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의 상처를 보시면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그 좋은 가을 날씨에 검정색 스타킹을 사 신고 집으로 갔다. 불량학생으로 분류된 오빠 때문에 가슴앓이 하고 있는 부모님께 또 다른 걱정거리 제공하고 싶지 않아서 밖에서 당한 일들을 늘 집 앞에 떨쳐버리고 들어가곤 했다. 비통함에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지만 집 앞에서는 눈물을 닦아냈다. 표정을 밝게 하려고 얼굴근육을 푼 후 벨을 눌렀다. 웬일로 가출 중이던 오빠가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연습한 웃는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바로 그 날이 전쟁 터진 날이었다. 오빠는 문 앞에 서 있는 나를 보더니 울정도로 반갑냐고 역겨운 너스레를 떨었다. 만감이 교차해서 계속 굳은 채 서있었더니 아빠가 현관으로 나왔다. 아빠 얼굴을 보자 하소연하고 위로받고 싶어졌다.
아빠에게 기대려고 하는데 아빠가 급히 밀어내며 말했다.
“쉿! 나중에 얘기하고 울음 그쳐라.
윤식이가 모처럼 들어왔는데 또 나가고 싶어질라.”
아빠의 반응이 낯설게 느껴져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윤식이, 윤식이… 늘 오빠 위주의 집안 분위기였지만 이해하고 넘어갔었다. 하지만 그날 본 아빠의 소름끼치도록 차가운 반응은 겨우 꿰매어둔 마음의 상처 자국을 터뜨리는 촉매제였다. 왜 나에게만 늘 참으라 하느냐고 처음으로 소리쳤다. 아빠는 내 뺨을 때렸다. 온몸을 부르르 떨며 내가 동네북이냐고 대들었다. 아빠의 손이 한번 더 올라가는 순간 눈을 질끈 감고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내 비명소리에 엄마는 고무장갑을 낀 채 현관으로 와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숨을 들이쉬었으나 아빠는 숨을 몰아 내쉬면서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는 듯 거친 발소리를 내며 들어가 버렸다. 아빠의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멀어질수록 내 심장의 쿵쾅거림은 가까워졌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날 밤 끝내 잠을 못 이루고 있는데 방문 여는 소리가 났다. 혹시 아빠일까 두려워서 자는 척 했다. 설사 사과하러 오셨다 손 치더라도 웃으며 대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새벽의 정적 때문에 숨소리마저 크게 들려서 불편한 마음이 들통날까봐 숨죽이고 있었다. 침대 옆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이 없어서 실눈을 떠봤더니 윤식 오빠가 조심조심 방을 뒤지고 있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손으로 이불을 꽉 움켜진 채 지켜보았다. 오빠는 그의 가방에 내 지갑에서 꺼낸 돈과 돼지저금통을 넣었다. 그 불순한 행동은 결코 충동적인 것이 아니라 집에 잠시 들어온 목적 중의 하나였음이 확실했다. 어둠 속에서도 여실히 보여준 그의 익숙한 손놀림이 그것을 증명했다. 더 훔쳐갈 것을 찾느라 방을 두리번거리다 내 쪽을 쳐다봤을 때, 창밖에서 새어 들어온 희미한 빛에도 반짝이는 그의 천장부(賤丈夫)같은 눈동자를 목격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소름이 끼쳐 몸서리치며 일어났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것이냐고 소리쳤다.
“닥쳐!”
오빠는 작지만 위협적인 어조로 한마디 내뱉으며 눈을 부라렸다. 방을 빠져나가려는 그를 막아서며 오빠 때문에 당하는 수모가 한두 가지가 아니니 정신 차리라고 고함쳤다. 그러자 오빠가 내 입을 틀어막으며 억지로 화를 누르고 있다는 어조로 독설을 뱉었다.
“칼에 찔린 느낌이 어떤지 경험해볼래? 관(棺)짤까?”
입을 막은 오빠 손을 깨물어서 떼어내며 고레고레 악을 썼다.
“죽여? 죽여 봐.
오빠 때문에 받은 상처 곪을 대로 곪아서 진물이 흘러!
이미 내 맘은 죽은 지 오래야.”
오빠가 억지로 나를 밀쳐내며 나가려했고 내 몸부림은 비통하고 처절했다.
“여동생만 아니었으면 넌 뒈졌어! 착한 척 좀 하지 마!”
오빠의 힘에 밀쳐져 바닥에 팽개쳐진 나는 그의 다리를 잡은 채 거실까지 질질 끌려 나가며 울부짖듯 말 했다.
“착한 척? 너무 일찍 철든 나? 웃기지 마!
나도 어리광 부리고 싶어!
천진난만해야 할 초등학생 때부터 오빠 말썽의
수습 대상으로 살았어.
정체성 찾느라 예민한 사춘기?
어떻게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오빠 때문에 고통 받느라 내 정체성 찾는 건 사치야!
갈가리 찢긴 내 심장 어떻게 꿰맬 거야?
오빠는 쓰레기야! 내게 암적인 존재!”
소란함에 잠에서 깬 부모님이 거실로 나왔다. 오빠는 부모님이 나오자, 오빠 다리를 온몸으로 움켜쥐고 있는 내 등을 주먹으로 내리쳐 떼어 내고 나가버렸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일어나 목청이 찢어져라 고함쳤다.
“차라리 죽어버려! 죽어버리라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빠가 내 뺨을 때렸다. 놀란 엄마가 아빠를 막아섰다. 그 너머로 아빠와 나의 거친 대화가 이어졌다.
“어쩜 아빠는! 자초지정을 들어보지도 않고……
그동안 오빠 때문에……”
“뭘 듣고말고 해! 저녁 때 일로 이 오밤중에 동네 떠들썩하게 해야겠어?
너 화풀이하는 통에 저 녀석 또 나가게 되고!
잘한다. 잘한다 했더니 이놈의 자식이!”
마음을 도려내는 통증이 무릎의 통증과 함께 쓰라렸다. 아빠는 내가 단지 저녁때 현관에서의 일 때문에 화풀이 한 정도로만 알고 계신 듯 했다. 오로지 오빠에게만 관심 있는 아빠는 허벅지길이의 파자마를 입고 있어서 훤히 보였을 내 깨진 무릎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 편까지 들어달란 욕심은 부리지 않았다. 그냥 한귀로 듣고 흘리더라도 왜 그랬는지 들어주는 시늉이라도 했었다면, 뻔히 보였을 무릎 상처에 시선이라도 줬었다면,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관심 갖는 척이라도 해 줬었다면 아빠를 내 인생에서 지워내진 않았을 텐데…….
그렇게 그날 두 번 죽고 말았다. 그리고 난 두 명을 죽이고 말았다.
연휴가 끝나고 내 일상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굴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내 뇌 속의 세포들은 일탈하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여드레 동안 거의 자지 못했을 정도로 정상의 궤도에서 벗어나려는 정신의 고통을 느꼈다. 이전까지는 고독, 공허함 따위의 별날 아픔정도는 내 삶의 일부인양 무던하게 지내왔었다. 아니, 엄습하는 고독함은 두려움이 아니라 묘한 쾌감을 주는 희열이라 생각하며 살던 인생이었다. 결코 나는 정적이나 침묵을 겁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설 연휴 후 부터의 일상에서는 달랐다. 그 정신의 고통을 견디기 어려웠다. 이 뇌의 분주함을 잠재우려면 일산화탄소를 일부러 찾아서라도 마시고 쓰러져서 다시 병원에 실려 가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고민했다. 그리고 정신과 진료를 권하던 P의사가 절실히 보고 싶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골몰했다. 불안과 초조는 내 옆에 붙어 다녔다. 때로는 나를 앞서서 뛰기도 했다. 이 정신적 고통이 내 목을 조여 오는 압박에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그 혼란스러움이 내 숨통을 쥐락펴락하는 것을 멈추기 위해서라도 의사 P가 권하던 정신과 진료를 받고 싶어졌다. 간절했다. 하지만 내 뇌 속의 것들은 치료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아우성이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넘겼다. 무릎을 세워 가슴 쪽으로 꽉 끌어안은 채 어둠속에 앉아 뇌 속의 벌레들을 잡아보려 안간힘을 썼다. 나를 짓눌러온 고철같이 무거운 기억들의 삐거덕거리는 소리와 뇌 속에 얽힌 것들의 분주한 소리가 어둠속의 정적 때문인지 지척에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 소리를 압도할 만큼 시끄럽고 기분 나쁜 소리가 세상에 또 있을까 싶었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다리가 저려올 때 쯤 그 소리로부터 자유해지고 싶었다. 고민하는 것으로 내 영혼을 갉아먹고 피폐해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시착하는 비행기에서 자신의 손으로 낙하산을 펴고 필사적으로 탈출하듯, 혼란스러움에서 벗어날 길은 정신병원을 내 발로 찾아가보는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낙하하는 순간 내 손으로 낙하산줄을 당겨야 살아남는 법! 정신병원이 온전한 낙하산일지 불량 낙하산일지는 모르지만 그 낙하산줄을 당겨보기로 했다. 내 생명이 타들어가는 것을 느낄 때 산소를 찾아 네일아트숍을 드나들었듯이 정신과를 가는 것 역시 그런 것일 뿐이라고, 뇌 속에서 삐거덕 소리를 내는 녹슨 것들의 아우성을 달래려 기름칠을 거듭해댔다. 수차례 기름칠로 뇌 속의 것들을 잠재우고서야 비로소 나도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중언부언하듯 수차례 같은 말로 뇌 속을 기름칠한 까닭에 매일 밤, 내일은 정신병원을 가겠노라 다짐하고 잤다. 하지만 선뜻 정신과를 못간 채 며칠을 보냈다. 침대에서만 하는 다짐일까 싶어서 학생들이 학원에 오기 전 늦은 오후 교무실에서 나에게 집중해 봤다. 석양 무렵이라 교무실 안쪽까지 지는 해가 깊숙이 들어와 있었듯이 정신과 진료를 받아 보겠다는 생각이 뇌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은 분명했다. 다행이라는 안도의 심호흡이 나오려던 찰라 다른 걱정이 엄습했다. 병원에 실려 갔을 때 마다 P에게 대놓고 면박을 주는 언행을 저질렀던 터라 병원에 가더라도 민망함에 그냥 나올 것이 분명한데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이었다. 좁은 책상의자가 방바닥인 것처럼 양쪽 다리를 올린 채 웅크리고 앉아 무릎을 세워 끌어안고 고민했다. 자세 때문에 등줄기가 뻐근할 즈음, 어두운 터널이 끝나고 탁 트인 밝은 대로가 펼쳐진 것 같은 생각이 났다.
‘다른 병원을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