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들은 한꺼번에 달려들어 혁을 해치울 생각이었다. 계획대로, 목표대로 그들은 아주 잘 실행하고 있었다.
“야아~~~~~!!! ”
쩌렁쩌렁 산을 울리도록 목소리는 컸고,
‘칫 백짓장도 맞들면 낫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거야. 혁은 이제 우리한테 잡혔어!’
위협적으로 목검을 휘두르며 그들은 승리를 예감했다. 허나, 그들이 모르고 있는 게 있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것을!
달려드는 무리들을 보고 혁은 주저앉아 옆으로 빠져나왔고, 힘차게 뛰어들었던 무리들은 자기들끼리 검을 휘두르는 꼴이 됐다. 빠져나온 혁은 그들의 옆구리를 베어나갔다.
“아아악!! ”
“칼 맞았다!! ”
“피다!”
“피!!”
칼 맞은 녀석들은 칼이 스친 허리를 붙여잡고 난리가 났다.
“나, 나, 나는 신부가 기다려서...”
지켜보던, 겁에 질린 신랑은 부리나케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고, 호들갑스럽게 난리치던 녀석들이 서서히 잠잠해졌다.
‘분명 칼 맞았는데, 왜 피가 안나지?’
‘어, 나 왜 멀쩡하지?’
‘뭐지 이 상황은?’
피 나는 놈은 하나도 없었다. 혁이 칼등으로 그들을 스쳤기 때문이다.
“칼 맛이 어때?”
혁은 그들이 온몸으로 느끼게 하고 싶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니들이 얼마나 비열한 짓을 벌였는지...’
그들이 이쯤에서 확실히 느끼길 바랐다.
“강이한테 사과한다면, 내가 참아줄게.”
“웃기는 소리하네.”
“사과는 우리가 받아야지! 너한테!!”
맞아 맞아...
무리들은 전혀 사과할 마음도, 반성의 기미도 없었다.
“좋아. 지금부터 내 손끝 하나, 머리털 하나라도 건드리는 놈한텐, 내가 사과해주마.”
혁은 칼을 집어던졌다.
‘뭐하는 거야?’
무리들은 서로를 쳐다봤다.
“이래도 너희는 나한테 손도 못댈 걸?”
혁의 비웃음에 열이 받은 무리들은, 이젠 해볼만하겠단 생각이 들어, 너도나도 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니들이 얼마나 형편없는 놈들인지, 확실히 느껴봐. 안봐줄 거야, 지금부턴!”
혁은 날아가듯 맨손으로 뛰어들었다. 목검을 휘두르는 무리들 속에서 혁은 그들을 하나 둘 쓰러뜨려나갔다.
강력한 쓰나미가 휩쓸고 간 듯, 빠른 시간, 빠른 속도로 그들을 주먹으로, 발차기로 다다다닥 해치워버렸다.
팔이 꺾인 녀석,
다리를 절뚝이는 녀석,
머리를 된통 맞은 녀석,
허리가 꺾인 녀석,
쌍코피를 흘리는 녀석, 한
쪽 눈이 부어오른 녀석 등등등
칼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무리들은 하나둘씩 나가 떨어졌다.
순식간에 혁한테 당한 녀석들은 온몸으로 느껴지는 통증에 고통스러우면서도 열 받고 화나고, 자기들 실력이 이정도인가, 쪽팔리고 절망하며 혁을 노려봤다.
“강이한테 무릎 꿇고 사과하면, 이쯤에서 봐준다니까.”
“무릎을 꿇으라니! 나이로 치면, 우리가 형인데!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건 아니지!!!”
“그래? 그럼 목에 칼 들어가 볼까?”
혁이 바닥에 떨어진 칼을 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야, 어디가!”
“같이 가!”
서로 눈치를 보던 무리들은, 한 놈 두 놈 뒷걸음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딜 도망가. 거기 안 서!:”
혁이 그들을 쫓아가는데, 도망갈 땐 어쩜 그리도 날래고 잽싼지!
“내 오늘, 끝짱을 봐주지. 도망쳐도 소용없어!!”
그들을 쫓는데, 순간, 하늘에서 우두두둑 한 두 방울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달리던 혁이 딱 멈춰섰다.
“어 비다! 강이가 싫어하는, 비야!”
혁은 그 길로 강이한테 달려갔다. 쭈그리고 앉았던 강이는 비를 피하려 일어서고 있었다.
“일단 막사로 들어가자.”
혁은 강이를 일으키며 부축하는데,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강이는 손으로 비를 막는데,
“안되겠다!”
순간, 혁이 강이를 번~~쩍 들어 안아 올렸다.
“으아악~~ 깜짝이야! 뭐하는 거야? 내려줘...”
“비 싫어하잖아. 다친 발로 언제, 비 다 맞겠다.”
강이를 번쩍 안은 혁은 성큼성큼 막사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떨어질 거 같은 강이는 한손으로 혁의 목을 감쌌고, 다른 한손으론 혁의 가슴덜미 옷을 꼭 붙잡았다.
‘허헉~~’
강이의 체취가 혁의 코끝으로 느껴지자,혁의 다리에 힘이 풀려, 걸음이 저절로 멈춰지기 시작했다.
“무겁지? 그러니까,”
“안무거워! 끙~”
이를 꽉 문 혁은 다시 한번 강이를 안떨어지게 안고 막사로 향하는데,
쿵쾅쿵쾅!
‘헉 이거 왜 이래!’
주책없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러다 강이가 듣는 거 아니야’
“숨이 차서 그래!”
묻지도 않았는데, 혁은 변명하듯 내뱉었다.
“힘들면 내려놔.”
“안힘들어.”
쿵쾅쿵쾅!
미친 심장! 생각 없는 심장!
상황파악도 못하는 구제불능 심장!
“너 얼굴이... 그러니까, 내려놔. 나도 불편해.”
혁은 더 이상 온몸이 쪼그라드는 듯 심장이 뛰어 강이를 안고 있을 수가 없었다. 살며시 내려놓는다는 게, 자기도 모르게 내동댕이치듯 내려놨다.
퍽!
“아앗~!!”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지는 강이는 비명을 질렀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미안, 살살 내려놓는다는 게 그만!”
“그러니까 힘도 없으면서 왜 번쩍 안아?”
“힘이 없긴, 누가 힘이 없다 그래! 니가 내려놓으라니까, 내려놨지.”
“내려놓으란다고 내려놔?!”
“그럼 나보고 어쩌라?! 안으란 거야? 말란 거야?”
“살살 내려놔야지 살살, 누가 내동댕이 치래?”
강이는 자기가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냥 다친 다리가 아파서 화가 났다고만 생각했다.
“다친 사람을 내동댕이나 치구..”
“내동댕이라니... 아냐. 절대!! 내가 왜 널 내동댕이...”
“힘도 없으면서 앞으론 함부로 안지마.”
“힘이 없다니. 나 힘 좋거든.”
“좋기는~~ 칫!!”
팩 돌아선 강이가 절뚝이며 막사로 향하자, 풀 죽은 혁은 얼른 달려가 부축했다.
“넘어져. 나 잡아.”
“이거 놔!”
“내가 잘못했어.”
“됐거든”
“많이 아팠지?”
“너 같음 안아프겠어??
“아프지, 엄청 아프지. 나 같아도 아퍼. 그래서 미안해. 화 풀어라 응?”
“됐거든!”
“비 다 맞겠다.”
혁은 다시 강이를 번쩍~~ 들어 안았다.
“내려놔. 또 던지려 그러지”
강이는 내려놓으라고 버둥댔지만
‘이번엔 안놓쳐!’
강이를 더더더 꼭 안은 혁의 발걸음은 빨라졌다.
“내려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혁의 가슴이 이렇게 넓고 든든했구나...’
강이도 혁의 품이 좋았다.
“이제부턴 특히 행동을 더 조심해야 한다.”
어머니 윤씨부인의 말이 떠올랐다.
“콜록 켁켁켁!”
퍼뜩 정신이 든 강이는 헛기침을 해댔다.
“고뿔 걸리는 거 아냐?”
비 맞아 강이가 감기라도 걸릴까봐, 혁의 발걸음은 더욱더 빨라졌다.
“넘어져 천천히 가. 또 냉동댕이 쳐지긴 싫어!”
“안그래, 절대.”
하지만, 어느새 강이가 쭈르륵 밑으로 내려오고 있었고, 강이는 쩔뚝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혁은 강이를 부축했다.
“거봐! 힘도 없으면서”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약자라 했던가. 혁은 부축하면서 강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주책없이 가슴은 계속 쿵쾅쿵쾅 거린 채!
* * * * *
강이네 집은 밤이 됐는데도 강이가 돌아오지 않자, 온 집안에 횃불이 켜진 채 긴장감이 돌았다. 광재는 정남을 시켜 혁의 집에 다녀오게 했다.
“혁이 도련님도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답니다.”
“어디 간다고 들은 건 없다더냐?”
“예, 나으리께서도 도련님을 찾고 계셨습니다.”
저녁이 지나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밤이 됐는데도 혁과 강이한테선 소식이 없자, 윤씨부인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혹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죠?”
“걱정 마시오. 무슨 일이 생겼으면, 벌써 기별이 왔을 것이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광재도 불안하기 시작했고 정남 또한 안절부절이었다. 정남은 강이를 찾으러 산에도 갔었다. 혹시나 산에서 내려오는 구덩이나 바위 아래로 떨어진 건 아닐지, 샅샅이 훑어보고 찾아봤지만,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도련님! 강이 도련님! 혁이 도련님!!”
소리쳐 불러봤지만, 화들짝 놀란 새들만 하늘로 날아오를 뿐 그 어디에도 인기척은 없었다.
빗줄기가 더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정남이 집 주변을 돌고 있는데, 강이가 탔던 말이 집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강이 없이 말만 돌아온 것을 보자, 집안이 발칵 뒤집혔고, 윤씨부인은 급기에 앓아누웠다.
“혁이랑 같이 있으니, 너무 큰 염려는 마시오. 부인.”
윤씨부인한테 하는 말이었지만, 광재는 자기 자신한테 하는 소리이기도 했다.
정남은 강이가 탔던 말발굽으로 강이가 있는 곳을 추측해보려 했지만, 비에 말발굽에 묻은 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 도련님! 어디에 계십니까? 대체!!’
정남의 속도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 * * * *
막사에 들어간 강이는 한쪽에 다친 다리를 쭉 펴고 앉았다. 다친 다리는 바지를 걷어 올리기 힘들 정도로 많이 부운데다 시커멓게 피멍이 들어있었다.
‘내가 대신 아파줄 수도 없고..!’
혁이 상처를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자, 강이가 피식 웃었다.
“잘 됐다. 니가 나 업고 내려가야겠다.”
“뭐?”
“이 발론 못걷잖아. 나 엄청 무거울 거야.”
“... ??”
“근데 힘이 없어서...에이, 안되겠다.”
“내가 힘이 왜 없어?.”
혁이 발끈하자, 강이는 피식 웃었다.
“아니, 안을 힘도 없는데, 업고 갈 힘이 있겠어?”
“말 타고 가면 되지!”
발끈하는 혁이가 재미있어서 강이가 하하하 웃는데, 그 순간, 혁의 머릿속에 타고 온 말이 생각났다.
“아 말!!”
“말?”
“올라오는 길이 좁고 험해서, 언덕에 매놓고 왔는데.”
“어떡해 이 비에.”
“잠깐 있어봐.”
혁은 쏜살같이 뛰어나갔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주변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처음 온 곳을 내려가자니, 올라올 것도 걱정이었다.
‘내가 길을 헤매면, 강이가 밤새 무서움에 떨텐데...’
내려가나 마나 잠시 고민하다, 혁은 포기하고 돌아섰다. 혁이 막사로 들어오자, 그새 강이는 앉은 채 잠이 들어버렸다.
“치이, 무서움에 떨긴... 세상모르고 잘도 자네..!”
혁이 기어가, 강이의 자는 얼굴을 조심스레 바라보는데, 웃으며 자고 있었다.
“좋은 꿈이라도 꾸는 거야? 그 꿈속에 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앉은 채 자던 강이가 옆으로 넘어지려 하자,
“어어어~~~”
혁이 얼른 달려가 잡았는데, 그대로 껴안는 격이 됐다. 갓난아이가 엄마 품에 폭 안긴 것처럼, 강이가 그렇게 혁한테 안겼다.
‘어쩜 이렇게 품에 쏙 들어오냐~!’
혁은 자연스럽게 손으로 등을 토닥토닥해주려다 멈칫했다.
‘이러면 안되는 거잖아! 너도, 강이도, 남자야 남자!!’
‘왜 안돼? 친구가 자는데 토닥토닥도 못해줘?’
‘넌 친구 마음이 아니잖아! 정신 차려’
‘친구끼리 이정돈 다 해.’
‘친구 보고 가슴 뛰는 놈이 어딨어? 질투하는 놈이 어딨는데?’
혁 안에서 두 가지 마음이 싸우고 있었다.
“나보고 어쩌라고!!”
자기도 모르게 버럭 소리 질렀고, 잠들었던 강이가 그소리에 움찔 놀라며 눈을 떴다.
“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