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 저거 진짜!”
솔과 이난이 이를 갈며 쫓아가려하자 조용히 나타난 차일이 두 사람을 막았다. 양손에 들린 서늘한 총이 두 사람의 이마를 눌렀다.
“이쯤하지. 지하에 처박아버리기 전에.”
줄곧 내색은 안하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뒤처리를 하는 그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이난은 총을 쳐내고 분통을 터트리며 머리를 헝클였고, 솔은 슬쩍 한걸음 물러나며 투덜댔다.
“아, 그나저나 진짜 열 받네. 그 사람 대체 뭐예요? 탑의 사자를 싫어한다느니 뭐니, 지배자인가?”
확실히 저 정도의 능력이라면 지배자 무리에 들어갈 수는 있지 않을까. 도시 지배자의 자리가 사념으로 정해진다 해서 모두가 마냥 강한 것은 아니었다. 사념이 쓰이기 나름이듯, 보기 드문 사념을 사용하는 자가 지배자 무리에 들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노골적으로 탑의 사자를 싫어하는 건 지배자들이나 그들의 추종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저 자도 한때 탑의 사자였다.”
“예?”
차일의 나직한 대답에 솔의 눈이 동그래졌다.
“나이별로 모습을 바꿀 수 있다고 해서 유명한 자였지. 아마 밀정 임무를 맡았던가.”
“그런데 탑을 나가서 탑의 사자를 건드리고 다녀요?”
“예나 지금이나 미적지근한 탑의 심판을 경멸해서 나가는 탑의 사자들은 많다. 그들은 탑에서 닥치고 일하는 탑의 사자들을 가증스럽게 여겼지. 그런 부류가 아닐까.”
“...동이가...?”
믿을 수 없는 얼굴로 멍하니 서 있던 부인이 속삭임에 가까운 얼굴로 중얼댔다.
“여보?”
부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 모습을 보며 솔은 그들에게 정확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념으로 모습을 변형시킬 수 있는 사람이 있다더니, 진짜였네요. 동이란 애는 애가 아니었던 거예요.”
처음에 봤을 땐 단란한 세 가족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저 두 사람이 부부고 아이는 길에서 거둬 키운 모양이었다. 아니, 아이가 아니라 아이로 분장한 아저씨를. 그런 아저씨를 아이인 줄 알고 성심성의껏 보살핀 부인의 충격은 상당했다.
“털 많은 아저씨였지.”
그리고 덧붙인 솔의 말은 치명타였다. 정성껏 보살피던 아이가 실은 탑의 사자였고, 변신을 했고, 털이 많은........ 순간 그 아이를 어떻게 보살폈는지 떠올리고만 부인은 비명을 지르며 혼절했다.
“여보! 여보! 괜찮아? 눈 떠!”
“너무 직설적이잖아요! 어떡해요! 기절했잖아요!”
담담하게 말하면 될 줄 알아서 그랬던 건데, 머쓱해진 솔은 손가락으로 뺨을 긁적였다.
“근데 사실이잖아. 어........ 많은 건 아니야?”
제아가 패닉상태여서 오늘 이쯤하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 내내 제아는 아까 그 부인이 못내 신경 쓰였는데, 세 사람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그보다 그들은 아까 만난 변신한 사자에 대해 더 관심이 가는 듯했다.
“탑의 사자가 도시의 지배자가 되는 경우도 많죠?”
“적지는 않지. 반대의 경우도 있고.”
차일은 대답하며 이난을 흘금 보았다. 솔은 스치는 바람을 맞으며 눈을 가늘게 했다.
“아까 그 자도 지배자일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징그럽다. 다 큰 아저씨가 어린 애처럼 어리광부리고 보살핌 받다니. 몸을 여러 나이대로 변형시킬 수 있다는 건 그보다 더 어린 나이나 본 모습 이상의 나이도 가능하다는 뜻일 거다. 탑의 사자였을 적 밀정 노릇을 했다면 어디가든 아주 유용한 능력이 됐을 터.
“그깟 어리광이나 부리고 싶었으면 차라리 진짜 지배자가 됐겠지.”
이난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더 젊고 예쁜 여자들이 한자리 꿰어보려고 진짜 엄마보다 잘 해줄 테니까.”
솔은 얼굴을 찌푸렸다.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기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집착하는 건 어디에나 있는 지긋지긋한 이야기. 대체 그 지배자라는 게 뭐라고.
“그럼 그 사람은요?”
“미친놈이거나, 변태거나.”
“미친 변태 놈이라는 거네요.”
“그것 보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그들이 도시의 끄트머리에 다다랐을 즈음이었다. 갑자기 이난이 솔을 불렀다. 솔이 눈을 흘기자 이난은 턱짓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솔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아래를 살피는 동안 이난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하늘에 흩어져 있던 하얀 새들이 일제히 그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아.”
아래를 살피던 솔이 무언가를 깨달은 것과 동시에, 차일도 눈치를 채고 경고했다. 제아는 영문을 몰랐다.
“이봐, 작작하지.”
낮게 깔린 차일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머리 위를 빙글빙글 맴도는 새들을 향해 이난이 나직이 명령했다.
“저기서 제일 더러운 놈 좀 물어와.”
뒤늦게 제아가 발견 한건 거리를 이리저리 휘둘러보는 동이었다. 어린 아이의 모습이 아니라 한낱 노숙자 같은 몰골의 변신이 풀린 아저씨 동이였다. 이난은 그를 발견한 거였고, 새들은 그를 잡기 위해 쇄도했다.
거리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하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게 보였다. 제아가 마지막으로 본 건 수상한 새들의 움직임에 흠칫 놀란 동이의 걸음이 급해진 모습이었다. 다시 시작되는 추격에 제아는 머리가 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어떡하죠....?”
“어떡하긴 뭘.”
차일은 무표정한 채 팔짱을 꼈다.
“난 모르는 일이다.”
제아는 절망적인 얼굴로 차일을 돌아보다가 문득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솔 누나는 어디 갔어요...?”
그때 거리로 쏟아진 새들이 일시에 하늘로 올라왔다. 마땅한 것을 물어오지 않은 새들은 하늘로 흩어졌지만 그 중 몇 마리가 이난의 곁으로 다가갔다.
“뭐야?”
새들이 물어온 자들 중에 동이는 없었다. 대신 새의 부리에는 반듯한 몇 사람인가 물려있었는데 그들은 덜컥 하늘로 물려왔다는 사실에 겁먹었다니 보다 하나같이 상스러운 소리를 하고 있었다. 잠시 그들을 살펴보던 이난은 곧 흥미를 거두며 말했다.
“내가 찾는 놈보다 속이 더 시커먼 놈들이었군.”
가장 더러운 것을 물어오라는 말에 아마 거리 어디에선가 좋지 못한 행동을 하고 있던 그들을 발견한 새들이 냅다 물어온 모양이었다. 그들이 거친 소리를 내지르며 새를 해치기 전에 이난은 사념으로 그들을 묶었다.
“뭘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탑에 떨궈놔. 탑이 알아서 하겠지.”
새들이 떠나는 것을 보지도 않은 채 이난은 다시 아래를 살폈다. 낌새를 친 동이는 역시 그냥 달아난 모양이었다. 아니면 다가온 새를 쫓아내버렸던가.
하지만 혀를 차거나 아쉬워하진 않았다.
새들이 온통 거리로 쏟아졌을 때 그 틈 속에 솔이 숨었으니.
이난의 예상대로 동이는 흰 새들이 쏟아질 때 불길함을 느끼고 서둘러 몸을 피했다. 그 중 한 새가 그에게로 날아왔는데 어린 아이로 변신하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나쳐갔다. 그림자로 숨기 전, 동이는 자신이 있는 쪽으로 날아오는 솔을 발견했다. 동시에 그녀 역시 동이를 재빠르게 알아보았다.
필사적으로 달렸지만 전령 위에서 폴짝 뛰어 달린 솔이 더 빨랐다. 솔이 아이의 뒷덜미를 잡아채자마자 어쩔 수 없는 어린이가 팔다리를 휘두르며 빼액 소리쳤다.
“싫어요, 안돼요, 하지마세요!”
그 외침에 몇 사람인가 그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속이 시커먼 어린이는 처절하게 외쳤다.
“만지면 안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