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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경계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23.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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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경계선 안쪽에서 살다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 밖을 넘게 될 상황에 처하면서 경계하고 그 경계하던 태도가 차차 변화하는 모습을 탐구해보려 노력했습니다. 경계선 바깥과 안을 넘나들다 결국엔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입장에 공감해보셨으면 좋겠네요. 그럼 책 재미나게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경계 - 4
작성일 : 23-04-11 13:28     조회 : 89     추천 : 0     분량 : 5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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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옥수수 - 재물

 

  어제 한 달에 한 번 가지는 모임에 참석해서 피곤한데다 오늘은 오후 마감 당번이라 마음이 풀어졌는지 아침에 아주 푹, 자버렸다. 언제 나갔는지도 모르게 아침 일찍 가게로 출근한 남편이 전화를 해서 깨운다. 애 아침밥은 챙겨 먹이고 자라고. 누가 들으면 자기 아이는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아주 한량한 여자로 생각하겠다. 그가 시댁에 이런 시시콜콜한 일을 자꾸 일러바치니 매번 애 데리러 갈 때마다 시부모님에게서 잔소리를 듣는다. 허물없는 부모 자식 사이라지만 굳이 그렇게 할 얘기 안 할 얘기 가리지 않고 전하는 남편이 야속할 때가 있다. 아무리 시부모님이 편하게 해주신다고 해도 대하기 어려운 게 당연한 시댁에 대한 아내 입장도 생각을 해줘야지, 그는 자기 속에 쌓인 것만 풀어내고 싶어 한다. 그럼 내 입장은 어떻게 될지 고려하지 못한다. 아님 별로 개의치 않는지도.

  하루의 시작을 현무의 칭얼거림과 함께 시작해서 그 칭얼거림을 가라앉히는 걸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애는 자고 있을 때가 가장 예쁘다. 어쩜 자는 모습이 그리 천사 같은지. 가만히 누워서 새근새근, 숨을 내쉬었다 들이쉬기를 반복하는 동작은 보고 있으면 질리지 않는다. 그렇게 잘 자는데 굳이 깨우고 싶지 않지만 남편 말대로 밥은 먹여야 한다. 일어나고 싶지 않은 애를 일부러 깨우니 역시나 아주 높은 옥타브로 소리를 울리며 패대기를 친다. 처음 애가 깨어날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얼핏, 그날 하루가 어떨지 예상이 된다. 오늘은 쉽지 않겠다. 애가 징징, 거리는 강도가 세다. 손까지 휘둘러 가며 입에 넣으려는 음식을 마다한다. 휴, 이건 숫제 전쟁이다. 언제쯤 이 전쟁을 그만두게 될지. 애 다 키운 부모들은 애들은 금방 크니까 어릴 때 함께 할 수 있을 때 그 시간을 최대한 즐기라고 하지만 그건 다 키운 사람의 입장이다. 애 때문에 잠 설치고 애 때문에 주위 눈치를 봐야 하고 애 때문에 시달릴 땐 어서 크기만 바랄 뿐이다. 그저 이 시간이 어서 지나라고 빌고 또 빈다.

  이제 8개월을 지나는 현무를 보행기에 태울까 고민 중이다. 너무 일찍 태우면 다리가 벌어진다고 하던데. 슬슬, 허리에 힘이 생겨 혼자 힘으로 앉아서 지탱하기 시작한다. 손에 닿는 대로 아무거나 잡고 일어서려 시도하기도 여러 번이다. 이 시기엔 어찌나 온갖 것을 다 쥐어 입에 넣으려 하는지 그걸 저지하는 게 곤혹이다. 아예 물건을 멀찍이 떨어뜨려 놓아도 어느새 그 근처로 기어가 입 안에 넣는 걸 발견할 때가 흔하다. 밤에 자다 깨서 울면 그게 가장 밉다. 대충 토닥여주면 다시 자기도 하지만, 어쩔 땐 엄청 울어서 서서 안고 한참을 달래야 잠잠해진다. 오늘은 오후에 시부모님에게 맡겨놓을 건데, 그 전에 어떻게든 힘을 빼놓아서 덜 칭얼거리게 만들려 노력했다. 시부모님이야 항상 손주 보는 게 반갑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속으론 무조건 환영하지만은 않으시겠지. 나도 안다. 내 배로 낳은 자식이 미울 때가 있는데 시부모님은 오죽 할까. 그저 현무가 시부모님 너무 힘들게 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정신없이 애 먹이면서 나도 대충 끼니를 때운다. 애 먹이는 게 우선이니 엄마야 그저 입에 음식이 들어가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애 씻기고 나도 남들 보기 흉하지 않을 정도로만 대충 꾸며서 나섰다. 애를 유모차에 태우고 밖으로 나오니 아, 이제 봄이 오긴 왔구나, 하고 절로 감탄이 나온다. 바깥 공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냉랭했던 기운이 느껴지지 않고, 오르막길을 오를 땐 삐쭉, 코 아래로 땀이 맺힌다. 아직 짧은 소매 옷을 입기엔 무리지만 곧 있으면 봄꽃을 볼 거라는 기대에 꽃과 나무를 만지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은근히 기대가 된다. 뭐, 하우스 시설이 워낙 발전해서 사시사철 꽃이 피는 걸 보는 게 예삿일이지만, 그래도 제철에 피는 꽃이 주는 감동은 또 다르다. 그 자태와 향기는 더욱 생생하고 싱그럽게 다가온다. 사람들이 오개닉, 오개닉, 하며 유기농 제품을 찾는 이유가 다 그런 게 아닐까. 그 싱싱한 맛은 인위적인 향이 주는 것과 확연히 다를 테니까.

  “현무 아빠, 우리 왔어. 애 안 굶겼어. 너무 걱정 마.”

  농담하듯 던진 말인데 반응이 없다. 그제야 남편 얼굴을 보니 어째 심각하다. 아침에 무슨 일 있었나?

  “왜?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

  남편이 머리를 긁어대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유모차에 앉은 애를 챙긴다. 그렇게 잠시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현무는 제 아빠가 다독여주자 기분이 좋아져서 벙긋, 거리고 웃으며 어깨를 들었다 놓기를 반복한다. 저럴 땐 애가 참 예쁘다. 미운 짓 할 때는 그렇게 밉다가도 고운 짓 하면 한없이 사랑스럽다. 그렇게 애를 키워간다. 사랑하고 미워하기를 반복하면서.

  “가게 팔라고 또 제안이 들어왔어.”

  “가게?”

  이전에 몇 번 가게를 팔라고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었다. 여기 부지를 사들일 땐 주변 상가와 주거지역이 가깝고 경쟁상대가 될 만한 대형마트도 없어서 구입했다. 그랬던 게 막상 자리를 잡아가자 부동산 여기저기서 매물로 내놓을 생각 없냐며 연락이 온다. 어떻게 보면 목을 잘 잡았다고 기분 좋게 생각할 수 있는데 남편은 그게 성가신지 불평을 한다. 슬쩍, 떠보듯이 물었다.

  “우리가 지불했던 금액에서 적당히 이윤을 낼 수 있는 괜찮은 가격이면 파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그 차액으로 더 좋은 곳 구입할 수 있는 거고.”

  어휴, 저 째려보는 눈 봐. 남편이 싫은 내색을 할 거라는 걸 예상하고 꺼낸 말이었지만 그 눈빛 매서움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내가 여기 장사 시작하고부터 가게 번창시키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뻔히 알면서 그런 소리가 입에서 나와? 손님 끌어들이는 게 하루이틀 해서 어림도 없다는 걸 당신도 잘 알잖아. 이제 여긴 내게 단순히 물건 파는 가게가 아니라고. 내 품으로 낳은 애 같은 곳이야. 돈 더 준다고 쉽게 내놓을 그런 하찮은 존재가 아니야.”

  “알아, 안다고. 당신이 여길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냥 해본 소리야. 누가 바로 팔자고 했어? 파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다고 그런 거지.”

  남편은 속에 쌓인 게 많았는지 그런 내 변명에도 계속해서 생각이 없다고 잔소리를 해댄다. 괜히 건넨 말에 애꿎게 하루 초장부터 훈육을 듣는 상황이 돼버렸다. 그가 마트를 개업한 후로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밤늦게 들어오는 걸 바로 옆에서 지켜봐왔다. 장사라는 걸 하게 되면 직장 다니는 사람처럼 제대로 된 휴일을 가지기 어렵다. 그는 말 그대로 일주일 내내 이십사 시간 가게에 매달려 살았다. 자기 맡은 일을 남한테 쉽게 전가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개점 초기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챙기며 하루하루 날이 선 채로 지냈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고역이었다.

  그렇지만 내 마음 한 구석엔 어차피 이 장사도 이윤을 내기 위한 비즈니스인 거고, 그게 금액만 적당하다면 파는 것도 적당한 수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한다. 나야, 남편만큼 가게에 매달리지 않았으니 그 마음이 다른 건 당연하리라. 남편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한 평생 이곳에 머무르며 장사가 어떻게 잘 되게 할까 궁리만 하다 삶을 마감하는 건 좀 가혹하다. 남편은 혹시 그런 생각인가? 이 마트를 애지중지하는 그의 마음 때문에 가게에 대한 대화는 아무리 내 의견을 피력해봤자 일방적으로 흐르게 된다. 대화 주제를 바꿔보려 했다.

  “오면서 보니까 옆 건물에 차례로 옷집 들어서더라. 전부 비싼 브랜드던데. 나 같은 사람은 구경하러 들어갈 엄두도 안 나는 그런 브랜드 있지.”

  “그래서 지금 여기 팔라고 더 난리야. 주변에 고급 브랜드 들어서는데 어쭙잖은 마트가 그 사이에서 뭐하는 거냐고. 주위 상가에서 아예 일렬로 고급 브랜드 들어서게 해서 그런 종류의 거리로 만들려고 계획 중인가 봐. 우리 마트가 눈엣가시 같겠지.”

  “말도 안 돼. 우리가 이 부지 구입할 때만 해도 거의 허허벌판 같아서 제대로 된 상점이라곤 하나 없었는데 이제 와서 그러는 거야? 우리 들어온다고 할 땐 그렇게 굽실거리며 환영해놓곤.”

  “그때는 이런 상황을 예상 못한 거지. 사람 마음이 다 그래. 다 자기 좋을 대로 보는 거야. 그땐 그랬고 지금은 또 달라진 거지. 좋은 소리도 자꾸 들으면 지겹다고 가게 팔라는 회유를 반복해서 들으니 이젠 아주 짜증이 나.”

  “우리가 빚 내가며 산 건물인데 안 판다고 하면 저들이 어쩔 거야?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러다 잠잠해지겠지.”

  이제 슬슬, 장난기가 도는지 현무가 남편을 툭, 툭, 건드려 본다. 남편은 그런 현무에 반응해서 훌쩍, 위로 들어올려 한 바퀴 돌린다. 현무가 좋다고 웃어대자 그걸 두 번, 세 번, 반복한다. 살면서 돈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돈이 중요하기도 하다. 돈 없으면 삶이 누추해지고 돈 있으면 그 덕에 사람이 빛이 난다. 사람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태도가 달라지듯. 아무리 남편이 피붙이 같은 가게라고 해도 결국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닌가. 혹시라도 손님이 줄어들고 가게가 파리 날리기 시작하면 그땐 어쩔 건데. 그런 셈은 하지 못한 채 죽자고 가게에만 매달리기만 하는 건 어리석다. 남편이 괜히 가게 존재 자체에 눈이 멀어 그렇게 어리석게 행동하지 않기를 바란다. 가게는 가게일 뿐이다. 아무리 소중해도 진짜 피붙이는 될 수 없다.

  구매, 급매 같은 글자로 가득한 플래카드를 여기저기 세우고, 그것도 모자라 천장 간판 위에까지 그 글자들을 걸어둔 부동산 회사가 멀찍이 보인다. 그게 이전엔 몰랐다가 관심을 가지고 보니 은근히 주변에 자리한 부동산 회사가 한둘이 아니다. 꽤 많다. 언제부터 이 근처에 이렇게 많이 들어선 건지 모르겠다. 하기야 아직 비어있는 건물이 많은 곳이라 매매가 자주 이루어지고 장사가 되니 모여드는 거겠지. 보통 저런 부동산 회사는 건물 입주가 다 끝나갈 무렵이면 철수해서 거래가 많은 곳으로 이주한다. 여기도 상가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매매가 줄어들면 저 많던 부동산 회사들도 어딘가로 옮겨가겠지. 사람 사는 것도 그럴 거다. 아무리 한 자리 오래 머물고 싶어도 그게 상황이 변하면 그에 맞춰 옮겨가야 한다. 내 뜻이 그렇지 않더라도 필요에 맞춰 변화에 순응해야 할 때가 있다. 괜히 그 흐름에 거슬러 고집부리다 손해보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남편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아야 할 텐데. 현무를 데리고 장난을 치는 남편을 보며 그저 간절히 속으로 빈다. 많은 걸 바라지 않겠다고. 그저 고만고만하게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벌고, 남편이랑 애 건강하고, 우리 세 식구 하루하루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만 해달라고 기원했다. 그 정도면 충분한 듯했다. 뭘 더 바라겠어. 그보다 더 우선일 게 없다. 살면서 더 필요한 게 생기면 그럼 그땐 그 필요한 걸 갖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지금은 이 정도면 충분할 거다. 어릴 때 학교 수학시간에 충분조건과 필요조건을 배웠지. 충분조건 안에 필요조건이 자리했었다. 필요한 것들이 채워지면 충분하게 된다. 충분해졌는데 자꾸 바라면 그것도 죄가 될 거다. 죄 짓지 말고 살자. 그러다 벌 받지 않도록. 그래, 충분하다. 충분한 거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정말, 이 정도면, 충, 분, 하지 않나?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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