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익숙한 순간을 낯설어지게 만들고 낯설어야 할 상황을 익숙하게 만든다. 본 소설은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그런 낯설고도 익숙한 순간에 대한 질문이자, 사랑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다.
<세상 가장 행복한 만두를 찌는 법>은 태어나면서부터 친구였던 두 주인공. 만두와 상길이라는 인물이 서로에 대한 사랑을 깨달아가는 평범한 이야기를 표방하고 있다. 다소 심심할 수 있는 소재를 작가는 입체적이고 능동적인 인물과 대사로 끌어간다. 프롤로그를 보며 만두가 결혼하려는 상대는 누구일까를 찾는 재미도 있지만, 소설 중반 드러나는 반전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소설 전반에 흥미를 더한다.
이 소설이 최근에 읽었던 그 어떤 소설보다도 잔상이 오래 남는 이유 중 하나는 두만두라는 다소 특이한 여자주인공 때문이다. 최근 로맨스 작품들에는 예전과 달리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자주인공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 중 이 소설의 여자주인공 만두는 내 예상을 깨는 장면들을 가장 많이 보여 준 여자주인공이다. 이 작품이 좋았던 점 중 하나가 이런 장면들이 전혀 오버스럽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교 1등에 예의 바르고, 곧은 소리를 하는 사람. 주변 친구들의 세세한 면을 챙기고, 좋은 것은 좋다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한 사람. 불의는 절대 참지 않는 사람. 교내 가장 인기 있는 인물이자, 모든 것에 만능인 인물. 진짜 사랑을 주고, 받을 줄 아는 인물. 로맨스 소설에서 대부분의 남자주인공들이 가졌던 특성을 이 소설은 남자주인공 상길이 아닌, 여자주인공 만두에 투영해 보여준다. 그리고 상길은 이러한 만두의 모습들을 좋아하고 깊게는 동경한다. 만두 앞에선 자신도 만두처럼 멋져 보이고, 올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상길의 모습은 현실 속 이상적인 연애를 꿈꾸게 한다. 또한 이런 모습들은 독자로 하여금 마음 어딘가를 간질인다. 로맨스 소설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묘미다.
남자주인공인 상길은 낯선 것들에 대해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인물이다. 이는 소설의 곳곳에서 아주 기민하게 보인다. 프롤로그에서 상길이 잃어버린 것과 같은 지갑을 선물하며 “너 낯선 것들 싫어하잖아”라는 만두의 대사를 비롯하여 낯선 타인들이 내미는 편지와 선물들에 대한 경계, 친구인 도근과 처음 친해질 때 상길이 느꼈던 구토 증상, 익숙하지 않은 자전거는 배우다 결국 포기해버리는 모습, 만두를 떠나 정착한 이탈리아의 1층 바 직원이 던지는 가벼운 질문들에도 상길이 느끼는 불편감은 이런 상길의 성향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이처럼 낯선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상길에게 적응할 필요도, 알아갈 필요도 없이 익숙한 존재가 하나있다. 바로, 태어날 때부터 함께였던 여자주인공 만두이다. 나는 이 소설의 작가가 만두와 상길이 태어나면서부터 친구라는 설정을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이유로 상길이 낯선 것들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모든 순간엔 항상 만두가 위치해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한 마음이 단순한 우정이 아닌 사랑임을 깨닫게 되는 시기가 바로 유학과 군대라는 두 사람이 유일하게 떨어져있던 시기가 되는 것이다.
중반부에서 소설은 이러한 ‘낯섦’과 ‘익숙함’을 반전을 통해 역설적으로 비튼다. 상길은 본인이 느끼는 익숙한 순간들이 낯설어지고, 낯설어야 할 상황에서 익숙함을 느끼며 혼란해한다. 소설 속 반전내용은 기타 소설에서 나오는 것과는 다르게 묘사된다. 재미있는 점은 자칫 우울할 수 있었던 반전 사항을 이 소설은 전혀 어둡게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지금 생각하거나 시행하는 행동들이 과거에 이미 했던 행동들이었음을 깨달으며 상길 스스로는 두려워 하지만, 이를 대하는 만두의 태도는 당당하다. 오히려 상길을 향해 “아픈 것일 뿐이다”라며 혼내고, “내가 길을 못 찾을 때 네가 나를 귀찮아하지 않았던 것과 같다”라는 신선한 위로를 건넨다.
이 소설 속 반전이 식상하지 않고 흥미로운 또 다른 이유는, 상길이 인생의 그 어느 기억을 잃더라도 만두만은 절대 잃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는 태어나면서부터 그의 모든 기억과 삶에 만두가 없는 날이 없기 때문이다. 본 소설이 두 사람의 어린 시절부터 10대 시절 이야기를 꽤 오랜 시간 차근히 풀어나가는 이유이기도하다. 두 사람이 서른이 되는 시기까지, 독자들은 두 사람의 다섯, 열넷, 열일곱 그 모든 시기의 추억들과 에피소드들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만두의 “그 어느 기억을 잃더라도 괜찮다. 네 인생에 내가 없는 시기는 없기 때문이다”라는 대사에 우리는 쉽게 수긍할 수밖에 없다.
만두는 길을 기억하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인물이다. 만두는 하나의 길을 익히기 위해선 수백 번 그 길을 반복해야만 외울 수 있다. 그런 만두가 자신을 놓아주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난 상길을 수많은 노력 끝에 결국 찾아낸다. 자신을 찾아온 만두를 보던 상길은 어떻게 하는가. 낯선 것은 도전하지 않고 회피하던 상길이 자신을 찾아온 만두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달린다.
늘 낯선 것에 익숙해지지 못한 채로 겉돌거나 포기했던 상길이 자전거의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서 우리는 사랑을 위해 각각 자신의 아픔을 극복해내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는 내가 이 소설을 단순한 로맨스 소설을 넘어 인간의 성장을 보여주는 소설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만든 장면이기도 하다. 이 대목에서 상길은 자전거에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선 쓰러지려는 쪽으로 핸들을 꺾어야한다는 어릴 적 만두의 말을 떠올린다. 자신의 약점이나 아픔을 회피하기보다 직면할 때 우리는 그 약점들을 극복하게 된다. 그리고 상대방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그런 사랑을 통해 우리는 한 차례 더 성장하게 된다.
<세상 가장 행복한 만두를 찌는 법>은 입체적인 주변 인물들도 매력적인 소설이다. 덩치만 보면 운동을 잘해야만 할 것 같은 도근이가 실은 100m를 14초대에 뛰는 운동 바보라는 것과 이또한 이유가 있다는 것. 4총사 중 가장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 영희도 마찬가지다. 소설 초반 딱 귀밑 8cm의 머리를 유지하고 딱 평균의 성적을 가진 평범한 인물로 묘사되어지지만, 가장 평범해 보였던 그녀가 가진 반전은 그래서 더 흥미롭다. 독자들은 영희를 보며 우리가 규정했던 ‘평범함’과 ‘평균’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10대 시절이 주를 이루던 봄 챕터가 끝나면, 이 4인의 주인공들이 마치 내 주변에 존재하는 실존인물들처럼 생생해진다. 그 각각이 가진 특징이 이처럼 명확하기 때문이다. <세상 가장 행복한 만두를 찌는 법>은 생동감 넘치는 주변 인물들을 통해 로맨스소설이 주는 특유의 유쾌함과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만두 앞에서 빨개진 전교 2등의 얼굴을 김치만두에 비유하며 질투하는 장면이나, 티 안에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은 만두와 맨 가슴을 부딪친 후 만두를 이성으로 처음 인식하게 되는 상길의 모습 등이 그러하다.
이 소설은 이성간의 사랑 외에도 우리가 살며 경험하는 다양한 사랑의 감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만두를 위해 떠나려는 상길을 만두의 부모님은 저지하고, 상길의 부모님은 지지하는 장면이 특히 그렇다. 이 경우는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경우와는 반대다. 두 부모님은 자신의 자식보다도 그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진짜 사랑에 대해 되묻는다.
또한, 도근과 상길처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든든한 우정이나 영희와 만두가 힘든 서로의 사랑을 응원하는 모습에서 보여주는 잔잔한 우정 그리고 만두와 도근 사이에서 보여주는 편하고 따뜻한 우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독자들은 겉으로는 다른 성질의 가진 것처럼 보이는 이 우정의 모습들도 상길의 사고를 통해 그 내실엔 서로를 아끼는 ‘사랑’이라는 단 하나의 감정임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그러니 이 작품은 무엇보다 진정한 사랑에 대한 질문과 의미가 더 매력적인 소설임에 분명하다. 자극적인 장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읽었던 소설 중 가장 기억에 남은 이유이다. 로맨스소설 입문자에게도 좋은 수준높은 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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