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작가 : 은이설
작품등록일 : 2019.10.25

제 이름은 설입니다. 몸이 없어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남들처럼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제 처지가 이 모양이라 사람들 몸에 들어가 생활합니다. 다른 존재에 의지하면서 지낼 수밖에 없는 붙살이지요. 그리고 동거인이 염원하는 누군가의 몸 안으로 동거인과 함께 이동하면서 삶을 유지하지요.
최근에는 제 이야기를 누구에게라도 들려주고 싶더라고요. 속이 답답해서…, 털어놓고 싶은 사연이 무궁무진하거든요.

 
셋 젊고 능력을 갖춘
작성일 : 19-10-25 20:26     글쓴이 : 은이설     조회 : 600     추천 : 0     분량 : 16,863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셋. 젊고 능력을 갖춘

  이교수님은 집에서 나와 삼십분 정도 걸으면 도착하는 파워헬스에서 형철씨를 만났습니다. 현금으로 육십 만원을 내면 일 년 동안 이용 가능한, 머리가 반나마 벗겨진 오십 초반 주인 남자가 트레이너에 청소부 역할까지 하는 소박한 헬스장이었지요.
  길 건너 아파트 단지 지하에 운동 공간이 갖춰져 두어 달 남짓 다니기는 했습니다. 큰아들이 거주하는 단지여서 더불어 드나들었지요. 워낙 비싼 아파트에 마련된 시설이라 기구는 최신식으로 쓸 만했는데 샤워장소가 없는 점이 께름칙했어요. 한겨울에 땀을 흘린 채로 집까지 걸어가다 보면 감기 걸리기 십상이잖습니까. 득보다 실이 크다는 결론을 어렵지 않게 도출했지요. 이용자 대부분이 고령자라 분위기가 침침한 측면 역시 영향을 미쳤고요. 이교수님이 낯선 노인들을 불편해했습니다.
  하루를 안 빠지고 꾸준히 해오던 운동인데 중도에 그만두기 아쉬웠어요. 그래서 따지고 따져 옮긴 장소가 오층 건물 꼭대기에 자리 잡은 파워헬스였습니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진 점이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펀펀히 남아도는 시간, 시간을 보내기에는 최적화된 조건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지요.
  첫 날에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쉬엄쉬엄 걸어갔어요. 탈의실에서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헬스장 안에 들어섰는데 이교수님은 곧바로 얼굴은 돌려버렸습니다. 보기 민망한 아줌마들이 한가득 이었거든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여자들이 몸에 딱 붙는 윗도리를 입고 너풀거리는 짧은 치마에다 형광 타이즈까지 신고 걸쳤는데 꼭 서양 무당들 같았어요.
  어영부영 운동을 마치고 헬스장을 나서면서 안내판을 읽었습니다. 오전 아홉시부터 열한시까지 에어로빅 오십 분, 요가 오십 분이 잡혔더라고요. 여자들을 위한 시간대로 설정해놓고 프로그램을 운영했지요.
  요란한 음악에 맞춰 함성을 지르고 사방으로 뛰어대는 여자들을 못 본 체할 자신이 없어 다음 날은 점심을 먹고 갔습니다. 헬스장에 달랑 이교수님 뿐이었습니다. 한 사람 운동하자고 넓디넓은 헬스장에 전등을 켜는데 꽤나 미안하더군요. 관장인지 주인인지 머리 벗겨진 남자 역시 내심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이었고요.
  적절한 시간대를 고심하다가 오후 다섯 시 즈음에 맞추어 갔더니 회원 서너 명이 러닝머신 위에서 걷기 중이더라고요. 조용하고 느긋하게 운동할 만했습니다. 맞춤한 때를 찾았다 흡족해했는데 사모님이 문제였습니다. 이교수님이 한 시간여 남짓 몸을 풀고 씻고 돌아오면 하필 그 시간에 드라마를 방영했거든요. 사모님은 허겁지겁 저녁상만 차려 놓고 텔레비전 앞으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식탁에 혼자 떨어져 밥숟가락을 들기가 영 마뜩찮았던 이교수님이 참지를 못하고 통박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되레 사모님한테 무안만 당했지요.
  “식사하는 사람 내버려 두고 뭐하는 짓인가.”
  기운을 되게 쓰고 난 뒤라 허기가 가득했지만 이교수님은 부러 숟가락을 들지 않았습니다.
  “드라마 하잖아요. 나는 드라마 보고 먹을 테니까 당신 먼저 드세요.”
  사모님이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충 받아넘겼습니다.
  “내가 무슨 밥 빌어먹으러 온 객꾼이야. 덩그러니… 밥이 넘어가겠나!”
  “왜 못 먹어요. 남들은 잘만 먹더구먼.”
  “그건 다른 사람들 얘기고. 나는 그리 못하네. 어서 와 앉아. 먹고 보면 되잖은가.”
  이교수님이 숟가락을 집어 한 술 떴습니다. 사모님과의 신경전에서 밀리고 싶지 않았지만 허기 역시 견디기 어려웠으니까요.
  “당신 없이는 살아도 드라마 없이는 못사니까 기다렸다가 같이 먹든지 말든지.”
  심통이 난 사모님이 텔레비전 음량을 확 키웠습니다.
  “쩟! 저, 저 사람이.”
  숟가락을 쥔 손이 무안한 순간이었어요. 이교수님이 된 숨을 몰아쉬며 밥을 들어다 국에 넣었습니다. 두어 숟가락 뜨다 울컥 울화가 치밀었지만 밥을 말아놓았으니 다 먹어 치우기 전에는 서재로 들어갈 수조차 없었지요.
  서재에서 이교수님은 이 난국을 어찌 풀어야하는가 해결책을 강구했습니다. 사모님 기세로 봐서 순순히 양보할 듯싶지 않고, 하루 이틀이 아니라 매일 반복될 텐데 혼자 먹는 밥상이 달갑지 않고. 기다렸다 먹자니 허기가 져서 고역이고. 드라마 끝난 뒤에 먹을 수는 없다, 더군다나 밤늦은 식사는 위에 부담이 된다, 그러면 차선책으로 운동가기 전에 일찌감치 먹자, 심사숙고 끝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교수님이 제시한 방안에 사모님은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이래저래 밥해서 차리기야 매일반이고 빨리 먹고 치우는 것이 한갓지다 단박에 결정을 짓더군요. 따로 밥벌이에 나서는 입장이 아니니 저녁이 이르면 어떻고 늦으면 어떻습니까. 정년퇴임한 이후로 십여 년 이어져오던 일곱 시 저녁식사가 다섯 시로 옮겨가는 데 일 분이 채 안 걸렸습니다.
  곁다리로 주워들은 소리인데, 이교수님이 운동하러 나가면 제일 반가워하는 사람이 사모님이라더군요. 이제 세 시간 동안은 해방이구나, 심신이 편안해진다더라고요. 
  이교수님이 정년퇴임하고 나서 신세 고달파진 이가 딱 한 명 있는데 사모님입니다. 학자로서 전직 교수로서 동료로서 친구로서 이교수님이 유지해오던 대외적 활동이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이지요. 활동 범위가 좁아지고 좁아지다 집으로 한정 되면서 사모님과 안 부딪치려야 안 부딪칠 수 없었습니다. 최근 몇 년은 집안 갈등까지 겹쳐 대립이 극심했지요. 그 사단을 다름 아닌 이교수님이 만들었고요.
  늘 바르고 모범적이었던 이교수님이 형제들에게 폭탄선언을 하고 일방적으로 결별했습니다. 새어머니 장례식을 무사히 마치고 한시름 놓을 차에 터트렸지요.
  요양원에서 지내다 여든여섯에 노환으로 돌아가신 새어머니는 스물일곱 늙은 처녀로 이교수님 아버님한테 시집을 왔다더군요. 이교수님이 열 살 되던 해 봄에 친어머니가 급서하시고 아버님이 가을에 재혼하셔서 새어머니하고는 열일곱 차이 밖에 안 난다더라고요. 새어머니가 딸 하나에 아들 둘을 새로 낳아서 장남인 이교수님에게는 동복 남동생 둘, 이복 남동생 둘에 여동생 하나, 총 다섯 형제가 딸렸답니다.
  장례절차가 마무리되고 조의금과 지출내역을 정리하던 자리였습니다. 이교수님 주장으로 둘째 동생 집에서 저녁 일곱 시 경에 모였지요. 이교수님이 마지막 백 원까지 자투리를 맞추어 형제들에게 공개해주고 이러저러한 서류들을 봉투에 넣어 둘째 동생 앞으로 밀어놓더군요. 숨을 한 차례 깊게 들이켜더니 형제들을 찬찬히 둘러보았습니다.
  “장사 치르느라 다들 고생했다.”
  이교수님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뭘요, 형님이 제일 힘 쓰셨지요.”
  둘째 동생이 공손히 말을 받았습니다. 나머지 동생들은 차분하게 귀를 기울였고요.
  “나는 이제 떠날란다.”
  바닥만 내려다보던 이교수님이 고개를 번쩍 쳐들었습니다.
  “어디로요? 집 지으실 땅 찾으셨어요?”
  쾌활한 셋째 동생이 물었습니다. 다른 동생들은 대답을 기다렸지요.
  “그 얘기가 아니고, 아버님 어머님 두 분 모두 명을 달리하셨으니 우리들만 남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로 너희들하고 인연을 끊을 작정이다.”
  이교수님이 마디마디 힘을 넣어 말했습니다. 동생들은 어안이 벙벙해서는 이교수님 낯빛만 살폈지요.
  “부모님 제사는 너희들끼리 상의해서 모셔라. 나는 할 만큼 했다.”
  이교수님이 벗어두었던 코트와 머플러를 주섬주섬 챙기며 일어섰습니다.
  “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셋째 동생이 허겁지겁 몸을 세우더군요.
  “형님, 우리한테 불만이 있으면 조목조목 말씀하세요. 이러지 말고.”
  둘째 동생이 이교수님 옷자락을 잡아당겼습니다.
  “너희들한테 불만 없다. 내가 홀가분하게 살고 싶어서 그래. 연락하지 말고 찾아오지도 마. 나는 없는 셈 치고 그 동안 해오던 대로 너희들끼리 잘 하고 지내.”
  이교수님이 불안한 얼굴로 엉거주춤 일어서는 동생들에게 처연히 말했습니다. 그리고 곧장 신발을 찾아 신고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영문 몰라 허둥대며 어떻게든 붙잡으려드는 동생들을 뿌리치고 거침없이 문을 나섰지요.
  삼사일 지나 동생들이 이교수님 댁을 방문했습니다. 심적 동요가 가라앉으면 결단이 약해지리라 기대했겠지요. 하지만 이교수님은 형을 무시하느냐, 조용히 돌아가라, 냉정하게 질책만하고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둘째 동서에게 사연을 들어 일찌감치 사태를 파악한 사모님이 옆에서 살살 구슬려가며 은근슬쩍 현관문을 따려하자 어깨를 확 잡아채서는 밀쳐내기까지 했어요.
  “이게 무슨 짓이에요, 대체. 상식을 가진 어른이 되어가지고 당신 형제들한테 이런 짓하면 안 되잖아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거리던 사모님이 끝내 참았던 분을 터트렸습니다.
  “형제고 뭐고 꼴 보기 싫어. 다시는 집에 얼씬거리게 하지 마. 그리고 당신, 앞으로 제수씨들하고 아는 척하고 지내면 절대 안 돼. 그냥 두 눈 질끈 감고 모르는 사람으로 쳐.”
  이교수님이 미뤄두었던 말을 와르르 쏟아놓았습니다. 사모님이 동서들과 각별하게 지내는 바를 잘 아는 터에 차마 맨 정신으로는 언급할 수 없었지요.
  “이게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에요. 당신이 형제들하고 연을 끊었다고 해서 나까지 왜 연을 끊어야 되는데요? 당신 뜻대로는 못해요.”
  “동생들 챙기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지긋지긋해. 칠십 년 세월이 징그럽다고!”
  “당신만 고생했어요? 나도 했어요, 나도. 없는 집 맏며느리 노릇이 육남매 장남보다 못한 줄 알아요?”
  진이 빠질 대로 빠져 서재로 쉬러가는 이교수님 뒤통수에 대고 사모님이 소리를 질렀어요.
  화를 다독이는 능력은 여자가 훨씬 훌륭하더군요. 사모님이 차를 끓여다 이교수님 책상 위에 올려놓은 걸 보면 말입니다. 속에서 불은 났지만 애잔했을 거예요. 열 살 때부터 새어머니 예쁨 받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는 하소연이 떠올랐겠지요.
  밑으로 어린 동생 둘이 챙김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자기하기에 달렸다 믿고서는 심부름이고 공부고 농사일이고 새어머니 눈에 들기 위해 갖은 용을 썼다지요. 그것이 몸에 밸대로 배어 환갑 넘어서까지 새어머니 앞에서 슬금슬금 눈치를 봤다더군요. 동창회 날인가 아픈 몸으로 만취해 들어와서는 동생들 짊어지고 가느라 어린 시절이고 젊은 시절이고 죄 놓쳐버렸다고 이교수님이 밤새 푸념을 했답니다. 정년퇴임 두어 해 지나고 갑작스럽게 허리에 탈이 나 거동이 여의치 않을 때였어요.
  연민은 연민이고 현실은 현실이지요. 이교수님과 사모님은 제사, 명절, 조카들 혼인날이면 매번 부딪쳤습니다. 큰형이라고 형제들이 알려올 때마다 역정 내는 교수님 참아내는 일이나 교수님 몰래 형제간 도리를 챙기는 일 모두 사모님 몫이었어요. 왕래가 드물어지면서 사이가 멀어질 대로 멀어지자 그마저 뜸해졌지만요.
  형제들 없이 가뿐해졌지만 이교수님 일상이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침울할 대로 침울해져 사는 재미를 도통 찾지 못하는 날이 빈번했어요. 헬스장에서 운동을 시작하기 바로 전 해가 제일 심각했습니다.
  사십오 평 아파트를 팔고 이십 평짜리로 이사해야했고, 덩달아서 전원주택 지으려던 계획까지 무산되었지요. 꾸준히 이어져오던 퇴임 교수 모임마저 해체되었고요. 왜 하필 일이 년 상관으로 유명을 달리하는지,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까지 늘어나면서 회원 수가 반 토막에 반 토막이 나버려 운영이 불가능해져 버렸답니다. 이교수, 이교수님 불러주던 옛 동료들이 주변에서 하나 둘 사라졌어요. 분에 넘치게 누리며 지냈구나, 자족한 바가 없던 건 아니지만 상실감이 두 배 세 배는 컸습니다.
  사지사방으로 뭉텅뭉텅 빠져나가는 세간을 보면서 이교수님은 엉엉 울고 싶었습니다. 가족이나 지인들한테는 가타부타 말 한 마디 꺼내지 않아 이심동체로 십 년을 동거해온 저만이, 오직 저 한 사람만이 알았지요.
  “우리 작은 평수로 옮깁시다. 내 아는 이들 말이 늙으면 다들 그런답디다.”
  아침 밥상머리에서 사모님이 이사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이사를 이끌어간 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모님이었어요.
  “늘그막에 어디를 간다고. 한적한 시골로 가서 텃밭이나 가꾸면 모를까.”
  이교수님은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사모님 의견을 가벼이 받아 넘겼습니다. 시골과 텃밭은 평소 소신이었고요. 
  “손목에 힘이나 남았으면 몰라, 지금은 늦었어요. 아예 물 건너갔단 말이에요. 이제 전원주택이니 어쩌니, 그딴 이야기는 내 앞에서 꺼내지 마세요. 살던 집 줄여서 이사 가자고요. 무릎으로 기어 다니면서 운동장만한 거실 닦아대기가 보통 고역이 아니라고요. 이제는 넌덜머리가 나요. 넌덜머리가!”
  “당신이 언제 기어 다녔다고 그래? 걸어 다니면서 밀대로 쓱쓱 밀더구먼.”
  “그걸 지금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에요? 당신 마누라 늙어서 살림할 기력 없으니까 양당 간에 결정을 해요. 집안일을 뚝 떼어서 반을 맡아 하든지 평수를 줄여서 이사를 가든지.”
  사모님이 먹던 밥그릇을 들고 쌩 일어섰습니다. 일방적으로 제안만 해놓고 대답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어요. 이교수님은 쯧쯧 혀만 찼지요.
  사모님 기세에 눌려 집을 바꿀 수밖에 없었어요. 옮기고 남은 돈으로는 큰 아들 아파트를 넓은 평수로 바꾸어주었습니다. 집안 행사를 큰아들이 주도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지요.
  이사한 뒤로는 생일상마저 큰아들 집에 건너가서 받아야했어요. 아들집 거실에 차려진 생일상이 탐탁지 않았는데, 손님으로 가서 접대를 받는 격이라 내 생일이 맞나 싶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두어 손자들까지 합치면 스물 남짓 되는 대식구라 코딱지만 한 아파트에서는 둘러앉을 자리가 없었으니까요.
  하다하다 서재가 없어질 위기까지 겪어야했어요. 사모님이 이교수님에게 이사 날짜를 통보해주고 숨 고를 새 없이 세부적인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왕 이사하는 김에 얘들한테 물려줄 물건은 물려주고, 돈이야 얼마가 됐든 내다 팔만 한 건 죄 팔아버리고, 버릴 놈은 버립시다.”
  “그 동안 쌓인 정이 얼만데 이사 참 쉽게 하네 그려. 나까지 내쫒을 기세구먼.”
  이교수님이 비아냥댔어요. 갑작스러운 변화가 꺼려지다 못해 두렵기까지 했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너무 못마땅해 하지 마세요. 더도 말고 딱 삼칠일만 지나면 금세 익을 거예요. 집 보러 다닌다고 그 동안 당신 못 챙겨드려서 죄송해요. 집안 정리 끝나면 당신한테 최고로 신경 쓸게요.”
  그제야 사모님이 이교수님 낯빛을 살피면서 다정스레 말했습니다. 미안할 만했지요. 이교수님이 싫어한다는 사실을 빤히 알면서 오죽 무섭게 밀어붙였어야죠.
  “그나저나 서재 책들은 어떻게 할까요? 학교든 도서관이든 기증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아니면 헌책방에 넘겨버리든지. 기현아비한테 처분하라고 할까요?”
  사모님이 서재 쪽을 지긋이 넘겨다보았습니다.
  “무슨 소리! 이제는 내 서재까지 없애버릴 참인가!”
  이교수님이 왈칵 고함을 내질렀습니다. 서재는 이교수님만의 고유 공간인데 책을 없앤다니 가당키나 한가요.
  “에구머니나, 놀래라. 누가 서재를 없앤대요, 책을 없애자고 그랬지. 이사 갈 아파트가 워낙 작으니까 이 김에 정리나 좀 하자는 뜻이에요.”
  “책이 없으면 그게 어디 서재야! 창살 없는 감옥이지!”
  “알았어요, 알았어. 그만 해요. 서재 물건이면 그게 무어든 손바닥만 한 종이 쪼가리까지 고대로 옮겨 놓을 테니까 걱정 마세요. 나중에 좁다고 불평이나 하지 마시구려.”
  사모님이 손과 머리를 한꺼번에 내두르면서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두 칸짜리 아파트라 방이 작지는 않았습니다. 베란다 붙은 방은 안방, 창만 나있는 방은 서재로 정해서 그럭저럭 꼴은 유지했어요.
  이사한 다음 날 맞은 처량함이라니. 사모님은 아늑해서 그만이다했지만 이교수님은 하루아침에 가난뱅이로 전락한 기분이었어요. 샤워를 할라치면 욕실 칸막이가 없어 사방이 온통 물바다가 되고,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볼라치면 화면이 코앞이라 머리가 지끈거리고, 좁아터진 공간에 갇혀 지내는 현실이 불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매사에 짜증부터 내는 이교수님이 보기에 안 되었던지 사모님이 이런저런 소일거리를 내놓았습니다. 어림없는 제안들뿐이었죠. 경로회관에 가서 노인네들과 어울리라고 하지를 않나, 산악회에 가입해서 등산을 가라질 않나, 평생학습관에 등록해 그림을 배우라질 않나, 꼬맹이들 모아다 한문을 가르치라는 가당치않은 소리까지 했답니다. 밤톨만한 집에서 찌푸린 낯을 하루 종일 맞대는 일이 사모님 또한 만만찮았겠지요.
  옆에서 지켜보는 자식들 역시 신경 쓰이기는 마찬가지였어요. 안부 인사차 집에 들르면 이교수님이 시종일관 툴툴댔으니까요.
  “작은 집에 계시려니까 답답하지 않으세요?”
  식당 별채에 들어가 의자에 앉자마자 큰아들이 물었습니다. 이름이 알려진 갈비 전문 식당이었어요.
  “견딜만하다.”
  이교수님이 부러 시선을 외면하며 짧게 대답했습니다. 간만에 추위가 풀렸다고 나들이 삼아 마련한 자리인지라 분위기를 깰 수 없어 대강 얼버무렸지요.
  “운동을 해보시면…, 아버지, 운동 어떠세요?”
  큰아들이 다시 물었습니다.
  “운동?”
  이교수님이 인상을 찌푸렸습니다. 나이 서른 이후로 책상 앞에만 앉았던 터라 운동하고는 멀게 지냈지요.
  자기 사는 아파트 단지 지하에 헬스 시설이 갖추어졌다, 혼자 다니시기 거북스러우면 주말에 같이 가자, 큰 아들이 연신 이교수님을 설득했습니다. 이교수님은 마뜩찮아서 가타부타 답을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았으니 동의가 이루어진 것이나 진배없었지요.
  그 다음 주 토요일 아침에 큰아들이 찾아왔습니다. 구경이라도 가보자는 재촉에 이교수님은 못이기는 척 따라 나섰습니다. 운동이 썩 나쁘지는 않았어요. 가벼운 스트레칭부터 걷기, 자전거 타기가 고작이었지만 사지를 움직이니 오히려 기운이 돌더라고요.
  큰아들 따라서 이틀 내리 하니까 아침이면 몸이 근질근질해졌습니다. 그래 월요일에는 이교수님 단독으로 갔답니다. 아파트 입주민들 시선이 괜스레 신경 쓰였지만 아파트 값의 반은 내가 대주었으니 반은 내 집이다 위안하면서 하루 이틀 견뎌냈지요. 주말에는 아들하고 가고 평일에는 혼자 가고 두어 달 열심히 다녔습니다.
  남들 출근할 시간에 운동 하는 주민들이 일정하게 정해졌다 보니 태반은 얼굴이 익어버렸습니다. 오며가며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지요. 아침나절이라 그런가, 엇비슷한 연배의 노인네들뿐이었는데 할머니들은 이것저것 물어 대서 골치가 아프고, 할아버지들은 일방적으로 자기 관심사만 쏟아 대서 따분했습니다. 물은 것 또 묻고, 한 얘기 또 하고, 한 열흘 지나고 나니까 응대해주는 일에 넌덜머리가 났어요. 사사건건 받아 주다보면 동작이 허술해져 달갑지 않고 대놓고 무시하자니 예의가 아니고 갈수록 짜증스러워졌지요.
  흥미 거리를 찾은 이상 적극적으로 나설 시기가, 밖으로 나갈 시점이 되었던 거예요. 십 년을 한 사람과 동거하던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디든 무엇이든 새로움이 필요했지요. 운동시설을 찾아 골목골목 배회하는 과정까지 즐거웠습니다. 
  운동복, 샤워시설, 비용, 거리까지 꼼꼼하게 따졌을 때 파워헬스가 그중 맞춤한 곳이었습니다. 큰아들한테는 운동할 장소 따로 구해놓았다, 관리실에 돈 내지 마라 전하고 파워헬스에 등록했지요. 늘 하던 기본 종목에다 근력운동까지 욕심을 내기로 했습니다. 주인 남자가 나이 좀 들어 놔서 상노인 취급은 안 당할 것 같았고요.
  일주일 정도 돌아가는 추세를 파악한 다음에 눈치껏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아령을 들고 묵직한 헬스기구들 위에 앉았습니다. 당연히 무리가 가지 않도록 조심에 조심, 또 조심을 했어요. 여차해서 고장이 났다하면 고치기 어려운 나이임을 이교수님이 모르겠어요. 어쩌다 식사 자리에 불려나가면 맨 듣는 소리가 어디어디가 아프다 뿐인데 몸을 사리지 않을 도리가 없지요.
  몸이라는 것이 쓰면 쓸수록 재미가 붙더군요. 이른 저녁을 먹고 복장을 정리해서 반듯하게 정돈된 길을 잡아 삼십 여분 걸으면 굳었던 근육들이 풀려 운동하기 적당한 상태가 됩니다. 쉬엄쉬엄 한 시간 반 정도 짜놓은 순서대로 전신을 단련한 뒤에 여유롭게 샤워하고 길을 되짚어 나서면 기분이 상쾌하고 걸음까지 가볍답니다. 십 년은 젊어진 듯싶지요. 집에 도착해 사모님이 내온 차와 과일 등속을 먹으면서 저녁 뉴스를 보면 뿌듯하기 이를 데 없어요. 불과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잠자리에 누울라치면 오늘 하루도 건성으로 보냈구나, 침울해졌는데 백팔십도 달라진 겁니다.
  칠십 중반에 이르러서야 운동을 접했는데 노쇠한 육신에 탈이 안 날 리 없지요, 근력운동을 한지 불과 삼일 만에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제일 낮은 무게에 맞췄다가 딱 한 단계 올렸을 뿐인데, 그마저 과욕이었던지 오른쪽 어깨에 무리가 왔습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쳐 세운 계획인데 운동 하나를 빼려니까 여간 섭섭하지 않았어요. 애 저녁에 쇠해진 건가 자괴감까지 밀려들었답니다.
  “사용하는 방법 가르쳐 드릴까요?”
  기구에 앉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다면 무게는 최저로 내려야 되나 속으로 망설이는 사이 형철씨가 물어왔습니다. 운동은 않고 의자에만 앉았으니 노인이라 헤매는 줄 지레짐작했지요. 
  “아니, 아니. 할 줄 알아요. 몸 상태가 시원찮아서 오늘은 쉬어야겠구먼.”
  이교수님이 엉거주춤 일어섰습니다. 젊은 애 앞에서 염치없이 자리 욕심을 냈던 듯싶어 무안했어요.
  “할 만한 사람이 해야지. 나는 개의치 말고 예 앉아서 열심히 해요.”
  이교수님이 기구를 내주면서 형철씨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어깨가 놀라웠어요. 계곡물에 갈고 닦인 화강암 덩어리 같았지요.
  기다란 나무 봉을 집어 들고 거울 앞에 서서 이교수님이 스트레칭을 했습니다. 그러다 형철씨를 힐끔 훔쳐보았어요. 양팔을 니은자로 세워 활짝 폈다 천천히 오므리는 동작을 반복할 때마다 얇은 운동복 위로 가슴 근육이 도드라졌거든요. 집중이 안 되는지 이교수님이 스트레칭을 하다 말고 자전거 쪽으로 이동하더군요. 
  자전거를 타면서 이교수님은 형철씨에게 향하는 눈길을 부러 다잡았습니다. 중량을 최고단계로 올려놓고 거침없이 기운을 쏟아내는 형철씨가 부러웠지요. 불뚝거리는 근육이 갖고 싶었습니다.
  나이는 되돌릴 수 없지만 몸은 가능하지 않을까? 이교수님은 샤워를 하면서 잠시잠깐 탄탄하게 맺힌 근육을 눈에 그려보았습니다. 칠십 중반에 젊은 육신이라니, 쩟! 그러다 종내 혀를 찼지요.
  “살펴 가세요.”
  운동을 마쳤는지 형철씨가 샤워실 안으로 들어가면서 고개를 숙여 인사했습니다.
  “어, 어 그래요.”
  샤워실을 나서던 이교수님은 형철씨와 눈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척하면서 황급히 지나쳤어요. 막내아들이나 될까싶은 젊은 남자를 보면서 자꾸 들뜨는 자신이 당혹스러웠지요.
  집으로 걸어가는 내내 이교수님은 연거푸 머리를 내둘렀습니다. 지금껏 몸에 대한 욕심이 없었는데 늙어 분별이 흐려졌는지, 남들이 알면 천박하게 여길 텐데 표가 나지 않았는지 염려가 되었어요. 형철씨 앞에서 당당치 못하게 시선을 피했던 행동이 생각할수록 창피했습니다.
  머릿속이 번잡스러워서 정수리를 되게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얼굴에 찬바람을 맞고 횡단보도 건너기를 수차례 하면서 아파트 입구에 들어설 즈음에는 그럭저럭 평정을 회복했지만 뒤끝이 개운치 않았습니다. 
  이교수님이 차를 마시면서 뉴스를 시청할 때 저는 저의 삶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강산이 변할 동안 한 자리에만 머물다보니 타성에 젖을 대로 젖어 제쳐두었던 사안을 신중히 점검했지요. 이교수님이 십년 전에 옮겨온 동거인이고, 잠을 자다가 죽는지 모르게 죽을 수 있는 노인이라는 측면이 핵심이었습니다.
  붙살이 입장에서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동거인이 죽으면 단독으로는 이동이 불가능한 저 역시 삶을 끝내야하니까요. 다른 사람에게 가야할 시기가 도래했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더군요. 이교수님과 저 둘 모두 오래오래 행복할 방도를 찾아 행동으로 옮겨야했습니다. 자연스럽게 형철씨가 떠오르더군요. 혹여 제 판단이 틀린 건 아닐까 사나흘 지켜보았는데 확신이 섰습니다.
  이교수님은 지성을 동원해 부정했지만 의식 밑바닥에서는 형철씨를 원했습니다. 변함없이 동일한 시간대에 맞추어 운동하러 가고 형철씨와 부닥치면 모르는 척 외면했거든요. 젊은 남자를 선망하는 자신이 저급하게 여겨지고 평생 지켜온 자존심에 금이 그어졌겠지요. 달리 헤아리면 그 만큼 형철씨를 소유하고 싶다는 반증이었습니다.
  사람이라면 변화에 대한 욕구를 가지기 마련 아닌가요. 늙음이 변화를 거부하는 근거로 작동하기 쉽지만 누군가에는 절실한 동인이 되지요. 신체적인 한계에 도달한 이교수님은 젊은 몸으로 변신하기를 희망했습니다. 본인 스스로 욕망을 억누르고 체면과 도리 뒤에 감추었다 뿐이지요.
  사나흘 동안 열망에 찬 눈길로 형철씨를 지켜보았습니다. 형철씨가 저에게 관심을 갖는 단계를 넘어 저를 잡아끄는 기운이 감지되었습니다. 제가 움직여야할 때임을 직감했어요. 이교수님이 형철씨 안으로 들어가면 이교수님만이 아니라 형철씨에게도 이익이 따른다는 계산 또한 섰지요. 이교수님은 형철씨 안에서 능력을 펼치고, 형철씨는 이교수님을 통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잖아요. 그리고 제가 젊어질 기회더군요. 이교수님과 함께 보낸 십여 년은 무사태평, 안락과 평안 그 자체였습니다만 지극히 지루했거든요. 저 역시 이교수님만치 젊음이 필요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달리 뭐겠습니까. 원하는 바를 명확히 드러내 눈앞에 보여주는 것뿐이었습니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금요일로 날을 잡았습니다. 술 마시고 놀러들 가느라 회원들 반은 운동을 빼먹거든요. 저는 그 동안 쌓아온 공력을 쏟아 이교수님을 자극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다행히 형철씨가 바라던 시간에 왔습니다. 공력을 쏟는다고 했지만 제 능력이 워낙 일천해서 시선이나 유도하는 수준입니다. 그래 저는 러닝머신 위에서 땀방울을 흩뿌리며 힘차게 내달리는 형철씨 모습을 이교수님이 바라보도록 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근육질 몸에 비누칠을 하는 장면까지 정면에서 직시하도록 했지요.
  샤워실에 들어서다 알몸의 형철씨와 맞닥트린 순간 이교수님 심장이 쿵쿵쿵 뛰었습니다. 기대하던 바였지요. 그런데 터질 듯 벌떡대던 심장이 뚝 멈춰버렸어요. 미처 예상치 못한 최악의 사태였습니다.
  ‘여기서 죽으면 안 돼요!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에요!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야 잖아요!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야 된다고요!’
  저는 온 힘을 다해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제야 찌릿 찌릿 전기가 일더군요. 이교수님 의식 밑바닥에서 웅크렸던 욕망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다음은 형철씨 차례였습니다. 형철씨가 이교수님을 받아들이려면 시선부터 마주쳐야했어요.
  ‘나를 삼켜요!’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쏟아지는 물소리에 제 외침이 묻혀버렸는지 형철씨가 비누 묻은 가슴만 문질러대더군요.
  ‘나를 삼켜요! 나를 삼키란 말입니다.’
  이교수님의 몸피가 뿌옇게 바랬습니다. 돌아서기만 하면, 입을 벌려주기만 하면 합쳐질 텐데 형철씨는 차가운 물에 머리만 쓸어 넘겼어요.
  ‘뒤를 돌아 봐! 당장 나를 삼켜! 나를 삼키라고! 헉!’
  머릿속이 둔중하게 울리면서 허공으로 붕 떠올랐습니다. 형철씨가 돌아봐주지 않으면 저와 이교수님은 끝장이었습니다.
  쾅! 이교수님이 결국 가슴을 쥐고 샤워실 바닥에 쓰러졌어요. 놀란 형철씨가 반사적으로 돌아서서 소리쳤습니다.
  “할아버지!”
  ‘제발, 나를 삼켜!’
  저는 의식을 다잡고 비명을 터트렸습니다. 그와 동시에 이교수님은 몸을 튕겨 형철씨 안으로 들어갔지요.
  천만다행으로 형철씨는 이교수님과 저를 거부하지 않았어요. 형철씨 얼굴 위로 삶에 대한 불안이 언 듯 언 듯 비쳤는데 어떤 식으로든 꽉 막힌 일상에 돌파구를 만들고 싶었겠지요.
  형철씨는 주말 내내 좁은 방안에 누워 텔레비전만 시청했습니다. 토요일 점심나절에 헬스장을 찾아가 운동하고 씻은 일이 그나마 생산적 활동이었어요.
  갑작스러운 변화에 신중히 대응하느라 묵묵히 지켜만 보던 이교수님이 마침내 일요일 저녁 의지를 세웠습니다. 급여 통장을 꺼내놓고 인터넷을 연결해 실제 남은 잔액과 신용카드 사용내역, 매달 말일에 입금되는 월급을 확인했어요. 경제학 교수였던 인물답게 단순 명확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카드는 없앤다, 자동차는 판다, 적금을 든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형철씨가 실천하게끔 몰아붙였습니다.
  형철씨가 다니는 직장은 개인이 운영하는 회계 사무소였습니다. 형철씨는 회계 장부 정리, 그 곳 표현으로는 기장 대리 업무를 수행했지요. 회계 업무를 따로 처리할 수 없는 소규모 사업체에서 영수증을 보내오면 내용을 분류해서 컴퓨터에 입력하고 종이 철에 묶어 놓았어요. 단순 업무였습니다. 그런데 형철씨는 그 단순 작업을 버거워하고 간혹 가다 실수까지 저질러 회계사한테 된통 혼나더군요. 덤벙대는 품새를 보니 집중력이 모자라더라고요.
  이교수님은 즉시 차분하고 진중하게 담당 업무에 임하도록 형철씨 태도를 고쳐놓았습니다. 업무 중간에 휴대전화를 살피고, 전화 통화하면서 입력하고, 영수증을 받자마자 처리하지 않고 책상 한 편에 대충 쌓아 두었는데 이틀 정도 다그쳐서 바꾸도록 했어요. 틈틈이 회계요람을 읽게끔 이끌었고요.
  일주일 만에 형철씨는 담당 업체를 늘려야겠다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건 조만간 월급이 오른다는 의미였지요.
  형철씨를 움직이는 일에 자신이 붙으면서 이교수님이 무리하다 싶은 욕심을 밖으로 드러냈습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건축 설계 프로그램인 CAD를 배우도록 했지요. 형철씨가 합격 가능성에 대해 은근슬쩍 떠볼라치면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부정적으로 반응했습니다. 하지만 이교수님은 형철씨에게 인터넷 무료 강의를 신청하고 교재를 구입하도록 했습니다.
  학습에 재주도 흥미도 부족한 형철씨가 이교수님이 지닌 학습역량 때문인지 강사가 설명하는 내용을 교재에 받아 적고 뿌듯한 얼굴로 기출문제를 풀더군요. 자신이 하는 공부에 대해 자랑삼아 늘어놓기까지 했답니다. 회식자리에서 말이지요. 상대는 어쩌다 형철씨 앞에 앉게 된, 수진씨 후임으로 온 신입 여직원이었어요. 환심을 얻고픈 마음에 저지른 실수 아닌 실수였지요.
  “영미씨. 영미씨 맞죠? 영미씨는 집에 가면 뭐해요?”
  형철씨가 먼저 쾌활하게 물었습니다.
  “그냥 뭐, 청소하고 텔레비전 보고 별 거 없는 데.”
  여직원이 시들하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요새 공무원 시험 공부합니다.”
  형철씨가 공부한다 한 마디 던지고 소주잔을 들어 반 남짓 잘라 마셨습니다.
  “네? 정말요?”
  “시험을 봐서 공무원이 되려는 건 아니고 순수하게 지식을 습득할 목적으로 하는 겁니다. 학생 시절에는 무작정 공부가 싫었는데 나이가 드니까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더라고요. 다른 사람들한테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상식이든 교양이든 꾸준히 쌓아야하니까.”
  “진짜 시험은 안 보시는 거예요?”
  “공부가 아깝다 싶으면 재미 삼아 한 번 쳐 보든지. 일단 기본 지식 쌓기가 우선이죠.”
  “대단하시다.”
 칭찬하듯 말했지만 여직원 얼굴에 어린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실속 없이 허황되다 한심해 하는 눈치였어요.
  아무튼 형철씨는 공무원 시험공부를 꾸준히 했습니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책을 펴고 강의를 듣는 자신이 대견스러웠지요. 내심 시험 날짜까지 꼽았습니다.
  밤에는 시험공부를 하고 낮에는 CAD를 배우는 생활이 한 동안 이어졌습니다. CAD 익히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는데 이교수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더군요.
  시골에 집지을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단순하면서 효율적인 구조로 설계를 마친 다음 가능한 단계까지는 자신이 직접 참여해서 집을 완성하겠다는 세부 전략까지 세웠지요. 성공 여부를 따져서 건축 분야로 직업을 바꾸어보겠다는 광대한 포부까지 품었답니다.
  최대한 비용을 절약하기위해 시민을 상대로 하는 무료 강좌를 찾았습니다. 사무실 근처 문화센 터에서 CAD 기초반을 찾아낸 이교수님, 아니 형철씨는 점심시간에 사무실을 지키고 퇴근을 한 시간 늦춘다는 조건을 걸고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외출을 허락 받았습니다. 출근길에 사들고 간 김밥이나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다보니 배속은 헛헛했지만 사무실을 벗어나는 순간 숨이 확 트였지요.
  한 걸음 내딛는 시도만으로도 형철씨는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삼 년 앞을 내다본 적 없던 형철씨가 미래를 구상했어요. 집을 마련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들이 크면 시골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 대단치 않은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배우고 실천하다 보면 언젠가는 손 안에 들어오겠지 굳게 믿었지요.
  몸을 같이 한 세 달 반 동안 이교수님과 형철씨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이교수님은 암소처럼 순한 형철씨를 이끌어 새 삶을 펼치는 기쁨을 누렸고, 형철씨는 적금통장과 동료직원의 달라진 시선을 통해 점점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보았지요.
  세 달이 아닌 삼 년을 머리는 둘이고 몸은 하나인 샴쌍둥이처럼 이교수님과 어우러졌다면 형철씨는 전혀 다른 인물이 되었을 겁니다. 전세겠지만 아파트로 이사했을 것이고, 지적인 태도와 합리적인 생활습관이 몸에 배어 아가씨들에게 신뢰를 얻었을 것이고,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안정된 회사로 직장을 옮겼겠지요. 공무원이나 건축업자로 직업을 전환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고요. 최고의 엘리트였던 이교수님은 오랜 경험과 지식으로 배움이 부족한 형철씨를 환골탈태시킬 수 있었습니다. 둘은 제가 만들어낸 금상첨화의 조합이었어요.
  그런데 형철씨가 지지리 운이 없더군요. 사람들 마음마다 깊고 외진 자리에 허방이 하나씩 숨었다는데, 하필 그 중요한 시기에 선희씨와 김성수씨가 와작 밟아버렸습니다. 구멍을 내버렸지요. 형철씨는 마음에 난 구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희씨 안으로 뛰어든 거예요.
  힘차게 한 발을 내딛고 막 두 번째 발을 떼려던 순간 눈앞에 뻗어 있던 길이 홀연 사라져 이교수님은 망연자실했습니다. 안타깝지만 어쩌겠습니까. 육체의 주인인 형철씨가 원하니 따를 수밖에요. 이교수님이나 저나 제 아무리 힘이 세다 한들 주어진 위치를 바꿀 수 없거든요. 형철씨의 욕망이 거세게 타오른 순간 이교수님의 의지는 자연스레 사그라졌습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공지 여덟 외톨이 백상아리 2019 / 10 / 25 772 0 -
공지 일곱 하나 둘 셋, 번지! 2019 / 10 / 25 541 0 -
공지 여섯 잠 2019 / 10 / 25 613 0 -
공지 다섯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2019 / 10 / 25 1543 0 -
공지 넷 여자와 집 2019 / 10 / 25 780 0 -
공지 셋 젊고 능력을 갖춘 2019 / 10 / 25 601 0 -
공지 둘 아버지가 필요해 2019 / 10 / 25 500 0 -
공지 하나 마트료시카 2019 / 10 / 25 687 0 -
등록된 분량이 없습니다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