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도 그렇고 그 집안의 조카도 그렇고 처음엔 도움을 주고 취업도 시켜주었다. 언제가 오빠는 씁쓸하다고 했다. 취업시켜준 조카가 그 회사를 퇴사하면서 뭐 그런 회사에 취업시켰냐며 오빠를 원망했다고 했다. 그렇다고 오빠가 대단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건 절대 아니다.
단지 마당발이어서 사람들은 오빠의 연줄만 필요로 했지 오빠의 직업은 바퀴벌레보다 더 더럽게 여겼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빠에 그런 연줄을 너무 쉽게 간과해 무시해버리곤 했다. 오빠에게 뒤끝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오빠의 뒤끝은 잔인할 정도의 멸살이었다. 그의 자존심에 털끝만치라도 손상이 가면 그는 잔인하게 응징을 해버렸다. 오빠의 자존심에 상처를 낸 사람 중에 오빠와 아무 관련이 없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도 좌천 아니면 해고당했다는 소문은 소문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걸 주변 사람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것이 일례가 아닌 수많은 사례들이다.
그 키스했다던 사람도 그 조카도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냐며 아직도 오빠에게 물었다. 오빠는 그 사람들에게 몽둥이가 아니라 핵폭탄으로 멸살시켜 버렸다는 걸 은희는 잘 알고 있다. 그 핵폭탄은 별 게 아니었다. 오빠는 단지 그 새끼 바퀴벌레 같은 놈이야 한마디였다. 그 뒤론 하늘과 대지로 날아다니는 방사능 물질과 같은 소문이었다. 그들은 중요한 고비 때마다 패배의 쓴 맛을 봐야만 했다. 그 패배의 시초가 오빠라는 사실을 그들은 아직도 모른다고 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오빠를 꺼려했다. 오빠가 아주 더러운 놈이라고 했다. 그래서 오빠 주위엔 지금 이 오빠들과 해숙이 신랑이 그토록 목 매달려 있는 영식이 오빠뿐이다. 이들은 아주 더러운 놈들이라고 은희는 감히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러면 신랑도 아주 더러운 놈이다. 그런데 은희 눈에 신랑은 깨끗했다. 그렇게 깨끗한 신랑이 무슨 이유로 세상 사람들이 더러운 놈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오빠와 줄기차게 어울려 다니는지 은희도 이해가 되지 않아 잠시 오해를 했다. 오빠의 실체를 알고 난 이후로는 은희도 오빠에게 대해서는 일체 함구를 했고 이건 전 가족이 마찬가지였다. 오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부터는 신랑이 오빠를 도와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 동안의 오해가 깔끔히 사라졌다. 오해 중에는 오빠와 신랑이 플라토닉 사랑을 하고 자신은 단지 신랑이 오빠에게 가진 정신적 성적인 욕구에는 육체적 욕구의 대용품이 아닌가 의심도 있었다. 물론 오빠도 의심도 했다. 동생에게 육체적 성적인 욕구를 충족한다는 건 인륜을 저버리는 짓이라 그 대용품으로 신랑을 이용한 게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상상도 했다. 어쨌던 오빠는 유별난 사람임은 확실했기 때문에 본인이 설정하고 가슴 속에 주입해둔 어떤 설정에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은희는 가지고 있다. 특히 병을 얻고 난 후부터는 더 냉혈 동물로 변해 있었고 오히려 신랑도 은희도 예전처럼 오지랖 넓은 오빠보다 지금처럼 냉정한 계산적이고 사람들에게 오해 받을 짓 하지 않는 경제적은 오빠가 훨씬 좋았다.
서로 기대에 들뜬 희망을 주지 않고 오해도 받지 않으려는 이 패거리들과 달리 아직도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바쁘신 데 제가 방해나 하지 않았는지… 죄송합니다”
“허허! 제가 알아서 할 텐데 뭐 하려고 굳이 이런 자리를 만들었어요. 고사장이 또 닦달을 했죠. 허허허. 고사장 앞으로 이런 쓸데없는 자리 만들지 말게. 나도 곤란하잖아”
“아! 예! 형님! 죄송합니다. 그래도 얼굴은 한번 뵙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어쨌거나 이렇게 만났으니 통성명이나 합니다. 김성은입니다”
“예! 반갑습니다. 임정훈이라고 합니다”
임정훈은 엉거주춤 일어섰다 다시 앉으려 했던 자세를 가다듬고 허리를 굽혀 서서 벌써 손에 얹어 놓은 명함을 준다. 김성은은 손에 쥔 명함을 스치듯이 보고는 조금 민망한지 어색하게 말을 하고는 자리에 앉는다.
“제가 명함을 안 가지고 왔네요. 회사에 오시면 그때 드리죠. 허허허”
고동우가 임정훈에게 확실한 믿음을 주기 위해 고등학교 선배와 자리를 마련했다.
임정훈이 먼저 이 식당에 와서 기다렸고 그 뒤에 고동우가 들어왔고 그 뒤에 김성은이 들어왔다. 그때 임정훈은 실망을 했다.
건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자신도 손님을 만나려 갈 때는 항상 정장으로 갈아입고 오늘도 그렇게 해서 왔는데, 이 사람은 회사에서 입는 회사복도 아닌 청바지에 티 차림이었다. 키도 크고 듬직한 풍채를 가졌지만 파마를 한 긴 머리에서 살짝 불쾌하기도 했다. 거기다가 얼굴 표정 하나로 거들먹거리기까지 했다.
천대받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는 게 맞는 표현인 것 같았다.
목소리도 등치에 맞지 않게 약간은 날리는 듯한, 경망스런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약간은 시건방지다고 할 만큼 거만한 자세로 손을 죽 내밀더니 손에 힘을 잔뜩 줘 꽉 잡고 맞이했다.
손바닥이나 손목의 힘은 건설현장에서 무거운 짐을 들면서 단련한 자신의 손에 절반도 되지 않는 악력을 가졌다는 걸 쉽게 간파할 수 있었다.
그래도 지금 임정훈은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이 사람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에 허리를 바짝 수그리고 자세를 낮출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건설을 하신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쪽에 손을 댈 생각을 했어요? 약간 의아하네요”
“형님! 제가 벌써 말씀을 드렸는데 또 물으시네요. 허허. 우리 회사가 어려워서 이 형님이 저를 도와준다고 해잖습니까. 회사가 어렵다는 말은 제가 어렵다는 말이죠. 저희 회사에서는 손해를 봐도 상관없으니 재고 물량을 올해 안에 모조리 처리하랍니다. 형님께서 힘만 한번 써주시면 두둑이 보상을 하겠습니다. 허허”
“그러면 자네가 직접 하지 왜 이 분을 개입시켜?”
“전에 얘기 해잖습니까. 우리 회사와 형님 회사가 경쟁사여서 사장님이 형님 회사에는 못 판답니다. 아마 케케묵은 앙금이 있었겠죠. 높은 분들께서 하시는 일을 제가 어떻게 압니까? 제 생각에는 형님 회사에서 폭발 사고가 나서 당분간 생산을 못하고 거래처에 납품을 못하게 되면 거래처의 신뢰를 잃을 거고 그 사이 우리 같은 회사가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는 복안이 있었겠죠. 그리고 형님 회사는 그 제품으로 다른 제품을 생산하니 우리 제품이 없으면 생산에 상당한 차질이 생길 거고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웃돈을 더 주고 우리 제품을 구입할 거라는 계산을 미리 하고 있는 겁니다. 그게 곧 진행되면 우리는 한 밑천 잡을 기회를 놓쳐 버립니다. 그래서 제가 서둘러 달라는 거죠”
벌써 물 건너 간 횡재를 가지고 고동우는 당장이라도 그 돈을 다 벌 수 있는 것처럼 열변을 토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