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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1-30 22:03
[응모]_스캔들1930_로맨스_김민주
  글쓴이 : 스푼
조회 : 1,344  
‘한평생을 원 없이 살아도 참된 연을 만나기 어렵다 하는데 그대를 만나 연을 맺어 보았으니 짧은 생이 서러울 것 하나 없습니다.’

 5년 전, 그날은 다른 일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가을바람을 맞으며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그려왔고 무의미한 나날들을 보내왔었다. 그러나 어떠한 책을 본 뒤 내 삶은 더 이상 평범한 날이 아니게 되었다. 시대와 사랑. 이 두 가지 운명의 엇갈림 속에 존재하는 잔혹하고 아름다운 이야기 [스캔들 1930]은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칠 만큼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인 모구연 백작의 딸 ‘모석정’과 일본 권위가문 이치카와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 ‘이치카와 타이요우’. 이들의 사랑이 탄생하기 시작된 순간부터 막을 내릴 때까지 나는 수많은 감정을 터뜨렸다. 사랑이 탄생하였을 때 웃었고, 위기에 처했을 땐 화가 났고, 막을 내릴 땐 미친 듯이 울음을 터뜨렸었다. 
 살면서 운명이란 것이 정말 존재하지는 아직은 모르겠다. 그러나 언젠간 사랑을 하게 된다면 이처럼 강렬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싶다.

 1권에서는 석정과 타이요우의 만남과 석정이 ‘도쿄의 별’이 되고 난 후까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일제의 억압을 받던 1920년대에서는 1910년대와 다르게 많은 변화를 일으켜왔다. 특히 ‘신여성’이라 불리던, 주체적인 사회활동을 하는 여성들을 일컫는 단어가 등장했는데, 석정은 신여성처럼 불같이 뜨거운 열정을 가진 모던걸이었다. 처음 석정을 보았을 때 나는 ‘얌전한 부잣집 딸’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 예상을 완전히 부숴버렸다.
 조선 최초의 신무용가가 되기 위해, 일본 최고의 무용수 ‘가스카노 미하로’에게 당당히 자신을 보여주었을 때 나는 그녀의 모습이 ‘무대 위의 오데트’로 그려져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보여주었을 때 타이요우가 등장했었다. 서로가 서로를 느끼며 이들은 만남 이후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아름답고 사랑의 저주에 걸린 오데트. 과연 어떤 사랑을 보여줄지, 나는 마음이 다급해졌었다.

 그녀가 미하로의 제자가 되고 난 후 자신의 재량을 더 키우기 위해 수많은 장면을 펼쳐나가는데 이때 가장 감명 깊게 봤던 점이 있었다. 그것은 석정과 그녀의 라이벌 히토미가 천황 즉위식에서 무대를 선사한 이야기였다.
 주제는 ‘세상에 선보여진 명작 중 식상하지 않는 것’을 찾아 무대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주제와 부합하게 ‘빈사의 백조’를 선택하였다. 석정이 어두운 밤, 오직 달빛 한 줄기만 비추던 고독한 연습실에서 홀로 닳아진 톨슈즈를 말없이 내려다보았을 때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었다. 고향을 뒤로하고 홀로 낯선 곳으로 와 외로움을 느낀 것일까 혹은 무대에서 자신이 패배하리라 생각했던 것일까. 만일 그것도 아니라면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이런 나의 마음을 대변해주려는지 타이요우는 연습실 뒤에서 어두운 그림자처럼 나타났었다. 그리고 나와 그는 석정을, 그녀를 감상했었다.
 빈사의 백조, 혹은 날개를 잃은 백조일까. 아님 타이요우가 말한 죽어가던 백조를 뜻하는 것일까. 백조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죽어가고 있지만, 어떠한 상태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았고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석정은 타이요우의 말처럼 ‘호시’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별. 그녀는 완벽하게 무대를 해냈었다. 내가 보았고 소설 속 모든 이들이 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가 식민지의 백성이었기에 패배를 하였고 나는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의 사랑 역시 어긋나게 된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2권에서는 이들의 사랑이 진전되지만 동시에 끝을 알리는 예고가 찾아오게 된다.
 사랑의 진전을 보여주려는 듯이 타이요우가 미하로에게 ‘사랑이 이미 시작된 것 같다.’라고 말했을 때 나는 쾌감과 안타까움을 느꼈었다. 비극만 남게 되는 이들의 사랑. 잔혹하고 아름다운 이들의 사랑. 청춘의 남녀 사랑을 과연 누가 말릴 수 있을까!

흥미로운 장면이 있었다. 석정이 정일과의 대화가 인상 깊었다. ‘모정일’은 그녀의 오라비이면서 동시에 독립운동가이었다. 참으로 웃기지 않은가? 아비는 친일파의 앞잡이, 아들은 그에 반대하는 독립운동가. 엇갈린 선택을 하는 이들.
석정은 무엇을 택하였을까? 그녀는 정확한 선택을 내리지 않았다. 그저 억압된 사회에서 자신의 예술로 싸우겠다고 선언하는 그녀였다. ‘더 먼 세상에서, 더 넓은 세상이 아닌’ 이 억압된 세상에서 말이다.
 그녀가 선언하는 동시에 밖을 바라보았다. 새가 지저귀는 하늘, 분주한 사람들의 발걸음거리 그리고 그 속에서 종종 보이는 환한 웃음을 띤 사람들 혹은 다른 감정들을 띠고 있거나, 정말로 ‘자유로웠다.’
과거에 모정일 같은 사람이 있었기에, 모석정 같은 이들이 있었기에, 또 그 외의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평범한 나날들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다시 돌아와 이번에는 타이요우와 그의 어머니 앤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사랑을 잃은 앤 그리고 사랑을 갈구하는 타이요우. 앤은 사랑이 신기루임을, 타이요우는 사랑은 행복이라는 것을. 서로 대립한 입장들을 말하고 있는 이들. 같은 공간에서 살아왔지만 다른 경험들을 가진 자들. 인간은 그래서 아름다운 걸지도 모른다. 평범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면서 동시에 잔혹하기도 한…, 인간이 가진 유일한 것이 아닐까.

 서로를 위해 포기하려 했다. 석정과 타이요우는. 시대를 위해, 자신들을 위해 그러나 사랑을 위하진 않았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인정하였다. 나는 이들이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것이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이미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사랑이란 게 뭔지, 모든 것을 포기할 만큼 처절했던 것일까. 사상이나 신념 그런 것 따위 다 버릴 정도로 사랑을 그렇게 취하고 싶었을까. 나는 안타까움에 고개를 숙였었다.

 대망의 3권에서는 사랑의 파멸 그리고…,를 담은 이야기다.
석정과 타이요우의 관계를 파멸시키기 위해 타이요우의 아버지인 ‘이치카와 요시히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석정의 아버지 모구연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권력이나 명성이란 것이 뭔지, 혈통이란 것이 뭔지, 그런 것이 정말 중요했었을까. 아니, 그 당시에는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지나치게 말이다.

 모든 것을 알아버린 석정과 타이요우는 미쳐가기 시작했다. 소제목처럼 ‘사랑이 잔인해지는 순간’처럼 말이다.
그녀가 모든 것을 잃고 머리를 자른 것을 지켜보던 나는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표정은 한없이 싸늘했지만, 알 수 있었다. 너무 슬프기 때문에, 울 수 없을 정도로 지쳐있었다는 걸 말이다.
타이요우와 함께 눈을 마주쳤을 때처럼,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된 거죠?’라고 생각했을 때처럼, 어쩌다 그들이 파멸의 끝으로 향하게 되었을까.
이들은 타인에게 있어 정말 ‘사랑유죄’ 이었나 보다. 일본인과 조선인이 사랑했기에, 서로 다른 세력의 사람들이 사랑했기에, 이들의 사랑은 정말 죄었나 보다.

 그러나 제아무리 잘못된 길이여도 끝은 오길 마련이다. 이치카와 요시히로의 일본의 동아시아 침탈계획을 방해하는 데 성공하고 더불어 그의 죽음 이후 이들은 낙원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끝나지 않는 낙원…, 조선이 아닌, 일본이 아닌, 그들의 원하는 곳 그레트나그린 아니, 그 이상도 상관없었다. 모든 것을 잊고 떠나길 바랐다. 그들뿐만이 아닌 나조차도 말이다.

 그날따라 그곳 날씨는 지독하게 추웠나 보다. ‘여기’에서의 폭설이 내렸던 것처럼 ‘그곳’에서도 역시 하얀 눈이 한없이 내렸었다.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석정과 타이요우. 그리고 그와 그녀가 마음속으로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곳에서 기다려 주시리라 믿습니다.’

‘아무렴요.’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오래오래 있다 오십시오. 너무 빨리 오시면 제가 화를 낼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서 가장 좋은 것, 가장 행복한 것, 가장 아름다운 것 다 보시고 호시절 오면 한껏 행복에 겨우시다 늦도록 천천히 오십시오. 아무리 오래 걸려도 그대를 기다릴 테니 조바심 내지 마고 그대의 찬란한 생을 모두 즐기고 오십시오. 그러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그대 오거들랑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별 하나, 이내 가슴에 깊게 아로새기렵니다. 호시여, 나의 별 같은 무희여’

 지독했다. 마지막까지도 지독했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낙원을 향해 달려가던 도중 타이요우가 죽고 난 후,  헌병에게 붙잡힌 석정이 감옥에서 자결할 때 미친 듯이 울었었다. 이들은 그저 사랑만을 원했을 뿐인데, 세상은 그들을 허락하지 않았나 보다.
다음 생이란 것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믿고 싶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처럼, 새하얀 구름 아래에서, 그레트나그린 위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길 정말로 바랐었다.

 석정의 죽음 이후 세상은 많은 변화를 일으켜왔다. 석정과 타이요우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 탄생하게 되고 광복 이후의 정일의 이야기…. 예전과 달리 많은 평화가 찾아온 이야기로 [스캔들 1930]은 이리 막을 내리게 낸다.

5년이 넘도록 이 책을 읽었지만 아직도 작가님께서 그려낸 숨겨져 있는 의미들을 완전히 찾지 못하였다. 초고를 쓰는데도 5년이 걸린, 순간마다 감동과 눈물을 나게 한 이 책은 나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웹 소설 삽화 역시 찾아볼 수 있었는데 하나하나 묘사가 정말 잘 되어있었다. 특히 석정이 감옥에서 자결하기 직전 세상에 유언을 남겼을 때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을 보자 바로 느꼈었다.
 ‘뒷모습이 지독히도 쓸쓸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편안 해보았다. 모든 것을 두고 사랑하는 이를 만나러 가는 그녀의 모습은 사무치게 아름다웠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한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그러다 보면 추운 겨울이 올 것이고…,
그러나 봄은 또다시 따스하게 우리를 찾아와 줄 것이다.
석정과 타이요우에게도 봄은 찾아왔을까? 나는 언제나 책을 덮으면서 생각한다. 왔을 것이다. 지독히도 아팠으니깐,
그들의 봄은 찬란한 꽃을 피웠을 것이다.

 이 이야기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다름 아닌 작가님 덕분이었다. 인생에 있어 최고의 소설이었다. 나의 삶을 변화시켰고 나를 울리게 했고… 그리고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과하객 18-12-01 12:59
 
김민주 작가의 '스캔들 1930'. 꼭 읽어보아야겠네요. 좋은 작품 소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스푼 18-12-04 23:26
 
긴 글을 읽어주신 점, 댓글 달아주신 점 정말 감사합니다. 스캔들 1930은 많은 감동을 남는 책입니다.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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