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철을 차근차근 읽고 있던 미령이 흠짓 놀랬다. 성현이 문에 기대 심
드렁히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령이 불쾌하게 소리쳤다.
"사생활은 보호합시다.."
"보고 있던 건 뭐야?
"보긴 누가 뭘 봤다고....."
그러면서 주섬주섬 챙겼다.
"뭔데?"
"실험쥐."
"실험쥐?"
"그래. 말 그대로 실험쥐!"
미령이 서랍에 서류철을 넣고 성현을 쫓듯 문을 닫았다.
성현의 차를 빌려타고 온 미령이 어느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삼정그룹 본사 주차장. 멀리 이정표가 보였다. 미령이 크게 미소짓고 누
군가가 나오길 기다렸다. 서류철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남 비서였
다. 얼마 후 엘리베이터에서 남비서가 내렸다. 리모콘으로 차 문을 열어
황급히 시동을 걸어 빠져나갔다. 쾅! 미령은 일부러 돌진해 남비서가 탄
차를 박았다.
"어머. 어떡해!"
미령이 발을 동동 구르고 깨진 헤드라이트를 봤다.
"죄송합니다.. 그만 못 봤네요."
남비서가 깍듯이 인사했다.
미령이 슬쩍 남비서를 올려다봤다.
//사진보다 인물이 낫군...//
"할 수 없죠..."
"명함 한 장 드릴게요."
"됐어요. 그쪽도 깨진 거 같은데 괜찮아요."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가보세요... 길바닥에서 흔히 있는 차사고인데 왈가불가 싸우는 건 딱
질색이거든요."
남비서가 미령을 자세히 봤다. 도시적인 외모에 세련한 옷차림.. 이 여자
라면 충분히 이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럼.. 이만.."
남비서가 다시 차에 오르면서 룸미러로 그녈 봤다.
미령은 본네트에 기대 그를 보고 있었다.
웬지 모를 이끌림에 차를 멈췄다. 차에서 내린 남비서는 미령을 보고 쾌
활하게 말했다.
"차 수리는 못해줘도 밥 한 끼 먹을 수 있는 기횐 줄 수 있습니까?"
"이것마저 거절하면 현명한 처사는 아니겠죠?"
도톰한 입술에 잔잔한 미소가 머금었다. 남비서가 그녀의 입술을 봤다.
만져보고 싶다는 욕구가 밀려왔지만 참았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그들은 서울 외각으로 빠졌다. 미술품이 전시되
어 있는 찻집이었다.
"차사고 때문에 놀라셨죠? 따뜻한 녹차가 마음을 안정시키는데는 최고에
요..."
미령이 찻잔을 밀었다.
"고맙습니다..."
"제가 탄 것도 아닌데요. 뭘."
남비서가 차향을 음미했고, 미령은 약속이 있는 듯 손목 시계를 들여봤
다.
"약속 있나요?"
"어쩌죠.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거 같은데..... 아쉽지만 다음에 만
나기로 해요....."
미령이 일어나려는데 남비서가 비웃었다.
"다음에 만날 약속을 만드시는 군요..."
미령이 긴장한 듯 섰다.
"이거 너무 구닥다리 수법 아닌가요?"
"........"
"은미령씨라고 했나요? 나한테 원하는 게 뭡니까!"
뜻밖의 질문에 미령이 굳어버렸다.
남비서가 눈을 치켜뜨고 재촉했다.
"원하는 거는......"
[그렇게 둘은 아주 근사한 사업 파트너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