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령이 회장실을 나와 소라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소라씨.... 저 좀 잠깐 볼까요?"
두 사람은 사옥 꼭대기에 마련해둔 잔디 벤치에 앉았다.
미령은 뿌옇게 안개낀 서울 시내를 내려봤다.
"얘기 들었어... 결국 오빠를 배신했더군..."
미간을 찌푸리고 소라를 향했다.
"말 조심해죠.. 예전엔 어떨지 몰라도 지금은 회장 부인이야..."
"허... 기가 막히네... 이런 식으로 사람 뒷통수 치는게 전문인가보지..
너가 언제부터 회장 사모님 소릴 듣고 살았어!"
주먹이라도 한 대 날라올 기세로 씩씩거렸다.
"너가 뭔데 내 일을 방해해!"
"방해한 적 없어. 헛소리 집어쳐!"
소라가 째려봤다.
"좋아... 나 순수하지 못해. 그래 너도 말했다시피 더러운 욕구로만 가득
찼어. 근데 내 욕구충족에 방해되는 건 누구도 용납 못해..."
미령이 사납게 말했다.
"무슨 일이라도 저지르겠다는 것 같네..."
"그럼.. 당연하지. 누가 누가 이기는지 보자구... 당장 사표 쓸 각오해!"
"아니. 너야말로 회장 부인 자리에서 물러날 생각해."
소라가 벌떡 일어나 내려갔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미령이 핸드폰을 꺼냈다.
"어.. 나. 불도저 오빠 좀 바꿔줘!!"
수화기 너머에서 전화 바꾸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누구야. 삼정그룹 사모님 아냐."
"손 봐줄 사람이 있어. 납치하든 매장하든 없애죠!"
"오호~ 너무 센 거 아냐."
"사례를 섭섭지 않게 해줄게."
핸드폰을 끄고 미령을 입을 앙물었다.
"내 일을 방해하면 누구든 죽여버릴 거야!!!"
미령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미령이가 한 짓이라고 생각 못했습니다. 끔찍했어요. 소라가 죽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사지가 다 짤려나갔고... 야산에 시
신을 버렸으니까요... 미령이는 점점 악마가 돼가고 있었어요. 스스로를
악하게 매어버렸죠... 섬뜩한 그녀가 무서워졌습니다. 소라가 삼정비리
를 제보했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미령이가 다른 여자에게 시켰을 겁니
다. 그러고도 남을 정도였어요...]
서울 외각 인적이 드문 카페에서 미령이 남 비서를 기다렸다. 집안에 일
이 생겨 잠시 외출을 다녀와야겠다고 하자 원길이 흔쾌히 승낙했다. 미령
이 초조하게 저쪽에서 걸어오는 남비서를 봤다. 남 비서는 어깨에 힘을
주었다.
"음료수는....?"
미령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남비서는 오렌지 쥬스를 시키고 미령을 봤다.
"왜 자꾸 조성현을 만나는 거야! 이 일을 다 그릇치고 싶어."
"미행했어?"
"회장님이 시켜서 갔을 뿐야..."
원길씨가 날 의심하고 있어...
"회장님도 일찌감치 두 사람 관계를 알고 있어."
"뭘? 뭘 안단 말야?"
미령이 흥분했다.
"심각하진 않아. 그러니까 조심해."
"알았어..... 근데 삼정에 안 좋은 소문이 나돌고 있던데? 주식이 왜 자
꾸 떨어지는 거고... 푸른 눈을 가진 거머리는 또 누구야?"
"왜 걱정돼? 이제야 부러울 게 없는 사모님 자리에 앉았는데 추락할까
봐 무서워?"
"무슨 일이 있구나...."
남비서가 뜸을 들이는 듯 음료수를 마셨다.
"내가 손을 썼지..."
"뭐라구?"
"그럼 난 널 회장 사모님으로 앉히고 아무런 이익을 얻지 말란 말야?"
"세상에 어떻게......"
"어떻게 회장을 모시면서 그 짓을 할 수 있냐고? 돈이지 뭐. 너도 돈 때
문에 결혼했잖아...."
남비서는 비웃고 일어섰다.
미령은 허무하게 떠나는 그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