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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천사는 울지 않는다
작가 : 소설부부
작품등록일 : 2017.7.15

영겁의 세월동안 고독과 마음의 평온만을 추구하던 천사 프라.
그가 복잡한 관계로 뒤얽힌 지구의 삶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

...팽팽한 긴장의 줄을 싹둑 잘라 먹었다.

모두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라는 잔뜩 힘주어 숨을 참고 있던 참이었었다.

에이씨. 지지려면 빨리 지질 것이지. 할랑 말랑 하는 게 더 고문인 거 모르나.

키가 보통 명마보다 큰 흑마는 구경꾼들을 당당하게 가르고 장교 앞에까지 왔다.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검은 후드망토를 길게 늘어트린 존재가 말 위에 앉아 있었다.

 
회상 - 지키고 싶은 마음 vs 파괴하고 싶은 마음
작성일 : 17-07-21 16:53     조회 : 39     추천 : 0     분량 : 6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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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우리도 산책할까요? 예쁜 들꽃들이 제법 많아 보이던데요.”

 

 “그럴까? 계속 앉아만 있었더니 속도 더부룩하니 그게 좋겠어.”

 

 

 미하루가 젊은 아가씨들을 이끌고 나서자 다른 테이블에서도 일어서기 시작했다.

 

 저 멀리 세라가 강가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세라가 명했는지 아론은 한참 떨어져서 강둑 위에서 세라를 내려 보고 있었다.

 

 기회를 엿보다가 제각기 흩어진 무리들에게서 멀어진 미하루는 아론에게 향했다.

 

 그에게 점점 가까워지니 결심이 더 확고해졌다.

 

 절대 놓칠 수 없어! 너 아니면 나는 다시 노예가 되겠지.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어.

 

 

 “아론.”

 

 

 벌써 그녀의 접근을 알고 있었는지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

 

 

 “경호 임무 어때? 잘 돼가?”

 

 

 침묵하는 그의 눈빛이 슬픔이 서려 있는 듯 보이는 것이 언짢았다.

 

 세라 때문에 그런 눈빛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지금이 마지막일 거야 아론.

 

 

 

 “개인 경호인데 이렇게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도 되는 거야? 세라가 가까이 오지 말래?”

 

 “…….”

 

 “그러다 무슨 일 생기면 전부 네 탓 할 거 아냐?”

 

 “…….”

 

 “너, 만약에 아주 위험한 상황이 되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세라를 구할 거니?”

 

 

 그는 여전히 앞만 보고 있었지만 이전의 질문들 땐 보이지 않던 반응을 미하루는 놓치지 않았다.

 

 그의 턱이 단단히 맞물렸다. 주변을 살피던 그의 눈동자가 세라에게 머물렀다.

 

 세라를 보는 그의 푸른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론은 재빨리 시선을 주변으로 돌리며 계속 턱에 힘을 주며 움찔거렸다.

 

 그러다 대답을 하려는지 고개를 돌려 미하루를 바라봤다. 그의 촉촉한 입술이 열리려 하고 있었다.

 

 안 돼! 평소처럼 질문을 무시해 버려. 그렇게 고민하는 모습 보이지마. 대답하지 말라고.

 

 넌 이미 네 대답을 정했겠지. 단지 내가 기분 상하지 않을 표현을 찾느라 고민 중이겠지.

 

 

 “구하지 마! 위험에 쳐 해도 구하지 마!”

 

 

 그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녀를 한동안 응시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의 가슴이 크게 부풀다가 가라앉았다.

 

 미하루의 응석이 또 시작 되었군 이란 반응이었다.

 

 

 “네가 세라를 위해 몸부림 칠 때마다 네 부모님은 피눈물 흘리실 거다.”

 

 

 아론이 다시 그녀를 응시했다.

 

 

 “……?”

 

 “네가 노예 상인들에게 잡혔던 날, 너는 기억이 없겠지만. 난 전부 다 기억해. 그들이 한 말들. 그들이 한 행동들, 너의 분노 전부.”

 

 “…….”

 

 “노예상인들이 그랬어. 그 산에 너희 가족이 있는 것을 눈치 채고 파갈 공작에게 보고했더니, 다 죽이고 아이만 잡아오라고 했대. 결국, 네 부모님을 죽인 것은 파갈 공작이야.”

 

 아론이 미하루의 눈에서 진실을 찾는 듯 이리저리 파헤쳤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을 위해 목숨 걸 필요 없어.”

 

 “왜……이제 말하는 거야?”

 

 “진실을 알면 넌 또 모조리 죽이고 너도 죽을 것 같았어. 그날도 넌, 널 구하려다 돌아가신 엄마를 눈앞에서 보고 미쳐버렸어.”

 

 

 그 붉은 참혹함이 미하루의 뇌리에 스쳐갔다.

 

 

 “심각한 상처로 움직이지도 못했던 네가 피범벅이 되어서…….”

 

 

 아론은 미간을 찌푸린 채 침묵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를 죽였어. 노예 상인들, 노예들, 말들, 사냥개들 살아 있는 전부를. 무슨 이유에서 인지 모르지만 나만 빼고. 그리고 너도 쓰러져 버렸어. 내가 너무 무서워서 우니까 네가 다시 눈을 떴는데 걸을 힘이 없어서 기고, 기고, 기어서 나한테 오는데.”

 

 

 그녀는 목이 메여와 잠시 멈췄다.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나를 죽이러 오는 줄 알았어. 너무 무서웠어. 근데 넌 나를 죽이지 않고, 오히려 풀숲으로 들어가도록 해서 추운 밤을 피하게 도와줬어.”

 

 

 아론의 눈에 핏발이 서기 시작했다.

 

 

 “우린 스스로 살아가기엔 너무 힘이 없었어. 넌 미쳐 자폭하듯 죽을 테고 나는 노예로 힘든 삶을 살아갔겠지. 난 너무 무서웠어. 흐흐흐흐흐윽”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손가락 사이로 그의 하얗게 된 주먹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흐느끼는 소리가 컸던지 세라가 뒤돌아보았다. 이쪽을 잠시 응시하던 세라는 강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론이 풀밭에 앉았다. 세워진 두 무릎 사이로 고개를 숙이고는 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

 

 미하루는 세라가 주저앉은 아론을 보고 다가오려는 것을 보았다. 세라가 오르막을 올라 가까이 왔다.

 

 

 “무슨 일이지?”

 

 

  미하루는 한 숨부터 쉬었다.

 

 

 “하아- 오늘 따라 슬픈 옛 기억이 떠올라 넋두리 좀 했더니, 아론도 저 때문에 마음이 아픈가 봐요.”

 

 

 세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평소 아론이 무뚝뚝해서 좀 불만이었는데 이렇게 저하고 같은 마음인 걸 확인하니 이제 투정은 그만 부려야겠어요.”

 

 

 세라가 아론을 내려 보았다.

 

 

 “……그럼 먼저 가 볼 테니, 아론…… 넌 나중에 와도 돼.”

 

 

 아론이 아무런 대꾸가 없자, 세라의 얼굴에 당황해 하는 기색이 순간 일었다.

 

 세라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는 미하루는 자신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녀가 너무 쓸쓸해 보였기 때문에 기분이 날 듯이 좋았다.

 

 

 “아론, 이대로 적당히 그들 편인 척 살자. 목숨 받칠 필요 없어. 네가 떠나자고 하면 같이 갈게. 난 항상 네 편이야.”

 

 

 강바람이 점차 차가워져 갔다.

 

 

 

 **

 

 

 

 머리가 두 동강 날 것 같은 두통 때문에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은 은발을 움켜잡고 고통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기다려 보지만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세라가 혼자 행동하는 것을 보고 아론이 강둑 근처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부기사단장이 자초지종을 알기 위해 나섰다.

 

 

 “아론, 밀착 경호란 말뜻 모르나?”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산 같은 무게감이 있었다.

 

 평소의 아론이라면 진심으로 그의 충고와 가르침을 받아들일 테지만, 지금의 그로써는 이렇게 아무런 소동도 일으키지 않는 것만으로도 힘든 시간을 견디는 것이었다.

 

 겉은 밤처럼 고요하지만 두 감정이 뒤엉켜 끊임없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지키고 싶은 마음과 파괴 하고 싶은 마음.

 

 아론은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로 어슴프레하게 밤이 시작되려고 하는데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려도 진중한 놈이라 생각했는데 명령을 이리 우습게 생각하다니.”

 

 

 모조리 부셔 머리고 떠날까?

 

 

 “대체 무슨 일이야?”

 

 

 밤마다 꿈속에서 설쳐대는 괴물. 정말 나였던 거야.

 

 

 “이유 없이 이럴 놈이 아니잖아 너!”

 

 

 나도 모르는 사이 세라, 너를 헤치면 난 기쁠까?

 

 

 “곧 공작일행이 사냥터에서 돌아온다. 어서 일어서.”

 

 

 괴물로 죽고 싶지 않아.

 

 

 “어서!”

 

 

 그렇다고…… 나를 괴물로 만든 자들을 가만 둘 수 없잖아.

 

 가족을 죽인 원수들을!

 

 부기사단장이 손을 뻗어 그의 멱살을 잡으려 했다.

 

 

 “손대지 마. 죽기 싫으면.”

 

 

 아론의 음산하고 싸늘한 목소리에 손을 멈췄다.

 

 좀처럼 결정하기 힘들군.

 

 그래……너한테 기회를 줄게. 네가 결정해.

 

 

 “세라보고……이리 오라고 해.”

 

 “……뭐?”

 

 

 어린 시절부터 그를 봐 온, 부기사단장은 순간적으로 알 수 있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그가 뛰다시피 멀어지고.

 

 조금 후, 풀에 치맛자락이 쓸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 뒤로 기사들의 발소리도 들렸다. 6명.

 

 소리들이 잠시 멈추더니, 치맛자락소리만 들렸다. 기사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 홀로 아론 옆에 섰다.

 

 

 “아론……”

 

 

 왔군.

 

 

 “식사하다 말고 왔어.”

 

 

 내 존재를 무시하는 너.

 

 

 “네가 불러서.”

 

 

 하아……네가 처음으로 내게로 온 날이다.

 

 공작의 명령도 아닌 그 누구의 강압도 아닌 그만의 부름으로 왔다.

 

 세라가 그의 옆에 앉았다. 그녀가 쿠키를 내밀었다. 금사로 수놓은 그녀의 하얀 손수건 위에 담아 온 쿠키 하나.

 

 잠시 그것을 보다가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붉게 충혈 된 눈을 보고 세라는 무척 놀랐지만 애써 바로 지웠다.

 

 미하루에게 무슨 말을 들었기에 이리도 힘들어하는 걸까?

 

 

 “맛있다고 하면 더 갖다 줄게.”

 

 

 세라가 입꼬리를 올렸다가 재빨리 내렸다. 너무나 빠른 동작이어서 본인도 의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혼란을 잠재울 만큼 충분한 미소였다.

 

 그래 그거.

 

 그 미소를 보여줬으니 오늘만큼은 널 해치지 않을게.

 

 

 

 

 **

 

 

 

 

 “아론, 사……살려줘!”

 

 

 세라는 뒤집힌 보트에 의지해 보려 하지만 자꾸 미끄러져 물속으로 잠기려했다. 수영을 잘하는 아론은 최소한의 몸짓으로 물위에 조용히 떠 있었다. 물새처럼.

 

 아론은 뒤집힌 보트를 바로 할 생각도 허우적대는 세라를 도와줄 생각도 없는 듯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켜 볼 뿐이었다.

 

 아론을 향한 그녀의 눈빛이 공포에서 절망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보트의 미세한 틈새를 잡은 손가락 끝에 자신의 전부를 의지한 그녀는 더 이상 살려 달라고 외치지 않았다.

 

 그의 차디찬 눈빛을 보면, 오히려 물속으로 그녀를 밀어 넣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일 정도였다.

 

 

 “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러는 거야.”

 

 

 물속에서 이 상태로 얼마나 버티고 있었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공작과 남자들은 새벽에 사냥을 나갔고 여자들은 느지막이 일어나 식사를 하고 뱃놀이를 하기 위해 보트를 띄웠다.

 

 수다스런 부인들을 피해 아론과 보트에 올랐다. 잔잔한 물살에 보트들은 멀리 이탈하지 않고 서로의 근처를 부유하고 있었다.

 

 아론에게 어제 일을 묻고 싶었지만 망설여졌다. 그가 얘기하고 싶어 할까? 분명한 것은 미하루와 얘기를 나눈 뒤 아론이 변했다는 것이다.

 

 허겁지겁 자신을 찾아 온 부기사단장은,

 

 

 ‘아론이 이상합니다. 아무래도 손님들을 조용히 대피시키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세라는 부기사단장의 공포가 서린 눈동자를 봤다.

 

 

 ‘세라 아가씨, 녀석이 아가씨를 찾습니다. 아가씨만이래도 먼저 피하시면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위로가 필요한 순간임은 분명했다. 그 순간만큼은 너무 냉정한 척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쿠키를 들고 아론에게 갔다.

 

 어린 동생을 달래기 위해 다가가는 누나처럼.

 

 도대체 어떤 일이 널 그토록 고통 받게 만든 걸까?

 

 머릿속으로 혼자 추리를 하다가 평화로운 흔들림에 눈이 스스륵 감겨왔다.

 

 그리고 갑작스런 물벼락에 정신을 차리니 보트가 뒤집혀 있었고 주변엔 다른 배들도 없었다.

 

 힘이 빠지면서 작은 틈새에서 손가락이 미끄러졌다. 팔을 뻗어 몸을 위로 당겨 보려 했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진즉에 수영이라도 배워 놓았으면 좋았을 텐데.

 

 턱을 치켜들어 숨을 들이켜 보려고 했지만 물만 폐 속으로 들어왔다. 호흡이 막히고 발버둥 쳐도 손에 닿지 않는 도움으로 죽음의 공포가 엄습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 차갑기 만 한 암흑이 감싸자 희미한 수중의 물소리도 사라져 갔다.

 

 

 **

 

 

 어제는 그녀를 살려두었다.

 

 오늘은 아직 그녀를 살려 둘 명분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녀의 몸부림치던 손끝이 물속으로 사라졌다.

 

 시야에서 사라졌다. 곧 마지막 숨도 수면으로 떠올라 공기 중에 흩어질 것이다.

 

 큰 기포들이 올라왔다.

 

 파갈공작에겐 남은 혈육이 이제 없다. 나와 마찬가지로. 비로소 동등해 진거다.

 

 아론은 세라가 사라진 곳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공작에게 마땅한 복수를 했는데도 후련하기보단 밀려드는 불안과 알 수 없는 공포가 그의 심장을 마구 두드렸다.

 

 상실의 공포. 그녀에게 영원히 잊혀 질 존재가 될지도 모를 불안감.

 

 요동치는 심장소리가 머릿속에서 크게 울렸다. 고통으로 그의 눈꺼풀이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아론은 더 이상 본능에 저항 할 수 없어 물속으로 머리를 박아 넣고 잠수해 들어갔다.

 

 지키고 싶어 하는 본능이 오늘도 이겼다.

 

 

 

 **

 

 

 

 세라는 입속으로 들어오는 숨이 폐 속에 들어찬 물을 밀어 내는 것을 느끼는 순간, 기침과 함께 물을 토해냈다.

 

 침, 눈물, 콧물, 온 몸의 물이란 물은 다 토해낸 기분이 들자 축 늘어져 버렸다.

 

 몸이 붕, 뜨며 들여 올려 진 기분이 들었다. 눈 뜰 기운도 없어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타닥 타닥. 모닥불이 옆에서 피어올랐다. 주황색 불꽃이 바람에 너풀거리는 몇 겹의 얇은 베일처럼 흔들렸다.

 

 그 겹쳐진 베일들 너머 비치는 흐릿한 형상이 점점 선명해졌다. 세라는 순간적으로 몸을 웅크려 상체를 일으켰다.

 

 불신과 경계심으로 가득 찬 눈으로, 앉은 채로 엉덩이를 뒤로 이동시켰다.

 

 아론은 그런 세라를 잠시 내버려 두었다.

 

 세라 뒤로 날카로운 돌과 바위들이 가까워 질 무렵, 그는 일어서 다가왔다. 세라는 아론이 다가오는 걸 보고,

 

 

 “오지마! 오지 말란 말야. 아악!”

 

 

 그의 손이 그녀 몸에 닿자마자 비명소리가 나왔다. 바들바들 떠는 세라를 안아 다시 모닥불 옆에 앉혔다.

 

 경련이 멈출 줄 모르고 온 몸이 떨려 왔다. 그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그 와중에도 인지하면서 어쩔 수 없이 몸은 그에게서 멀어지려고 슬금슬금 뒤로 움직였다.

 

 

 “도망칠 필요 없어. 이제 끝났어요.”

 

 

 무슨 뜻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뭐가 끝났다는 건지.

 

 

 “불 옆으로 와요. 감기 걸리지 않으려면.”

 

 

 감기? 감기 걸릴까봐 걱정한다는 거야?

 

 

 “……너, 넌, 내가 죽어가는 걸 구경만 하고 있었어.”

 

 “죽게 놔두지 않았잖아요.”

 

 “왜 그랬어?”

 

 “왜 살려줬냐고 묻는 건가요 아니면 왜 죽이려고 했는지 묻는 건가?”

 

 

 아론이 낮게 웃고 있었다. 잘게 끊기는 웃음이 점차 잦아들더니 그는 얼어 버린 듯 굳어 있었다.

 

 

 “나…… 아무래도 미친 것 같아.”

 

 

 세라는 말문이 막혔다. 턱을 움직거렸지만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다시 닫았다.

 

 

 “당신을 너무 죽이고 싶다가도…….”

 

 

 그의 파란 눈이 이토록 짙은 허무함을 담았던 적이 있었나?

 

 

 “재미없었어요. 당신이…… 죽는 게 ”

 

 

 그의 목소리가 낮고 무거웠다.

 

 그의 눈빛이 나른한 듯 냉소적으로 닿으니 소름이 돋아 올랐다.

 

 세라는 자신이 알던 순수한 아론 안에 섬뜩한 미치광이가 도사리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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