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자연이지? 뭐 자꾸 파고 들려고 해? 거기에 뭐 별다른 게 있나? 지금 나한테 자연스럽게 속마음을 얘기하듯이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 드려. 속 시끄럽게 파고 들지 말고. 그건 그렇고 이런 사진을 언제부터 찍기 시작했어?”
‘헐~~ 이 영감! 아니! 송 영감! 남의 얘기라고 참 자연스럽게 얘기하시네. 제가 궁금한 건 그거란 말입니다. 자연을 어떻게 하면, 그런 식으로 남 말하듯이 자연스럽게 술술 표현할 수 있나? 그거란 말입니다. 정말 속 터져 죽겠네.’
시인이라는 사람이 동병상련도 못 느끼고, 자기 생각대로만 자연스레 조언이라 한답시고 하는 말에 속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등단한 작가만이 할 수 있는 권리란 생각에 공장장이 아주 거만한 사람으로까지 보고 있었다. 수리는 토라져 있었다. 분명히 나올 다음 말까지 넘겨짚어 말을 한다.
“여섯 살 때부터니까 24년 됐네요. 인화도 제가 직접 한지도 거의 비슷합니다.”
바드득 소리가 났다. 이빨이던 목이던 둘 중에 하나였다.
“뭐? 허~~ 여섯 살이라는 말을 듣고 유복한 집안 자식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다른 질문으로 유도하는 구나. 나도 말할 겨를도 좀 주지. 그래! 인화를 직접 하게 된 이유가 뭐지?”
“제 눈으로 본 풍경과 사진이 계속 다르게 나오다 보니 카메라 탓이라 여겼죠. 용돈과 교과서 살 돈 모아서 더 좋은 키메라를 샀지만 그것도 실물과 달리 마음에 들지 않아 또 다른 탓으로 넘겼습니다. 그러다가 잉크, 인화지까지 가게 됐습니다”
공장장의 표정은 경이롭다는 그거뿐인 줄 수리는 알았다. 당연히 대견하다는 말이 나올 줄 알고, 무슨 일이던 그 정도의 투자는 해야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는 답을, 선장에게 했던 실수를 번복하지 않기 위해, 영어처럼 암기해 대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럼! 공부는 어떻게 했나? 아니지. 글을 쓰고 싶은 놈이 책을 안 읽었단 말이네.”
역시 세상은 그랬다. 인생은 생각한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과 같은 말이 나왔다. 그러나 이 질문은 공장장의 크나큰 큰 실언이었다. 그건 공장장만의 탓은 아니었다. 이 나라 교육의 맹점인 성적 위주의 주입식 교육을 철저히 받고 따른 탓이라 수리는, 이웃나라와 비교하며, 탄식하며 현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흔히 쪽발이라 부른다. 수리는 무슨 이유로 그렇게 부르는지는 모르고 있다. 수리는 지금 하고 있는 업종에 발을 내디디기 전에 그들 나라에서 조센징, 그 뒤로 ‘빠가야로(바보), 말을 뒤통수에서 들었다. 그들이 조센징이라고 부를 땐 그 뒤의 의미를 생각하듯 우리도 쪽발이라 부르면 그 뒤에 따를 말을 생각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 당시 수리는 딱딱거리는 나막신 소리 때문에 밤잠을 설칠 때가 많았고, 공원에서는 원숭이 때문에 군것질거리를 들고 다니질 못했다. 그 놈들은 틈만 나면 그들과 동거동락 하는 인간들이 우리나라를 침략했듯이 군것질거리를 단숨에 낚아채가 버렸다. 그러나 그 놈들은 그걸 뺏기 위해 극악무도한 살생은 하지 않았다. 힘없는 암놈에게 이빨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들은 원숭이보다 못한 건 확실했다. 그랬으니 그들을 자세히 보면 왠지 모를 기형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의 성적 욕구를 해갈하지 못해 혹시? 수리는 원숭이와 지나치는 사람들을 비교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원숭이보다 못한 그들이 우리와 다른 점은 독서였다. 그들은 그 비좁은 전철에서, 지하철에서 잠시의 시간만 나면 독서를 했다. 소설책이든 만화던 항상 책을 눈 가까이에 바짝 붙여 있었다. 힐끔 보면 대부분이, 모조리, 낯뜨거운 그림들이었다. 다목적 기모노가 활용되고 있는 장면들이었다. 기모노의 폭이 좁은 이유와 허리 춤에 찬 물건이 있는 이유를 알게 해주는 장면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머리에는 늘 그런 상상으로 족쇄가 채워져 있지 않나? 수리는 추측만 하고 있었다. 그래도 어쨌거나, 그것 또한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 독서였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 한번도 받지 못한 노벨상을 그들은 27명이나 배출하지 않았는가? 잡념이 너무 많았다.
“아니죠! 책은 많이 읽었죠. 국어, 도덕, 국사, 산수, 사회, 영어와 그 외 과목들 책 많잖아요.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 업무용 책까지 전부 합하면 수 만권은 더 읽었죠. 종이에 적어 외우기까지 하면서요. 그 정도면 책 많이 읽었는데 얼마나 더 많이 읽어야 합니까? 교과서 그거도 살 필요 없었어요. 우리 형님도 그렇고 동네 형님들 보던 책이 새 책만큼 깨끗했거든요. 헌 책의 장점은 형님들이 아무리 공부를 안 해도 시험 나올 요점들은 줄을 죽죽 그어 놨으니 공부하기도 편했죠”
한숨과 고개 돌아가는 소리 외에는 공장장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럼! 카메라도 많겠네?”
“아뇨! 몇 개 안됩니다. 그 이유도 간단합니다. 저는 사진작가도 수집가도 제 꿈에 해당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렀습니다. 카메라 한대를 사더라도 야무진 걸 샀죠. 잉크도 인화지도. 전부 명품만 썼습니다. 그래야 그때 느낌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글을 쓰기 위해 사진만 찍고 책은 읽지 않았다. 그런데 사진만 명작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신기한 듯 눈을 마주쳤다.
“아 참! 책 많이 읽었다니까요. 그런데 저 사진이 그렇게 좋아 보입니까? 저는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을 단 한번도 본적이 없어 비교를 안 해 봐서 모르겠습니다. 사진사가 찍은 사진은 증명 사진밖에 없어서. 제가 찍은 사진 중에 마음에 든다고 느낄 때는 찍을 때 마음과 볼 때 마음이 같을 때만 만족해서 저게 명작인지, 글쎄요. 제가 드린 저 사진도 최근에 찍은 사진 중에 제 마음을 제일 잘 표현한 것 같아서 드린 겁니다. 하긴 결혼 사진을 찍어 달라는 사람을 추려 낼 정도는 저도 사진에는 좀 일가견이 있는 모양입니다”
또 고개만 흔들다가 뜬금없는 말을 하며 비서에게 전화를 했다.
“안주임 굶어 죽일 일 절대 없어 천만다행이다. 안주임 올라 오라고 하게.”
갑자기 수리 몸 동작이 잽싸게 빨라지면서 허둥댔다. 공장장은 저 놈이 왜 저러나? 밖에 없었다.
“안주임에게 이 사진 얘기 절대 하지 마십시오. 바로 압수해 갑니다.”
그리고는 공장장 책상 밑으로 가서 숨기고 돌아와 앉았다. 또 신음소리밖에 없었다.
“참! 결혼 식이 언제라 했지?”
“예! 12월 25일 10시입니다.”
그때 순희가 벌써 새색시나 된 것처럼 노크 소리 뒤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와서 청첩장부터 공장장에게 공손하게 주고 있었다. 순희가 공장장 호출로 나가자마자 부서에서는 기함소리밖에 없었다.
“야! 대단하다. 대단해. 12월 25일까지는 좋다. 10시는 또 뭐냐? 크리스마스 이브에 한 잔하고 술도 덜 깬 상태로 어떡해!”
“저는 24, 25일 일박 이일 여행 가기로 선약돼 있는데”
그 뒤로도 전부 같은 말이었다.
“이거 봐! 안순희. 계좌번호도 있네.”
“어! 안주임! 이게 뭐야? 청첩장에 계좌번호는??? 대단하다. 대단해!”
수리가 깜짝 놀라며 공장장이 보고 있는 청첩장을 소매치기보다 더 빠르게 낚아채 보면서 기겁을 하고 있었다.
“자기 이거! 우리 집안에도.. 내 친구들…..”
“당연하지. 어떻게 청첩장을 따로 인쇄해”
순희 부서에서도 난리가 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때 쓰려고 30만원 비자금 만들어 놨는데…”
“혹시 경조사 때 안주임에게 30만원 안 받은 사람 손들어보세요.”
노래를 인용해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하소연을 했다.
“그렇다고 가족 여행을 취소할 수도 없고”
공장장이 말했다.
“안주임! 나는 이날 이 계좌로 이체 할 게. 이날 부모님 모시고 온천 가기로 해서..”
굉장히 섭섭한 표정으로 울먹였다.
“공장장님! 그래도 공장장님 축하는 꼭 받고 싶었는데…. 이 사람 회사가 성장하게 발판을 만들어주셔서 제가 꼭 보답을 하고 싶었는데 정말 아쉽네요. 신혼여행 갔다 와서 제가 언니와 같이 저녁 식사할 자리를 꼭 만들겠습니다.”
수리도 공장장도 지금까지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가장 공손한 음색이었다. 그때 수리가 어깨를 툭 치며 인상을 찡그려 말했다.
“사모님이지.”
“자기가 형님이라 하는데 당연히 언니지.”
공장장도 수리도 눈만 마주치고 있었다.
“참! 공장장님! 제가 부장님께 드려야 하는 데 깜빡 했습니다. 여기 사직서입니다.”
공장장 화색이 밝아졌다.
“3개월 정도면 인수인계가 마칠 것 같아 3월말까지 다니려고 했지만 여직원들 관례가 있어 2월말까지만 근무하려고 합니다”
공장장 인상이 다시 굳어졌다. 수리는 더 굳어져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두 손 두 발 다 들은 공장장이 맥없이 물었다.
“그래도 내가 그 동안 정이 있는 데 냉장고는 하나 해 주고 싶은데..”
수리가 사진 선물 때문에 냉장고를 선물하는 줄 알고 깜짝 놀라며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댔다. 눈도 깜빡 거리고 있었다.
“공장장님! 마음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시댁에 방이 많아서 시댁에서 신혼살림 시작할 겁니다. 저희들은 이불만 있으면 돼요. 호호호. 그런데 꼭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약간의 긴장된 표정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회사 계속 일 할 수 있게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연구실이 바쁘면 분석은 제가 책임지고 대신 드리겠습니다.”
수리는 눈물을 흘릴뻔했다.
“그래! 그건 실수만 하지 않으면 아무 걱정할 필요 없잖아. 단가로 치고 들어오는 건 내가 있는 한 막아주마. 그런데 그것 밖에 없어?”
“예! 제가 실수하지 않게 철저히 관리하겠습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공장장은 이번에도 걱정하지 마라고 안심시켜 주고는 대단한 앙상블이라고 탄복하고 있었다. 신랑은 사진으로, 각시는 인정으로 족쇄가 채워졌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수리도 잠시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안순희의 역량이 어디까지 일까?
얼마 전에 어머니와 합의된 내용을 따옴표까지 붙여가며 또박또박 설명한 적이 있었다. 앞으로 사진은 본인이 관리한다. 부모가 아들의 꿈을 위해 뒷받침하는 건 당연하다. 그렇지만 방법이 틀렸다. 아들이 글 재주가 없는 걸 훤히 알면서도, 잘한다, 잘한다며 부추겨주는 건 어머니로써 무책임하다. 차라리 너는 사진 찍는 기술이 탁월하니 그 분야에서 밥벌이를 하라며 설득하는 것이 어머니로써 마땅한 역할이다. 그 결과로 당신은 마마보이나 다름없다며 노려 본 적이 있었다. 여동생과 형수는 아예 도둑년 취급도 해버렸다. 사진에 손을 댈 권리는 절대 없으니 앞으로 손도 못 대게 감시하라고 신신당부가 아닌 협박으로 어머니에게 합의를 끌어냈다.
되지도 않는 글을 쓸 수 있게 제주도 여행 갈 돈으로 카메라를 사준 부분에 대한 보답을 순희는 정말 하기 싫었다고 했다. 고부간 합의 내용은 이랬다.
결혼 후에 수리가 찍은 사진을 팔게 되면 30%는 어머니 몫이고 70%는 순희 몫. 결혼 전에 찍은 사진을 팔고 벌은 돈은 50대 50. 이런 계산이 나온 건 수리의 본업. 회사 운영이 어렵다는 걸 강하게 어필. 이때는 며느리도 자식이라는 말도 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