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9-07 23:56
[역사] 조선시대 동상례(신랑다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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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스토리야
조회 : 2,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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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동상례(신랑다루기)
전통적인 결혼식에서 의혼의 절차를 거쳐 신랑이 신부집으로 가서 행하는 모든 의례를 대례(大禮)라고 하는데, 대례에는 초행과 전안지례·교배지례·합근지례·신방·동상례가 포함된다.
동상례(東床禮)는 점심 때를 전후하여 신부집의 젊은이들이 모여앉아 ‘신랑다루기’를 하는 것을 말한다. 신랑에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해서, 그 답이 신통하지 않으면 신랑의 다리를 끈으로 묶어 힘센 사람이 일어서서 짊어지거나, 대들보에 매어 발바닥을 방망이나 몽둥이로 친다. 신랑이 소리를 지르면 장모가 나와 말리고 음식대접을 한다.
양반집에서는 신랑에게 시(詩)를 읊게 하거나 화(話)를 맞추도록 하여 신랑의 학식과 지혜를 떠보기도 한다.
신랑다루기장가든 신랑이 신부집에 머무르는 동안 신부집의 젊은 일가친척들이나 마을 청년들이 신랑에게 괴로움을 주어 고초를 겪게 하는 의식으로, ‘신랑다루어먹기’라고도 하며, 함흥과 그 인근지방에서는 ‘장가턱’이라고 한다.
한자로는 동상례(東床禮·東牀禮·東廂禮)라고 하는데, 이는 중국의 고사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중국 진(晉)나라 때의 명필인 왕희지(王羲之)가 장가를 들 무렵, 그의 장인 될 사람이 그를 자기 집의 동상(東廂:동쪽의 건물)에 두고 행동거지를 살핀 뒤 사위를 삼았다고 하는데, 이때부터 중국에서는 사위를 동상이라고 별칭하게 되었고, 동상례라는 말은 이 고사로부터 생겨났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사위를 동상이라 하지 않았고, 또한 중국에는 동상례라는 말이 없다.
신랑다루기는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데, 지방에 따라 행사의 방법에 차이가 있다.함흥과 그 인근지방에서는 신랑과 동년배인 청소년들이 몰려와서 한시 한 구절을 제시하고 신랑더러 거기에 알맞은 대구를 지으라고 한다. 신랑이 대구를 짓지 못하면 무식하다고 야유하고, 대구를 지어도 알맞지 않다 또는 졸작이라고 트집을 잡아 신랑을 곤욕치르게 한다.
또, 장가턱 단자(單子)라 하여 술과 음식의 금액을 적은 종이쪽지를 신랑에게 건네주고 그 돈을 처가에서 받아내 오라고 강요한다. 신랑이 이와 같이 여러 가지로 곤욕을 치르게 되면 신부집에서는 성찬으로 청년들을 대접하거나 상당한 금액을 제공하여 신랑의 곤욕을 풀게 한다.
평안도지방에서는 신랑에게 한시를 지으라고 강요하여 괴롭힘을 준다.
신랑이 만약 한시를 잘 지어낸다면, 또 다른 시를 주고 몇 번이고 새로 지으라 한다. 이러한 풍습 때문에 이 지방에서는 신랑집에서 한문에 능한 학우나 친척남자를 신랑과 동반하게 한다.
동반자는 신랑이 말하는 것을 한문으로 표기한다. 신랑이 주위에 있는 것, 예컨대 천장에 거미집이 있는 것을 보고 “천장에 거무집”하면, 동반자는 “天長에 去無執”, 즉 ‘하늘이 넓고 커서 잡을 수 없다.’는 뜻의 한자로 적는다. 화로에 겻불냄새가 나는 것을 보고 “화로에 겻불래” 하면 동반자는 “花老에 蝶不來”, 즉 ‘꽃이 시드니 나비가 오지 않는다.’라는 뜻의 한자로 표기한다. 그러면 신부집에서는 글 잘하는 유식한 사위를 맞았다며 성찬으로 향응을 베푼다.
경기도나 그 이남의 삼남지방에서는 신랑다루기에 시작(詩作)이나 시구대응(詩句對應) 등을 강요하지 않고, 신랑의 발목을 묶어 건장한 자가 어깨에 거꾸로 매달고 다른 청소년들은 방망이나 목봉으로 신랑의 발바닥을 사정없이 때리면서 ‘이 집에 무엇하러 왔느냐’고 묻는다. 장가들러왔다’고 하여도 그런 대답은 무시하면서, ‘이놈은 필시 이 집 귀한 처녀를 도적질하러 들어온 놈이니 그냥 둘 수 없다’ 하여 발바닥을 다시 내려치며, “이 집에 들어올 적에 문전에 숲이 많이 우거졌더냐? 문턱이 높더냐 낮더냐? 안방이 깊숙이 있더냐? 샘물이 많더냐 말랐더냐? 집은 새집이더냐 헌집이더냐? 들어가는데 애먹었느냐 쉽게 들어갔느냐?” 등 신방의 비밀스런 얘기를 비유로 꼬치꼬치 묻는다.
대답을 하지 않으면 대답하라고 때리고, 애매하게 대답하면 분명히 말하라고 때리고, 거짓말을 하면 바른 대로 대라고 때린다. 이때 신랑은 육체적 고통을 받아 심한 경우에는 보행이 어렵게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신부집에서 큰상을 차려 내오면 신랑다루기를 멈추고 청소년들은 신랑과 함께 향응을 즐긴다.
신랑다루기는 신랑에게 육체적 고통이나 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이지만, 고통을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하례(賀禮)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즉, 경사를 더욱 즐겁게 축하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행사가 따르게 된다.따라서 신랑다루기는 역설적 하례라 할 수 있다.
신랑이나 신랑집 그리고 신부집이 인심을 얻지 못하였던가 사회적 덕망 또는 명성이 없으면 신랑을 다루려는 청소년이 몰려오지 않는다.신랑을 여러 번 다룬다는 것, 신랑 다루는 청소년이 많이 모여든다는 것은 신랑이나 신부집이 명성과 덕망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주는 표징이 되므로, 이를 기뻐하고 만족하였다. 그러나 신랑다루기는 경하의 행사일 뿐 주술적 행사는 아니다.
신랑다루기의 변형에 신부다루기가 있다.
신혼예식이 끝난 다음날 신부집의 일가친척인 기혼부녀자들이 신부 단독으로 또는 신랑과 함께 묶어놓고 여러 가지로 놀리면서 수줍어하고 부끄러워하는 것을 보고 즐긴다. 신부다루기는 동상례라고 하지는 않는다.
한편, 신랑이 본가에 돌아와서도 마을의 동년배나 학우들에 의하여 신랑다루기가 행해진다.
그러나 신부다루기가 시집의 마을 부녀자들에 의하여 행해지는 경우는 없다.
옛날의 신랑다루기의 모습은 조선 정조 때의 한양산인(漢陽散人)이 작성한 ≪동상기 東廂記≫에 잘 나타나 있다.
출처: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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