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냐. 가봤지. 수원 외곽에 있다고 해서 가봤는데 아니 무슨 경비가 실총을 들고 있더라니까? 190은 돼 보이는 떡대가 총까지 들고 눈을 부라리는데 경찰 명함을 보여줘도 콧방귀를 끼더라고. 뭐 자기네는 직속 상관의 명령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다나 뭐라나. 그러면서 빨리 꺼지지 않으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데 어째. 그냥 돌아서 올라왔지.”
“근데 워낙 연구소나 개발기관 이런 곳은 보안이 심하잖습니까. 정보 유출되면 곤란해지니까. 일반적인 기업들도 자기들 개발 상품에 엄청 신경 쓰던데, 국가보안에 관련된 거라면 더더욱 심하지 않겠습니까.”
“내 말은 연구소면 연구원들 개인정보에 왜 락을 걸어 놓냐는 거지. 그리고 살인죄로 체포돼 온 사람을 그냥 막 풀어줘. 국가안보에 관련된 개발원이면 사람 막 죽이고 다녀도 된다는 거야 뭐야.”
“그건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요.”
김형식은 대충 한 번 화장실을 훑어본 뒤 말했다.
“가자. 여기 더 뒤져봐야 뭐 나오겠냐? 옥상이나 한번 훑어보고 강북으로 가보자. 어차피 공조하라고 했으니 막지는 않겠지.”
“예.”
형식과 이형사는 화장실을 빠져나와 건물 위로 올라갔다. 2층엔 하늘색 코팅지로 벽면을 가득 붙여둔 교회가 있었고, 3층엔 대광기업이라는 사무실이, 그 위로는 모두 가정집인 듯했다. 그리고 5층을 지나 옥상으로 나가는 문 앞에 섰다. 철문에는 자물쇠 걸이를 누군가 강제로 뜯은 듯 잔뜩 휘어져 있었다.
“그러니까 범인이 여기를 뜯고 나갔다는 거지?”
“예.”
“아니 근데 옥상에서 어디로 갔다는 말이야? 여기 5층이잖아.”
“옆 건물 옥상으로 넘어서 도주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아니 추측이야? 나갔다가 아니라?”
“예. 보셔서 아시겠지만, 건물이 바로 붙어있어서 그냥 뛰기만 하면 바로 넘어갈 수 있는 거리고, 저 건물 옥상 문은 항시 열려있다고 합니다.”
“그럼 CCTV는?”
“저쪽 건물에도 CCTV는 없었습니다.”
“미치겠구만. 아니 강남 한복판에 있는 건물에 어떻게 CCTV가 없을 수가 있어?”
“이번 일을 계기로 건물주가 설치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강북 사건을 보면 CCTV가 있어도 소용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렇게 많은 CCTV 중에서 단 한 대에도 안 걸렸으니까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구만.”
둘은 옥상을 조금 더 훑어본 뒤, 차로 돌아와 강북 편의점 살인 현장으로 향했다.
*****
오른쪽으로는 가파른 계단이 언덕 끝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그 계단 왼쪽 아래로 작은 상점이 여러 개 붙어있었는데 그 중 왼쪽 제일 끝에 편의점이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편의점 옆으로 작은 골목이 또 하나 있었는데 사건은 거기서 터진 듯했다. 형식과 후배 형사가 다가가자 경찰관 하나가 형식을 막아 세웠다. 편의점 현장은 강남과는 달리 아직 경찰관들이 남아서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던 것이었다.
형식은 자신의 지갑에 넣어둔 공무원증을 꺼내 보여주자 경찰관이 경례를 했다. 형식은 쳐놓은 노란 접근금지 테이프를 허리 숙여 지나 사건현장으로 들어갔다. 피해자가 사망한 자리는 쓰레기가 쌓여있는 전봇대와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가파른 언덕에서 변을 당했는데 화장실이 대각선 방향에 위치해 있었다.
“상점주 사람들만 쓰는 공용 화장실이었답니다.”
형식이 화장실을 보고 있자 이형사가 말했다.
“그럼 저기서 나오다가 흉기에 찔려서 여기까지 온 거고?”
“그건 아닙니다. 화장실 근처에 떨어진 혈액이 없답니다. 아마 여기에서 당한 것 같습니다.”
“상처는?”
“전문가 솜씨랍니다. 저희 쪽 사건처럼 똑같은 두 방이었는데 사인은 가슴에 찔린 자상 때문이랍니다.”
“그럼 복부는 왜 찌른 거야?”
“아마 잔인하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아니면 확인차? 아직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형식은 바닥에 흩뿌려진 이제는 거뭇해진 핏자국을 보며 말했다.
“휴.. 이번엔 또 어떤 또라이 새끼인 거야. 증거는 아예 없고?”
“예. 저희 쪽 사건과 같은 브랜드 주방용 식칼 빼고는 전혀 없습니다. CCTV에도 찍히지 않았고요.”
후배 형사의 말에 형식은 주변의 CCTV를 둘러보았다. 골목이 시작되는 지점에 서 있는 전봇대. 잔뜩 쌓인 쓰레기 위로 시선을 옮기자 그곳에 CCTV가 있었다. 동그란 모양으로 전방위를 찍을 수 있는 것 같았는데 정확히 범행 현장만 CCTV가 달려있는 전봇대에 가려져 사각이었다. 그리고 다른 CCTV는 언덕 위쪽 다음 골목이 시작되는 전봇대에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저 CCTV에 찍혔다고 한들 이목구비는커녕 실루엣도 보기 힘들 것 같은 거리였다.
“이 새끼 보통이 아닌데.”
후배 형사 역시 주변을 훑어보며 말했다.
“제 생각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분명 이번이 끝이 아닐 거야. 조만간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겠어.”
“어떻게 아십니까?”
“촉이란 게 있잖냐. 내가 이 짓거리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분명 조만간 또 터진다.”
*****
‘다음 소식입니다. 얼마 전 서울에서 벌어졌던 묻지마식 살인사건이 계획범죄라는 이야기가 있었죠. 그런데 어제 강서구에서 발생한 사건 때문에 연쇄살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김영철 기자입니다.’
‘주단위로 일어난 강남구와 강북구 살인사건. 경찰은 두 사건의 연관 가능성에 대해 전면 부인을 해왔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강서구 노래방에서 살인사건이 터지면서 이제 경찰도 동일범의 소행임을 시인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살인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현장에서 발견된 것은 강남구와 강북구 사건 현장에서 발견한 같은 브랜드의 주방용 식칼이 전부였습니다. 그 외에 어떤 증거물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어 경찰은 국민들의 뭇매를 맞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경찰은...’
“거봐 내 뭐라 그래. 이거 백 프로 또 일어난다고 했잖아. 아이 씨. 당분간 퇴근은 글렀네.”
“그러게요. 이번 주가 와이프 생일인데 또 한 소리 듣겠습니다.”
“지금 자랑하냐? 난 걱정해 줄 사람도 없는데.”
형식의 말에 반장이 지나가며 한소리를 거들었다.
“네가 괜히 혼자겠어? 성격이 그 모양이니 그렇지. 시끄럽고 강서 쪽 정보나 받아와.”
“이미 받아놨습니다.”
이형사의 말에 형식은 의자에 눕다시피 있다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뭐? 받았으면 나한테 말을 해줘야 할 것 아냐?”
“가져와 봐.”
이형사는 손에 들린 묵직한 A4용지 뭉텅이를 반장에게 건네주었다. 반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A4용지를 넘겨보았다. A4용지에는 ‘강서구 노래방 살인사건 사건 보고’라고 적혀있었다. 형식은 못 기다리겠다는 듯 좌우로 왔다리갔다리 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반장은 보고서를 덮으며 말했다.
“미치겠군.”
형식은 며칠은 굶은 야수같이 반장의 책상에 달려들어 보고서를 뒤집어 보기 시작했다.
“한바탕 난리가 나겠어.”
반장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형식 역시 보고서의 중요한 부위만 훑어보았는지 말했다.
“이번엔 CCTV가 고장이라고? 이게 말이 돼?”
“안 되면 어쩔 거야. 이미 벌어진 일인데.”
반장의 말에 이형사가 대답했다.
“보통 놈이 아니란 건 알았지만 이 정도 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형사 생활하면서 살인사건 아예 구경도 못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것 참.”
형식은 자기 책상 위에 놓인 차키를 집으며 말했다.
“우선 다녀오겠습니다. 가서 얼굴도장이라도 찍어야죠.”
그런 형식을 보며 반장이 코웃음 쳤다.
“네가 웬일이냐? 현장에 먼저 가겠다는 소릴 하고?”
“밥 먹으려면 해야죠.”
오늘도 역시나 형식이 먼저 철창을 향해 걸어가자 그 옆으로 어느새 이형사가 따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