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 다닐 땐, 학교에 걸스카우트나 아람단 등과 같은 활동이 있었다. 늘 새 학년이 될때마다 신청할 수 있는 가정 통신문을 주셨는데 나는 신청을 하지 못했다.
미애원에서 지내다보니, 하고 싶은 것도 해야하는 것도 다 제한되어 있을 뿐더러, 그 활동을 하는데에 초기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결국에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활동을 하지 못했다. 단지, 그러한 활동을 하는 아이들을 보며 부러움만 살뿐, 늘 마음속으로만 ‘나도 하고 싶다’며 속삭일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활동을 하는데에 있어서 옷이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하는 얘기는 그때 말하지 못한 진실을 위한 글이다.
미애원에서는 늘 설문조사를 했다. 미애원에서 우리를 잘 보살펴주고 있는지, 때리진 않는지, 협박 같은거나 폭력을 휘두리진 않는지 등 어느 곳에서 많은 선생님들께서 오셔서 설문조사를 했다.
그 전날 밤, 미애원에서는 웬일인지 공부를 다 마치지도 않은 시간에 치킨을 사주셨다. 그때 먹은 치킨은 비비큐 후라이드(?), 호식이 후드라이(?) 양념랑 반반해서 먹은 기억이 나는데 그때 먹은 치킨이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치킨이었다. 그 당시 나이가 아마도 초등학교 다닐 때인데 5학년 쯤 된거 같다. 치킨을 보는 우리 모두는 좋아라 했고, 허겁지겁 치킨을 먹어 치웠다. 치킨을 먹으면서도 왜 갑자기 치킨이지 싶었는데 다 짜놓은 계획이었던 것이었다. 치킨을 먹기 전, 미애원에 계시던 여 원장은 말했다.
“느그들, 내일 설문조사 하는 거 알제? 말 잘못하면 혼난디. 오늘 치킨 사줬으니까 내일 말 조심해라 알았나?”
역시 이유는 다 있었다. 치킨을 다 먹고 나서도 새뇌훈련은 계속됐다. 설문하는 용지를 우리에게 건네더니 좋은 쪽으로 문항마다 매우 만족을 체크하라는 것이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걸 알지만, 매우 불만족을 체크하고 싶었지만 나의 앞에 보육교사가 지켜보는 가운데에 어떻게 그런 용기가 필요했는지 그딴 용기 같은 건 없었다.
예시로 된 설문 용지를 건네면서 우리에게 겁을 줬던 보육교사는 계속 우리를 밀어 붙혔고, 우린 그렇게 하라는데로 할 수밖에 없었다.
“니들, 이거 매우만족이라고 체크 안하면 우리 다 떨어져서 살게 돼. 지금 여기 있는 동생들이랑, 언니 오빠들까지 포함해서 우리(보육교사)까지도 떨어져서 살고 싶나? 게다가 니그들은 위에 언니도 있고 둘이 쌍둥이여서 세 명 다 뿔뿔이 흩어져서 살게 된다고, 알아들었어?”
이런 말을 듣고 혹시 진짜로 그러나? 싶은 마음에 우리는 강제로 매우만족을 체크 했고, 다음 날, 실전에서 설문조사를 할 때도 우리는 거짓 설문조사를 했다.
#미애원에서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다.
#미애원에서는 자기 자신이 잘 클 수 있도록 보살핌을 잘해준다.
#나에게 협박이나 손찌검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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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를 하기 전, 우리에게 좋게 말하라고 시키지 않았다.
마지막 질문에 나는 아니요, 전날 밤, 치킨을 갑자기 사주셔서 오늘 설문조사를 할 때 좋게 말하라고 하면서 안 좋게 말하면 우리 다 뿔뿔이 흩어져서 살게 된다고 겁을 줬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내 말하지 못했다. 정말로 언니와 소진이랑 떨어져서 살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 일말고도 또 다른 일이 있었다. 이번 일은 설문조사라기 보단 애기들의 솔직함으로 인해 생긴 일이다.
한달에 한번, 셋째 주 토요일에는 ‘서두리’라는 단체에서 미애원으로 오셔서 고기도 주시고, 그날에 맞는 월별마다 생일 축하도 했다.
그래서 ‘서두리’가 오는 날마다 고기를 먹을 수 있어 좋았고, 먹을 때마다 늘 삼겹살이었지만, 그때가 아니면 고긴 먹을 수 없었기에 맛있게 먹었다. 그때는 밥도 조금 달라고 하면 조금만 줄 뿐더러, 평소와는 다르게 마음 편히 늦게까지 먹어도 되는 날이었기에 더 좋았다.
고구마도 구워 먹고, 김치와 파채도 같이 구워 먹었다. 그때 먹은 고구마는 천상의 맛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맛이 이렇게나 황홀한지 몰랐다. 거의 다 먹어갈때 쯤은 항상 밥을 볶아 먹었다. 상에 남아있는 상추나 깻잎을 대충 잘라서 넣고, 쌈장과 기름장까지 싹싹 긁어 볶아 먹은 그 밥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내가 말하려던 일은 바로 지금부터다. 밥을 먹기 전, ‘서두리’라는 단체 중 한분이 유치부에 있던 여자아이에게 물었다.
“여기서 고기 반찬도 주고 맛있는 간식도 줘?”
이 물음에 그 아이는 “아니요”라며 대답했다. 이 말이 어쩌다가 원장 귀에까지 들렸는지 우리는 ‘서두리’라는 단체가 미애원에서 빠져 나가자마자, 우리 모두는 식당으로 불러가 단체로 혼이 났다.
그 여자아이는 더더욱 혼이 났다. 아직 유치원도 안 다닌 때였다. 4,5살 정도의 여자아이를 죽도록 때렸다. 이건 때린 정도가 아니라 팬 정도였다. 그것도 모자라 여 보육교사가 때린 게 아니라 사무실에 같이 있던, 원장 아들이 때린 것이었다. 그 아들은 키도 컸고 덩치는 더더욱 산만해서 나를 포함하여 모두에게 무서운 사람이었고, 그 아들은 남자부에 있는 사람들조차 날라갈 정도로 팬 사람이었다.
그 아들은 작은 여자아이를 팼을 때, 여자아이는 계속 날아갔고, 그러면서도 일어나라며 소리를 지르며 게속해서 때렸다. 발로 차기도 하면서, 머리를 ‘빡’ 소리가 나게 세게 때렸으며, 그 힘에 못이겨 주저앉아버린 채 울고 있는 그 아이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는 그 아이가 날아갈 때까지 계속 때리길 반복했다. 나를 포함하여 그 누구도 말리지 않았고, 왜 맞는지 조차, 그리고 왜 우리가 식당에 모이게 됐는지 조차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우린 그 아이가 맞고 우는 걸을 계속 보고만 있어야 했다. 그곳에 계셨던 여러 명의 보육교사 역시 말리지 않았고, 더 맞아야 한다며, 정신 좀 차리게 더 때리라며 옆에서 거들어 주기도 했다. 그때 그 아이는 솔직함으로 인해, 어쩌면 그 나이 때에 맞는 행동으로 인해 남의 손에서 계속 맞았고, 다른 보육 교사한테 조차 미움을 받으면서 크게 되었다.
이건 나도 몰랐던 일화다. 내가 만약 그 일화의 주인공이었다면, 울기만 했을 것 같다. 아무런 힘도 없었기에 우는 방법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미애원에는 사무실 쪽 게단으로 밑으로 내려가다보면 어떤 문이 있다. 그건 화장실이었다. 그 화장실 조차 마음대로 쓰지 못하게 했다
A가 놀다가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 그 밑에 있는 화장실을 쓰게 됐다. 소변이 급했던 A는 쓰면 안된다는 걸 알았지만 화장실 가는 길이 너무 멀었고, 말할 수 없을 만큼 급했기에 급한데로 그 화장실로 들어가 급한 불을 껐다. 볼일을 마치고 나가려는데 문이 안 열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A는 안에서 쾅쾅쾅쾅 하며 문을 두드리니 아까 그 원장 아들이 문을 열어주고는 그 A의 머리를 ‘빡’ 세게 때렸다고 한다. 갑자기 말이다. 때린 이유는 이것이다. 단지, 그 밑에 있는 화장실을 썼다고 머리를 때렸다고 한다. 이 이유가 아니라면 머리를 때릴 이유도 없고, 부모님 조차 A의 머리를 포함하여 어느 곳이든 때린 적이 없었던 A는 머리를 맞으면서 그 맞은 손의 힘에 의해 옆에 문짝이랑 박아 더 아팠다고 했다. 그 원장 아들의 이름을 마음 같아서는 밝히고 싶지만, 그 사람의 개인정보이기도 하고 요즘 세상이 무서워 무슨 짓을 할지 두려워 그냥 이니셜만 남긴다.
원장: KGH. 원장 아들: L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