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거의 넘어갔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할말을 다하려고 하다가 바로 포기를 하고 입을 굳게 다물어버렸다. 오돌오돌 떨기까지 했다.
“방금 뭐랬어? 방우? 한방……”
이를 어쩌나! 방우란 이름이 숙이 귀에 벌써 들어버렸다.
“이모! 방금 뭐라고 했어? 방우! 방우 라고 했지? 알고 있어서면서도 왜 모른 척 했어?”
“잠깐만! 잠깐만!”
명치 부근에서 숨이 꼴딱 막힌 게 분명해 보였다. 주먹으로 가슴을 세게 두드리면서 냉장고로 허둥대며 쫓아가고 있었다. 한 손은 냉장고 앞에서 다른 한 손은 휴대폰 앞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욕심이 과했다. 누군가에게 확인할 의도가 분명해 보였다.
한 주먹 속에 삼킨 휴대폰이 벌벌 떨고 있었다. 다른 한 주먹 바깥은 계속 가슴에 부딪혔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허둥대느라 가슴이 잘 두드려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 냉장고 문을 열다가 기어이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쌩 난리를 부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생수통을 통째로 입으로 삼켰다. 입으로 들어갔던 생수가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며 휴대폰을 침수시킬 것만 같이 보였다.
‘왜 저러지?’
이모 탓으로 조만 간에 올지도 모르는 기절초풍할 사변에 허둥대지 않으려고 대비할 사람은 정작 본인인데 이모는 마냥 귀여움만 받던 외동딸의 어릴 때 버릇이 또 나왔다. 갈팡질팡 당황만 했지 한번도 자기 스스로 위급한 상황을 슬기롭게 대처한 적이 없었다.
숙이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바로 등을 향해 아주 세게 날려버렸다.
“악!” 동시에 두 여자 입에서 비명소리가 나왔다.
“아야! 야! 너 왜 이렇게 세게 때려”
놀란 토끼 눈으로 숙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숙이가 손목을 부여잡고 이모가 마시려던 생수를 손목에 붓고 있었다. 아무래도 접 질러 진 것 같았다. 온 몸에 소름이 오싹 끼쳤다. 그런 숙이가 안중에도 없는 지 복희가 거의 침수 되다시피 한 휴대폰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찰칵 소리가 들렸다. 어이가 없던 숙이가 멀뚱히 잠겨 버린 문을 보다가 싱크대로 가서 찬물을 털어 손목을 식히고 있었다.
복희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근식아! 혹시 우리 숙이와 방우하고 어떤 사이야?’
‘숙이? 누군데?’
‘숙이 몰라?’
‘모르는데’
‘동기잖아?’
‘죄송! 집사람 들어오는 중’
서운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런 문자는 본인도 수십 번은 날렸다. 문자에 빠져 있다가 들킬 뻔 한적도 여러 번 있었다.
우려했던 참사가 전혀 엉뚱한 데서 불똥이 튀어오는 것 같아 억울하기도 했다. 방우가 출신 성분을 밝힐 때 깨끗하게 본인은 숙이 이모라는 사실을 밝혔더라면 이렇게 숨을 필요는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방우란 놈은 몰라도 근식은 충분히 받아들이고 비밀을 지켜줬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후회만 더 몰려 왔다.
그보다 먼저 방우를 왜 몰라봤을까 와 무시하듯이 모진 소리를 내뱉은 일들도 떠올랐다. 본인은 몰라보더라도 귀사대기까지 맞은 놈이 과연 몰라 봤을까? 이용 당한 듯한 지저분한 생각도 들었다. 근식이와 행복했던 시간들이 근식의 입을 통해 방우 입을 통해 숙이에게도 떠올리다가 문득 의기소침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자신이 근식과의 숨길 사이 인만큼 숙이도 마찬가지였다.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하고 천만다행이란 생각도 했다. 자칫 판단을 잘못했으면 조카와 이모가 한 놈을 두고 민망해질 뻔 할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또 이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릴 적에 숙이와 방우를 보면 질투밖에 나지 않아 내가 못 먹을 바에야 남도 아닌 조카도 못 먹게 만천하에 공표해버렸다. 만약에 그 사실을 방우가 알고 그때의 앙갚음으로 근식과의 사이를 만천하에 자신처럼 같이 하게 되면 오게 될 피해가 또 움츠리게 했다.
결혼 전과 후의 애인은 단어 자체가 다르다는 걸 복희가 모를 만큼 우둔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들통이 나면 가정은 파산이 될 건 불을 보듯이 뻔하지만 파탄의 이유가 천지차이다. 숙이는 사랑이란 말로 이해 받고 덮고 넘어 갈 수도 있지만 자신은 불륜이란 꼬리를 달고 다녀야만 한다. 세상 참 평등하지 못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나저나 숙이 말대로 정말 숙고대죄를 해야 하나? 불안하기만 했다.
복희가 불안에 떠는 동안 근식이가 집사람이 아닌 정미가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근식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요즘은 친구들이 조용하네. 만나자는 말도 없고”
“그러게. 다들 바쁘게 사는 모양이지. 오늘은 어디로 갈 거야?”
“전부 다 가봐서 특별히 갈 때도 없다. 그냥 시원한 바닷가로 갈까? 별이나 따러 갈까?”
편안하게 농담까지 섞어가며 말을 터놓고 하는 사이가 될 만큼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낸 것 같았다.
“그래! 말 나온 김에 가까운 산길로 한번 가보자. 오랜만에 별 구경 하고 싶네”
“너무 늦지 않을까? 나는 괜찮은데”
“오늘도 일찌감치 가게에 와서 돈 들고 갔다. 분명히 한잔하고 올 건데 뭐. 누군 하루 종일 서서 돈 벌고 누군 그 돈 들고… 말을 말자. 그 놈 얘기하니까 갑자기 피곤해지네”
근식이가 빙긋이 웃으며 알아서 조용한 곳으로 들어가 주차를 했다.
“잠시 쉬었다 가자”
정미가 아무 말없이 근식을 따라 갔다.
“나 오늘 피곤해서 씻기 싫은데. 여기만 씻고 올게”
민망한 미소를 짓고 거기를 쳐다보고 근식에게 살포시 안긴다.
“이대로가 훨씬 좋습니다. 허허. 씻기는 뭘”
근식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정미 등으로 갔던 손결이 서서히 부드럽게 움직이면서 마지막으로 정미 골반에 갔다. 그때 근식이가 복희가 아프다고 칭얼대던 부분이 떠올랐다. 시선은 거기 꽂혀 있었고 입 꼬리는 양 옆으로 천정까지 올라가 있었다.
“내가 할게”
“마무리까지 내가”
근식이 손이 정미 볼록한 음부를 쓰다듬다가 장난끼가 발동했다. 뜨끈한 입김을 내고 있었다. 엷음 신음소리를 내면서 허리를 살짝 세워 근식이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간드러진 소리를 낸다.
“간지러워~ 아~~ 호호호. 장난치지마. 불지마… 어어어~”
근식은 정미 요구대로 그대로 따랐다. 복희가 엄살이 또 떠오르며 힘이 더 불뚝 쏟아 오르고 있었다.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몸이 단 하나지만 근식이 마음 속에는 둘이 있었다.
“아~~ 오~~~늘 왜 ~~~ 이래~~ “
찰떡 두드리는 소리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었다. 아마 당분간 정미는 병원 신세를 또 저야 할 판이 되어 버렸다. 근식은 다시 복희에게로 갈 게 불을 보듯 뻔했다.
오늘은 피곤하다는 정미 마음을 잘 헤아려주듯이 다른 날보다 더 강렬하고 짧은 밤을 보내고 정미는 근식이 차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인다는 게 깊이 잠이 들어버린 모양이었다.
“일어나세요. 여사님”
“어! 몇 시야?”
“딱 맞춰서 왔다”
정미가 자기 차에 올라 출발을 하고 시야에서 사라질 때쯤 근식이가 휴대폰을 쳐다보고는 정미도 복희도 보낸 문자를 삭제하고 입 꼬리를 한번 치켜 세워 빙긋이 웃으며 집으로 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