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비밀 모험이라도 떠나고 싶은 기분인가.'
"무슨 불만이라도 있습니까?"
이러한 생각을 늘어놓는 것도 벌써 질리다고 느껴질 만큼, 거의 반복적인 작업만 죽을 때까지 지속하는 수도의 마법등처럼, 이젠 머릿속이 다 근질거리는 것 같다는 생각과 동화되어 저도 모르게 퉁명스런 반응을 내보인 카일로스는, 곧 자신의 만행을 깨달음과 동시에 '헙!' 입을 다물고, 몇 번 헛기침을 이어낸 뒤, 최대한 밝은 미소를 띄우려 애를 썼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물론 억지로 근육을 움직이는 건 상당히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지라, 그렇게 만들어진 경직된 미소는 꽤나 볼썽사나운 곡선을 그리고 있었으나, 정작 여행객에게선 아무런 반응도 나타나질 않았다.
그저 가타부타 말도 없이 품속을 뒤적여 낡은 종이 한 장을 꺼내들곤, 의아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카일로스에게 거진 떠밀듯이 넘겨주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곤 카일로스가 가리킨 성문 옆의 작은 문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곧 카일로스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에 잠시 멍한 표정으로 여행객을, 나아가 그렇게 나타난 문과 손에 쥐어진 종이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던 카일로스가 이내 곱게 접힌 종이를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비록 그 출처가 술에 잔뜩 골아 횡설수설을 하던 선배 경비병 겸 이웃집 아저씨인 루드릭스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라, 여태껏 카일로스는 그다지 신뢰하진 않았었지만, 어찌되었든 루드릭스의 경험담에 따르면 간혹, 혹은 몇 년마다, 이렇게 쪽지만 건네주고 사라지는 여행객이 있다고 했다.
태양빛에 녹아버릴 정도로 더운 여름철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답답해 보이는 낡은 후드를 뒤집어 쓰고 있었으며, 그건 무릎까지 푹푹 차오르는 새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철이라 하더라도 결코 변하지 않던 모습이라 하였다.
폭풍이 들이닥쳐도 여행객은 언제나 한결 같았고,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날아가는 강풍이 불어와도 여행객은 전혀 흔들림 없이 꼿꼿이 선 채, 언제나 그랬다는 양 쪽지를 건네주었다고 했다. 꼭 귀신이나 언데드를 보는 것처럼, 몇 년, 일설에 따르면 몇십 년을 그렇게 이 검문소에 쪽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여행객이 누구인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러한 행동을 하는지는 전혀 밝혀진 바가 없었다. 남 몰래 뒤를 따라가 봐도, 어느 순간 여행객은 마치 유령을 보는 것처럼, 눈 앞에서 바람같이 흩어지며 사라져 버린다고 했다. 그야말로 '앗!'하는 부지불식간의 순간에, 하늘도 땅도 아닌 어디론가로 꺼져 버린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딱 200걸음을 옮긴 후에.
하지만 이런 신출귀몰한 행적을 보이는 여행객과는 별개로, 쪽지에 담긴 내용은 별 다른 게 없었다.
'풍요의 시간이 저물고, 통곡의 장막이 드리워졌을 때, 기사단은 다시 집결하리라.'
그 의미조차도 알 수 없는, 꼭 펜이 아니라 머리카락 한 올을 뽑아다 쓴 것 같은 그런 휘갈겨 쓴 내용이 종이에 적힌 글자의 전부였다.
그리고 카일로스는 이제껏 말로만 들었던 방랑 여행객의, 도대체가 그 내용을 해석할 수가 없는 쪽지를 받아 본 적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안에 적혀 있을 내용이야 물론 안 봐도 그만일 게 뻔한 '기사단이 어쩌고.'겠지만, 그는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새에 어느덧 손이 멋대로 움직이며 종이를 펼치고 있음을 눈치채고는, 순간 '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
그와 더불어지는 페이나스의 짧은, 허나 연속적으로 듣기 있기에는 조금 거북한 목소리가 다시금 울려퍼지고, 그에 몇 번이나 접어 놓았는지도 모를 종이를 펼치고 있던 손을 우뚝 멈춰 세운 카일로스는, 곧 한 발짝 앞으로 걸어나온 부녀에게 앞선 여행객과 다를 바 없이 성문 옆의 작은 문을 가리키기 위해 거진 자동적으로 손을 움직이다, 돌연 흠칫, 들어올리려던 팔을 다시 아래로 떨구었다.
"여기, 여기 있는 문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자신과는 달리 꽤 자연스런 미소를 띄고 있는 경비병.
이번엔 유렌이 맡고 있는 방문객들의 차례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