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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차이기만 하는 여자
작가 : 허주영
작품등록일 : 2019.11.8

중학교 때 시작한 풋사랑을 시작으로 사랑을 하는 족족 차이기만 하는 여자 강지영.
그런 지영을 25년간 바라보기만 하다 결국은 파혼까지 당한 지영에게 사랑을 고백해버리는 서민준.
아놔, 지나간 모든 사랑의 디테일한 깊은 부분까지 구석구석 알고 있는 남사친과 결혼할 수 있을까? 아니 연애라도 할 수 있을까?

 
#9. 첫키스는 포도맛.
작성일 : 19-11-08 13:30     글쓴이 : 허주영     조회 : 435     추천 : 0     분량 : 6,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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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첫키스는 포도맛.

준현은 지영을 데리고 노래방 뒤편에 으슥한 골목으로 데려갔다.

지영도 바보는 아니었다.

앞으로 펼쳐질 일이 대충 어떤, 썸띵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고3 수험생이라고 드라마를 안보는 것도 아니고, 연애 하는 친구들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지영은 설레듯 작은 한숨을 내 뱉고 준현을 따라 순순히 골목으로 들어갔다.

준현이 벽에 기대어 한쪽 발을 벽에 기역자 모양으로 붙이고 먼 하늘을 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은근하게 준현을 비추는 깜빡이는 네온사인이 분위기를 한껏 무르익게 만들었다.

“후,,, 오늘 숨 막히게 조여 왔던 숨통이 탁 트였다.”

“......”

지영은 잠시 머뭇거리다 준현의 옆자리에 벽을 기대어 서서 준현이 하는 푸념을 들어주었다.

“넌 오늘 어땠어? 스트레스 좀 풀렸어?”

지긋한 눈으로 지영을 바라보는 준현.

지영의 볼이 한껏 달아올랐다.

“어,,, 응,,, 덕분에...”

“남들은 내가 일등만 해서 독한 놈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엄청 나약한 존재야.”

그랬구나...

“부모님의 기대, 선생님의 기대, 친척들의 기대, 친구들의 질투... 기대와 질투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산다는 건 너무 괴로운 일이야.”

흑,,, 그랬구나,,, 우리 준현이가 힘들었구나...

지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안쓰러운 듯 눈썹을 모아 준현의 푸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준현이 한 푸념이 어떤 내용인지 지영은 하나도 기억이 안났다.

그냥 그런 그림, 그런 상황, 그런 느낌이 좋았다.

곧 이어 벌어질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은 키스를 생각하며 설레는 숨을 참기도 힘들었다.

돌연 준현이 방향을 돌려 지영을 가로 막았다.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이 여자주인공을 집 앞에 바래다주면서 키스하기 직전에 그런 장면과 모든 것이 똑같았다.

벽에 붙어 있는 지영과 양 손으로 벽을 짚고 은근하게 바라보는 준현.

지영은 가슴이 뛰었다.

미간에 약간 힘을 주면서 입술을 질끈 다물었다.

준현이 벽에 기대고 있는 지영의 턱을 검지로 살포시 들어 올렸다.

지영이 부끄러운 듯 수줍게 준현을 바라보았다.

준현은 지영의 단발머리를 귀 뒤로 정리해주고 고개를 살짝 꺾어서 지영에게로 다가왔다.

쿵쾅쿵쾅... 강지영의 첫키스,,, 레디,, 액션!

코끝에 포도맛 사탕향이 맴돌자 지영이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지영의 입술에 촉촉한 준현의 입술이 닿았다.

그리고 이내 지영은 자신의 입술이 준현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준현의 호흡이 빨라졌다.

지영도 두 손으로 바지의 옆단을 꽉 쥐었다.

준현의 한쪽 손은 지영의 목을 끌어안다시피 했고 다른 손은 어느새 지영의 가슴 위를 더듬듯 산책하고 있었다.

준현의 포도맛 나는 혀가 지영의 혀를 감아말았다.

지영의 가슴은 낯선 이방인을 만나서 두려움에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고 지영의 두 손은 여전히 힘주어 바짓단을 꽉 쥐고 있었다.

준현은 키스가 처음인 지영을 마음껏 리드하며 으슥한 뒷골목의 자유를 누렸다.

***

민준은 자신의 집 앞에서,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지영의 집 앞에서 삼십분 넘게 지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녀가 삼십분 동안 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상상하는 민준에겐 아마도 스파이가 정보국에 끌려가서 고문을 받는 것과 같은 레벨의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민준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영이 아이스크림콘을 먹으며 백팩을 메고 집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다행이 준현은 옆에 없었다.

민준은 자신을 보며 멈칫 놀라는 지영을 똑바로 쳐다보며 애써 침착하게 물었다.

“어디 갔었냐?”

“야! 넌 어디 갔었냐? 우리가 너 찾다가 그냥 왔잖아.”

지영이 오바스럽게 대꾸했다.

민준은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맞받아쳤다.

“화장실 갔다 오니까 사라진 게 누군데?”

버럭 화를 내던 민준이 고개를 들이밀고 지영을 빤히 쳐다보았다.

의심스런 눈초리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영을 취조하듯 했다.

그러자 지영은 눈이 땡그래지며 한손으로 입을 가리고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티나? 키스한 거 티나?”

쿠구궁!!! 콰광 콰과광!!!

민준의 머릿속이 천둥번개로 가득 찼다.

“목도 빨갛게 되고 그런다는데,,, 티 안나지.. 봐봐...”

민준은 이리저리 목을 보여주는 지영을 어이없게 보다 많이 구겨진 지영의 셔츠에 시선이 꽂혔다.

지영의 가슴 위였다.

후,,, 지영과 준현이 사라진 30분 동안 최소한 자신이 생각한 무수한 상상 중에서 최소한 두 가지는 이미 벌어진 뒤라는 생각이 들자 기운이 푹 빠졌다.

“준현이랑,, 키스했냐?”

“응,, 나 완전 쫄았잖아... 처음이라서...”

어이없다는 듯이 민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너 걔랑 사겨?”
 
“아직,,, 준현이가 사귀자 그런 말은 안했는데,,, 사귀지 않을까?”

“걔가 키스한 애가 열 명이면 어쩔래?”

“야,, 서민준! 넌 전교 일등하는 애가 그렇게 날라린 줄 알아?”

“공부 잘한다고 꼭 범생일리는 없지.”

“너,, 진짜 웃긴다. 하긴,,, 너도 담배 펴서 내가 아주 깜놀이야. 전교 백등하는 주제에 전교 일등하는 울 준현일 모함하면 되냐?”

“너는 전교 몇등인데?”

민준이 열 받아서 지영의 아픈 곳을 찔렀다.

우씨, 성적 얘기하지 말랬지? 4년제 어느 하나는 가겠지!!!

지영이 민준을 확 째려 보며 말했다.

“남이사! 그래 너보다 못 한다 됐냐? 확! 너 앞으로 우리 준현이 날라리라고 하면 누나한테 혼난다.”

지영은 한 팔을 들어올려 민준을 때리려는 시늉을 하다 조심스럽게 열쇄로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민준은 현관문을 닫는 지영의 뒷모습을 올려다보다가 깊은 한 숨을 쉬고 대문을 열었다.

그리고 자기 방으로 가서 수학 문제집을 펼쳤다.

‘전교 일등? 좋다. 서민준, 한다면 한다! 원준현,,, 너 꼭 한번 이겨보고 졸업하겠어!’

청소년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했던가?

민준은 독기를 품은 듯 하루에 네 시간만 자고 공부만, 공부만 했다.

지영은 민준이 갑작스레 공부를 열심히 하는지 마는지 관심도 없이 준현만을 바라보았지만 민준은 그런 지영의 뒷모습을 보며 이를 갈았다.

오히려 갑작스레 변해버린 민준을 보며 긴장한 것은 수경이었다.

수경도 덩달아 열심히 공부에 열중했다.

수능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이 서로서로 조금씩 날카로워졌다.

그도 그럴 것이 점수 하나차이로 등급이 갈렸으니까...

모두들 조그만 교실에서 경쟁을 하느라 더 이상 헤헤거리는 친구일수만은 없었다.

지영도 대학은 가야했으니까,,, 막판 스파트를 내며 열심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학원으로 가서 또 수업을 열심히 듣고 모르는 문제를 공부했다.

전교 일등 준현과 사귀고 있어서 좋은 건 모르는 문제는 언제든지 척척 설명을 해준다는 것이었다.

문제를 설명해주면서 부드럽고 사랑스런 눈으로 지영을 쳐다볼 때면 당최 준현이 하는 설명이 귀에 들리지 않았지만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들은 채를 했다.

첫 키스 이후로 준현은 점점 더 대담해졌다.

“공부 잘하는 애가 키스도 잘한다. 우리,,, 할래?”

이건 또 무슨 이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어떻게 또 알았는지 학원 뒤편의 으슥한 곳으로 지영의 손을 끌고 들어가 키스를 하곤 했다.

지영은 혹시나 지나가는 사람들이라도 아니 친구들이라도 볼까봐 늘 조마조마했지만 준현은 남들의 이목 따위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지영의 입술을 탐했다.

준현과 키스를 하고 있으면 온몸에 전기가 감전된 것처럼 찌릿찌릿했다.

준현의 입술에서는 항상 포도사탕 맛이 났다.

그리고 지영도 횟수가 거듭될수록 키스의 맛을 알아갔다. 달콤한 포도맛을......

***

세상에는 정말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많다.

그 중 하나는 독기 품은 민준이 전교 백등에서 전교 10등을 찍은 것이다.

또 하나는 같이 키스를 하며 일탈을 즐기는 준현의 성적은 그대로인데 어찌해서 지영 자신만 등수가 쭉쭉 미끄러져지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대학이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점점 멀어져갔다.

그러거나말거나 애가 타는 것은 지영이 아니라 민준이었다.

지금은 공부가 먼저라고, 아니 연애를 하더라도 공부를 하면서 하라고 백번을 타일러봤자 지영에게서 돌아오는 말은 ‘누나가 알아서 해. 신경 끄셔!’라는 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영은 수경에게 준현과 키스를 하는 곳을 가르쳐준다며 수경을 끌고 밀애의 장소로 향했다.

익숙한 실루엣!

그 곳에서 준현은 다른 여학생과 키스를 하고 있었다.

이 사건 실화냐!

수경이 말렸지만 설마설마하며 다가간 그곳에서 지영은 준현을 보고 얼음처럼 서 있었다.

짧은 비명을 지른 건 벽에 기대어 준현과 열렬하게 키스를 하던 이름 모를 여학생이었다.

당황한 준현이 뒤를 돌아보는 순간 여학생은 가슴이 열린 옷을 추스르고 어둠을 빠져나갔다.

“주,, 준현,,아.”

준현이라고 불러는 봤지만 지영은 결코 저 남학생은 준현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아, 씨발...”

분명 준현의 목소리였다.

지영은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튼실한 종아리에 이렇게 힘이 없어질 줄이야.

준현은 짜증 섞인 얼굴로 지영을 노려보다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아헝헝... 나한테 어떤 변명이라도 해야 하는거 아니야? 아니 사과라도 해야지.”

눈물콧물 쏟아내며 우는 지영을 달래던 수경은 엄마가 데리러 오자 미안해하며 지영을 떠났다.

[민준아, 지영이 많이 울어. 준현이 때문에. 니가 위로 좀 해줘.]

수경도 드라마에서나 보던 이런 장면에 참여하게 된 것이 처음이라서 급한 마음에 민준에게 SOS 보냈다.

지영은 수경을 보내고 편의점으로 가서 맥주를 사서 동네 놀이터에서 세상이 돌아버릴 때 까지 마셨다.

“세상이 나한테 왜이래? 아니 준현이 니가 나한테 왜이래? 아이, 씨발? 너는 씨발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 미안이라고 해야지! 으헝,,, ”

지영이 알파벳 Z를 그리듯 걸으며 장희빈이 다시 살아 돌아온 듯 자신의 마당에서 패악을 부릴 때 다행히 수경에게 문자를 받은 민준이 학원에서 헐레벌떡 뛰어와 지영의 옆에 있어 주었다.

“저런,, 정신나간 년. 니가 그러니까 성적이 쭉쭉 슬라이딩이지. 지금 날을 새고 공부를 해도 대학을 갈까말깐데,, 술을 쳐먹고 다녀? 강지영! 니가 제정신이야?”

잔뜩 독을 품은 지영모의 목소리가 최고 데시벨을 찍었다.

“그래, 나 제정신 아니야. 고3이면 숨도 못 셔?”

퍽! 등짝이 따끔했다.

“그래. 숨도 못셔. 죽은 듯이 공부를 해도 니 성적으로 어딜 갈 데가 있다고 숨을 쉴라 그래? 코입 다 틀어막고 공부만 해도 붙을까말깐데!”

“갈 데 있어! 나도 갈 데 있다고~~!”

지영이 술기운에 용기가 불뚝불뚝 솟아 지영모에게 바락 대들었다.

지영모는 대문 옆에 세워진 빗자루를 잡아서 지영의 팔을 잡고 엉덩이를 겨냥해서 매타작을 하기 시작했다.

지영의 곡하는 소리와 지영모의 한탄소리가 온 동네를 뒤덮기 전에 대문을 벌컥 열고 들어 온 민준이 마당에 무릎을 꿇고 지영모에게 소리쳤다.

“아줌마! 죄송합니다. 제가 술 먹자 그랬어요. 죄송합니다. 지영이 딱 맥주 한 모금 마셨는데 저렇게 됐어요. 죄송합니다.”

지영모는 민준과 지영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무렴, 내 딸 지영이를 내가 잘 아는데 설마 맥주 한 모금일까!

“낼부터 제가 공부 도와줄께요. 아줌마! 죄송합니다.”

아이구야! 지영모는 저렇게 눈 뒤집어 진 딸한테 더 말해서 무엇 하나 싶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민준과 지영이 둘만 남아 지영의 가슴에 남은 상처처럼 날카로운 초승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영은 네 살짜리 꼬마처럼 바닥에 양다리를 벌리고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다가 속이 메스꺼운지 웩웩거리다가 또 목청껏 소리 내어 울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민준은 웩웩거리는 지영의 등을 쓸어내려 주며 혼잣말을 했다.

“강지영, 내가 말했잖아. 준현이 키스하는 애가 열 명이면 어쩔거냐고... 에흐,,, 이 푼수야. 넌 기껏 한번 보고 이 난리야? 난 너랑 준현이랑 키스하는 거 열 번도 더 봤는데.... 강지... 아마 넌 나였으면 피를 토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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