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탐정사무소 1권
- 장르를 중심으로
평을 할 정도의 내용은 읽었고, 돈은 얼마 안써서 하차는 쉽고.
신중하고 솔직하게 감상문을 작성하기 딱 좋은 때, 1권의 끝에서 쓰는 감상문!
▶ 장르, 추리 (소화 캐릭터의 아쉬움)
너무 복잡하기만 한 추리물은 가볍게 읽을 만하지 못해 웹소설에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고 너무 뻔하고 쉬우면 읽을 이유가 없고. 그런 측면에서 ‘경성탐정사무소’는 그 줄타기를 잘하고 있다. 슬쩍슬쩍 뿌려진 단서와 복잡하지 않은 인물 관계. 텍스트 낭비가 없으면서도 술술 읽히는 딱 적당한 추리웹소설이다.
그런데 추리 장르 측면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소화'의 역할이다. 탐정 원톱이아닌 투톱 주인공이 사건을 이끌어나가는 추리물의 관건 중 하나는 조수 캐릭터다. 주인공의 헛점에 위치한 독특하고 강한 조력자와 탐정과의 케미 예를 들어, 셜록홈즈의 왓슨은 퇴역한 군의관으로서 군과 관련된 권위가 필요하거나 의술이 필요한 상황에서 적절한 역할을 한다. 퇴역 후 배우자를 만나 안정된 가정을 꾸리는 평범한 삶을 꿈꾸지만 절대 그럴 수 없는 천성이 왓슨을 자꾸 셜록에게로 이끈다. 이렇게만 봐도 벌써 재밌다.
그러나 '경성탐정사무소'의 경우, 탐정과 조수의 관계 설정이 부족하고 아직 둘의 상하관계가 뚜렷해 보이는 점이 아쉽다. 주인공 ‘소화’의 뛰어난 기억력이라는 능력치는 사건 해결의 재밌는 열쇠가 되긴 부족하다. 차라리 하녀 짬바에서 나오는 눈썰미와 생활지식이 사건에 활용되는 편이 재밌지 않을까 싶다. 이 작품은 해영보다 소화 입장의 서술이 더 많은 소화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소화는 하녀가 아닌 조수로 인정받았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라, 조수에서 동반자가 되어야한다. 초반부라 뒤가 어떻게 전개될 지는 모르지만 초반부터 단서가 있어야 다음권을 결제하는거니까. 아직 둘의 관계는 너무 납작해 보인다.
▶ 장르, 로맨스 (어차피 남편은 정해영?)
정신없이 사건에 빠져들다 보면 가끔 잊는 것이 있는데 이 소설은 사실 로맨스 장르라는 점이다. 그 사실을 일깨워 주는 건 소화와 해영이 아닌, 1권에서 일어난 세개의 사건 모두가 공교롭게도 치정극이라는 사실이다. 사랑과 배신, 복수와 파멸, 그리고 방향을 잃은 짝사랑. ‘도대체 사랑이 뭐길래?!’ 소리가 절로 나오는 사건들. 치정극의 가운데서 문을 연 로맨스, 그 틈에서 어떤 사랑이야기가 나타나게될지 궁금하다.
두 주인공보다 사건에서 로맨스를 찾게 된다는 건 매우 아쉽다. 감정선이 약하고 사건 외적인 에피소드가 거의 없다. 소위 말하는 ‘설레는 장면’이 필요하다. 물론 없어도 추리물로서의 가치가 있지만 그래도 로맨스라는 장르를 택했다면 독자들이 원하는 지점을 건드려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감정선이 약하다 못해 없다시피한 건 최근 주목받는 로맨스 스토리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속성이다. 만남은 세상 독특하면서 이후 관계 전개가 다소 부족한 작품들이 많다. “도대체 둘은 언제부터 좋아한건데?” 요새 나와 동생이 드라마를 보며 제일 많이 하는 말이다.
물론 사랑에 빠지는 데는 이유가 없다고들 하지만 계기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설정 자체가 팜므/옴므파탈일 수도 있고, 결핍을 채워주는 관계일 수도 있고, 순간의 설렘일 수도 있겠다. 어찌됐건,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에게 마음이 다가가는 과정을 상황과 행동으로 독자들에게 보여줘야한다.
‘경성탐정사무소’ 또한 마찬가지다. 1권 후반부에서 ‘해영’은 소화에 대한 호감을 내비치며 ‘이환’이라는 캐릭터를 견제하게 되는데, 조금 갑작스럽다. 그냥 귀엽고 챙겨주고싶은 동생쯤으로 여기는 것처럼 굴더니 갑자기 뺏기고 싶지 않은 들꽃이라니. 좋은 대사가 아까운 장면이다. 그 기싸움에서 극적 효과를 느끼려면 앞 내용에서 해영이 소화를 좋아하고있다는 힌트가 필요하다. 누나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 좋은 조수라는 것 외에 연애 감정을 일으킬 만한 작은 에피소드들이 있다면 좋을 것 같다. 공백없이 술술 넘어가는 사건 추리에 비해 로맨스는 조금 삐걱이는 것 같아 조금 아쉽다.
사랑에 빠지는데서 논리적인 정당성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몰입을 위해 필요한 장치적인 장면들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독자들은 너그러워서 둘이 주인공이면 둘이 이어지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망붕 렌즈’를 끼고 작품을 바라본다. “잘됐으면 좋겠다, 이미 잘 된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독자들에게 감정선을 과도하게 추리해야 하는 책임을 떠넘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 장르, 편안하고 적절한 시대극
시대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 책임감이라 생각한다. 최근 ‘허구임을 밝힙니다.’ 와 같은 무책임한 한 줄로 역사 왜곡을 일삼는 작가들이 있어 예민한 부분이다. 작품의 목표가 역사 왜곡인 것은 당연히 지탄받을 일이고, 작품의 분위기만을 위해 시대적 배경을 가져오는 일도 지양되어야 한다. 갈수록 해외 번역, 드라마화 후 수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특히나 신경 써야하는 지점이다. 특히나 개화기의 경우 사료가 많은 근현대이며,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역사문제로 고통받는 분들이 있기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특정 가해 집단을 미화하지 않고 전쟁 피해국으로서 적절한 포지션을 취하는 지 독자도, 작가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된다.
이러한 책임감은 보통 고증을 통해 드러난다. 인물과 어휘, 상황설정 등. ‘팩트’에 대한 작가의 집착은 왜곡의 여지를 현저하게 줄인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작품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기초 학력 소지자인 나를 기준으로 할 때, 배경과 상황 전개에서 거슬림이 없었다. 그리고 ‘역사 잘알’로 보이는 독자들이 남긴 댓글 일부를 볼 때, 세부적인 고증 또한 잘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대상을 반영한 다양한 인물들이 감탄을 내뿜게 한다. 탄탄한 역사지식에서 출발한 시대의 전형이면서도 뻔하지 않은 캐릭터들. 그들의 직업과 관계, 그들이 처한 상황이 시대 배경을 아주 잘 활용하여 그려져 있다. 남주의 탐정이라는 직업이 이러한 인물들을 그려내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된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인물들이 사용하는 단어와 어투도 시대의 분위기를 잘 묘사해준다. 외래어 표기나 지명 등이 당시의 것이고, 지문을 포함한 인물의 대사에서도 개화기의 냄새가 폴폴 난다. 지리적 배경인 ‘경성’ 또한 적절한 묘사를 통해 머릿속에 쉽게 떠올릴 수 있게 된다는 점도 즐겁다.
역사적인 큰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에피소드는 아직 없지만 (1권 세번째 사건에서 어렴풋이 나타나는가 했더니 치정이었다.) 1권에서 보여준 작가님의 무게로 보아 우려하는 일은 없을 듯하다. 후반부에 황실의 친일 과를 비판하는 내용이 등장했는데, 황자인 서브 남주가 이 지점을 스토리상에서 어떻게 풀어나가며 무게를 맞출지 궁금하고, 매우 기대가 된다.
▶ 총평
재밌는 사건들과 신뢰도 있는 시대물. 배경과 장르를 정직하게 담은 제목을 보고 클릭했고, 1화가 필력으로 나를 끌었다. 초반부가 나를 단편 결제하게 했고, 1권이 단행본 구매를 부추긴다. 너무 재밌는 웹소설의 정석루트다.
사실 웹소설 플랫폼에 익숙하지 않아 즐겨읽는 편이 아니고, 특히나 끝까지 각잡고 읽은 작품은 아예 없다. 아마 '경성탐정사무소'가 완결까지 읽은 인생 첫 웹소설 작품이 될 것 같다.
작품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재밌게 읽은 데 비해 쓰다보니 다소 부정적인 의견이 많아졌지만, 어쨌든, 단행본 2권을 결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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