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 주변이 꽤 익숙하고 나는 다시 내 방에 누워 있었다.
‘역시 꿈이었구나.’
시계를 보니 오전 9시였다. 크리스마스 날인가?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김양! 뭐하고 있어? 출근 안 해?”
박차장이었다. 성탄절에 반갑지 않은 사람의 목소리를 진짜 끔찍하다.
“오늘 휴일 아니었어요?”
이상한 기분이다. 분명히 꿈인 것을 알면서도 마치 내 입술에는 아직도 라푼의 입술이 닿은 듯 한 느낌이다. 손이 저절로 입술로 간다. 꿈인데 진짜 겪은 듯이 현실감이 드는 건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인가? 피식 웃음이 난다.
“ 휴일은 무슨. 오늘 끝낼 일이 산더미인데, 조기 퇴근 시켜 줄 테니, 오늘 근무하고 대신 12월 31일 날 종무식하면서 빨리 끝내줄게.”
이렇게 또 부려먹는 구나. 다른 회사는 크리스마스는 당연히 쉬는 거고, 12월 31일이도 조기퇴근이 당연한데 여기는 그런 것도 없구나.
“알겠어요. 갈게요”
자기 할 말만 하고 뚝 끊어진 전화기를 물끄러미 보고 툭툭 몸을 털고 일어나 터벅터벅 세면대로 갔다. 어푸어푸 세수를 하고 머리도 대충 감는다. 양치를 했던가? 다시 또 하는지 어떤지. 어제의 생생한 꿈 때문이지 나의 머릿속은 아직도 뒤죽박죽이다. 어지럽게 머릿속을 헤집어 놓은 꿈을 뒤로 한 채 방을 한번 둘러본다. 혹시나 어제 일이 현실일까 싶어 전단지를 찾아보았지만, 역시 없다. 라푼의 흔적이라도 있을 까 싶었는데, 없다.
‘개꿈이네! 아니, 산타 꿈인가? 그래, 꿈이 선물인가보다’
실소를 하고 옷을 주섬주섬 입고 오래된 낡은 핸드백을 매고 편한 신발 운동화에 발을 꾸겨 놓고 현관문을 열고 나온다. 열쇠로 잠그고 다시 거리로 나왔다.
휴일에, 그것도 성탄절에 출근하는 건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가 되는 느낌이다. 거리는 온통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로 가득하다. 연인들. 가족들. 친구들이 옹기종기 살을 부대끼고 맛있는 가게로 들어간다. 들뜨고 설레는 기분을 안고 행복한 그들 틈으로 나는 다시 차가운 회사로 발길을 돌린다. 가까스로 업무에 집중하고 오후 3시가 되어서야 나를 이곳에서 탈출 시켜준다. 내가 딱히 갈 곳도 없고 할 일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으니 조그마한 원룸 자취방으로 가는데 또 내 처지가 궁색하여 눈물이 난다.
나이가 들면 많아지는 것이 살과 눈물과 빚이라더니. 진짜 그런가보다. 가다가 편의점에 들러 조각 케이크를 하나 사 보았다. 원래 이런 것과는 전혀 관심이 없는데 어제 꿈 덕분인지 나도 크리스마스 케이크 느낌 내보려고 하는지 조그마한 조각 케이크를 들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집 안에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가득했다.
“짜잔! 소하양! 어서 와요!”
크리스마스트리가 떡하니 조그마한 집안에 가득 채웠고, 상에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촛불이 환하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빛나는 라푼이 있었다.
“그럼 어제 그것이 꿈이 아니고.”
“울지 마요. 더 이상 우는 모습 보고 싶지 않아요! 웃어요. 소하양. 나만의 산타”
라푼이 울먹이는 나를 껴안아주었고, 나는 최고의 선물을 받았다. 그리고 라푼과 둘만의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다음 날 나는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라푼과 함께 산타가 사는 마을로 가서 산타의 업무를 나눠서 하기로 했다. 나는 산타할머니가 되지만, 내 남편은 라푼 요정이다. 그리고 영준이는 보조요정이 되어 우리는 모두 행복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
아! 그리고 나는 가끔씩 산타와 라푼과 영준이와 함께 포장마차에 가서 떡볶이와 순대와 튀김을 먹는다. 그리고 짜장면도 먹고. 이런 재미도 물론 놓칠 수 없지!
1부.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