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회복되었다거나 나았다는, 그런 일반적인 표현으로 설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건 차라리 ‘복구’에 가까워 보였다. 너무나 강제적으로 본래의 상태로 회귀시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미증유의 힘이 그를 지금의 상태로 고정하고 있는 듯했다. 마치 핀에 박힌 나비 박제처럼.
너덜너덜해진 옷만이 그가 몇 분 전 심각한 수준의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공윤은 불현듯 깨달았다.
그는 피 한 톨, 살점 하나 훼손되거나 다칠 수 없을 것이다. 영원히 변하지 않은 채 젊고 아름다운 얼굴로 살아갈 것이다.
몇 백 년 전에 그랬듯이, 그녀가 늙어 노인이 되고 마침내 숨을 거둔 후에도 변함없이.
그녀를 흐르는 세월과 닥치는 죽음 속에 버려두고.
그는 어둠 속에서도 몹시 또렷하고 선명한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것은 도저히,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다.
‘괴물......’
본능처럼 그런 생각이 들었고, 공윤은 그 단어를 입 밖으로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해야만 했다.
“공윤 씨.”
키론이 속삭였다.
공윤은 키론이 어깨를 잡기 전까지, 자기가 떨고 있는 줄도 몰랐다. 그녀의 어깨에 얹힌 키론의 손이 따라서 덜덜 흔들렸다.
공윤은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그러면 안 된다고 느꼈지만, 키론이 그녀를 잡았을 때 자기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키론은 그것을 분명히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는 천천히 공윤을 잡았던 손을 놓았다.
그는 옅게 웃었다.
그가 항상 짓던 웃음이었다.
“공윤 씨. 괜찮아요.”
공윤은 입술을 떼려고 노력했다. 아니야, 그렇게 웃지 마.
“여기에 잠깐만 있어요. 금방 갔다 올 테니까.”
제발, 그런 식으로 웃지 마.
난 네가 그렇게 웃는 걸 바라지는......
공윤은 초인적인 의지를 발휘해 모든 생각을 그만뒀다. 그녀는 키론이 나가기 전에 덥석 그의 팔을 붙잡았다.
“다치지...... 마요, 알겠죠?”
키론의 눈이 놀란 듯 약간 커졌다.
“네.”
그는 공윤이 안심할 수 있을 만한 어떤 제스처를 취하려는 것 같았지만,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문을 열고 나갔다.
이제 공윤의 옆에는 칠흑 같은 어둠만이 남아있었다.
***
키론은 어둠이 컴컴하게 내려앉은 매장 안을 천천히 걸었다. 그는 누가 총을 쐈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단지 그 수단이 지극히 인간적인 문물인 총이 될 줄은 몰랐다. 소위 신화적인 생명체라는 것들이 말이다.
하지만 나쁘지 않은 시도였다는 게 제일 나빴다.
주술로 특수한 처리를 했는지 총알이 몸에 박히자 그는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그건 정말로, 경계해야할 점이 분명했다.
도대체 무슨 수를 썼길래 우티스(Outis, ‘아무도 아닌’ 신)의 힘까지 억누를 수 있는 걸까?
하마터면 공윤까지 위험해질 뻔했다. 그는 이런 몸이 된 후 처음으로 자기가 불사라는 것에 감사했다. 몸으로라도 막을 수 있으니까.
상당히 무식한 방법이긴 하지만, 그는 때때로 무식한 방법이 꽤 괜찮은 효과를 발휘하곤 한다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그 대가로, 이가 갈릴 정도로 아팠다.
미국 남부 전선에서 북부 진영 소속의 군인이 쐈던 평범한 총에 맞았을 때보다 아팠다.
살을 파고든 총알이 마치 소형 믹서기처럼 살점을 천천히 휘젓는 것 같았다. 총알에 무슨 수작을 부린 게 확실했다.
사디스트 같으니, 그 놈은 점점 변태적인 성향이 강해지고 있었다.
어쨌든 그 뱀 새끼가 막나가고 있는 건 분명했다. 머리가 아홉 개나 되면서, 그 많은 뇌는 왜 이런 식으로만 발전하는 걸까?
하긴 머리가 많다고 지능이 훌륭한 건 아니었다. 지성이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생명체들은 대개 머리가 하나인 방향으로 진화해왔으니까......
[rétablir.]
그는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상당히 치명적이었을 부위에 구멍이 난 옷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여기저기 터지고 구멍이 나는 바람에 도저히 가망이 없어 보였던 옷이 순식간에 말끔해졌다.
“공윤 씨가 처음 준 건데.”
그걸 망가뜨리다니.
스스로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게 너무 짜증스러웠다. 그는 쉽게 짜증을 내는 편이 아니었는데.
심지어 공윤은 이제 그를 두려워할지도 몰랐다. 그녀는 용감하고 재치 있는 사람이었지만, 누가 그런 광경을 보고 침착할 수 있을까?
저승에 가도 수십 번은 갔어야할 것 같은 상처를 입은 사람이 순식간에 나아버리는 걸 보고도 태연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신일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는 그야말로 시궁창에 처박힌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정말 오랜만에 하루가 즐겁게 끝날 수도 있었는데.
조금만 더 그런 기분을 느꼈더라면, 공윤이 말해줬던 것처럼 그도 말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녀를......
키론은 대뜸 손을 휘둘렀다.
쾅.
공기가 폭음을 터뜨리며 어둠을 폭력적으로 후려쳤다. 그가 갑자기 미쳐서 그런 건 아니었다.
고통스러운 비명이 메아리처럼 울렸다. 비늘 몇 점이 후두둑 떨어졌다.
키론은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라미아.”
라미아는 떨리는 혀로 코피를 핥으며 웃었다. 그녀는 한층 더 정신이 나가보였다.
라미아의 얼굴 근육은 때때로 경련을 일으켰고, 피부는 빛바랜 한지처럼 버석거렸다. 그녀에게 남아있던 몇 줌의 아름다움마저 사라진 모습이었다.
릴리에게 물렸던 한쪽 팔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는지 뻥 뚫린 이빨 자국이 남은 채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나마 안대는 제대로 쓰고 있는 게 다행이었다.
아라크네가 짠 천으로 만들어진 안대는, 신에게 도전했을 정도의 기량을 지닌 여자의 솜씨가 흘러들어갔기 때문인지 저주로부터 비롯된 라미아의 광기를 잠재우는데 효과가 있었다.
아라크네는 까다로운 여자였지만 난나가 부탁했을 때 상당히 쉽게 천을 건네줬다. 안대의 형태로까지 만들어준 것은 나름대로 호의를 보인 것일지도 몰랐다.
아라크네가 사라진 지금, 라미아가 안대를 잃어버리면 키론은 그녀를 죽여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그녀는 최후의 기력이 다할 때까지 미쳐 날뛰며 아이를 납치해 잡아먹고야 말 것이다.
신들이란!
키론은 냉소를 지었다.
한때 사랑스럽고 사랑스럽던 공주는 땅을 기는 비천한 모습이 되어 억겁을 살고 있었다. 이대로 그녀가 그의 손에 죽임당하면, 라미아는 영혼조차 안식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키론은 그러지 않으려고 애써봤지만 목소리가 냉정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의 발밑으로 하얗게 냉기가 퍼져나갔다.
“당신에게 경고했던 것 같은데요. 서리는 포기하라고.”
그는 기이할 정도로 선명한 은빛의 총알을 들어보였다.
“언제부터 이런 것에 관심을 가졌죠?”
라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뼈가 바싹 드러난 등을 떨면서 웃었다. 허파가 쪼그라든 듯한 웃음 사이로 그녀는 간헐적인 속삭임을 내뱉었다.
“내 애...... 내 애를 돌려줘.”
키론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거세하고 싶은 동정심이 솟구쳤다.
그는 가엾은 고대의 공주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내뱉었다.
“히드라.”
라미아의 웃음이 멎었다.
“그 괴수가 당신에게 약속했나요? 아이를 되찾아주겠다고?”
라미아는 침을 삼키며 멀쩡한 팔로 총을 더듬어 쥐었다. 예전의 그녀는 차라리 자신의 손톱과 이를 더 믿었는데.
키론이 손가락을 울리자 총이 날아갔다. 최대한 약하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라미아의 손목이 돌아가기 힘든 방향으로 꺾였다.
라미아가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키론은 그 비명이 실제로 가슴을 파고드는 듯해서 옷자락을 움켜잡았다.
빌어먹을 우티스, 날 이렇게 만들다니.
라미아는 고통으로 울었다. 그도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 그가 라미아에게 가하는 고통은 등가의 법칙으로 그에게 되돌아왔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였다.
자애롭고, 강력한 ‘키론’.
스스로의 동정과 자비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고문하는 자.
그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어 우주를 떠도는 불멸의 신ㅡ우티스를 저주했다.
당신은 ‘키론’을 이렇게 창조해선 안 됐어.
안압이 치솟아 라미아의 눈에서 핏줄이 터졌다. 그녀는 안대 아래로 피눈물을 흘리며 엎어졌다.
그도 무릎을 꿇었다. 핏발이 일 듯 붉어졌던 그의 눈가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원래대로 회복되었다.
그는 환상통을 느끼는 것처럼 자기 얼굴을 찢을 듯 거세게 긁으며 소용없는 질문을 던졌다.
난나를 그렇게 만들고 나를 이토록 주무른 그대는, 평안합니까?
그것은 감히 드러낼 수 없는 원망이었다. 릴리가 글레이프니르에 묶인 것처럼, 그가 받아들였기에.
그런 그가 릴리에게 잘난 척 뭐라고 지껄이다니, 사형수와 무기징역수가 서로 자기가 더 낫다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웃겼다. 가리듯 덮은 손 아래로 그의 얼굴이 버려진 아이처럼 일그러졌다.
잠시의 소요 뒤, 그는 스스로도 놀라울 만큼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삶을 찾아요. 내가 당신을 내버려두는 이유는 그것뿐이니까.”
그는 휘청거리며 일어섰다. 최전성기의 젊은 남성의 육체 그대로 ‘고정’되었기에, 그의 몸 상태는 언제나 완벽했다.
그러니 숨이 막히고 가슴이 아픈 것은 순전히 심적인 요인에 불과한 것이리라.
라미아는 쓰러진 채 끅끅대며 웃었다. 그녀의 볼과 턱에 흐른 피눈물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빨리 가보는 게 좋을걸. 네가 끼고 도는 그 계집을 지키고 싶으면!”
그는 라미아의 멱살을 잡을 뻔했다. 그는 폭력적인 충동을 느끼지 않으려고 온 자제력을 발휘해야만 했다.
그는 라미아의 피눈물이 가슴 속에 새겨지는 고통을 무시하며 물었다.
“무슨 뜻이죠?”
목소리에 실제적인 냉기가 스몄다. 그의 입김에 실린 차가운 기류에 라미아의 비늘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라미아의 하반신은 온도에 민감한 변온동물이었으므로, 그녀는 입술이 파랗게 질려가면서도 웃었다.
“어린 것아, 내가 구태여 네놈의 면전에 나타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니?”
설마......
그는 사납게 이를 악물었다. 그는 순식간에 총을 부숴버리고, 공간 너머로 사라졌다.
키론이 사라진 공간 뒤로 라미아가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가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