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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4-11 11:17
[스토리테마파크] /가족, 영원한 동반자/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 - 서자라고 부모 정이 다르랴 !
  글쓴이 : 한작협
조회 : 1,455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CEJ_0004 [349]
1612년 1월 6일, 아침에 제천 금응훈(자는 훈지)·원장 금경(자는 언각)과 서로 대화를 나누며 술을 마셨다.
이경적이 와서 만났다. 선전관 금결이 어제 이미 초청장을 보냈는데 지금 또 심부름꾼을 보내 초청했다.
성주(城主)를 만나고 월천(月川) 대부인께 인사드려야 하니 오후에 시간을 내어 모임에 가겠다고 답했다.
고을 객관에 이르러 주쉬(主倅)에게 인사하고, 조심스럽게 사직서 내러 가는 것을 그만 두도록 권유했다.
주쉬(主倅)가 술을 권했다. 김종이 또 왔다. 오래 있다가 다시 간다고 인사하였다. 바깥으로 나와 좌수 이덕승과
박유일·조벽 등을 대문 밖에서 만났다. (중간 탈락) 길에서 권옹을 만나 함께 월천에 가서 대부인에게 문안인사를 드렸다.
이어 권옹, 권(중간 탈락) 붕 형제와. (중간 탈락) 조노득(趙老得) 역시 술을 가지고 왔다. 조수붕과 조석붕이 각각 술을 권하였다.
(중간 탈락) 들어가서 수붕 형제의 어머니와 이야기를 하였다. 석붕의 처도 누이와 함께 있었다. 제천 금응훈(자는 훈지)이
확연정에 와 있다는 것을 듣고 잠시 만나고 헤어졌다. 금척경의 연회에 이르니, 날이 저물어 사람들은 대부분 돌아가고,
동내의 (중간 탈락)만 남아 금결(자는 척경)을 (이하 탈락). 이날의 연회는 선전관 금결을 위해서 자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에 문신으로서 선전관을 겸하여 지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새로 합격한 사람을 부르면서 장난치는 신고식을 하여[呼新設戱] 마을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크게 웃고 마침내 질탕하게 마셨다. 밤이 깊어 돌아가지 못하고 금진운 집에서
유숙하였다. 안으로 들어가 조카딸과 여러 부인들을 만났는데 간소하게 술상을 보아왔다. 시를 읊으면서 봄을 보내고, 밤이 깊어
술자리를 파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금결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취한 채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다가 어느덧 닭 울음소리를 듣게
되었다. 금결이 대여섯 살 정도 먹은 서아(庶兒 : 측실에서 얻은 아이)를 데리고 왔다. 사랑스럽게 그 아이를 어루만져 주면서
나에게 말하기를, “이 아이가 제 어미를 잃고 나를 따르니, 마음이 매우 애처롭다”고 하였다.3월 29일 이날 밤,
아들 대생이 흉하고 험한 일을 당하는 꿈을 꾸었는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매우 걱정이 된다.
5월 8일, 아들 대생의 병이 약간 나았다. 병세가 어제보다는 오늘 조금 나은 듯하다.
5월 14일, 아들 대평의 병이 심하다고 들어서 구고로 갔다. 길에서 박전(朴淟)과 남자신(南自新)을 만났다. 집으로 와 취해서 누웠다.
대평이 심하게 아파 비쩍 말랐다. 매우 애처롭다. 다음 날 밤에 인동란(忍冬蘭)과 파탕을 끓여 먹여 대평이 땀을 내도록 하려 하였으나 잘 되지 않았다.
1616년 11월 1일, 이날 새벽에 조윤복이 아들 대건을 데리고 예안으로 갔다. 어머니 없는 아이가 신새벽에 먼 길을 떠나는데 날씨가
너무 춥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에 슬픔을 이루 말할 수 없다.

배경이야기
◆ 조선시대 적서차별
김택룡의 시대는 서얼(庶孼)에 대한 차별이 제도화 되던 동시에 허통에 대한 논의도 끊임없이 제기되던 시기였다. 서얼이라는 신분은 정치·사회 제도적 측면에서 적자(嫡子)에 비해 제약과 불평등을 받았던 소외계층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의 사랑이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택룡은 5남 6녀를 두었으며, 이상의 자녀들은 『의성김씨대동보』에 올라 있다. 그러나 여기에 등장하는 대평, 대생, 대건 등은 소실들의 아들들로 곧 서얼이다. 그가 노년에 기록한 이 일기에는 이 자식들과 함께 한 일상들이 소소하게 기록되어 있다. 또 이들은 적자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적어도 일기에서는 별다른 갈등을 만들지 않고 있다.위의 시나리오 장면은 김택룡이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서자라고 차별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적서차별이 제도나 유명사례 또는 정치 사회적 이슈로 부각됨에 따라, 조선시대 서얼들이라면 응당 신분계층의 제약부터 떠올리지만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그들도 부모로부터 사랑받는 평범한 자식이었음을 김택룡의 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사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 자식 간의 정이야 보편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김택룡은 1617년 7월 30일의 일기에 ‘또 내 서자(庶子)를 허통(許通)해 준다고도 했다.’라고 쓰면서, 서자들의 관직 진출에 꽤 신경 쓰고 있음을 드러내어 자식에 대한 차별 없는 사랑을 표현하였다.
※ 조선시대에는 정처(正妻)가 아닌 첩에게서 난 자손을 서얼(庶孼)이라 불렀다. 그리고 서얼은 하나의 특수한 신분층으로 법적인 차별과 동시에 사회활동의 많은 제약을 받아야만 했다. 정처의 자식과 달리 관직에 진출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당했으며, 재산상속과 가족 내의 위치에 있어서도 차별대우를 받았던 것이다. 이같은 서얼차별을 시행한 이유는 양반층을 지배계급으로 하는 신분제 사회를 보다 철저하게 강화·유지하기 위함이었다. 신분적으로 서얼이 문제되는 것은 같은 지배층인 사족(士族)의 혈통이면서도 어머니가 첩이거나, 양인이 아닌 천인 출신일 경우에 더 큰 차이가 있었다. 1412년(태종 12)에 정부는 우선 병축(아내를 여럿 두는 풍습) 문제를 법적으로 규정했으며, 『대명률』에 의거해 여러 명의 처를 두는 일을 금지시키고, 어길 경우 장형(杖刑)을 가하도록 했다. 그러나 16세기 중반까지도 다처제의 풍속은 없어지지 않았고, 그만큼 처첩분별의 문제도 계속 분쟁화되었다. 처첩 분별의 조치와 함께 태종 때는 서얼차별도 점차 법으로 정해졌다. 법적인 서얼차별의 방향은 서얼의 관직 등용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입안되어 결국 서얼금고 원칙(庶孼禁錮, 조선시대에 양반 출신이라도 서얼에 대해서는 문과(文科) 응시와 일정한 품계 이상의 중요관직 진출을 제한하던 일)이 점차 굳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차별을 철폐하자는 서얼허통(庶孼許通, 서얼에게 관직을 허용하는 것)의 논의도 끊임없이 전개되었다. 특히 이이(李珥, 1536~1584)는 군량과 군마조달을 위해 쌀 80석(石)을 납부하면 허통을 허락하자는 서얼허통론을 제기하였는데, 이후 허통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납미허통책(納米許通策, 일정 액수의 쌀을 내고 허통하는 것)의 확대를 통해 더욱 큰 범위로 확장되었다. 이후 허통논의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신분제의 해체라는 사회변화로 인해 더욱 가속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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