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
옆집 닭은 여전히 목청이 좋았다. 아니, 그 집에 가는 닭들이 목청이 좋아지는 걸까? 도현이 부스스 눈을 떴다. 저를 등지고 있는 맨살의 작은 어깨를 보자마자 서둘러 그녀를 제게 이끌었다. 아랑이 눈도 뜨지 못한 채 다시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녀가 제 품에서 완벽히 자리를 잡고서야 그도 다시 눈을 감았다. 얼마 안가 목청 좋아진다 소문난 옆집에서 갈고 닦은 실력으로 닭이 울었다. 꼬끼오-! 서울의 아침을 매일매일 맞으며 단련된 귀가 자연히 닭 울음소리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두 사람이 아침을 맞이한 건, 해가 중천에 떠서였다.
월요일 아침. 하룻밤을 잘 묶고 나온 도현이 집 문을 다시 잘 잠그곤 계단을 내려갔다. 아랑이 계단 아래 지하방을 보고 있었다. 그곳에 살면서 있었던 많은 일들. 좋았던 기억, 아팠던 기억 모두 이제는 술잔을 기울이며 추억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가 그를 보았다.
“문단속 잘 했어?”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두 사람은 약속대로 서울로 가기 전 읍내의 시장에 들러 아랑의 엄마를 뵈었다. 아랑의 말이 거짓이 아닌 냥 시골 시장 통 유일하게 도너츠 가게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방해가 될 생각은 없어 두 사람은 그저 늘어진 줄의 끄트머리에서 제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아랑이 ‘엄마’하며 부르자 그녀의 엄마는 옛 주인집 무뚝뚝한 사춘기 소년이 제 딸의 남자로 나타났음에도 좋다며 도너츠 한 박스를 싸주었다. 도현은 오길 잘 했다 생각이 들었다. 아랑도, 그녀의 엄마도 얼굴이 한결 편해지는 것을 보았으니 그리 생각할 수밖에.
서울로 올라가는 길 아랑은 기분이 좋았다. 제 엄마도, 저도... 아픔을 이겨내고, 잘 이겨내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도현의 휴가가 끝이 났으니 그녀도 다시 하루 시간표대로, 흐름대로 그를 만나고, 시를 쓰고, 그를 만나고, 시를 쓸 것이다. 아랑은 제 인생이 너무도 완벽하다 느껴졌다. 그리고 도현도 그리 생각하길 바랐다. 불완전하다 걱정하던 소년이 비로소 그 걱정을 떨쳐 버렸길. 아니, 떨쳐 버렸음을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도현과 아랑은 자신들의 만남을 가장 먼저 알려야 할 이들이 누구인지 알았다. 모였다가는 호들갑을 떨 것을 알고 각자 한 사람씩 전담하기로 합을 맞춘 뒤 손뼉을 부딪쳤다. 그리하여 아랑이 다음 날 소연의 가게를 찾았다.
집주소를 알려준 것이 혁준인지, 소연인지 감을 잡지 못하고 두 사람 모두에게 연락을 끊었던 터라 소연은 꽤 지친 얼굴로 가게를 지키다 창 너머 그녀의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주시했다. 이내 아랑이 문을 열자, 딸랑- 종소리가 울렸다.
“손님 없네? 일부러 바쁜 시간 피해서 오긴 한 건데.”
아랑이 태연하게 그녀의 앞으로 앉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연의 고양이 루루가 보이지 않자 그녀가 물었다.
“루루는 어디 갔어?”
“뭐야.”
넋이 나가 툭 내뱉은 말도 잠시 소연이 인상을 팍 썼다. 아랑은 예상 한 듯 자연스럽게 자리를 피해 주방으로 가 허브 티 한 잔을 타 돌아왔다. 소연이 팔짱을 낀 채 가늘게 뜬 눈으로 그녀를 주시했다.
“잘 지냈어?”
아랑의 뻔뻔한 인사에 소연이 코웃음을 쳤다. 도현에게 집주소를 쥐어 보내고 벌써 며칠이 흘렀는데 연락 한 번이 없었다. 아랑의 얼굴을 보아하니 일은 잘 풀린 것 같은데, 그럼 그간 사랑을 속삭이느라 제게 연락 한 통 없었던 친구가 당연히 얄미울 수밖에 없었다.
“현도현 그 자식 진짜 웃기네. 내가 고심하고, 고심해서 알려줬는데. 너도, 그 자식도 문자 한통 없어? 나는 잘 안 된 줄 알고 침울한 사람들 들쑤시는 꼴 될까 연락도 못했다!”
“주소 알려준 거 너였어? 혁준이일 줄 알았는데.”
소연이 그 말에 뜨끔하며 시선을 피했다.
“나는 널 더 잘 알아서 그래. 밉다고, 잊는다고 했으면서도 그 자식 떠올릴 거 아니까. 그런 와중에 현도현이 나타나봐. 너 없으면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나타나봐. 그걸 바랐을 지도 모르잖아?”
“하여간...”
귀신같은 계집애. 아랑이 뒷말을 삼키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남편이랑은 애정전선 유지 중이고?”
“부부싸움 칼로 물 배기지, 뭐.”
언제 그랬냐는 듯 대수롭지 않은 일인 듯 말하는 소연에 아랑이 핏 웃었다. 소연이 그녀의 미소에 마음을 놓으며 넌지시 물었다.
“그럼 이제, 포미니 동창회 계속 가는 거냐?”
“응?”
소연은 네 명의 아웃사이더들이 하는 미니 동창회라, 이름 바 포미니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그녀의 이름에 유독 큰 반응을 보인 건 혁준이었다. 자신은 기존의 동창회도 잘 참석하는 사교성이 풍부한 인재인데 왜 아웃사이더들의 모임에 끼냐며 말이다. 소연이 주저 없이 그를 강제탈퇴 시키려 하자 그가 금세 꼬리를 내리며 모임명이 확정되었다. 비로소 완전한 평화가 찾아온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