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의 새 드라마는 첫 회부터 대박 시청률을 찍었다.
시인이 봐도 너무 재미있었다.
정신과 여의사와 남자 작가의 케미가 너무 재밌었다.
「괜찮아, 우정이야」라는 제목 때문에 둘의 사랑이 이루어질 것이다, 친구로 남을 것이다라는 온갖 추측이 이어졌다.
4회 밖에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결말을 벌써 이야기하며 아쉬워했다.
시인도 너무 궁금해서 전화해서 물어보았지만 동원은 웃으며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결말은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본방사수 하는 수 밖에..
노트북으로 동원의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폰이 징징 거리기 시작했다.
영현이와 은화가 대화를 시작했나보다 생각하며 시인도 수다 떨 준비를 하고 드라마를 일시정지했다.
영현 : 미쳤어! 작가님이랑 은유림 스캔들터졌다.
은화 : 헐, 정시인, 기사 봤나?
시인 : .. 뭐래? 무슨 소리?
시인은 영현이 링크 걸어준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유명한 연예인 열애 전문 보도 업체인 디스픽쳐가 파파라치 사진을 증거삼아 유림의 열애를 보도하고 있었다.
그 기사에는 해랑도에서 어두운 밤에 별장 거실에서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원과 유림의 모습이 떡하니 찍혀 있었다.
거실만 불이 켜져 있어서 둘의 모습이 아주 잘 보였다.
또 다른 사진에는 창 밖으로 보는 유림의 모습과 뒤로 지나다니는 동원의 모습이 보였다.
은화 : 시인아, 아닐 거야. 작가님 그럴 사람 아니다.
영현 : 그래, 일단 둘이 이야기 먼저 해. 이야기부터! 아니다.
시인은 애써 침착했다.
날짜를 보니 7월, 그 땐 시인과 동원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 전이다.
시인은 아무것도 아닐 거라고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사실이 어쨋든 그 사진 속의 두 사람이 너무 가까워 보여 너무 속이 상했다.
또 한편으로는 정말 둘이 좋아했던 사이면 어쩌지 하는 불안한 마음도 생겼다.
시인 : 둘 다 조용히 해. 작가님한테 전화해보고.
시인은 단톡방을 나왔다.
동원이 먼저 전화해주면 좋을텐데..
폰만 만지작거리며 망설이고 있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었다.
한참 신호음이 울리고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가는 안내 메시지가 나왔다.
시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다시 인터넷 기사를 읽어보려는데 그 사이 새로운 사진이 또 올라오고 있었다.
호텔로비에 동원이 은유림으로 보이는 여자를 업고 있는 사진이었다.
시인은 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가슴이 정말 쿵!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것 같았다.
**
“아니, 이런 기사 하나 못 막습니까? 여배우 스캔들 나면 뭐가 좋다구요? 디스픽쳐에 전화해보니 기사 낸다고 기획사랑 이야기 됐다던데 이게 무슨 말입니까?”
“아니아니, 이작가! 둘이 그런 사이 아니라며! 그니까 기사 한 번 뜨면 어때서.. 요즘 적당한 스캔들은 여배우들한테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이렇게 화를 낼 게 아니라..”
동원은 분노가 솟아올랐다.
곧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유림이 들이닥쳤다.
“아니, 사장님! 이러기예요? 네? 기사 막겠다고 했잖아요. 작가님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내가 말했..”
유림은 소리를 지르다말고 동원을 보았다.
“다 유림이 너를 위한 거다. 지금 실시간 검색 1위야. 어차피 이작가는 연예인도 아닌데 솔직히 유림이 너가 아니다 하면 이작가야 별로 고생도 안 할 텐데 너무 화 내지 말자. 게다가 드라마 내용이랑 맞물려서 유림이 니가 진짜 작가랑 사귀면 좋겠다고 응원하는 소리도 많다. 이작가. 그냥 이건 우리한테 맡겨주게.”
"은유림씨! 기사 정정 보도 요청해서 사! 실! 대로 말하십시오."
동원은 몸을 돌려 문을 박차고 나갔다.
시인에게 너무 미안했다.
없었던 일도 아니고 그 날 유림이 별장에 와서 자고 간 것도 사실이니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가 그 때 왜 은유림을 호텔에 데려다 줬을까?
동원은 계속 올라오는 욕지거리를 삼키며 걸음을 재촉했다.
“새끼, 유림이랑 스캔들 한 번 나겠다고 줄 서 있는 스타들이 얼마나 많은데 복에 겨워 똥을 싸지 아주. 유림아, 너는 왜 화를 내니? 니가 기사 나는 게 좋겠다고 했으면서..”
“사장님, 내가 화를 내야지, 좋아해요? 여배우 자존심이 있지.”
“그래그래. 잘 했다. 우리는 일단 노코멘트로.."
"알아보고 있다고 하면서 시간 좀 끌다가 아니라고 하죠?"
유림이 미소를 지었다.
사랑 한 번 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질투 한 번 없는 연애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의심은 의심을 낳는다.
한 번의 사건에 여자들은 예민해지고 남자들은 아닌 사실에 예민해지는 여자를 질려 한다.
누구나 아는 이 뻔한 공식에 사랑이 지친다.
그 때 자신을 위로해주는 편안한 여자에게, 그 때 자신을 이해해주는 따뜻한 남자에게 마음이 옮겨간다.
유림은 이제 시인과 동원의 사랑이 자연스럽게 지치도록 기다리기만 하면......
'훗, 운동이나 하러 가자.'
**
"이작가님? 네, 오데일리 기자입니다. 스캔들 때문에.."
유림의 기획사를 나와 시동을 걸려던 동원에게 나름 안면이 있는 기자가 때마침 전화가 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저는 사귀는 사람 있습니다. 당연히 은유림씨는 아닙니다."
"아.. 그렇습니까? 일단 사진은 작가님 맞죠? 그러면 여자친구분 신상 좀 알려주시면.."
동원은 아차 싶었다.
괜히 시인의 신상까지 인터넷에 오르내리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런 것 없이 아니라고만 써 주시면 되지 않습니까?"
"사진도 맞고.. 스캔들 터졌는데.. 다른 여자친구는 있다. 신상은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기사 써 드리기에는 저희 리스크가 너무 커서요."
"다시 전화 하겠습니다."
동원은 눈을 감았다.
이상한 스캔들 때문에 시인을 언론에 노출시킬 수는 없었다.
온갖 추악한 인간들이 다는 댓글에 시인이 먹잇감이 되어 난도질 당하는 꼴은 생각만 해도 치가 떨렸다.
일단 시인씨에게 전화를 하자..
부재중 전화가 있었다.
급하게 전화를 거니 시인의 폰은 꺼져 있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동원은 차 시동을 켜고 어디론가 출발했다.
**
"은화야, 시인이 폰 꺼졌지? 어떡하지? 우리 그 동안 입방정 떤 거 미안해서 어쩌지.."
"진짜 내 입을 꿰매고 싶다. 진짜.. 그 작가님 바람필 스타일은 아닌 것 같던데.."
"바람필 스타일이 어딨노? 진짜 개새끼, 우리 시인이 어쩌지?"
"영현아, 아닐 수도 있다. 아직 욕은 하지 말고.. 어? 선수 오빠 전화 온다."
"어떡하노? 선수 오빠 골프채 들고 서울 간다 하는 거 아니가?"
은화와 영현은 시인걱정, 폭발하는 선수 걱정, 자신들 입 걱정으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
"형, 내가 반쯤 죽여서 데려오면 형이 심폐소생술 할 수 있제?"
"심장만 뛰게 해서 데려 온나."
통화가 끝난 가수에게 아름이 물었다.
"무슨 전화? 자기 무슨 일 있어?"
"응급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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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아사랑해 : 안돼!우리유림이데려가지마! 유림아, 이오빠는어떡하라고..
호박씨 : 딱봐도성상납이네.
정치가 : 여러분! 속지맙시다. 지금 순시리재판이 코앞입니다!
괜찮아이혼이야 : 남주 개털됐네. 몰입안돼서드라마어떻게보지?
난괜찮아 : 둘이잘어울림. 축하해요^^
이지원 : 아니라던데요?
뜨거운밤 : 요새드라마키스씬별로없더니.. 작가가 자기 여자라고 키스씬 안 써주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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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는 인터넷 기사를 찾아보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시인에게 직접 전화를 걸 수도 없고 은화와 영현이는 전화를 안 받는 걸 보니 자기를 피하는 모양이다.
그 때 선수의 폰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선수의 표정이 급격하게 차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