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도리탕을 다 먹고 맥주 캔을 집어들었을 때, 그는 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아 제가 해도 되는데”
“에에이... 집주인은 그냥 편안히 계세욥. 제가 다 하겠습니다~”
저런 서글서글한 면도 있구나... 그렇게 안 생겨서는... 하고 생각하며 맥주 캔을 땄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다. 요즘은 수면제 처방을 받아서 약 먹고 잤었으니 맥주가 필요하지 않았던 터였으니까. 그래도 수면제와 술 중에 선택하라면 나는 기꺼이 술을 선택하겠다. 약기운은 정말 싫어. 그도 반대편 벽에 자리를 잡고 맥주를 땄다.
“그래서, 오늘 본인 스스로 완벽하지 못하단 거에 스트레스 받아서 우울해진거에요? 와아...”
“감탄할 일은 아니지 않나요?”
“아니... 본인이 얼마나 잘났다고 생각하면 그런 거에 스트레스 받아요?”
“그런 게 아니라...!”
“본인이 기대하는 본인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비현실적인 것 같은데?”
갑자기 쏘아대는 평론공격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잠시 멈추고 곰곰이 곱씹어 보니... 그의 말도 맞긴 했다. 내가 얼마나 잘났다고 그런 거에 스트레스 받은 걸까. 현실의 나는 한낱 인간에 불과한데... 뭘 더 바란 걸까... 뭘 더...
“어허이! 그렇다고 또 우울해지진 말고!”
그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그렇네, 나 우울에 또 빠지고 있었나봐. 근데 그는 어떻게 이렇게 나를...잘 아는 느낌이 들까. 단도직입적으로 묻기로 했다.
“그런데... 저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그의 장난기있던 눈빛이 잠시 멈췄다.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씨익 웃으며 그는 고개를 숙였다.
“그냥요... 제가 잘 알던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랑 닮으셔서요.”
“아.. 많이 닮았나보다. 뭐 도플갱어?”
“아마 그정도일 걸요? 그 친구는 우울증에 당뇨에 불면증에...온갖 종합병원에 정신병원이었죠.”
이건 뭔가 수상하다. 나도 우울증 중증에, 당뇨에, 저혈압에, 불면증에... 종합병원인데 나도?
“아.. 그런 친구가 있으셨구나...... 사실... 저도 우울증이에요. 우울증이 있다고 밖에선 말하고 다니진 않지만, 뭐 밝히라면 밝히죠 뭐. 지금은 엄청나게 나아진 거니까. 아무도 제가 우울증 있다고 하면 안 믿어요. 맨날 웃으면서 일하는 데 뭐.”
“그래도 아직 아프고 힘들잖아요.”
그의 말은 왜 이렇게 내 가슴을 후벼파는 걸까. 왜 이런 말들을 던져서 울컥하게 만드는 거지
“뭐 괜찮아요. 일해서 먹고 살려면 누구나 다 버티는 거니까.”
“남들이 버티는 정도랑 당신이 버티는 정도 차이가 심할 텐데요. 노력하고 있잖아요. 지금도.”
“그걸 그쪽이 어떻게 아세요? 그쪽도 우울증 걸려 봤어요?”
그의 눈에 잠깐 아픈 빛이 서려왔다. 진짜 우울증 걸려 본 적 있나?
슬픈 눈으로 변한 그는 잠시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이야기를 꺼냈다.
“아픈 사람을 사랑해 본 적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