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말야. 너…너, 그거. 소설… 그거 괜찮냐.”
두 사람은 술이 잔뜩 들어가서 간신히 정신줄만 부여잡고 있는 상태가 되었다. 고개만 앞뒤로 휘청거릴뿐, 서로 말이 없어졌을 무렵, 현철이 고개를 반쯤 숙인 채 인수에게 손가락질 하며 말했다. 술에 취해서인지 현철이 혀는 잔뜩
꼬여있었다. 대답하는 인수 역시 고개를 반 쯤 숙인 채 술잔만 멍하게 잡고 있다가 눈동자만 위로 슬쩍 올리며 대답했다.
“뭐……뭐가요?”
“그거어, 소설 말이야, 소설……”
“소,소설…… 그게 왜요?”
“너, 너. 아직 젊잖아. 바꿀 기회, 있잖아…… 바꾸는게 낫지……않겠……냐?”
“아,아아……그거…….그래도……이게 하고싶어요.”
현철은 술기운을 빌려 인수에게 가장 해주고 싶었던 말을 꺼내었다.. 다른 길을 걸어라. 현철이 보기엔 인수는 아직 새파랗게 젊었다. 다른 길로 가면 얼마든지 더 나은 선택지가 많을텐데, 굳이 안되는 소설만 붙잡고 있는 인수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럼에도 인수가 소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기에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두기만 했던 말이었다.
인수 역시 소설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하지만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포기하기엔 소설이 좋았다. 자신이 무언가를 창작해 낸다는 것. 누군가가 그것을 읽고 좋아해준다는것. 그게 너무나도 좋았다.
“소설, 그거…… 돈 벌기 힘들잖아……. 지금은 괜찮아도…… 몇 년, 몇 년만 지나면, 후회할지도 몰라….그래도, 괘, 괜찮겠냐?”
“……제가……선택한 건데. 후회는, 안……안해요. 그냥, 이야기…… 쓸만한 이야기만 있으면……돼요.그럼 대박날거야……히히.”
웃으며 말하는 인수를 보던 현철은 고개를 들고 숨을 내뱉었다. 그러더니 턱짓으로 인수의 뒤쪽을 가리켰다.
“푸우우-, 그, 이야기가……없는거면, 저어기 산에라도 가봐. 귀신, 귀신. 그, 그런게 어딨……겠냐? 그냥 가서 바람 한 번 쐬면……이야기 생각 날지도 모르지……. 귀신나오면 그걸로 이야기 쓰면 되겠네……하하.”
현철은 자신이 말하고도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에 인수도 함께 웃으며 술잔을 쥔 손을 앞으로 내밀어 살짝 흔들며 대답했다.
“그거, 괜찮네 하하. 혹시, 귀신만나서 나 잡아가면. 아저씨 탓이에요? 건배!”
“그래, 그럼…… 나 찾아와라. 건배!”
그렇게 둘은 마지막 한 잔을 마시곤 동시에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았다. 결국 누가 더 술이 센지는 알 수 없었다.
몇 시간 후. 소변이 마려워 눈을 뜬 인수는 멍한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현철은 아직도 테이블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인수는 슬쩍 웃고 비틀거리며 일어나 지갑에서 만원짜리 세 장을 꺼내어 현철의 옆에 두고서 포장마차 밖으로 나갔다. 휴대폰을 보니 11시 20분. 꽤 늦은 시간이다. 당장 소변이 마려웠지만, 아직은 거리에 사람이 있을 시간이었다. 인수는 어기적 거리며 산으로 향했다. 산의 초입에서 적당히 나무 뒤에 몸을 숨기면 될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10분 정도 걸으니 방광은 터질것만 같았고. 인수의 인내심이 한계에 봉착했을 때 간신히 산의 입구에 도착했다. 인수는 바지 지퍼를 내리며 적당한 나무뒤로 돌아가 소변을 보았다. 술기운 탓에 몽롱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별이야 원래 잘 안보였고, 구름탓에 달빛도 드문드문 비추는 밤이었다. 인수는 그렇게 뭐하나 보이지 않는 하늘만 멍하게 바라보며 주섬주섬 지퍼를 올렸다. 집으로 가기위해 걸음을 옮기려던 인수는 불현듯 현철의 말이 떠올랐다.
“귀신….”
인수는 뒤를 돌아보았다. 먹칠을 해놓은 듯 시커먼 숲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귀신이야기를 몰랐더래도 들어가기가 꺼려질 정도의 어두움. 하지만 인수의 머릿속에는 자꾸 현철이 말한 귀신이라는 단어가 계속 맴돌았다. 진짜로 볼 수만 있다면 그만한 이야깃 거리가 없다. 인수는 맨 정신이면 절대 하지않았을 행동을 술기운을 빌려 실행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조금씩, 숲을 향해 걸어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공포와 긴장, 작은 기대감과 흥분이 섞여 술이 조금씩 깨기 시작했다. 어기적 거리던 걸음도 이제는 조금 비틀거릴 뿐. 제법 사람답게 걸을 수 있게됐다. 인수는 휴대폰을 보았다. 00:22분. 어느샌가 새벽이 되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제는 어둠에 눈이 익어 구분이 가기 시작한 나무들과 풀벌레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역시나 귀신이 나온다는 것도 다 소문인가 싶어 인수가 돌아가려는 때, 갑자기 풀벌레 소리가 사라졌다. 인수는 순식간에 조용해진 주위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걸음을 옮기려하였다. 그 때.
딱-
“?”
인수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손가락으로 튕긴 것 같기도. 입으로 낸 것 같기도 한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곳엔 여전히 시커먼 숲만 있을 뿐이었다. 잘못들었나 싶어 인수가 다시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딱-
“……뭐야?”
분명히 소리가 났다.
그것도 방금전보다 더 크게.
인수는 시선을 이리저리 옮겼다. 아무리 봐도 나무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달이 구름에서 벗어나 옅은 달빛이 깔리기 시작했다. 보다 나아진 시야로 주변을 정신없이 둘러보던 인수는 ‘귀신’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설마했었는데 진짜로 귀신이 있는 것 같았다. 공포심에 민수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본 채 아직은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딱-
“!”
소리가 앞에서 들려왔다.
인수는 고개는 뒤를 돌아보고 몸은 앞을 향한 자세 그대로 멈춰버렸다. 도저히 앞을 볼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안그래도 취한탓에 불안정한 몸이 자세마저 이꼴이니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인수는 자세를 끊임없이 바로 잡으면서도 고개를 돌릴 생각은 하지 못했다. 뺨을 따라 식은땀이 흘렀다. 그렇게 잠시간 인수가 굳어있자 앞쪽에서 다시 한 번 소리가 들렸다.
“왜 앞을 안봐?”
“!!!!”
인수는 미칠 것 같았다. 도저히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였다. 냉동고에서 나오는 한기와도 같은 목소리에 몸의 떨림이 격해지기 시작했다. 인수은 입을 따닥거리며 말했다.
“……너, 누,누,누구냐?”
“그건 고개를 돌려서 확인하면 되잖아?”
인수의 물음에 앞에있는 무언가가 간단히 대답했다. 인수는 조금 뒤로 물러나 천천히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눈을 깜빡이면 눈을 떴을 때 눈앞에 있을까 두려워 눈조차 깜빡이지 못했다. 그렇게 먼저 보인것은. 뿔. 사슴과도 같은 뿔이었다. 그리고 뿔을 따라가니 인간과 같은 머리가 나왔다. 마침내 인수의 머리가 완전히 앞을 향했을 때, 인수는 눈앞의 존재를 보곤 몸이 굳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