 

 

 어리석게 굴지 마. 난 더 이상 귀족이 아니야. 그러니,

 

 

 “내 할 일을 해.”

 

 

 어려울 것도 복잡할 것도 없었다.

 

 맡은 배역에 최선을 다 하면 되는 것이다.

 

 심호흡을 한 후, 절뚝거리며 목욕실로 들어갔다.

 

 눈을 내리깔고 섰다. 맨살의 두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단단해 보이는 젖은 다리를 보니 가슴이 요동쳤다.

 

 그가 움직임을 멈췄다.

 

 나를 보고 있는 거야.

 

 생각해 둔 말이 쉬이 나오지 않아 억지로 꺼내려니 목젖이 짓눌려 아팠다. 부어오른 얼굴전체가 아팠다.

 

 

 “물을 받을 까요? 탕에 몸을 담그시면 여독이 금방 풀리실 것입니다.”

 

 

 대답이 없었다.

 

 주인의 침묵을 하녀들은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세라 또한 당연한 일에 대꾸를 하지 않을 때가 많았으니까.

 

 세라는 탕에 물을 틀었다. 넓은 목욕탕 중앙에 자리 잡은 탕은 바닥보다 낮게 위치해 있었다. 이 카라스성이 거대한 검은 바위 속에 지어진 이유 중 하나가 온천 때문이었다.

 

 바네사 말로는 개인 온천은 영주의 방에만 있는 특별한 혜택이었다. 물을 길어 나를 필요도 데울 필요도 없어 다행이었다.

 

 그녀는 바네사에게 얻은 약재들을 망에 넣어 탕에 담갔다.

 

 약초향이 널찍한 목욕실 안을 채웠다.

 

 영주가 한쪽 벽에 있는 나무벤치 앉았다.

 

 세라는 시선을 피해 물의 온도를 확인했다. 수건과 목욕용품을 준비 하고 한쪽 구석에 서서 머리를 뒤로 묶고 기다렸다.

 

 할 일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우선, 물이 채워지고 영주가 탕에 들어가면, 마사지를 해준다.

 

 마사지 돌로 근육을 풀어 주는 것을 귀족들은 좋아했다.

 

 그 다음, 마사지가 끝나면 비누로 씻고, 물기를 닦기 전에 향유를 바른다. 수건으로 닦은 후 착의를 해 준다.

 

 마지막으로, 차를 준비하여 내 놓는다.

 

 눈이 충혈 된 것을 보니 잠을 오랫동안 제대로 자지 못한 듯싶으니 숙면에 좋은 차를 준비하자.

 

 다른 여자들과 달리 그녀는 영주를 만질 수 있는 노예이니 제대로 실력 발휘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정말, 하녀들이 그녀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떠 올리자 할 일이 태산 같았다.

 

 세라는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유능한 하사품이 돼보기로 마음먹었다.

 

 

 “몸이 불편해 보이는데 쉬도록 해.”

 

 

 나른한 저음이 목욕탕에 울려 퍼지자 세라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각 같은 나신에 시선이 충돌하자마자 서둘러 다시 돌렸다.

 

 

 “……일 하는 데는 지장 없습니다.”

 

 

 그녀는 이미 귀족의 목욕 시중을 하는 하녀 역에 몰입 중이었다.

 

 다시 물이 쏟아지는 소리만 요란하게 울렸다.

 

 그가 탕 속으로 들어갔다. 세라도 움직였다.

 

 영주의 등 쪽에 무릎을 꿇고 자리를 잡았다. 영주의 허리까지 물이 차올라 있었다. 수면 아래에 있는 영주의 몸에 시선을 주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순간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곳으로 향했다.

 

 

 “할리는 고생 좀 하던데 넌 정말 아무렇지 않군.”

 

 “……?”

 

 “내가 닿았던 흔적.”

 

 “아, 네. 저는 괜찮습니다.”

 

 

 할리부인이 최근 쓰고 있는 두건이 떠올랐다. 데인 상처처럼 빨리 낫지 않는데다가 흉이 질 것 같았다.

 

 약재가 우러나와 진한 갈색 빛깔의 물들이 너울너울 일렁이고 영주는 눈을 감았다.

 

 바가지를 사용해 어깨와 등에 조심스레 반복해서 물을 부었다. 그리고 매끄러운 검은 돌을 들어 그의 어깨를 지그시 누르며 마사지를 시작했다. 손끝이 떨렸다.

 

 그녀의 손끝이 닿자 그의 근육들이 꿈틀거렸다. 그가 눈을 잠시 떴다가 도로 감았다.

 

 세라의 손이 돌과 그의 피부결에 익숙해져 갈 무렵,

 

 

 “네게서도 독초향이 났어. 파갈성에서 널 봤을 때.”

 

 

 놀라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숙여 자신의 냄새를 맡아 보았다. 잘 모르겠다.

 

 

 “보통사람들은 못 맡아.”

 

 “…….”

 

 “언제부터지?”

 

 “……네?”

 

 “언제부터 음독하기 시작했지?”

 

 “12살 때 시작했어요.”

 

 

 그의 미간이 좁혀지며 관자놀이가 움찔 거렸다.

 

 

 “가문에서 시켰겠지.”

 

 “아니에요. 제 스스로 시작했어요.”

 

 “……왜지?”

 

 “꼭 심문 당하는 같아요.”

 

 “맞아. 심문 당하는 거. 그러니까 말해.”

 

 “……오래 살고 싶어서요.”

 

 “흥, 그런 사람이 굶어 죽을 생각을 해?”

 

 

 영주 침실에서 아사직전까지 갔던 사건을 말하는 거였다. 죽으려던 게 아닌데.

 

 

 “혼자 했나?”

 

 “……같이 오래 살고 싶은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 몰래 차에 미량의 독을 타서 매일 함께 마셨어요.”

 

 

 세라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애잔한 여운이 감돌았다.

 

 그가 숨을 멈췄다. 그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백여 종이 넘는 독을 주기적으로 바꿔가면서 내성을 키웠어요.”

 

 “……그 사람은 어떻게 됐지? 살아 있나?”

 

 “……아뇨. 죽었어요.”

 

 “그때 날 닮았다던…… 그 아이인가?”

 

 “네.”

 

 “그땐 왜 독에 대한 얘기는 빼고 한 거지?”

 

 “일부러 뺀 건 아니고, 솔직히 어떤 부분을 빼고 얘기했는지 잘 기억도 안나요. 너무 피곤하고 지쳐 있었어요.”

 

 

 오랫동안 침묵이 흐른 뒤 그가 다시 물었다.

 

 

 “네가 독에 내성을 키운 것을 황제가 알고 있나?”

 

 “그건……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손에 든 돌이 그의 뒷목을 위 아래로 쓸어내렸다.

 

 긴 침묵을 세라가 깼다.

 

 

 “영주님, 심문은 끝난 겁니까?”

 

 

 그가 천천히 눈꺼풀을 들었다.

 

 

 “……그래.”

 

 “그럼 제가 하나만 여쭤 봐도 될까요?”

 

 

 그가 살짝 시선을 비틀더니,

 

 

 “해봐.”

 

 “왜 영주님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지 않으셨어요?”

 

 

 그가 몸을 틀어 욕조 턱에 팔을 괴고 그녀를 나른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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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세라 vs 금속이빨용병 2017 / 7 / 15 29 0 8469   
8 추격자들. 2017 / 7 / 15 23 0 6837   
7 늑대의 방문 2017 / 7 / 15 28 0 8469   
6 회상 - 귀족스승 노예제자 2017 / 7 / 15 29 0 7133   
5 회상-고통을 삼키는 조우 2017 / 7 / 15 25 0 8816   
4 회상-폭주의 시작 2017 / 7 / 15 28 0 7905   
3 카라스의 검은 기사 2017 / 7 / 15 30 0 9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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