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11-13 12:16
[응모]_옷소매붉은끝동_로맨스_강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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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소매 붉은 끝동
- 츤데레 왕과 철벽치는 궁녀의 애틋한 로맨스-
올해 여름이었다. 찌는 듯한 더위를 피할 요령으로 독서실 월권을 끊었다. 시원한 바람이 솔솔 나오는 공간에서 인강으로 듣는 한국사는 시험을 앞둔 공부라기 보다는 강사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마냥 귀를 간질였다. 그 중 단연코 으뜸은 정조가 사랑한 후궁 의빈성씨에 관한 이야기였다. 생각해보면 시험에도 나올 것 같지 않은 한낱 후궁의 이야기를 왜 귀에 콕 박히게 이야기 해주었나 싶으면서도, 어쩌면 강사가 스치듯이 지나친 이야기를 나 혼자 진지하게 들은 게 아닌가 싶다. 공부는 뒷전으로 두고 정조가 사랑했던 후궁 의빈성씨에 관한 인터넷 서치를 시작했다. 궁녀출신이었고, 정조가 세 번이나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른이 다 돼서야 정조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오로지 한 여자에게 직진하는 임금과 임금의 마음을 알면서도 튕기는 궁녀라니. 왠지 중후한 고전소설보다는 하이틴 로맨스소설에 나올법한 이야기였다. 서치를 계속하다보니 정조와 궁녀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와 로맨스 소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드라마는 2007년에 방영된 ‘이산’이었고 소설은 2017년도에 책과 e북으로 출간된 ‘옷소매 붉은 끝동’이었다.
나는 정조를 중심으로 한 ‘이산’보다 궁녀를 중심으로 한 ‘옷소매 붉은 끝동’에 더 관심이 갔다. 그리고 찌는 듯한 여름이 가고, 천고마비의 계절인 가을이 왔다. 다시 일을 시작했다. 출근해서 의자에 앉으면 퇴근 할 때까지 업무의 연속이었다. 집에 오면 노상 피곤하여 쉬고만 싶었다. 눈요깃거리를 할 요량으로 여름에 관심 있었던 웹소설 ‘옷소매 붉은 끝동’을 결제했다. 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한권을 다 읽어버렸다. 처음에는 소설에 나오는 지문, 주인공들이 받는 대사에서 철저한 고증이 느껴져 작가의 노력이 대단해 보였기에 재밌었다. 소설을 읽을 때만큼은 내가 꼭 그 시대의 사람인 것만 같았다. 집이 가난했기에 뒷바라지라도 해볼 요량으로 입궐하여 궁녀가 되는 여자들, 일반백성들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노동하여도 되돌아오는 것은 윗사람의 눈치를 보는 현실. 어쩐지 현재의 근로자들과 다를 바 없는 것 같은 과거는 분명 기분 탓일 것이라 믿고 싶었다. 한나라의 지존인 왕이 하찮은 궁녀를 사랑하는 과정도 흔하디흔한 신데렐라 형 스토리 같았다. 궁녀는 왕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서 더 그랬다.
그런데 2권, 3권이 넘어갈수록 궁녀가 왕을 사랑하고 있는지 의심이 갔다. 오후에는 노동을 하고 밤에는 궁체로 필사한 서책들을 책방과 거래하며, 가난한 집안을 뒷바라지 하는 궁녀의 행동은 엄격한 생활이 요구되는 궁인 신분과 별개로 자유로워 보였다. 어쩐지 손쉬운 장난으로 주변사람들을 약 올리는 개구 진 성격이나, 할 말은 꼭 하고야 마는 당찬 성격은 매력적이기까지 했다. 또 공주마마들이 주신 필사일감을 혼자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입궐한 세 명의 벗들과 같이하며, 수입도 나눠가지는 그녀의 행보는 베푸는 미덕까지 더했다. 안정된 직장, 가족을 뒷바라지 할 수 있는 필사일, 함께 입궐한 세 명의 벗들까지. 이만하면 괜찮은 인생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평범한 궁녀의 인생에 왕이 끼어들었다. 여염집 남녀가 하는 사랑은 아니었다. 왕의 사랑은 수많은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는 그런 사랑이었다.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의 아이를 가지면 오히려 화를 냈다. 나라의 국모인 중전, 명문가 출신의 후궁이 아닌 천한 궁인이어서 못마땅했다. 궁녀가 원자를 낳으며 정일품으로 신분이 상승했지만 평생을 쏟아 과거에 급제한 오라버니가 뜻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관직을 박탈당했다. 외척의 세력을 견제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관직을 박탈당한 오라비는 고을 백성들의 도움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형편이 됐다. 궁녀의 출세란 빛 좋은 개살구와 다름없었다. 왕에게 설움을 호소할 수도 없었다. 왕의 총애가 끊기면 궁녀의 신세는 뒷방 늙은이보다도 못한 신세로 전략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가장 두려운 것은 그녀의의 경솔한 언행으로 어떤 위기에 처할지 모르는 원자의 존재. 어미는 아들을 아들이라 부를 수 없고, 아들은 어미를 어머니라 부를 수 없다. 원자의 어머니는 오로지 중전이어야 했다.
과연 궁녀는 행복했을까? 승은을 입고, 원자를 낳고, 출세도 했다. 그러나 오라비가 관직을 박탈당하고, 원자를 잃었다. 별감과 금기된 사랑을 하던 친구는 유산을 하다가 죽었다. 최후의 비극은 원자가 죽은 후, 궁녀 자신도 유산을 하다가 죽었다는 것이다. 왕은 홀로 남았다. 마지막에는 궁녀가 왕을 찾지도 않았다. 궁녀는 어릴 적부터 함께 어울려 자랐던 남아있는 자신의 친구 두 명을 불렀을 뿐이다. 한 나라의 지존이자, 모든 걸 다 가진 줄 알았던 왕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여인만은 결국 가지지 못했다. 마지막 장으로 갈수록 먹먹함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궁녀를 관점으로 읽던 소설이 점점 왕에게 감정이입해갔다.
어쩌면 가장 불행한 사람은 궁녀가 아닌 왕이 아니었을까? 홀로 남아있는 사람의 쓸쓸함이 내 마음까지 사무쳤다. 미치광이 세자의 아들이라는 오명으로 평생을 외로 웠을 남자가 잠깐이라도 사랑하는 여자와 자식도 낳고 가족을 이룬 행복으로 남은여생을 버틸 수 있었을까? 왕은 궁녀를 잃고 홀로 십수년을 더 살았다. 술과 담배로 점철된 인생이었다. 나라의 종사를 잇기 위해 후궁을 들였고, 다시 원자를 보았다. 전처럼 가족을 이룰 수 있었으나, 전과 같은 가족은 아니었다. 평생에 단 한번 휘몰아치는 격정적인 감정을 겪은 후, 왕의 감정은 메말라 버렸다. 내면이 고갈될수록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날수가 더 많아졌다. 숨과 담배로 점철된 인생은 최후에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눈을 감았다 깼을 때, 왕이 마주한 사람은 왕이 사랑한 궁녀였다. 해사한 웃음을 짓고 왕에게 무릎을 내어주고 있었다. 죽어서야 비로소 다시 찾은 행복으로 결말이 마무리되었다. 한동안 먹먹한 감정으로 이야기가 주는 여운을 만끽했다. 좋은 이야기는 그런 것이다. 생각나게 하는 것. 오늘과 다를 바 없는 내일이 올 테지만 왕과 궁녀의 사랑이 내게 준 감동은 나의 메말랐던 감정을 촉촉하게 적셔 줄 것만 같다. 참으로 오랜만에 읽은 훌륭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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