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11-30 23:54
[응모]_나는 이 집 아이_로맨스판타지_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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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 안에 깃든 세 개의 운명
시야 작가의 <나는 이 집 아이>는 한 사람의 내부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운명을 보여주고, 그 운명 사이의 교차를 통해 마침내 어떤 ‘집’의 원상을 회복하는 이야기다.
주인공에게는 세 개의 서로 다른 운명과 그 각각의 이름이 있다. 이 인물을 명명하는 것은 ‘서영’이자 ‘분홍눈’이며, 그 모든 호명을 끌어안은 ‘에스텔 카스티엘로’라는 이름이다. 구체적으로는 이름조차 없이 학대받던 창부의 딸 ‘분홍눈’에게 불현듯 전생의 기억인 ‘서영’의 운명이 끼어들고, 11살에 마침내 공작가로 입성하면서부터 ‘에스텔’로서의 새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이 집 아이>는 그렇게 한 운명이 다른 운명으로 번져나가면서 끝내 한 삶을 완성해내는 과정을 끈기 있게 들여다본다. 이 과정에서 ‘에스텔’은 ‘분홍눈’이자 ‘서영’이었던 자신의 부분적 삶을 모두 극복해냄으로써 스스로의 삶을 완수해 낸다. 공작가의 기사 ‘에멜’과의 신분을 넘어선 사랑 역시 ‘에스텔’ 자신의 삶의 완수를 딛고 선 채 마침표를 찍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이 집 아이>는 ‘사랑하는’ 존재로서의 여성 캐릭터가 아니라, ‘살아가는’ 한 인간이 처한 시간의 흐름에 주목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전지적인 남성 캐릭터 없이도 충분히 매력적인 로맨스 소설
할리퀸 시리즈를 위시한 대중 로맨스 소설이 줄곧 보급해 온 클리셰가 있다면 바로 남성 캐릭터의 압도적 매력(혹은 전지전능함)이었을 것이다. 이 우월한 남성 캐릭터는 온갖 환상의 집합체로서, 사랑하고 사랑 받는 일에 있어 마치 전능한 존재처럼 그려지곤 했다. 때때로 이 고전적인 구도 속에서 여성 캐릭터는 지나친 사랑-연애의 파도 속에 잠식된 것처럼 보이곤 했다. 그러나 <나는 이 집 아이>의 연애상은 다르다.
주인공 ‘에스텔’과 사랑에 빠지는 남성 캐릭터 ‘에멜’은 물론 강하고 멋진 캐릭터지만, 기본적으로 결핍으로부터 파생된 인물이다. 그에게는 신분, 가문과 얽힌 복잡한 문제가 있으며, 남녀 관계에 있어서도 그다지 영웅주의적이지 않다.
두 사람 사이에서 사랑의 균형을 주도하는 쪽은 오히려 ‘에스텔’이며, 감정적 결핍의 해소나 사회적 성취에 있어서 보다 진취적인 활약상 역시 여성 캐릭터인 ‘에스텔’에게 주어져 있다.
자기 앞에 놓인 운명과 대결하면서 공작가의 태생적 한계마저 돌파해나가는 ‘에스텔’의 행동들은, 이야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란 바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라는 로맨스 장르의 오래된 도식을 새롭게 돌파해 나간다.
‘자기’라는 혼돈과 ‘세계’라는 질서 앞에 선 이의 사명
그러니까 시야 작가의 이 소설이 최종적으로 가 닿는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고 스스로조차 돌볼 힘이 없던 문약한 열한 살 소녀가 비로소 ‘이 집 아이’가 되어 얻게 되는 눈부신 자기도약이 그것이다. 어쩌면 ‘집’이라는 안전한 삶의 준거를 가져본 적 없던 약하디약한 한 인간이 무력한 자기로부터 도약하고자 부단히 현실을 살아내는 과정 자체일 것이다.
여기서 ‘집’이란 은유적이다. 제대로 된 가족과 품을 가져본 적 없던 소설 속 ‘분홍눈’에게는 새로운 이름과 운명, 지위를 포함한 그 가족의 일체가 ‘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책장을 덮고 나자, 이때의 ‘집’은 구체적이고도 구구한 내 삶의 현실의 세목들과 맞붙으면서 더 많은 생각을 남겼다. 비유적으로 ‘집’은 되찾고 싶은 나 자신의 필연성이 되기도 했고, 최초로 가질 어떤 영광이 되기도 했으며, 끝끝내 도착하고 싶은 유일무이한 장소나 사람 혹은 삶의 한 영역으로서 뒤바뀌기도 했다. 내게 <나는 이 집 아이>가 남긴 ‘집’이라는 원상의 회복 내지는 최초적 발견은 그런 의미로 남아 있다.
외전을 포함하여 총 여섯 권(전자책 기준)의 긴 분량으로 완성된 <나는 이 집 아이>를 읽는 시간은 확실히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었다. 이 시간의 속도가 물리적인 독서 시간을 말하고자 하는 것만은 아니다. 나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자기라는 내부적 혼돈으로부터의 극복을 위해 애쓰는 한 인물과 동행했고, 동시에 자기를 넘어서 이 복잡다단한 문제적 세계와 거침없이 대결하는 한 인간상을 통해 새삼스러운 소설 읽기의 기쁨과도 만날 수 있었다.
그건 결코, 간단히 끝나지 않는 무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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