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11-30 00:55
[응모]_킨_로맨스_문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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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에 빠질 수 없는 요소가 있다. 무언가를 사랑하면 반드시 따라붙는 것, 불안이다. 처음에는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작았던 불안의 크기는 아주 사소한 계기를 만나 커지기도 한다. 이 사람이 갑자기 어디가 아파서 영영 떠나버리면 어쩌지. 내가 너무 사랑해서 떠나버리면 어쩌지. 내가 너무 미워서 떠나버리면 어쩌지. 한조는 이러한 종류의 질문들을 매일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되물으며 불안해졌다. 창백한 사유의 얼굴은 그녀를 영영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가능성으로, 자신을 외면하는 사유의 말들은 그녀로부터 앞으로도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잔인한 확신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사유를 사랑하는 일이 한조에게는 동시에 스스로를 불안에 가두는 일이 되어버렸다.
어린 시절, 외삼촌 인태로부터 애정이라는 것에 대해 가학적으로 교육받은 한조는 감정 교류에 서툰 사람으로 자랐다. 특히 애정 관계라면 더더욱 그에게는 어렵고 무서운 것이 되어버렸다. 가지고 싶고, 옆에 두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억누르고 짓눌러서 가져야 한다는 인태의 말이 한조에게 너무나 강하게 각인된 것이다. 그런 한조는 사유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유를 사랑했다.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한조와 사유의 비틀리고 절뚝이는 관계가.
이 소설을 처음에 한 번 읽었을 때는 인물들의 불안에 공감하기 힘들었다. 하나같이 너무나도 이기적이라고 생각했고 사랑받기에는 부족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다시 두 번, 세 번 읽다 보니 알게 되었다. 사랑받기에 부족한 사람이 존재하기는 하는 건가. 무서운 게 유난히 남들보다 많고, 부서지기 쉬운 사람들이라서 난생처음 소중한 무언가를 만났을 때 불안해하는 게 당연했을 것이다. 행복이란 걸 경험해보지 못해서 불안한 사람들이기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평생을 학대받고 자란 사유 역시 어찌 보면 많은 부분에서 비틀린 사람이다. 한조의 옆에서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었던 사유는 죽음을 가장해서 그를 떠났다. 그러나 사유의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불안은 그를 떠난 뒤에도 되려 커져만 갔고 그래서 악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내기 위해 다시 한조에게 돌아간다. 복수를 꿈꾸던 그녀는 이내 깨달았다. 자신이 한조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한조를 증오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자신과 지독히도 닮은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그를 도려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과 닮은 한조를 받아들이게 되고 지독히도 비틀린 그와 자신을 용서했다. 서로에게 투영된 존재들. 이 말이 둘만의 관계를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이 아닐까한다.
사유의 부재 속에서 죽은 채로 삶을 살아내던 한조, 사유가 돌아온 뒤 새벽마다 잠에서 깨어 그녀의 존재를 확인해야만 마음 놓을 수 있었던 한조, 물에 빠져 죽을 뻔한 한조를 사유가 절박하게 살리려던 모습, 그런 세세한 장면들 하나 하나가 애틋했다. 서로 대놓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아닌데도 장면 여기저기에 감정이 묻어있어서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다. 인물들이 어떤 심정으로 변해가고 있는지. 어떻게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지.
결국 인물의 ‘절박한 마음’이 아직까지도 이 소설이 내 마음에 오래 남아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사실 모두가 같은 형태의 사랑을 하지는 않는다. 일상에서도 그러하듯이 소설에서도 그렇다. 모든 소설에서 모든 인물이 일률적인 사랑을 하는 게 아닌 것처럼. 이 소설 속 인물인 한조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애정을 갈구하고 상처받고 극복했다. 한조 뿐 아니라 『킨』의 인물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부서졌지만 결국엔 행복해졌다. 기이할 정도로 불안정한 내면을 지닌 채 살아온, 그래서 불행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다. 용기내어 행복해지려고 노력했고 결국 그들은 가족이 되었다. 어딘가 서툴러서 자꾸 넘어지지만 다시 일어나서 살아가는 한조와 사유 가족이 어딘가에 진짜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어쩐지 마음이 저미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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