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육아를 해 본 적이 없다.
아이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고, 아이도 없다.
가족 중에도 내게 연락하는 사람이 이젠 없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런 경험이 없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애 돌보기 힘들다니 어렵다니.
결국은 남의 푸념이라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게 이제 와서 조금은 후회된다.
그런데 솔직히 이렇게 될 줄 알았겠냐고.
애를 업고 걸어갈 상황이 올 줄 알았다면 이런 일 하고 있지 않을 거다.
“이 씨···좀 제대로 해 줬으면 이럴 일 없었다고!”
팡, 팡.
내 등을 연약한 두 팔이 마구 때린다.
솔직히 그다지 아프진 않다.
다만 기분이 좋지는 않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까.
냅다 버리고 갈 까.
마침 숲 사이에 높게 솟은 검은 탑이 보인다.
저기 안에다가 버리면 흔적도 못 찾을 텐데.
하지만 그러기에는 돈을 받았으므로 너무 양심이 없다.
그리고 아이한테 할 짓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런 조치도 없이 가만히 맞고 만 있으면 그건 그거 대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 말로 간단히 지적만 해주자.
“아가씨.”
“뭐.”
고개를 돌리지 말 걸 그랬다.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본다.
홍 가문이 가진 타오르는 것 같은 눈동자는 심히 부담스럽다.
괜히 이름이 홍이 아니다. 하지만 화 가문으로 짓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하는 게 맞다.
“솔직히 아가씨가 무리하게 들어가지 않았으면 다칠 일이 아니었지 않아요?”
“그러면 아저씨는 왜 있는 건데?”
“그래서 제가 들어가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다칠 수 있다고.”
“아저씨, 누가 명령을 내려야 되지?”
빠직.
아무튼 싸가지가 없다.
“···방금 건 명령이 아니라 주의하는 거지 않나요.”
애써 화를 참으며 부드럽게 존대로 말했다.
근데 그런 수가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다는 걸 깜빡했다.
“주의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게 아니지. 하지만 아저씨가 받은 건 명령이잖아.”
“그건···”
뭐라고 말하려 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애당초 생각하는 거 자체가 다르다.
그러니 애써 대답해 봤 자 본전도 못 찾는다.
그걸 이제야 스스로 깨달은 걸지도 모른다.
“내 실전 경험을 안전하게 돕는 게 아저씨가 받은 명령 아니야?”
“···”
“대답.”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 탓하려던 거야? 감히?”
어째서인지 방금까지 분노에 차서 휘두르던 팔은 사라지고 몸이 즐겁게 흔들리는 것 같다.
“이거 안 되겠네. 아버지에게 말씀드려 야지.”
“···네, 뭐 그러시죠.”
더 싸워 봐야 소용도 없다.
이쯤에서 끝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뭐야. 우리 아버지 별로 안 무서워?”
“그분은 대화가 통하니까요. 누구랑은 다르게···아아!”
머리 한 부분이 뜨겁다.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거다.
“놔주세요! 아가씨 말한 거 아니예요!”
잠시 머리에 평온이 찾아왔다.
“그럼 누군데?”
“···세릴다요.”
미안, 세릴다.
잠깐만 네 이름을 팔게.
세릴다는 내 등 뒤에 업혀서 칭얼대는 여자애의 하녀다.
“뭐, 세릴다가 답답하긴 하지.”
그제야 한 움쿰 잡혔던 머리카락은 완전한 자유를 찾았다.
그래도 찔리긴 하나 보네.
조금만족스럽다.
“아아!”
“뭘 히죽거려. 역시 나 말하는 거 맞지?”
“아니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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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오늘도 고생 많았네, 드븐.”
“아닙니다, 홍 문주님.”
홍 문주님은 여느 때와 같이 인자한 웃음과 함께 날 맞이해 주셨다.
“아니긴 뭘. 딸애가 오자마자 어리광부리는 걸 보면 어지간히 시달렸을 거 같은데.”
“사실 좀 시달리긴 했지만, 귀여운 애들 장난 수준이었습니다.”
사실 좀도 아니고, 귀엽지도 않지만.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고맙네.”
참 저런 사람 밑에서 저런 싸가지가 태어나다니.
인간은 신비롭다.
“그건 그렇고, 그래서 어떤 가.”
“미노 양의 실력 말입니까.”
“그러네. 전문가의 눈으로 봤을 때는 어떤가.”
홍 문주님, 그러니 홍미노의 아버지께서 처음으로 실력을 물어왔다.
그 싸가지가 직접 이런 질문했다면 대충 나쁘게 말해 줬겠지만, 아버님이니 진지하게 말해 줘야겠지.
더군다나 돈을 지급하는 것은 아버님이다.
그러니 사실상 아버님과 나의 계약, 즉 학부모가 선생에게 자문을 구하는 일이니 응당
제대로 해야 할 일.
“전반적인 기량은 상당히 좋습니다. 전체적으로 몸을 균형이 잡힌 상태로 사용한다는 것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실제로 전투에 들어가면 몸이 굳어 몸 전체를 사용하기보다는 부분적인 팔, 다리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미노의 경우에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
그건 분명 장점이다.
하지만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
“다만 전투에 들어갈 때 그다지 긴장감을 가지고 들어가지 않습니다. 오늘의 부상의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자신감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하는 것보다 무엇이든 휘두를 수 있는 게 낫다.
하지만 그 자신감이 과하면 문제가 된다.
오늘만 해도 내 지시대로 숲에서 한 마리씩 나오는 원숭이를 사냥했다면 별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한 마리를 완전히 잡아내지 못해서 그걸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원숭이 네 마리가 숨어 있던 함정이었던 걸 확인해도, 미노는 그냥 맞서 싸웠다.
자신이 질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분명 조금 늦게 도와 준 내 잘못도 물론 크긴 하지만
과한 자신감을 보이길래 뭔가 있는 줄 알았다.
괜히 끼어들었 다가 는 자기가 뭐 하려고 하는데 내가 방해했다고 성질 내는 게 뻔히 보이기도 했고.
“흐음. 그렇군.”
그 아버지는 딸의 부상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지 않았다.
그 부분은 다행이다.
“그래서 말인데, 당신에게 하나 부탁하고 싶은 게 있네.”
“···어떤 겁니까?”
왠지 불길한 느낌이 피어오른다.
“이번에 사냥대회에 딸아이와 동참해 줬으면 하는데-“
“괜찮습니다.”
갑자기 사냥대회?
뜬금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나를 고용했다고 생각하니 이해된다.
하지만 그 보다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 튀어나왔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말을 끊어 버렸다.
평소에 안 하던 짓인데, 미노 일이다 보니 이렇게 되네.
“···임금을 두 배로 줘도 안 되겠나?”
잠깐 흔들렸다.
내가 사냥을 가르친 선생인데 그래도 양심상 가줘야 하는 거 아닌가?
“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
흔들리지 말자!
막을 수 없는 핑계를 대자!
이런 제안을 왜 거절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돈이 아무리 좋아도 그건 아니다.
나랑 띠동갑 정도 되는 애들에게 띠동갑 여자애에게 부려지는 추한 성인 남자의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다.
그래도 나름 사회적 지위가 있는데.
명예직이지만.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만. 아무래도 딸 아이가 나가는 사냥대회는 다음 주 월요일부터 시작되네. 만에 하나라도 마음이 바뀐다면 언제든 환영하겠네.”
만에 하나라도 그럴 일은 없지만.
“네, 알겠습니다. 제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은 예쁘게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러니 다음번 훈련은 다음 주 수요일부터 와주면 되겠네. 아무래도 발목 부상 때문에 쉬기만 해도 아슬아슬 할 테니까.”
“아···네.”
의도치 않게 주급이 많이 날아가게 되었다.
보통 주에 삼일 정도 봐주는데, 이번 주는 이번이 한 번이었으니까.
“물론 사냥대회를 같이 나가준다면 이번 주에 와서 딸 아이를 돌봐 주기만 해도 훈련한 거랑 다를 게 없겠지만···.”
마치 그런 내 마음을 읽은 것 같은 발언이었다.
“···아쉽습니다. 그럴 수가 없어서.”
사실 그건 아쉽지 않다.
발목 다쳐서 누워 있어도 베개 집어던지고 성질 엄청 부릴 애다.
그냥 훈련 안 하고 말지.
물론 그래도 돈은 아쉽다.
“알겠네. 그래도 만에 하나라도 마음이 바뀌면-”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중간에 말허리를 잘랐지만 미노의 아버지는 불편한 내색없이 웃었다.
사소한 점에서 사람의 성품이 드러난다는데 그런 점에서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렇다면 미노는 왜 저러지.
난제이다.
---
끼익. 쿵.
대문이 열리고는, 이내 닫혔다.
드븐이 떠났지만, 소파에 더 앉아 있기로 했다.
분명 부드러운 소파위에 앉았는데, 속은 가시방석에 앉은 마냥 불편했다.
예상했던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씁쓸한 감이 없지는 않다.
역시 돈을 더 불렀어야 하나?
아니면 과거의 영웅에게 돈으로 흔들어 보려는 생각 자체가 실수인가.
아니, 그것도 저것도 아니고.
이 이상을 바라는 것 자체가 욕심인가.
욕심.
아무래도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드븐을 초빙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는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딸 아이가 좋아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니 같이 대회를 나가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된다면 실망할 것을 안다.
그래서 그 소식을 전해야 하는 입장으로서는 드븐이 원망스러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또 얼마나 실망할 건가.
“후...”
그러게 적당히 어리광 부리지.
미노의 어리광 만큼은 잘 받아줬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내의 빈자리는 채울 수 없는 모양이다.
...한탄해 봤자 나아지는 것은 없다.
다른 방법을 생각하는 게 훨씬 생산적이다.
그러고 보니 드븐이 딸 아이를 가르친지도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사실 이 정도로 지속될 줄 몰랐다.
딸 아이가 싫증을 내든.
드븐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나가든.
길어봐야 일주일 이라고 생각했다.
첫 일주일.
다소 의외였다.
어쩌면 미노가 아직은 낯을 가리는 걸지도 몰랐다.
다음 주에도 이어졌다.
돌아오는 미노의 표정이 밝은 것을 봐선, 그다지 참지도 않는 것 같은데.
“괜찮으십니까?”
그래서 한 번 물어 봤다.
“흡 큽...네, 뭐 말씀이십니까?”
차를 마시다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조금 곤란한걸 물어볼 때면 차는 삼가야겠다.
그래도 그 반응에 대충은 알 수 있었다.
얼마가지 않겠구나.
미노에게 주의를 줘 봤자.
“알았어. 걱정하지 마.”
라는 말뿐일 테니까.
그리고 며칠 인가 더 시간이 흘렀고.
그래서 더 기대하게 된 것이다.
한 달.
인생으로 본다면 그렇게 긴 시각은 아니다.
하지만 서로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대로 시간이 지난다면.
인연이 지속된다면.
정이 쌓인다면.
미노에게 소중한 관계가 생길 수 있다.
홍 가.
이미 너무 많은 홍 가의 사람들이 희생했다.
그런 만큼, 그렇게 이 행복을 지켜내려 한 만큼.
미노는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아내의 바람이자.
이제 남은 나의 가장 큰 바람은.
딸, 미노의 행복이다.
...아니 사실은 나의 행복일지도 모르겠다.
그 말을 전하면 토라질 미노를 생각하니, 벌써 머리가 지끈 거리는 걸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