룬의 아이들
"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은 1부 윈터러 19장의 제목으로 영국 시인 윌리엄 헨리의 시 인빅투스(Invictus)의 마지막 구절이다. ‘Invictus’는 ‘정복할 수 없다’라는 뜻이며 1부의 주인공인 보리스가 더 이상 운명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선택을 명확히 보여주는 듯해 더욱 가슴 깊숙이 파고든다.
나에게 ‘룬의 아이들’은 장난삼아 읽기 시작한 책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아이들의 시련과 고난,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모습에 이게 정말 판타지 소설이 맞는건가 싶었다. 소설의 내용과 일치하는 의미심장한 시와 노래들은 이 소설을 한번 읽어버리고 훅 던져버리는 판타지 소설이 아닌 그 이상의 뭔가로 느껴지게 했으며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고 새로운 느낌을 얻게 만들었다.
1부의 주인공인 보리스는 춥고 척박한 트라바체스 땅에 살며, 수많은 정쟁들을 목격하지만, 따듯한 형의 사랑을 받는 어린 소년이었다. 아버지가 삼촌에게 죽고 저택이 썩어가는 것을 두눈으로 직접 보고, 서서히 죽어가는 형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버티며 안간힘을 쓰는 것에 슬퍼한다. 그는 끝까지 살아가겠다는 형과의 약속에 그의 이름 의미대로 ‘전사’가 되려한다. 그리고 그는 형에게 받은 가문의 위험한 보물 윈터러를 들고 혹독한 세상에 맞선다. 그의 운명에 맞선 싸움은 나에게 그의 처절함과 굳은 의지가 느껴져 슬프면서도 고귀하게 느껴졌다.
보리스는 수많은 사람들의 배신과 위협에 직면하고 윈터러의 강력한 힘에 유혹당한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자신의 본성을 잃지 않았으며, 그의 형, 연인, 스승에 대한 사랑으로 유혹을 이겨내고 그에게 닥친 ‘겨울’이라는 계절을 지나보낸다. 겨울은 그를 한없이 아프게 했고, 많은 것을 빼앗아갔다. 그러나 겨울을 지새는 자인 보리스는 삶의 의미를 찾아내고 자기자신을 지켜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 그를 지켜주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도 복수에 미친 괴물이나, 삶을 포기한 폐인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1부의 끝에서 조용히 소설 속 인물에 불과한 그에게 위로와 축복의 말을 읊조리고 있었다.
2부의 주인공인 조슈아는 아르님 공작가의 후계자로 귀하게 자란 아름다운 소년이다. 그의 아름다운 외모는 무엇이든 잘 해내는 악마적인 재능 ‘데모닉’과 함께 어떤 사람이라도 매력적으로 느낀다. 그러나 ‘데모닉’은 모두 성인이 되기도 전에 자신의 광기에 사로잡혀 죽었으며 그 또한 언제나 다가오는 내면의 광기와 싸웠다.
그는 자신의 혈통에 숨겨진 비밀들을 알아내고 매부인 테오가 만들어낸 그의 복제인간과 조우한다. 자신의 신분을 잊어버리고 도망치고 싶다는 욕망과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괴로워하던 그는 자신을 믿어준 사람들을 보며 데모닉이었던 초대공작처럼 수많은 이들의 공작이 되겠다고 결심한다.
둘의 시련은 다른 모습이었지만 그들은 각자가 그리게 된 모습대로 성장해나갔다. 보리스는 강력한 힘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들을 지켜내기 위한 굳건한 전사가 되어가고, 조슈아는 자신의 광기를 이해하고 자신을 믿어주는 자들을 위해 모두를 이끌고자 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그들의 성장과 시련을 우리에게 전달하는데서 그치는게 아니라 우리에게 시련에 맞서고자 하는 용기를 주고 마음 속 깊숙한 그곳을 자극해 깊은 감동을 준다.
룬의 아이들은 판타지 소설이지만 그러한 판타지적인 요소는 우리가 더 쉽게 이해하고 흥미롭게 느끼게 할 뿐 오히려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더욱 매력적인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흔히 판타지 소설하면 아무런 교훈도 의미도 없는 흥미 위주의 책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를 떠올림으로써 가슴이 따뜻해져 옴을 느낄 수 있다면, 그리고 인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문학의 의미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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