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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사신
작가 : 휘닛
작품등록일 : 2016.10.6

사신이 인도하는 비극적 결말 그리고 반전

 
사신 - 두번째이야기(진상)
작성일 : 16-10-20 20:37     조회 : 498     추천 : 0     분량 : 7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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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하얀 빛이 유리창을 통하여 비춰왔다.

 

  나는 푸석해진 머리를 쓸어내리며 화장실로 들어섰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여과 없이 나를 보여주고 있었다.

 

  붉게 충혈 되어 퀭한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는 저 초췌한 몸뚱어리

 

  나는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내가 고작 5살 먹은 딸내미에게 뭘 더 바라서 이러는 것인가?

 

  사흘 남짓 남은 목숨을 나는 후회 없이 또 정의롭게 사용하고 있는 것인가?

 

  부모로서 이런 판단을 하는 나는 제정신인가?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가?

 

  이런 중대사를 나 혼자 짊어지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

 

  따위의 답 없는 문제를 나 스스로에게 또 내고 또 내고 되풀이만 했었다.

 

  아이 엄마라든지 다은이에게 이 일을 말해준다면 믿을 것 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설령 믿는다면 밤새 질질 짜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수가 없을 것이 뻔했다.

 

  오히려 금쪽같은 시간만 계속 흘려보낼 바에는 나라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시간을 잘 사용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느새 체념하고 딸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 서글프고 비참해졌다.

 

  내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하고 부끄러웠다.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죽기 마련이라는 것쯤은...

 

  그러나 이건 너무나도 일찍 이었다.

 

  제어 할 수 없는 상대의 피할 수 없는 절망적인 선고...

 

  나는 순간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참을 수 없는 울분을 삭이지 못하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차가운 물줄기에 달아올랐던 몸이 어느 정도 식혀져 이성을 되찾았을 때 나는 방을 나왔다.

 

  아직 자고 있는 다은이를 보고 있으니 금새 눈망울이 촉촉해져 금방이라도 왈칵하며 굵은 눈물방울을 터뜨릴 것 같았다.

 

  새어나오는 신음을 꿀꺽 삼킨 채 아이의 부드러운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뒤돌아 집을 나섰다.

 

  딱히 나설 곳을 정하고 나온 것은 아니었다.

 

  단지 과열된 머릿속을 잠시라도 맑게 지워내고자 근처 공원으로 나왔다.

 

  나무 벤치에 걸터앉아 자연스레 호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멍하니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가 제마다 지저귀며 날아가는 소리, 자동차의 뭉툭한 배기음,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 어느 것 하나도 내게 간섭하지 못했다.

 

  백색소음을 들으며 나만의 시간을 태우다 짤막해진 꽁초를 내려다보았다.

 

  “너도 너만의 목숨만 태우지 않는구나.”

 

  짧은 탄식을 내뱉으며 발뒤꿈치로 불씨를 비벼 끈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말의 이른 아침 이었지만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LED불빛을 따라 줄줄이 늘어진 오징어들은 연신 검은 매연을 쏘아대며 달리고 있었고 그 먹물 사이로 마스크 낀 꼴뚜기들은 하얀 그물을 건너고 있었다.

 

  아침도 못 먹고 나올 만큼 뭐가 그리 바쁜지 자기보다 훨씬 무게가 많이 나가 보이는 책가방을 매고서 한손에는 토스트가 담긴 종이컵을 들고 지나치는 학생도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시간이 아쉽고 바쁘게 움직여야 할 사람은 나인데 모두가 각박했다.

 

  내 앞에만 봐도 아직 채 자라나지 않은 어린 가지를 쳐내는 공원 관리인이 바쁘게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가 한발자국 움직일 때 마다 어린 가지는 맥없이 떨어졌다.

 

  그때 한 소녀가 떨어진 어린 가지를 불쑥 집어 들고는 환하게 웃었다.

 

  비단 환한 웃음만은 아니었지만 소녀에게서 광채가 나서 쳐다볼 수 없었다.

 

  아이의 해맑고도 생기발랄한 웃음은 속부터 썩어 문드러져 죽어가던 좀비의 부패를 막아낼 뿐 아니라 정처 없던 발걸음에 뚜렷한 목적지를 인도하였다.

 

  “지혜야 사진 찍어야지”

 

  저 멀리서 아이 엄마가 소녀를 불렀고 아이는 고개를 돌렸다.

 

  “헤에”

 

  소녀는 대답대신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뛰어갔다.

 

  소녀의 새하얀 구두가 지면에 닿을 때 마다 리듬에 맞춰 나풀거리는 순백의 공주님 드레스 그리고 뽀얀 얼굴을 반쯤 가렸다가 떨어지는 면사포...

 

  나는 먼발치에서 넋 놓고 바라만 보았다.

 

  소녀가 꼭 자신의 키만 한 해바라기 사이에 서자 그 옆을 또래의 남자아이가 섰다.

 

  그렇게 한참을 서서 꼬마 부부의 촬영이 끝날 때 까지 지켜보았다.

 

  사진 기사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모든 촬영은 끝이 났고 나는 지체 없이 달려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뭡니까?”

 

  안경을 치켜 올리며 눈썹을 치켜뜬 뱁새눈으로 그가 물었다.

 

  “이 사진 우리 아이도 찍어주세요.”

 

  “네? 아 고객님이시구나. 하하 그럼요 찍어드려야죠. 예약하시려면 언제가 빠를까나”

 

  금세 표정을 감추고는 영업용 미소를 띠며 그는 가슴팍에서 수첩을 꺼내어 스케줄을 확인했다.

 

  “아뇨. 오늘! 지금 찍어야합니다. 제가 시간이 없습니다. 오늘 찍으시죠.”

 

  나는 그의 말을 급히 잘랐다.

 

  “그죠. 고객님 바쁘신 건 잘 알지만 예약도 꽤나 밀려있고요. 오늘은 힘드실 것 같은데... 뭐 보시다시피 제가 좀 바빠서요. 하하”

 

  그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유감을 표명함과 동시에 자신의 옷깃을 양손으로 튕기며 거드름을 피웠다.

 

  여전히 그가 영업용 응대를 하고 있었지만 분명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가 거절한다고 해도 나는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내게 지금의 1분1초가 너무나도 소중하고 지금이 아닌 나중 그 언젠가 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큰 실망감에 울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여기서 화를 내어선 상황만 더욱 악화될 것이 뻔했다.

 

  “제게는 너무나도 급하고 소중한 시간입니다. 선생님께서 바쁘시다면 옷과 장비만이라도 좀 빌려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화를 누그러뜨리고 최대한 공손하게 또 간절하게 부탁했다.

 

  “죄송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겠네요... 의상도 그렇고... 모두 고가여서... 아무튼 예약을 안 하고는 어렵겠습니다. 그럼 이만”

 

  그는 나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거절의 의사를 내비치고는 나를 지나쳐갔다.

 

  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곱씹었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시간은 되돌릴 수도 없으며 살 수도 없었다.

 

  애꿎은 시간만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시간은 살 수 없지만 줄일 수는 있어. 그 무엇도 지금 내게 아깝지 않아. 우리 다은이에게 남아있는 시간만이 아까울 뿐이지. 그래 결심했어. 다 지르는 거야.’

 

  나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 소녀의 모습에 다은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의 앞에는 앞치마를 맨 아내가 서있었다.

 

  “뭐야? 당연히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꼭두새벽부터 어딜 갔다 오는 거야?”

 

  “아 요 앞에 공원을 좀 걸었어. 그보다 우리 밖으로 나가자! 오늘 보니깐 날씨도 좋아서 사진 찍기 아주 괜찮을 것 같아. 그래 피크닉 다은이랑 같이 피크닉 나가자!”

 

  “뭐? 지금? 아직 밥도 안됐어. 다은이도 꿈나라고... 아 왜이래.”

 

  나는 아내의 한가로운 투정을 잠자코 듣고 있지만은 안았다.

 

  아내의 볼멘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아내의 팔을 잡아끌고는 다은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 공주님 아직 코 자고 있어요? 어서어서 일어나요. 아침이 밝았답니다.”

 

  다은이가 침대에 쭈그려 누워 동글동글하게 몸을 말고 새근새근 자는 모습을 보니 절로 콧노래와 함께 리듬이 타졌다.

 

  평소 절대 내뱉지 않던 낯간지럽게 간드러진 애교석인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뒤에서 아내가 해괴망측한 것이라도 본 것 마냥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내게 일어난 작은 변화는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으음 싫어. 5분만 더 잘래.”

 

  다은이는 전혀 개의치 않으며 그저 잠결에 퉁명스레 말을 뱉고는 고개를 돌린 채 이불을 끌어당겨 그 속으로 숨어버렸다.

 

  나는 다은이의 다리를 거꾸로 잡고 들어 올렸다.

 

  놀래서 깰 법도 하지만 다은이는 작정을 한 듯 애써 눈을 꼭 감고 뜨지 않았다.

 

  “지금 백화점 갈건 데 다은이가 갖고 싶은 게 있었다지?”

 

  나는 담담하게 미끼를 내 던졌고 입질이 오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사줄 거야?”

 

  다은이는 얇게 실눈을 뜬 채 물었고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진짜지!”

 

  미끼를 문 피라미가 꼬리를 파닥이며 흔들어댔고 베테랑 낚시꾼은 원하는 결과를 취한 뒤 침대 위로 풀어주었다.

 

  “차 시동걸어놓고 있을 테니까 준비 되는대로 나와”

 

  “피크닉 간다며 김밥이라도 싸야하지 않아? 나 아직 씻지도 않았고 화장도 해야 하는데...”

 

  “백화점에서 간단하게 살 거니까 자기도 간단히 씻고만 나와 알았지?”

 

  나는 카메라만 챙겨서 그대로 나왔다.

 

  차에 시동을 걸어두고는 보닛에 기대어 카메라를 이리저리 만지며 세팅하는데 몰두했다.

 

  카메라 렌즈 너머로 새파랗게 산란된 하늘을 바라보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 한편 에서는 일종의 사명감이 솟아났지만 그 끝은 허무하고 바닷물을 마구 퍼마신 듯 한 갈증이 밀려왔다.

 

  공허한 하늘 속에 허상을 채워 넣었다가 다시 지우기에 여념이 없던 중 어서 빨리 사달라며 조르고 있는 진상이 다가왔다.

 

  “그럼 이제 출발해 볼까?”

 

 

 

 

 

  반쯤 열린 유리창 사이로 무리에서 홀로 떨어진 바람 한 줌이 흘러 들어왔다.

 

  한입에 낚아채듯 베어 물어 크게 숨을 들이마시니 헛바람 들어간 듯 웃음이 절로 났고 내뱉을 때는 휘파람이 절로 불어졌다.

 

  혼자서 히히덕거리다가 희번덕거리는 따가운 시선에 옆을 돌아보았다.

 

  아직 채 화장을 마치지 못하여 조수석 썬바이져를 내리고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있는 아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왜 같은 색으로 립스틱을 3개나 가지고 다니는지 물어보는 대신 어색하게 입 꼬리를 올려 웃었다.

 

  짧은 침묵이 지나고 마침내 아내가 입을 열었다.

 

  “자기 왜 그렇게 신난 거야?”

 

  “응?”

 

  “그거 알아? 지금 자기 되게 이상해보여”

 

  “글쎄...”

 

  “꼭두새벽부터 나갔다 오질 않나 화장도 못하게 할 만큼 갑자기 서두르게 하질 않나 지금도 혼자서 계속 웃고 있고... 감정기복이 너무 심하달 까나?...”

 

  아내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매섭게 쏘아댔다.

 

  나는 입도 벙긋 할 수 없었지만 고맙게도 다은이가 엄마의 말을 끊어주었다.

 

  “아빠 내 생각에 지금 엄마는 화장이 잘 안 먹어서 화가 난 것 같아”

 

  “다은이 너”

 

  아내는 도끼눈으로 백미러를 째려보았고 다은이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나는 립스틱에 대해 아내에게 묻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했다.

 

  “이 모든 걸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는 시간이 될 거야 그러니 화 풀어”

 

  “딱히 화난 건 아니었거든 단지 걱정한 거였지.”

 

  그렇게 말하는 아내의 표정은 여전히 뾰로통했다.

 

  아직 화가 풀린 게 아니라는 생각에 미쳤을 때 인상 쓰면 주름 생긴다는 말을 하지 않은 걸 또 한 번 다행으로 생각했다.

 

  아내는 대놓고 화난것을 티내는듯 자동차 여기저기를 트집잡았다.

 

  "햇빛에 피부가 다 타겠어. 여태 창문에 썬팅을 왜 안했어"

 

  짜증을 내면서도 손은 글로브 박스와 콘솔박스를 마구 휘젓고 있었다.

 

  "어머어머 여기 더러운 것 좀 봐. 마스크도 좀 빨고 하지 쯔쯔 이 누런거 좀 봐"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아내는 계속해서 말을 쏟아냈다.

 

  "도대체 남자들은 이런 칼은 왜 가지고 다니는거야?"

 

  아내는 맥가이버칼을 들어보며 한심한 듯이 쳐다보았다.

 

  "어머 썬글라스도 있네. 근데 이걸 낄 바에 그냥 썬팅을 했겠다. 아니면 다른 용도가 있으려나?"

 

  야리꾸리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아내의 마수는 마침내 뒷좌석에도 닿았다.

 

  “이 검은 모자 너무 촌스럽지 않아?”

 

  그렇게 차안 이곳저곳을 사사건건 잔소리 하던 아내는 백화점 주차장에 내려서야 화가 풀린 듯 했다.

 

  다은이는 쇼핑카트를 보자마자 그리로 달려갔다.

 

  “엄마 100원만 나 이거 타고 싶어”

 

  “어머 다은이 그거 타고 싶다고 하면 누가 밀어준다니?

 

  “흥 아빠가 밀어줄 거거든 그죠 아빠?”

 

  “딱히 카트를 끌만큼 살 거는 아닌데... 그냥 아빠가 안아주면 안 될까?

 

  “싫어. 창피하단 말이야”

 

  카트에 타나 내가 안으나 무슨 차이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다은이는 단호했다.

 

  여린 마음에 적잖은 충격을 받자 나는 오기가 생겼다.

 

  카트 손잡이를 잡는 대신 하은이의 겨드랑이를 들어 올려 한손에 안았다.

 

  “싫어! 저거 탈거야!”

 

  다은이는 내 품속에 안겨서도 발버둥을 치며 떼를 썼다.

 

  나는 그대로 발을 옮겨 무빙워크에 올라탔고 다은이의 귀에 속삭였다.

 

  “떼쓰면 안 사줄 거야”

 

  다은이는 곧바로 얌전해졌지만 뾰로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이런 다은이의 모습이 더욱 귀여웠다.

 

  어른스럽지 못한 대응에 다은이가 화났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고작 쇠 덩어리에게 다은이를 꽉 안을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고 싶지는 않았다.

 

  다가올 머지않은 언젠가는 반드시 후회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눈가가 금세 촉촉해졌다.

 

  손바닥으로 눈두덩을 훔치며 무빙워크에서 내려섰다.

 

  “자기야 식료품은 한 칸 더 내려가야 하는데?”

 

  “나는 다은이 장난감 사주고 내려갈게. 고르고 있어”

 

  아내와 헤어진 뒤 나는 다은이를 장난감 코너에서 내려놓았다.

 

  바닥에 발이 닿자마자 다은이는 쪼르르 달려갔다.

 

  나는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다은이는 이쪽으로 가서 구경하다가 어느 샌가 저쪽으로 가서 구경하는 둥 매대 전부를 헤집으며 다녔다.

 

  그러더니 마침내 진열장 한 곳에 멈춰 서서 심각한 표정으로 양쪽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같은 모델의 인형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단지 직업이나 사는 곳이 제각각 이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고를 수 없는지 매끈한 이마에 주름이 얇게 뜨였다.

 

  초롱초롱하던 미꾸리 한 마리의 눈매가 번뜩이더니 양손을 높게 치켜들었다.

 

  까치발을 들었음에도 닿을락말락한 높이여서 상자의 끝을 톡톡 쳐대며 입질만 해댈 뿐이었다.

 

  잠자코 보고만 있다가 살며시 뒤로 다가가 내가 고른 미끼 상자를 주둥이까지 내려다 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다은이가 한입에 낚아채갔다.

 

  상자가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다은이를 보자 헛웃음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다은이를 향해 손가락 하나를 펴자 고사리 같은 손으로 꼭 감싸 쥐고는 졸래졸래 따라왔다.

 

  옆구리에 인형 상자를 꼭 쥐고는 자기는 모든 채비를 마쳤다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이다.

 

  다음으로 간곳은 유아용 의류매장이었다.

 

  나는 빠르게 손가락을 놀리며 옷들을 하나하나 넘겼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뇌리에 각인된 그 옷을 찾을 수 없었다.

 

  똑같은 옷을 찾아낼 수는 없을 거라 예상했지만 어쩌면 비슷한 느낌이 드는 옷조차 찾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조급해졌다.

 

  나는 다은이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끌며 다음 매장으로 들어섰다.

 

  점원의 상냥한 인사를 무시하며 오로지 옷을 넘기는 것에만 몰두했다.

 

  ‘이것도 아냐 이것도 아니고... 없어. 없어. 없다고!’

 

  나는 광기에 사로잡혀 옷가지들을 마구잡이로 헤집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점원의 짜증 섞여 가식적인 인사를 뒤로한 채 또 다시 다은이의 손목을 이끌었다.

 

  ‘아냐 없어. 이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도대체 왜 없는 거야.’

 

  미간이 찌푸려지고 이마엔 힘줄이 솟아났다.

 

  “다은아 가자... 다은아?”

 

  홱 하고 휘두른 내 손은 허공을 내질렀다.

 

  다은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예민해진 감정만큼 둔감해진 신경이 피드백 되어 마음을 짓눌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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