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우울한 날일까, 행복한 날일까 해지는 생각했다. 평범하게 열아홉 살 여학생이 되고, 혼자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다니 말이다.
오늘은 이사하는 날이다. 엄마는 해지가 어릴 때 돌아가셔서 아빠와 둘이 살고 있다. 둘이라고 해도 아빠는 유명 검사에 항상 바쁘셔서 자주 보지는 못해서 전화통화로 안부전화를 하는 것이 전부다. 그래서 고모가 자주 집에 오신다. 이번 이사도 일 때문에 바쁘신 아빠를 대신해 고모와 할머니도 와주셨다. 이전 집에서 화제가 나는 바람에 이 곳으로 오게 되었는데 고등학교 3학년에 전학이라니 거기다 도시도 아니고 시골 촌구석으로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어릴 때 엄마와 아빠가 살던 집이라는 것이 마음에 든 것뿐이다. 아빠 말씀으로는 두 분은 고등학교 동창이 이라고 들었다. 엄마가 중학교 때 이 곳으로 이사를 와서 고등학교 때부터 같이 다니게 됐다고 했다. 엄마도 도시에서 이사를 와서 처음엔 이 곳을 싫어했다고 들었는데, 지금 해지도 그렇게 이곳이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이제 다른 학교에 다녀야 되는데, 열아홉에 전학이라니, 나중에 수능이라도 잘 봐야지."
해지는 밖에 있는 고모의 정원을 보며 다시 도시로 갈 생각을 했다.
고모는 꽃들을 좋아하신다. 아주 동안이시고 평소에도 이곳에 와서 꽃을 가꾸셔 예쁜 꽃들이 자라나고 있다. 아마 꽃집을 해도 성공했을 것 같지만 아쉽게도 학교 선생님이시다.
여기서 다른 집들과는 거리가 있다. 자전거를 타면 십분 정도면 되지만 걸어가기엔 조금 멀게 느껴져 이 집이 더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해지는 심심함의 한계를 느꼈는지 뭔가 할 일이 없는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할머니께서 점심 준비를 하고 계셨다. 이전에는 아파트에 살아서 그런지 정원이 비치는 거실이 보이고 넓은 주방을 보니 새로운 느낌이었다. 해지는 조용히 할머니 옆으로 갔다.
뭔가 도와 드리고 싶었다.
"할머니 제가 뭐 도와 드릴 일 없어요?"
그녀는 잠시 생각하고 말했다.
"그럼 저기 접시 좀 꺼내 줄래?"
할머니는 찬장 위에 접시를 가리켰다.
"물론이죠."
해지는 살짝 까치발을 서고는 접시를 꺼내어 할머니에서 드렸다. 해지는 같은 또래 여자 아이들에 비해 키가 큰 편이다. 그리고 검정색의 중단발 머리에 포니테일을 하고 다닌다.
"또 도와드릴 일은 없어요?"
"그래, 조금 있으면 아빠가 올 테니 마중 나가렴."
할머니는 상냥하게 말했다.
"네."
잠시 후 아빠가 집으로 들어왔다. 새 집을 구경하며 두리번거리시더니 기분이 좋으신 듯 했다. 해지는 아빠의 가방을 받아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수고하셨어요."
아빠의 방은 생각보다 넓지는 않다. 옷장과 침대, 작은 서랍장이 전부였다.
"이사 온 집은 마음에 드니?"
아빠는 해지에게 물었다.
"솔직히 마음에 든다고는 못 하겠어요."
"그래, 짐 정리는 다 했고."
해지의 기분은 그렇게 좋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네, 다 했어요. 아빠 것도 할머니가 대충 해주셨어요."
해지는 힘들게 일하고 오신 아빠에게 괜히 짜증을 내며 방을 나왔다. 할머니와 이모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점심준비가 되었는지 오랜만에 가족끼리 앉아 점심을 먹었다. 오늘 점심은 갈비찜 해지가 좋아하는 요리 중 하나다. 불편한 젓가락을 내려놓고 손으로 갈비를 찢어 먹는 해지는 주변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식사 후 간단히 정리를 도와드린 후 아까 일이 신경 쓰인 해지는 아빠 방으로 들어갔다. 아빠는 작은 오르골을 들고 있었다.
"그 소리 좋다."
해지는 작게 애기했다.
"엄마 물건이란다."
엄마란 말에 살짝 놀랐다.
"다시 보니까 해지 너 엄마 고등학교 때랑 똑같아."
"제가요?"
해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이번에 갈 학교도 아빠랑 엄마가 졸업했던 학교야. 교복만 입으면 못 알아보겠어..."
아빠는 슬픈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그렇게나 닮았어요?"
"그렇다니까."
해지는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거실의 거울을 보며 실실 웃으며 히죽거렸다. 엄마의 얼굴을 모르는 해지는 엄마의 얼굴을 상상하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