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들고 있는 오른손에 미안하게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 민호는 머리를 긁어가며 오른손을 든 채로 기다리는데 문이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손목에 새겨진 검은 선에 아무런 변화의 징후가 없다. 민호와 은지가 여자를 데리고 들어선 곳은 버스가 멈춰서고 나서 내린 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십자가 첨탑을 따라가서 찾아낸 작은 교회다. 앞문은 잠겨있었지만 뒷문을 통해 누군가 문을 잠그지 않고 밖으로 나서는 걸 보고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작고 아담한 외양처럼 내부도 폭이 그다지 넓지 않다. 아무도 없는 캄캄한 이곳이야말로 최적의 장소라며 당당히 문을 여는 자세를 취하던 민호는 반응 없는 상황에 난감해진다.
“거 봐. 너도 잘 안 되지? 내가 다윗의 멜로디 안에서 꺼내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데. 연습해야 된다니까.”
민호는 얼굴 근육을 찌푸리더니 오른 손목 주위를 둘러본다.
“이게 되다가 안 되다가 그래, 에이.”
옆에 선 여자는 완연히 힘이 빠진 채로 겁이 난 얼굴을 하고 있다.
“여기로 왜 온 거예요?”
“그게…….”
끄그극.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은지가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민호가 문에서 열쇠를 잡아 빼고 있다. 문이 열리고 순식간에 세 사람이 앞에 서 있다. 가복은 팔짱을 끼며 입을 삐죽인다.
“첫 번째 영은 쉽게 데려오더니 이번에는 시간이 꽤 걸렸네.”
“그래도 두 영을 알아서 해결했으니 대견한 거지.”
나팔이 민호 곁으로 가 손을 들어 그의 목에 난 상처 위에 둔다. 민호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 나팔이 손을 내리자 목을 쓰다듬어보는데 이미 상처는 사라지고 없다.
“치료, 잘 하시네요.”
“이쪽은 그런 거 전문이거든.”
가복이 은지와 민호가 데려온 여자 앞으로 다가가서 훑어본다. 미갈은 앞으로 나서지 않고 나팔과 가복이 하는 행동만 지켜보고 있다. 그의 어깨 위로 솟은 창의 끝이 날카로워 어두운 공간임에도 선뜩하게 빛을 발한다.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의 뒤로 가복이 손을 내밀더니 손바닥 안에서 빛을 만들어내고 그 빛 안에서 하얀 실 같은 것이 꿈틀거리고 튀어나온다. 뱀이 앞에 있는 먹이를 향해 직선으로 빠르게 달려들듯 여자의 등에 연결된 선에 달라붙더니 용접을 하는 것처럼 녹아들어 순식간에 끊어놓는다. 여자는 하아아, 라는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탄식을 내뱉더니 무릎을 꿇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두 손으로 입 주위를 덮더니 몸을 앞뒤로 흔들며 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 아이들, 아이들을 어쩌나.”
은지와 민호는 그 뒤에서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지켜보고 있고 여자의 앞으로 이번엔 나팔이 다가와 머리 가까이 손을 대고 있다 물러난다.
“당신 남편은 저쪽에 있어요. 곧 만나게 될 겁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모두 여기로 건너왔군요.”
나팔은 은지와 민호를 향해 미소 짓는다.
“이 여자 남편은 대절버스 운전기사였는데 전날 마신 술이 덜 깬 상태로 축구부 아이들을 태워서 경기장으로 데려다주는 일을 맡았다가 사고를 냈어요. 여자는 남편이 걱정 돼서 같이 차에 올랐다가 이렇게 됐고. 사고가 날 때 남편이 제대로 돌리지 못하는 운전대를 어떻게든 바로 잡아주려 했나 보군요. 그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어요.”
은지와 민호가 안 됐다는 표정으로 여자를 쳐다보는 동안에도 여자는 연신 아이들을 어쩌나, 라며 안타까워한다.
“골치 좀 아프겠어요. 그 아이들 모두를 데려오려면.”
“네?”
“이 일이 힘들다는 거 잘 알고 나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부지런히 움직이는 게 좋을 겁니다. 하나의 영이라도 더 빨리 데려올 수 있도록 말이죠. 처음엔 자신도 모르게 여기로 끌려와서 어리둥절하던 영들이 자신들이 처한 위치와 상황을 파악하고 적응하게 되면 스스로 힘을 통제하게 되고 세상 속에서 마구 휘젓고 다니게 될 가능성이 커져요. 조금이라도 일찍 끝낼 수 있다면 훨씬 수월할 겁니다.”
나팔이 이야기를 끝내고 은지가 입을 열어 질문을 하려는 사이, 바로 미갈이 문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가복이 여자를 일으켜 세워 문으로 이끌자 은지와 민호를 돌아보던 여자가 고분하게 가복을 따라 나선다. 나팔이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문으로 들어서는데 민호가 황급히 뒤에 대고 외친다.
“저기 힘이 달리면 어쩌죠? 아직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영들을 감당하기 벅찰 때도 있어요.”
“언제든지 도움을 청하세요. 우리가 그 달리는 힘을 보태줄 테니까.”
갑자기 문으로 들어섰던 가복이 밖으로 나오더니 바닥으로 검은색을 띄는 둥근 구슬 같은 것들을 여러 개 던져놓는다.
“이거 내가 만들어본 건데 끌고 오기 힘든 영이 있거든 써 봐. 나름 도움이 되지 않을라나.”
“어떻게 쓰는 건데요?”
“거기 고리가 달려있지. 고리를 풀고 던져서 맞추라고. 그러면 영을 집어삼키고 나서 고리가 알아서 다시 채워져.”
민호가 말을 이으려는 것을 무시한 채 자기 할 말만 늘어놓고 가복은 되돌아선다. 그 뒤를 따라 나팔이 수고, 라며 인사를 건넨 후 안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한순간, 금세 눈앞에서 문이 사라진다. 남은 건 어안이 벙벙한 얼굴의 은지와 민호뿐이다.
“은지야.”
“응?”
민호는 바닥에 널려있는 검은 구슬들을 주워서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이 천사들, 너무 지들 멋대로 아냐?”
“그나마 나팔이 제일 나은 편이야.”
그들 뒤로 문이 열리고 누군가 안으로 들어선다.
“아니, 당신들 누구요?”
은지가 당황스럽게 민호를 보자 민호가 그 시선을 받는다. 은근슬쩍 표정을 바꾸며 자신들을 놀란 눈으로 보는 상대방에게 대답한다.
“네, 안녕하세요. 저희 교회 구경하려고 왔습니다. 문이 열려있기에 그만 들어와봤어요.”
“아, 교회 다니시려고?”
자신이 이 교회 집사라고 소개한 사람이 기독교에 대한 일장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하자 민호는 은지만 알아채도록 망했다는 표정을 지어보이고 은지는 별 수 있냐는 얼굴로 그 집사의 말에 경청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어두웠던 건물 안을 비추자 보이지 않았던 모습이 하나씩 드러난다. 여러 가지 기독교를 상징하는 장식, 서적들, 그리고 오르간도 보인다. 두 사람은 집사라는 자의 설명보다 교회 건물 안의 모습에 더욱 흥미를 가진 듯하다. 말을 듣는 사이사이로 이리 또 저리 눈을 흘기며 둘러본다. 알지 못했던 공간에 오면 언제나 그 새로움에 시선을 뺏긴다. 좋은 구경거리를 발견해서 기분이 나아지면 그건 덤이다. 귀보다 눈으로 교회 소개를 받아들이며 은지와 민호는 잠시 편안한 상태로 긴장을 푼다. 하루가 길었지만 마무리가 나쁘지 않으니 그럭저럭 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떠나올 때보다 부담이 덜할 거다. 내일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오늘만큼은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