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4-11 11:53
[스토리테마파크] /가족, 영원한 동반자/ 부자간의 정이야 끝이 없지만, 운명을 어쩌랴 - 아들이 끝내 숨을 거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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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한작협
조회 : 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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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CEJ_0049 [248] |
1616년 10월 24일, 복이(福伊)가 산양(山陽)에서 돌아와서 김택룡은 그 곳에 사는 아들 김적의 편지를 받을 수 있었다.
아들의 병은 차도가 없지만 음식은 조금 먹는다고 하며, 또 그 집에 사위를 맞이하는 날짜를 아직 잡지 못하였다고 한다.
11월 13일, 금복이가 이틀 전 11일에 산양에서 김택룡이 있는 곳으로 왔다. 오면서 아들 김적의 편지를 가져다 주었는데, 편지에 의하면
적의 병은 여전히 차도가 없다고 하며 손녀의 혼사도 아직 확실히 결정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또 과일을 함께 보내왔다.
아들 김적의 노비 임인(印金)은 이자로 받는 곡식을 독촉하는 문제로 김택룡이 있는 곳에 온지 이미 오래 되었다. 지금 둘 다 함께
돌아가길래 김택룡은 아들 김적에게 답장 편지를 보냈다.
12월 4일, 김택룡의 큰 아들 김숙이 제 동생 김적의 질병을 살펴보고자 산양으로 갔다. 가서 기별하길, 김적이 여위고 뼈만 남아
질병과 싸울 수 없을 정도라고 하였다. 또 혼자 일어나지도 못해 억지로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하였다.
김택룡은 아들이 딱해서 뭐라고 말할 수조차 없는 심정이었기에 편지는 생략하고 다만 작은 종이에 병에 대해 간단히 묻는
내용만 써서 보냈다.
12월 17일, 김택룡의 셋째 아들 김각이 인금이를 데리고 산양으로 갔다. 김택룡은 아들 김적에게 편지를 쓰려다 그만두고 단지
김각을 통해 말로만 소식을 전하도록 했다. 그리고 속으로 ‘이래저래 심난한 일만 가득하고 즐거운 일은 하나도 없으니,
편지에 쓸 말이 뭐가 있겠는가?’ 라고 생각하였다. 얼마 지나서 김택룡은 아들의 병이 위중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또 생각하였다. ‘부자간의 정이야 끝이 없지만 어쩌겠는가? 운명인 것을...’
그리고 1617년 1월 28일, 이 날 김택룡은 아침에 책방의 작은 대청에서 아들 김적을 위해 상복을 입었다.
그리고 생질 정득 · 조카 김형 · 아들 대평 · 손자 중길 · 덕응(德應)도 상복을 입었다.
배경이야기
◆ 조선시대 질병
김택룡이 둘째아들 김적이 천식을 심하게 앓고 있음을 안 것은 1616년 1월 21일이었다. 그로부터 약 1년 동안 김적은 병을 앓다가 마침내 숨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김택룡의 일기에는 1616년 12월 25일부터 1617년 1월 27일까지의 기록이 빠져있다. 원래 쓰여진 것이 결락되었다기 보다는 전후 사정을 살필 때, 아마도 이때에는 일기를 쓰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들의 병이 호전될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자 김택룡은 심란한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다. 김적의 병이 위독해졌을 때는 편지는 생략하고 병세만 묻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결국 아들이 죽었다. 아들의 죽음이 임박하자 김택룡은 일기 쓰기를 멈추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1617년의 일기는 1월 28일 김택룡이 자신의 아들을 위해 상복(喪服)을 입는 순간부터 기록하고 있다. 죽은 지 4일 째가 되고 입관(入棺)한 지는 하루 정도 지났을 때 성복(成服)을 하므로, 김적은 대략 1월 24일쯤 숨을 거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들을 위해 상복을 입는 부모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아마도 가슴에는 끝없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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