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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천사는 울지 않는다
작가 : 소설부부
작품등록일 : 2017.7.15

영겁의 세월동안 고독과 마음의 평온만을 추구하던 천사 프라.
그가 복잡한 관계로 뒤얽힌 지구의 삶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

...팽팽한 긴장의 줄을 싹둑 잘라 먹었다.

모두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라는 잔뜩 힘주어 숨을 참고 있던 참이었었다.

에이씨. 지지려면 빨리 지질 것이지. 할랑 말랑 하는 게 더 고문인 거 모르나.

키가 보통 명마보다 큰 흑마는 구경꾼들을 당당하게 가르고 장교 앞에까지 왔다.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검은 후드망토를 길게 늘어트린 존재가 말 위에 앉아 있었다.

 
회상 - 귀족스승 노예제자
작성일 : 17-07-15 14:24     조회 : 28     추천 : 0     분량 : 7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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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후.

 

 

 미하루는 생글거리며 새로운 드레스자락을 잡고 이리저리 팔락거리며 아론에게 자랑 중이었다. 관심 없는 아론은 멍하니 턱을 괴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문이 열리더니, 하인 두 명이 들어와 책상과 의자 두 개를 방 한쪽에 배치 해 놓고는,

 

 

 “세라 아가씨, 이렇게 두면 될까요?”

 

 

 하인들이 문 밖을 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아론도 문 쪽을 쳐다봤다.

 

 무릎 밑으로 흔들리는 진한 초록색 치맛자락이 가장 먼저 방안으로 들어왔다. 붉은 머리를 야무지게 올려 하나로 묶은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얼마 전, 어깨에 큰 고통을 준 표시를 받던 날 봤던 여자아이였다. 무료했던 푸른 눈이 반짝거렸다.

 

 바로 뒤로 검을 찬 기사 한명이 따라 들어왔다.

 

 여자 아이는 하얀 얼굴에 옅은 주근깨가 가득했다. 고집스럽게 다문 붉은 입술이 살짝 비틀어졌다.

 

 머리카락 색 때문에 덩달아 붉게 보이는 주홍색 눈동자가 책상 쪽을 보면서 잠깐 고민에 빠진 듯 했다.

 

 

 “창문을 향해 정면으로 앉으면 눈이 부신다는 것도 몰라? 책상 돌려.”

 

 

 목소리도 얼굴만큼 쌀쌀 맞았다.

 

 하인들은 책상을 돌리고 의자 위치를 바꾼 후,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한 후 나갔다.

 

 여자아이가 방안을 둘러보다가 미하루와 아론을 쳐다봤다.

 

 미하루는 쪼르륵 아론 옆으로 다가와 그의 등 뒤로 숨었다.

 

 

 “ 난 세라 파갈이다. 곧 이 파갈성의 새로운 주인이 될 거야.”

 

 

 세라 파갈.

 

 아론은 어른들이 가진 차가운 눈을 한 여자아이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미하루만 알고 지내던 그에게 그녀의 등장은 굉장한 충격이었다.

 

 어깨의 뜨거운 고통은 마치 그녀라는 존재를 발견하게 된 환희의 표출과도 비슷했다.

 

 그 고통은 그녀와의 만남을 더욱 인상적이게 만들었다. 고통을 떠올리면 그녀의 모습이 자동적으로 떠올랐다. 고통이 아닌 강렬함으로 대체 되는 순간을 그는 계속적으로 반복해서 그리고 있었다.

 

 특히 붉은 머리카락과 주홍색의 눈이 무언가를 연상시키는데 알 길이 없었다. 마치 벽에 그려진 미하루가 말한 그의 엄마라고 한 존재처럼 안개 속에 숨겨진 무엇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미하루와 비슷한 거라고는 치마를 입었다는 것 말고는 없었다.

 

 미하루는 늘 방긋방긋 웃었다. 세라는 웃지 않았다. 미하루는 길고 처진 눈을 가졌는데 세라는 눈매가 크고 살짝 올라갔다.

 

 미하루는 말할 때 손동작을 많이 사용하며 이리저리 움직이는데 세라는 나무처럼 곧게 허리를 세우고 입술만 움직일 뿐이었다.

 

 

 “아론, 여기 앉아.”

 

 

 세라가 의자를 가리켰다. 아론은 천천히 일어나 의자 쪽이 아닌 세라 앞에 다가서려하자, 기사가 검 자루를 쥐며 그녀 앞을 막아섰다.

 

 족쇄에 연결 된 사슬소리에 세라가 아론의 발을 내려 봤다. 붉은 입술이 또 비틀어지고,

 

 

 “이거는 왜 안 풀어 줘?”

 

 

 세라가 아론의 족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기사에게 물었다.

 

 

 “아직 공작님 지시가 없었습니다.”

 

 “위험인물이면 나보고 공부시키라고 하지 않으셨을 텐데?”

 

 “보기보다 위험합니다.”

 

 “방이 좁으니까 나가 있어.”

 

 “세라 아가씨, 하지만.”

 

 

 세라가 대꾸 없이 입을 꾹 다물고 있자, 기사가 나갔다.

 

 가로막고 있던 기사가 나가자, 아론이 한발자국 더 다가왔다.

 

 아론는 세라가 자신보다 키가 훨씬 큰 것을 알고는 놀랐다. 머리하나 차이가 났으니.

 

 세라가 턱을 살짝 치켜들고는,

 

 

 “짐승들이나 크기로 서열을 따지지. 사람은 타고난 신분으로 서열을 매겨.”

 

 

 세라가 손가락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아론은 의자를 쳐다봤다.

 

 다시 세라를 올려다보는 아론은 자신이 그녀를 이뻐한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가 그녀보다 작은 것이 문제 될 게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손을 뻗어 세라의 머리를 부드럽게 두어 번 쓰다듬었다.

 

 

 “뭐하는 짓이야!”

 

 

 놀란 세라는 그의 손을 쳐냈다.

 

 아론은 세라가 쳐낸 그의 손을 내려다보다가 의자에 앉았다. 제법, 사나운 녀석이군.

 

 세라는 아론의 엉뚱한 행동에 찌푸린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미하루가 눈치를 살피더니 남은 의자에 앉으려 했다.

 

 

 “거긴, 내 자리야.”

 

 

 세라가 언짢다는 듯 말했다.

 

 미하루가 재빨리 다시 일어섰다. 세라가 아론의 맞은편에 앉으며,

 

 

 “종이, 펜.”

 

 “네, 세라 아가씨. 여기 있습니다.”

 

 

 문 밖에서 대기 중이던 하녀가 재빨리 들어와 그것들을 가지런히 책상 위에 두고는 세라 뒤에 섰다.

 

 

 “좁으니까 나가 있어.”

 

 “네, 세라 아가씨.”

 

 

 하녀가 허리를 숙여 인사한 후 문 밖으로 나갔다.

 

 아론은 사람들이 세라에게 하는 행동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녀가 여기 대장인가 싶었다.

 

 

 “오늘부터 내가 너의 선생님이야. 글을 가르쳐줄테니 열심히 공부하도록.”

 

 “…….”

 

 “아론이란 이름 마음에 드니?”

 

 “…….”

 

 “내가 지었어.”

 

 

 아론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는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미하루처럼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지만, 미하루 때와는 달리 그녀의 모든 움직임을 기억하고 싶어졌다.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우선, 이게 너의 이름이야. 그대로 따라 써봐.”

 

 

 세라는 종이 위에 아론의 이름을 써서 그에게 주었다. 아론이 펜을 쥔 채로 종이만 볼 뿐 따라 쓰지 않자, 그녀는 일어나 그 옆으로 갔다.

 

 아론의 손을 겹쳐 잡았다. 그녀의 손끝이 조금 차가웠지만 아론은 이내 따뜻하게 전해지는 온기를 손이 아닌 심장에서 느낄 수 있었다. 세라에게서 나는 향기로운 꽃냄새가 코를 간질거렸다.

 

 세라의 힘에 의해, 선들을 따라 펜이 움직였다. 그 동작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그는 세라의 눈빛과 목소리는 차갑지만 자신과 비슷한 마음을 가진 아이라고 생각했다.

 

 고개를 돌려, 자신의 손을 잡고 글씨를 쓰는 세라의 옆 얼굴을 바라봤다. 붉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또 쳐낼까봐 포기했다.

 

 그는 이 붉은 빛 머리카락의 여자 아이 때문에 이곳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 *

 

 

 

 세라는 본성에 있는 자신의 서재에서 아론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론의 방은 너무 좁았다.

 

 미하루가 곁에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생충 같은 아이였다.

 

 파갈공작은 세라가 아론과의 수업을 거부하자, 외출을 금지 시켰다.

 

 그 다음엔 그녀를 찾아오는 손님들의 방문을 금지 시켰다. 각종 사치품들의 디자이너들과 개인 과외 선생들, 그리고 친구들의 방문들이 차례로 금지 되었지만 노예의 선생이 될 수는 없었다.

 

 서재출입을 통제하겠다는 협박에 잠시 흔들렸으나 귀족의 자존심을 걸고 물러설 수 없었다.

 

 하지만 결국, 파갈공작의 치사한 최후통첩에 백기를 들고 말았으니.

 

 할아버지가 이렇게까지 하실 줄이야!

 

 매일, 매끼, 그녀의 식사에 올라오는 고기완자!

 

 고소하고 사르르 녹아내리는 부드러운 육즙의 고기완자.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그것을 금지시키겠다는 말에 이제껏 꿈쩍도 않던 그녀는 두려움이 왈칵 밀려왔다.

 

 고기완자 없이 자신이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 이것은 백 프로 확신컨대, 한 끼 아니면 두 끼는 참을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은 결과가 뻔했다.

 

 반나절 만에 질 싸움이라면 시작도 말아야지.

 

 게다가 고기완자 때문에 노예의 선생이 되었다는 소문이라도 퍼지면 그 망신까지 어떻게 감당 할 수 있을까.

 

 화가 치밀어 울그락불그락 씩씩 거리며 아론의 방에 도착했던 수업 첫날.

 

 초라한 방안 낡은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빛나는 불꽃같은 존재를 문 밖에서 봤다. 꽉 들어 차 있던 화가 공중으로 맥없이 흩어져 버렸었다.

 

 상념에 잠겨 있던 세라는 가까워지는 쇠사슬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소리는 문 앞에서 멈추더니, 하인의 헛기침이 들려왔다.

 

 

 “세라 아가씨, 아론 데리고 왔습니다.”

 

 “들어와!”

 

 

 하루 만에 다시 보는 아론은 천상의 존재처럼 여전히 빛났다. 그토록 빛날지라도 노예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여기 앉아.”

 

 

 기사가 아론의 팔꿈치를 잡아 당겨 세라 옆에 앉혔다. 아론은 세라를 보지 않고 있었다. 기사가 가까운 곳에 시립했다. 아론은 이따금 멍한 상태였다.

 

 세라는 아론의 발에 차고 있는 족쇄가 불편해 보였다.

 

 세라는 아무리 봐도 아론이 위험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아름답기만 한 작은 소년에게 족쇄는 가혹한 짓 같았다.

 

 세라는 책상위에 종이와 펜을 꺼내 놓았다.

 

 

 “아론?”

 

 

 먼 곳을 응시하던 푸른 눈동자가 천천히 세라에게로 향했다. 초점이 불분명 했던 눈동자에 세라의 모습이 박히면서 순간 동공이 좁혀졌다.

 

 아론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가 이내 펴졌다. 입술에 미세한 미소가 그려졌다.

 

 

 

 “내가 널 해방시켜 주지. 이것으로부터.”

 

 

 세라는 손가락으로 족쇄를 가리켰다.

 

 

 “너, 글자 다 익히는 날, 저거 풀어 줄게.”

 

 

 기본 글자들을 종이에 써 내려갔다. 글자가 들어가는 예시 단어를 쓰고 그림을 그려 넣었다.

 

 처음에 얼마나 이해하나 보려고 서너 개만 반복했는데 아론은 바로 이해했다. 나머지 글자들에 대한 예시 단어를 함께 채워 넣고 아론이 직접 그림을 그려 넣었다.

 

 세라는 많아야 열 개정도 하려 했는데 아론의 역량은 기대이상이었다. 기본글자를 암기하는 것은 물론 예시단어의 글자들도 쉽게 암기했다.

 

 기본글자 백 개 중에 삼십 개를 익혔다.

 

 

 “너는 오늘 족쇄를 풀려고 그러나 본데 주어진 시간이 다 됐어. 그만 가봐.”

 

 

 정확히 한 시간이 되자, 세라는 자리에서 일어서 먼저 나갔다.

 

 사흘 후,

 

 공작의 허락을 받아낸 세라는 직접 아론의 발목에서 족쇄를 풀어 주었다.

 

 아론은 수업이 끝나고 잠시 걸음을 옮기며 새롭게 느껴지는 중력에 적응했다. 그리고는 바로 뛰기 시작해서 파갈성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성은 왈칵 뒤집어졌고, 세라는 마음을 졸이며 아론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다음 날, 집사가 헐레벌떡 세라를 찾아와 아론이 서재에 와 있다고 알렸다.

 

 정확히 수업 할 시간에 맞춰 그는 돌아와 있었다.

 

 

 

 

 **

 

 

 

 

 6개월 후.

 

 

 “난 연기를 잘해. 배우가 되도 아주 유명해질 자신이 있지.”

 

 

 아론은 세라의 붉은 입술만을 응시했다. 그녀의 입술 사이에서 나오는 말들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단어가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그저 웅얼거림으로 들릴 뿐이었다.

 

 두 시간동안 그가 앉아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계속 나오는 저 입술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것뿐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굉장히 똑똑하고 도도하고 여성스러운 줄 알아. 내 머릿속에 꽉 찬 부도덕하고 위험한 망상들을 그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걸.”

 

 

 그녀의 지위 때문에 성 안에서는 누구도 저리 뚫어져라 시선을 마주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자신의 할아버지인 파갈공작도 이토록 오랫동안 그녀의 눈을 바라보지 못했다. 물론 다른 사람들처럼 그녀의 권력을 두려워해서가 아니었다.

 

 어린 손녀에게서 부모형제를 빼앗은 죄책감이리라.

 

 세라는 미동도 없이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며 경청하는 아론을 점점 깊은 내면 속으로 초대하고 있었다.

 

 

 “가장 힘든 연기가 뭔지 알아?”

 

 

 그녀 입술의 움직임이 잠시 멈췄다. 그럴 때마다 아론은 세라의 주홍빛이 감도는 눈동자로 시선을 옮겼다.

 

 

 “절제.”

 

 

 짧은 한 단어였지만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아버지와 오빠들 장례식 때 딱 한 방울, 눈물을 흘려야 한다고 생각했지. 절규하며 울고불고 난리를 치면 그동안 쌓아 놓은 내 이미지가 망가질 테고, 울지 않는다면 지나치게 냉정하다고 입방아에 오를 테고. 그래서 딱 한 방울의 눈물을 흘리기로 했어.”

 

 

 세라가 찻잔에 검지손가락 끝을 넣어 찻물을 묻힌 후 들어 올렸다. 손끝에서 한 방울이 톡, 떨어졌다.

 

 아론은 가늘고 하얀 그녀의 손가락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바라봤다. 유일하게 손상되지 않은 그 감각.

 

 모든 움직임을 잡아내는 감각.

 

 

 “말이 쉽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냐. 나라고 가족의 죽음이 슬프지 않겠니. 그런 상황에서 감정을 통제한다는 것은 정상이 아닐 수도 있어.”

 

 

 단어가 길어지자, 아론은 다시 세라의 입술로 파란 눈을 고정시켰다.

 

 

 “아무리 연습을 수천 번 했다 해도 상실의 끔찍한 고통 앞에서는 무너지기 마련이지. 근데 난 해냈어. 그러니 정상이 아닌 거야.”

 

 

 그녀는 찻잔을 들어 입술에 대었다. 자신의 한 방울의 눈물마저 도로 집어 삼켰다.

 

 

 “그러니까, 너!”

 

 

 무심하듯 내뱉던 톤에 무게가 실렸다. 찻잔을 여전히 입술 앞에 둔 채였다. 열두 살 소녀의 황량했던 눈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내 앞에서 연기할 생각하지 마!”

 

 

 아론은 주홍빛 눈을 흔들림 없이 주시했다. 사정거리 안의 먹이를 응시하는 듯 찔러오는 그 눈빛.

 

 아론을 꿰뚫어 보려는 시도.

 

 타오르는 주홍빛 불꽃 속으로 끌어당기는 힘.

 

 심장을 빨리 뛰게 만드는 존재.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을 참을성 있게 듣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순간들 때문일까.

 

 다른 누구의 것보다 이 눈빛이 참을성을 키워주었다.

 

 안타깝게도 절정의 순간은 늘 찰라였다. 세라가 차를 마저 마시며 눈꺼풀을 내렸다.

 

 짧은 보상이었지만 만족스러웠다. 스스로에게서 어떤 가능성 같은 것을 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물컹거리는…… 너무나 유연해서 뚫을 수 없을 것 같은 벽 속에 갇힌 기분으로 하루하루 살고 있었다.

 

 무지와 나른함.

 

 무감각과 무료함.

 

 그런 강력한 벽을 뚫고 들어오는 한 줄기 빛이라서 소중했다.

 

 그 빛 자체는 벽을 허물 수 있을 만큼 대단한 힘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안에 갇힌 괴력의 야수를 툭툭 건드려대고 있었다.

 

 

 “모르는 척, 아닌 척, 하는 척, 슬픈 척, 기쁜 척, 재미있는 척, 아픈 척, 괜찮은 척, 싫어하는 척……좋아하는 척. 그 따위 것들 하지 마, 내 앞에서. 그런 것은 신물나게 보고 있으니까.”

 

 

 다시 무심히 내뱉고 있었다.

 

 

 “내 말들을 지금은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나중에 원래대로 돌아오면 전부 기억해서, 행동해. 머리는 안 따라줘도 네 몸이 모든 것을 기억하잖아.”

 

 

 그렇다. 아론은 서재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녀의 모든 동작을 기억했다. 입술의 움직임과 눈꺼풀의 나풀거림까지 그의 머릿속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그를 평범하게 대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저능아에 무지덩어리인 아론을 앞에 두고 쉬운 단어만 골라 쓰지 않았다.

 

 파갈공작도 세라와 같은 생각이란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론을 개, 돼지, 소에게 하듯 말했다.

 

 

 ‘먹어! 나가! 자! 씻어……!’

 

 

 그래야만 아론이 이해하고 행동했으니.

 

 

 “차……마셔.”

 

 

 세라가 아론 앞에 놓인 찻잔을 응시했다.

 

 혀가 데이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식어 있을 것이다.

 

 아론이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조금 숙였다. 앳된 작은 두 손이 잔을 들어 갈색의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세라가 마시기에도 제법 써서 홀짝이는데 녀석은 매번 저렇다.

 

 세라와 있는 동안 저 입은 말을 하는데 사용한 적이 없었다.

 

 오직 쓰디쓴 독이든 차를 단숨에 들이키는데 사용했다.

 

 찻잔을 내리니, 아기 천사 같은 모습으로 수려한 입술주변과 하얀 턱 주변이 갈색 물로 범벅이었다.

 

 귀여워!!!!!

 

 세라는 자신의 눈꼬리, 입꼬리가 휘려는 것을 붙잡아 내렸다.

 

 그녀가 연기해야하는 역할은 부드럽고 인자한 선생님이 아니었다. 완강하고 고집스럽고 차가운 스승이었다.

 

 

 “이상. 수업 끝.”

 

 

 세라가 일어서 나가자, 아론도 일어섰다. 그는 기계적으로 훈련장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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